도덕경 53~61장

단차 | 2023.12.11 22:56:49 댓글: 0 조회: 249 추천: 1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28141
 53 장

큰 길은 평탄하건만, 군주는 지름길의 좁은 길을 좋아한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人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道竽.

  

  非道也哉!

  

   

  나에게 아주 작은 지혜가 있어 큰 길을 걸을 때, 유일한 두려움은 단지 길을 잘못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큰 길은 평탄하건만, 군주는 지름길의 좁은 길을 좋아한다.

  조정의 부패는 이미 극심하고 논밭은 황폐하다.

  창고는 비어 있지만, 군주의 의복은 화려하고 차고 있는 칼은 예리하다. 진수성찬도 넘쳐 싫어할 정도이고, 재물은 남아 돌 정도이다.

  이를 일러 도둑의 수괴라 한다.

  그야말로 도가 아니다!

   

  ― 한자 풀이

   

  介 개 ‘미소微少’, “매우 적다.”는 의미이다.

  施 시 사邪, “길을 잘못 가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人 인 ‘인군人君’, 즉 ‘군주’를 뜻한다.

  朝甚除 조심제 “조정의 부패가 극심하다.”로 해석한다.

  竽 우 ‘우두머리’라는 의미이다.

   

   

  ― 깊이 보기

   

  도둑의 수괴

   

  이 글은 당시 사회에 대한 노자의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압제자에 대한 분노가 치열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동시에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들에 대한 노자의 진지한 동정 역시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배어나고 있다. 백성을 압박하고 수탈하는 위정자는 반드시 붕괴된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은 그대로 장자莊子에게도 계승되었다. 장자는 “허리띠를 훔친 자는 사형에 처해지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왕이 된다.”고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54 장

수양이 이뤄진 몸은 그 덕이 참되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20), 以天下

  

  20)國 대신 邦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

   

  

  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아니하고, 잘 포용한 것은 벗어나는 것이 없다.

  그러한 집에는 자손 대대로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잘 닦여진 사람은 그 덕이 참되고, 잘 정돈된 집은 그 덕이 남음이 있으며, 잘 정돈된 고을은 그 덕이 멀리 뻗어나간다.

  잘 정돈된 나라는 그 덕이 풍요롭고, 수양이 이뤄진 천하는 그 덕이 널리 전해진다.

  그러므로 나 자신으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나의 가정으로 다른 가정을 관찰하며, 나의 고을로 다른 고을을 관찰하고, 나의 국가로 다른 국가를 관찰하며, 나의 천하로 다른 천하를 관찰한다.

  내가 어떻게 천하를 알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방법과 원칙 때문이다.

   

   

  ― 한자 풀이

   

  建 건 입立, “세우다.”로 해석한다.

  抱 포 “포용하다.”의 뜻이다.

 
 輟 철 “단절하다.”의 뜻을 가졌다.

   

   

  ― 깊이 보기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는다

   

  『도덕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례로써 이치를 설명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하여 이 장에서도 앞의 문장 해석에서 도덕규범을 만들거나 준수하는 그러한 추상적인 해석보다는 집 등을 짓고, 가족을 잘 포용하고 이끌어나가는 것, 심지어 말똥을 언급하는 등 가장 구체적이며 우리 삶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글에 나오는 이신관신以身觀身, 이가관가以家觀家, 이향관향以鄕觀鄕, 이국관국以國觀國, 이천하관천하以天下觀天下의 구절은 유교의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이른바 ‘8조목八條目’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수신修身의 개념과 관련하여 유가와 도가에서 가리키는 내용은 동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상이하지도 않다.

  유가와 도가는 모두 수신修身이 입신처세立身處世의 토대라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도가의 경우, 수신이란 어디까지나 도와 자연에 자신을 부합시키려는 노력으로서 이른바 ‘위가爲家’와 ‘위국爲國’ 역시 수신의 자연스러운 발전으로 파악한다. 이에 비하여 유가는 수신을 치국 평천하를 위한 목적의식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55 장

도에 어긋나는 것은 곧 죽는다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虿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두터운 덕을 갖춘 자는 마치 갓난아이와 같다.

  벌도 전갈도 쏘지 않고, 뱀도 물지 않고, 맹수도 덤벼들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덮치지 않는다.

  뼈가 약하고 근육이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강하다. 음양의 교합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지만 언제나 왕성하다. 정기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조화로움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상常’(영원함)이라 하고, ‘상常’을 아는 것을 ‘명明’(밝음)이라 하며, 생명에 유익한 것을 ‘상祥’(상서로움)이라 한다. 그리고 마음대로 기氣를 부리는 것을 ‘강强’(굳셈)이라 한다.

  만물은 지나치게 성해지면 곧 쇠퇴한다.

  이것을 가리켜 도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도에 어긋나는 것은 곧 죽는다.

   

  

  뼈가 약하고 근육이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강하다. 음양의 교합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지만 언제나 왕성하다. 정기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조화로움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상常’(영원함)이라 하고, ‘상常’을 아는 것을 ‘명明’(밝음)이라 하며, 생명에 유익한 것을 ‘상祥’(상서로움)이라 한다. 그리고 마음대로 기氣를 부리는 것을 ‘강强’(굳셈)이라 한다.

  만물은 지나치게 성해지면 곧 쇠퇴한다.

  이것을 가리켜 도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도에 어긋나는 것은 곧 죽는다.

   

   

  ― 한자 풀이

   

  蜂虿虺蛇 봉채훼사 ‘독충’을 가리킨다.

   

   

  ― 깊이 보기

   

  덕을 갖춘 자는 마치 갓난아이와 같다

   

  중국인들은 “화위귀和爲貴, 조화를 이루는 것, 혹은 화해를 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는 말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그 만큼 중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조화로움과 화해를 중시한다는 반증이다. 이 글은 그러한 조화, 화和를 다루고 있다. 특히 “지화왈상知和曰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조화를 사물의 상태常態, 일상적 형태로 삼는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어떻게 조화를 일상적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도덕경』에는 ‘갓난아이’, ‘어린아이’라는 비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갓난아이’ 혹은 ‘어린아이’란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과 소박함, 시초 그리고 유약함을 상징한다.

 


 56 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여 둥글게 하고, 분란을 화해시키며 빛을 부드럽게 하고 속세와 함께 한다.

  이를 일러 심오한 현동玄同, 즉 ‘도’라 한다.

  그러므로 친하게 할 수 없고, 소원하게 할 수 없으며, 이익을 줄 수 없고, 해를 줄 수도 없다. 또 귀하게 대접할 수 없고, 천대할 수도 없다.22)

  

  22)이 구절은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친소親疎나 이익 그리고 귀천이라는 세속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의 존중을 받게 된다.

   

   

  ― 한자 풀이

   

  挫其銳 좌기예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여 둥글게 하다.”로 해석한다.

  和其光 화기광 “빛, 광채를 부드럽게 하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同其塵 동기진 진塵은 ‘홍진紅塵’, 즉 ‘속세’를 의미한다.

  玄同 현동 ‘현묘제동玄妙齊同’, 여기서는 곧 도道를 의미한다.

   

   

  ― 깊이 보기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빛을 부드럽게 하다

   

  노자는 이 글에서 지혜로운 자, 지자智者가 어떠한 방법을 통하여 수양해야 하는가의 방법과 그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날카로운 것은 쉽게 부러지고 장구할 수 없다. 마땅히 날카로운 곳을 갈아서 부드럽게 만들어야 비로소 부러지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오래갈 수 없다. 더구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더욱 안 된다. 그것은 기껏해야 한쪽 방면, 즉 편면片面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사물의 양면을 모두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공리공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아 수양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대범하고 관대하며, 능히 속세와 함께 하면서도 사심을 버리고 분란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마침내 사람들의 존중을 받게 된다.

 

 
 57 장

무위로 나라를 다스리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朴.

  

   

  무위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묘한 계략으로 전쟁을 하며, 백성을 괴롭히지 않고 천하의 신뢰를 얻는다.

  내가 어떻게 이러한 이치를 알았는가? 답은 바로 다음과 같다.

  천하에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들은 가난해지고, 백성들에게 예리한 무기가 많을수록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의 지식과 기교가 많아질수록 기이하고 사악한 물건이 많아진다.

  또한 법령이 많을수록 도둑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무위를 행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순화되고 내가 고요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바르게 된다.

  내가 백성을 괴롭히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히 풍요로워지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히 순박해진다.”

   

   

  ― 한자 풀이

   

  以正治國 이정치국 정正은 ‘무위無爲’, ‘청정淸淨’의 의미이다.

  自化 자화 “스스로 순화되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법령이 많을수록 도둑이 많아진다

   

  이 글에서 말하는 “법령이 많을수록 도둑이 많아진다.”는 법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도생법道生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실 법가는 본래 도가사상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었다. 법가의 선구자인 신도愼到는 청정이치淸靜而治를 주창하면서 법이란 반드시 자연 본성을 준수해야 함을 강조하였다.23) 또 대표적인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는 그 사상적 근원을 노자에 둘 만큼 노자사상에 깊이 심취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도덕경』을 주해한 『해로解老』와 『유로喩老』를 저술하는 등 장자莊子와 함께 노자사상의 정수를 터득한 두 명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마천이 『사기』 「노자한비자열전」에서 노자, 장자, 신도, 그리고 한비자를 ‘노장신한老莊申韓’으로 합쳐 기술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마천은 여기에서 “신도의 학문은 황로에서 비롯되어 형명刑名을 주장하고, 한비자는 형명법술刑名法術의 학문에 심취했는데, 이러한 학설은 황로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도가는 청정무위와 ‘이도생법以道生法’을 강조한 반면, 법가는 도의 규율성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또 도가는 제자백가 사상을 모두 포용하여 받아들인 데 비하여 법가는 백가사상을 엄금하였다.

  

  23)전국시대 제나라 선왕宣王(기원전 320~302년)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천하의 선비를 모아 이른바 직하稷下 학관學官을 운영하였다. ‘직하’라는 명칭은 제나라 수도 임치의 성문인 직문稷門이라는 부근에 선비들이 거주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직하 학관의 대표적 인물은 신도였지만, 그 사상에 있어서는 황로도의 세력이 압도적이었다.

   

  한편 이 장의 “사람들의 지식과 기교가 많아질수록 기이하고 사악한 물건이 많아진다.”는 구절에 의거하여 노자가 일체의 상공업을 반대했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물론 노자가 무위無爲와 무사無事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자가 반대한 것은 일체의 상공업 행위가 아니라 과도한 탐욕적 행위와 거짓, 속임수였다. 특히 글 후반에 있는 아무사이민자부我無事而民自富, 즉 “내가 무사無事하면 백성들은 자연히 풍요로워진다.”는 말에서도 노자가 상공업 일체를 반대했다는 견해에 대한 유력한 반박의 증거가 입증되고 있다. 여기에서 무사無事란 강제적 정책이나 정부 조치로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 통일된 국가로서 지대물박地大物博,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들이 장사를 비롯하여 여러 형태의 상업 활동을 쉽게 할 수 있고 동시에 광범한 범위에서의 상품 교역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중국에 30~40년 동안이라도 전쟁이 없고 혼란 상태가 발생하지 않는 치세가 이어졌을 때에는 곧 농업과 상공업 등 모든 경제 부문이 번성해져 국가의 경제가 쉽게 융성하고 부강해졌다. 그리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주창했던 『사기』의 저자 사마천도 ‘화식열전’에서 가장 나쁜 정부 정책은 “백성의 생활에 간섭하면서 그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적인 추세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노자와 완전히 일치된 주장이었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거의 2천 년 뒤에야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도道’와 ‘자연의 효험[自然之驗]’으로 표현하여 설명하고 있다. ‘도’와 ‘자연의 효험’이라는 용어는 전적으로 노자 사상의 개념이다.

 


  58 장

화禍는 복福이 기대는 바이고,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정치가 관후하면 백성들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가혹해지면 백성들의 불만이 많아진다.

  화禍는 복福이 기대는 바이고,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해진 것이 없다.

  정상적인 것과 괴이한 것은 서로 전변轉變하며, 선과 사악은 상호 순환한다.

 
 사람들의 미혹됨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성인은 모서리가 나 있는 방정형方正型이지만 그 모서리로 남을 해치지 않고, 예리하지만 남을 다치게 아니한다.

  진솔하지만 함부로 하지 않고, 빛나지만 눈을 찌르는 것과 같은 자극이 없다.

   

   

  ― 한자 풀이

   

  悶悶 민민 ‘관후寬厚함’을 형용한다.

  察察 찰찰 ‘가혹’을 형용한다.

  缺缺 결결 ‘불만족함’을 형용하고 있다.

  廉 렴 “예리하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사람들의 미혹됨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이 글은 정치와 사회의 변화와 순환을 논하고 있다.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은 잘 알려진 명구이다. “화禍는 복福이 기대는 바이고,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의 뜻으로 일종의 변증법이다. 정복위기, 선복위요正復爲奇, 善復爲妖. “정상적인 것과 괴이한 것은 서로 전변轉變하며, 선과 사악은 상호 순환한다.”라는 구절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세계는 노자가 개척한 것이다. 다만 노자는 그 변화와 발전의 측면보다 순환의 측면을 더 강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도덕경』은 흔히 상대론의 관점을 지닌다고 평가된다. 아름다움을 예로 들어, ‘추함’이 없으면 어떻게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선善’이 없고서는 ‘악惡’이 존재할 수 없다. ‘유有’와 ‘무無’, 남과 북, 선과 후 그리고 ‘허虛’와 ‘실實’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관념은 서로 상대적이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대적인 것은 마치 4계절처럼 서로 이어져 본래의 근원으로 회귀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뒤에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이어지고 회귀하며 순환하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시 ‘도道’ 속으로 돌아간다. ‘도道’로부터 나와 다시 ‘도’로 돌아간다. 장자莊子는 이러한 순환론에서 절대적 상대주의의 차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가될 수 있다.

 


 59 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에 검약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에 검약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검약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쉼 없이 덕을 쌓는 것이다.

  쉼 없이 덕을 쌓으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이기지 못할 것이 없게 되면 그 힘의 끝을 알지 못하게 된다.

 
 끝을 알지 못할 힘을 가지게 되면 능히 나라를 다스릴 중책을 맡을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릴 원칙과 도리를 지니면 능히 장구할 수 있다.

  이것을 일컬어 뿌리를 깊고 튼튼히 하여 장생불사하는 도道의 길이라고 한다.

   

   

  ― 한자 풀이

   

  治人事天 치인사천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다”로 해석한다.

  嗇 색 ‘검약’으로 해석한다.

  早服 조복 “미리 준비하다.”의 의미이다.

  母 모 ‘원칙과 도리’의 뜻이다

 
 ― 깊이 보기

   

  검약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이 글은 노자가 치국治國과 양생養生의 원칙과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는 글이다. 검약을 자기가 가진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인식하는 노자는 검약을 수양의 중요한 미덕이며, 나아가 나라를 다스리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치국안방治國安邦의 근본 원칙으로 제시한다. 검약이란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묘미가 있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을 때로는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도저히 예측할 수도 없이 돌연 찾아오고 발생한다. 그럴 때 더구나 마음의 준비도 없고 다른 별도의 준비 없이 일을 당한다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할 때 검약으로써 미리 ‘남겨놓고’ 준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허둥지둥 혼란에 빠지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최소한 준비 없는 다른 사람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크게는 국가를 유지하는 정치에서, 작게는 개개인의 생명을 장구하게 유지하는 일 모두 검약이라는 원칙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니 모든 일을 검약의 원칙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도덕경』 해석은 되도록이면 단순함과 간략함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의 치인사천治人事天의 해석에서도 천天을 심신心身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연自然으로 해석해야 하는가의 논쟁이 전개된다. 색嗇도 “소중히 여기다”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다. 자칫 견강부회24)와 교각살우25)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24)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다.

 
 25)교각살우矯角殺牛: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잘못된 점을 고치려다가 그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이다.

 



 60 장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

   

   

   

  治大國, 若烹小鮮.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26)

  

  26)이 부분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첫째,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물고기 요리와 같아 모양이 쉽게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너무 뒤적거려서는 안 된다.” 둘째,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물고기를 요리하는 것과 같아, 기름, 소금, 장, 식초가 정확하게 배합되어야 하고, 지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 된다.” 셋째,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어렵다. 양자 모두 불을 잘 조절하고 조미료를 주의해야 한다.”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난을 일으키는 자(혹은 나라의 불안정요소)들이 소란을 일으키지 못한다.

  비단 난을 일으키는 자가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란을 일으켜도 사람들을 상하게 하지 못한다.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은 사람들을 상하게 하지 못하고, 덕이 있는 성인 역시 사람들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난을 일으키는 자들과 성인 모두 상하게 하지 않으므로 덕의 은덕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진다.

   

   

  ― 한자 풀이

   

  莅 리 “다스리다.”의 의미이다.

  鬼 귀 ‘난을 일으키는 자’, 혹은 ‘국가의 불안정요인’의 뜻이다.

  神 신 신통력을 의미하고, 여기에서는 “소란을 일으키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요리를 하는 일

   

  치국治國의 도리를 논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 ‘선鮮’은 이제까지 줄곧 ‘생선生鮮’으로 해석되어 왔다. 즉, 생선을 요리할 때 자꾸 뒤집으면 모양이 엉망으로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요리해야 한다고 풀이되어왔다. 특히 법가의 대표적 주창자이자 노자의 탁월한 제자이기도 했던 한비자가 이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구절을 “국가를 다스릴 때는 정책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며, 자주 바꿔서는 안 된다.”라고 풀이한 이래 이러한 해석은 주류적인 해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왔다. 특히 이러한 해석은 안정을 최우선시하면서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요구를 반대하는 보수적인 논리로 활용되어왔다.

 
 ‘선鮮’이라는 한자는 사실 ‘어魚’와 ‘양羊’이 합쳐져 만들어진 한자어로서 그 본래 의미는 물고기와 양고기 등의 총칭이다. 실제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양고기를 즐겨 먹었고, 남방 지역에서는 물고기를 식용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팽소선烹小鮮’은 ‘간단한 요리’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다. 즉,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로 해석해야 한다.



 

  61 장

대국과 소국 모두 각기 바라는 바를 얻어야 한다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爲下.

  

   

  대국이란 강과 바다와 같아 천하의 모든 흐름이 만나는 천하의 음陰이다.

  음은 항상 정적靜的인 것으로써 양陽을 이긴다.

  정靜으로써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국이 소국을 겸허한 태도로 대하면 소국을 취할 수 있다.

  소국이 대국을 겸허한 태도로 대하면 대국을 취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대국이 소국의 신뢰를 취하고, 소국이 대국의 신뢰를 취한다.

  대국은 과욕을 부려 소국을 통치하려 해서는 안 되고, 소국은 대국에게 지나치게 순종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 각기 바라는 바를 얻어야 하고, 대국은 특별히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 한자 풀이

   

  兼畜人 겸축인 “한꺼번에 모아 보호하다.”, 즉 “통치하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어떻게 국가들은 평화 공존할 수 있는가?

   

  국제관계에 관한 노자의 논술이다. 노자가 살던 춘추시대 당시, 중국 대륙은 수십 수백 나라로 분열된 상태였다. 전란과 무자비한 살육, 그리고 처절한 굶주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한 분열과 전란의 시기에 강대국은 약육강식으로 약소국을 병탄하고 침략하여 무자비한 인명 살상을 자행하였다. 그때마다 수십 만 명, 수백 만 명 심지어 수천 만 명이 몰살되는 비극이 잇달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자는 대국과 소국이 과연 어떤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만 비로소 상호 평화적으로 공존, 공영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대국이 과욕을 부려 소국을 통치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마땅히 아래[下]에 처함으로써” 특별히 겸허해야 함을 권고한다.

  노자는 작은 나라, 소국이 겸허한 태도로 대하면 대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대국에게 지나치게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노자의 관점은 오늘의 국제관계에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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