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62~70장

단차 | 2023.12.12 05:29:13 댓글: 0 조회: 173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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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장

도는 만물의 주재자主宰者이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美言可以市尊, 美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故立天子,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도는 만물의 주재자主宰者이다.

  선인善人의 법보法寶이고, 선하지 못한 자도 그로써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말은 널리 존중을 받고, 아름다운 행동은 사람들의 추대를 받는다.

  선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어찌 그들을 버려야 하는가?

  그러므로 천자가 세워지고 삼공이 임명되어 비록 사람들에 의하여 받들어지고 사두마차의 화려한 의례를 누리지만, 이는 정좌하여 도道에 들어가는 것만 못하다.

  왜 옛 사람들이 도를 귀하게 여겼겠는가?

  원한다면 얻을 수 있고 죄를 지어도 면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도는 모든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바이다.

   

   

  ― 한자 풀이

  市尊 “널리 존중을 받다.”의 의미이다.

  加人 “사람들에 의하여 추대를 받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모든 사람은 도道 앞에서 평등하다

   

  노자는 이 장에서 다시금 도의 장점과 그 위대한 역할을 찬미한다. 특히 선한 사람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일지라도 도를 얻고자 하면 구제될 수 있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도道는 선하지 못한, 나쁜 사람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은 도道 앞에서 평등하다.”는 규율이다.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주는 명징明澄27)한 글귀이다. 공자도 비슷한 언급을 한 바 있었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으면, 이야말로 가장 큰 허물이다[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인간은 누구나 과오를 범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오를 고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27)명징明澄하다: 깨끗하고 맑다.

 
 모든 사람은 도道 앞에서 평등하다

   

 
 


 63 장

천하의 대사는 반드시 미세한 곳부터 시작한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무위의 태도로 일을 하고, 일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며, 아무런 맛이 없는 것으로써 맛을 삼는다.

  큰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나오고, 많은 것은 적은 것으로부터 나온다.28) 덕으로써 원한을 갚는다.29)

  

  28)다른 해석으로는,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며, 많은 것을 버리고 적은 것을 취한다.” 혹은 “큰 것은 작은 것으로 보고, 많은 것은 적은 것으로 본다.”의 해석이 있다.

  29)한편 大小多少, 報怨以德 구절을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청정무위淸淨無爲의 도덕으로 대할 일이다.”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려면 쉬울 때 해야 하고, 큰일은 미세한 곳부터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쉬울 때 처리하고 천하의 대사는 반드시 미세한 곳부터 시작한다.

  성인은 결코 커다란 공을 탐하지 않으므로 능히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쉽게 약속을 한 일은 반드시 실현하기 어려워지며, 쉽다고 여기는 일은 반드시 어려운 경우를 당하게 된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일을 쉽게 여기지 않으며, 그러므로 끝내 곤란을 겪지 않게 된다.

   

   

  ― 한자 풀이

 

 難之 난지 “신중한 태도, 세밀한 자세로 임하다.”의 뜻이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무위無爲로써 ‘위爲’를 하고, 무사無事로써 사事를 하며, 무미無味로써 미味로 삼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유무위有無爲’와 ‘사무사事無事’

   

  이 글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가를 다룬 일종의 처세론이다. 성인은 천하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 언제나 ‘무위’의 태도로 임하며, 이는 자연의 규율에 순응하여 ‘위爲’하는 것이므로 곧 ‘유무위有無爲’가 된다. 또한 성인은 일을 처리할 때 ‘인위’와 ‘작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객관적 조건이 성숙하여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무사無事’의 방식으로 하므로 곧 ‘사무사事無事’이다. 이를테면, 가습기 살균제나 음이온 침대는 ‘작위’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것은 도리어 커다란 해악을 가져온다.

  성인은 결코 커다란 공을 탐하지 않으므로 능히 큰일을 이루어 내며, 일에 임해 쉽게 여기지 않고 신중하고 세밀하게 임하므로 끝내 곤란을 겪지 않게 된다. 노자는 모든 대사는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비롯된다고 인식한다. 입만 열면 천하 대사를 논하고 추상적인 공리공론만을 늘어놓는 허장성세의 풍조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자 비판이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누가 ‘구체적인’ ‘작은’ 일을 제기하면, 왜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자잘하게 구느냐고 핀잔까지 준다. 『진서陳書』는 말했다. “털끝만큼의 작은 잘못이 천리나 되는 엄청난 착오를 나타나게 한다[失之毫厘, 差以千里].” 핵심은 언제나 미세한 곳에 존재하는 법이다. 또한 미세한 작은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큰일을 할 수 없다.

 


 64 장

인위적으로 행하는 자는 실패하고, 집착하는 자는 잃는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

  

  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편안할 때 위태로운 것을 조심하면 유지하기가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우면 계획하기가 쉽다.

  단단하지 못한 것은 깨트려지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져 버리기 쉽다.

  아직 아무 일도 없을 때 처리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만한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구층의 높다란 누각도 한줌의 흙들로 쌓아 만들어지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인위적으로 행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집착하는 자는 잃게 된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무위로 행하여 실패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않으므로 잃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항상 거의 다 이뤄지다가 실패한다.

  시작할 때와 같이 끝맺음도 신중히 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들이 추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워서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을 복원시킨다.

  그렇게 만물의 자연스러움을 돕지만, 앞에 나서 간섭하지 않는다.

   

   

  ― 한자 풀이

   

  泮 반 산散, 혹은 해解와 통한다.

  欲不欲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다.”의 의미로 해석된다.

 
 而不敢爲 위爲는 ‘유위有爲’, ‘인위人爲’를 뜻한다.

   

   

  ― 깊이 보기

   

  끝맺음을 시작처럼 신중히 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노자는 이 글에서 성인의 자세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아무쪼록 무위의 원칙을 견지할 것과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인은 일을 행함에 있어 준비의 단계, 실행의 단계 그리고 마무리 단계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언제나 욕망을 절제해야 할 것이며, 처음만 있고 끝은 없는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흔히 노자에 대해 은둔이나 현실 도피 혹은 초탈의 이미지만 떠올린다. 하지만 이 글은 삶을 성실하고 실천적으로 대한 노자의 치열한 시각을 보여준다.

  왜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항상 거의 다 이뤄지다가 실패하는가? 노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일이 거의 이뤄지게 되면 마음이 풀어져 게을러지게 된다. 끈기가 부족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시작할 때 대단한 열정을 보이지만, 일이 거의 완성되려 할 때가 되면 그 열정은 그만 종적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기에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은 언제나 중요한 말이다. 愼終如始, 則無敗事. 시작할 때와 같이 끝맺음도 신중히 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노자는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지혜를 당부하고 있다.

 


 65 장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나라에 복이 있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稽式.

  

  常知稽式, 是謂玄德.

  

  玄德, 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옛날 도를 지닌 사람은 얕은 지혜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질박質朴과 무위로써 하였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지혜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재앙이고,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나라에 복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아는 것, 이는 곧 법칙이다.

  언제나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현덕玄德이다.

 
 현덕은 심오하고도 원대하다!

  만물과 함께 도의 질박함으로 돌아오니 비로소 자연에 이르게 된다.

   

   

  ― 한자 풀이

   

  稽式 계식 ‘준칙’, ‘법칙’을 말한다.

  大順 대순 ‘자연’을 의미한다.

   

   

  ― 깊이 보기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재앙이다

   

 
 이 글에서 ‘명明’ 혹은 ‘지智’란 일반적인 지식이나 지혜라기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인 지혜 혹은 이를테면 투기 정보나 불법 이득을 취하는 정보 등 탐욕을 추구하는 불법적 ‘지식’이나 기교와 사기에 가까운 지식을 말한다. 또 ‘우愚’는 우민정책이 아니라 ‘소박함’ 혹은 ‘질박함’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글은 위정의 원칙을 논하고 있다. 위정자가 기교와 간사함으로 정치를 하게 되면 좋지 못한 풍조가 초래되고, 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해를 끼치게 된다. 결국 사회와 국가가 태평한 나날이 없이 혼란해지게 된다. 반대로 위정자가 소박하고 성실한 자세로 정치를 시행하게 되면, 사회 풍조가 자연히 좋아지고 사람들도 서로 속일 필요가 없다. 그러니 나라도 자연히 태평해진다. 노자는 이 글에서 정치란 어디까지나 ‘도’와 ‘덕’을 근본으로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이익을 추구하거나 기껏 사람들 간에 마찰을 일으키기 쉬운 얕은 지식으로써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인 ‘거짓 지혜’가 만연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로지 출세만을 지향하는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 지상주의의 학문 풍조가 만연된다. 이러한 풍조로 인하여 사회 구성원이 소박하고 진실한 실질을 추구하지 않고 겉으로만 화려한 허명虛名과 속빈 외화내빈의 격렬한 경쟁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는 공존과 공영共榮이 아닌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원리만이 적용되는 독점과 차별과 소외의 슬픈 사회이다.





  66 장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이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이 모여드는 곳으로 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가장 낮은 곳에 능히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계곡이 귀의歸依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이 백성 위에 있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먼저 백성들에게 말로써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백성을 이끌고자 한다면 반드시 스스로의 몸을 백성들의 뒤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백성의 앞에 있어도 방해가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천하가 즐거이 추대하고도 싫어하지 않는다.

  더불어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의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다.

   

   

  ― 한자 풀이

   

  百谷王者 백곡왕자 ‘많은 골짜기의 물이 귀의歸依, 모여드는 곳’의 의미이다.

  重 중 ‘무거운 짐’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더불어 다투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다

   

  이 글은 ‘부쟁不爭’의 정치철학을 주창하고 있다. 노자는 통치자란 마땅히 백성의 아래에 그리고 뒤에 처해야 함을 역설한다. 군림하면 망하고 겸양하면 흥한다는 원칙이다. 오로지 위정자가 그러한 태도로써 임할 때만이 비로소 백성들은 비록 그가 위에 있어도 무겁게 여기지 아니하며, 앞에 있어도 결코 방해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노자는 그 이유를 강과 바다가 아래에 그리고 뒤에 있기 때문에 크고 작은 모든 강물이 모일 수 있었다는 비유를 들어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67 장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夫慈, 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세상 사람들 모두 나의 도가 위대하고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위대하다는 것은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닮았다고 한다면, 곧 도는 아주 사소하게 되어버린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첫째는 자애이고, 둘째는 검약이며, 셋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애가 있으므로 용기가 있을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능히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은 자애를 버리고 용감함을 추구하며, 검약을 버리고 크게 지출하고자 하고, 뒤에 있지 않으면서 앞에 나서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자애로써 전쟁을 치르면 곧 승리할 수 있고 또 그로써 지키면 견고하다.

  하늘이 어떤 사람을 도우려 할 때에는 자애로써 그를 보위한다.

 
 ― 한자 풀이

   

  不肖 불초 “닮지 않다.”는 뜻이다.

  器 기 ‘만물’을 가리킨다.

  且 차 취取와 같은 뜻으로 “추구하다.”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노자가 가진 세 가지 보물

   

  이 글에서 노자는 도의 원칙을 재차 천명하고 정치군사적 방면에서 도의 구체적 운용을 설명하고 있다. 자, 검 불감위천하선慈, 儉, 不敢爲天下先. 노자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세 가지 보물이다. 이 세 가지 보물 중 ‘자慈’는 유柔와 약弱, 동정 그리고 화和와 통하며, 그리하여 그 의미는 무위無爲에 이른다. 다음으로 ‘검儉’은 ‘검약’과 ‘절제’의 의미로서 힘을 축적하여 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을 지닌다. “빛을 숨기고 새벽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맥락을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은 ‘남과 다투지 않는’ 부쟁不爭과 겸양을 의미하며, “다른 사람들의 뒤에 그리고 아래에 처한다.”는 원칙이다. 위정자에 대한 요구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강제적인 정책 추진으로 일을 벌이고 만들어서 백성을 수고스럽게 하지 않는다.”는 무위정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세 가지 보물의 원칙은 도와 덕의 사회실천적 의의에 대한 노자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68 장

뛰어난 장수는 무용을 자랑하지 않는다

   

   

   

  善爲士者, 不武, 善戰者, 不怒, 善勝敵者, 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古之極.

 

  뛰어난 장수는 무용을 자랑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노하지 않으며, 적을 격파하는 데 능한 자는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다.

  이는 곧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는 품덕品德인 것이고, 다른 사람을 운용하는 능력이라 한다.

  이를 일러 자연의 도리에 부합한다고 한다.

   

   

  ― 한자 풀이

   

  不與 불여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다.”는 의미로서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다.”로 해석한다.

  配天古之極 배천고지극 “자연의 도리에 부합하다.”의 뜻이다.

 
 ― 깊이 보기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이 장에서 다루는 것은 바로 용병用兵과 작전作戰의 영역이다. 『도덕경』을 한 권의 병서兵書로 파악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바로 이 68장이다. 무武와 노怒는 그 자체로 이성 상실의 표현으로서 패배의 지름길이다. 반면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지 않고, 쉽게 노하지 않으며, 적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용인用人에 능하며,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는 자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병가兵家와 전쟁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라 인생과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이다.

 



 69 장

적을 무시하는 것보다 큰 재앙은 없다

   

   

   

  用兵有言.

  

  吾不敢爲主, 而爲客, 不敢進寸, 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용병에 이러한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도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수세를 취하며, 감히 일보步를 전진하지 않고 일척尺을 후퇴한다.”

  이를 일러 비록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마치 병력이 없는 것처럼 한다고 한다.

  팔을 치켜 올려 대규모 작전을 하려 할 때 도리어 팔이 없는 듯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며, 적을 앞에 두고도 마치 적이 없는 것처럼 하고, 무기가 있으면서도 마치 무기가 없는 것처럼 하는 방식이다.

  적을 무시하는 것보다 큰 재앙은 없으며, 적을 무시하게 되면 나의 보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양측의 실력이 비슷할 때에는 비분悲憤에 잠긴 쪽이 승리한다.

 
 

  용병에 이러한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도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수세를 취하며, 감히 일보步를 전진하지 않고 일척尺을 후퇴한다.”

  이를 일러 비록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마치 병력이 없는 것처럼 한다고 한다.

  팔을 치켜 올려 대규모 작전을 하려 할 때 도리어 팔이 없는 듯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며, 적을 앞에 두고도 마치 적이 없는 것처럼 하고, 무기가 있으면서도 마치 무기가 없는 것처럼 하는 방식이다.

  적을 무시하는 것보다 큰 재앙은 없으며, 적을 무시하게 되면 나의 보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양측의 실력이 비슷할 때에는 비분悲憤에 잠긴 쪽이 승리한다.

   

   

  ― 한자 풀이

   

  爲主 위주 “주도적으로 진공하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爲客 위객 “수세를 취하다.”의 뜻이다.

  行無行 행무행 행行은 ‘진세陣勢’의 의미이다.

  攘無臂 양무비 “팔을 치켜 올려 대규모 작전을 하려 할 때 도리어 팔이 없는 듯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다.”의 뜻이다.

   

   

  ― 깊이 보기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전진하다, 반수위공反守爲功

   

 
 ‘이퇴위진以退爲進’이라는 말이 있다. 물러남, 즉 양보를 하는 태도로써 도리어 전진의 결과를 쟁취한다는 의미이다. 양보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만족시켜 그로써 상대방의 경계심이 완화되면 아측我側의 일련의 요구들도 들어주게 된다. 기실 이러한 일련의 요구들은 아측의 진정한 목표이다. 결국 먼저 상대에게 양보를 하여 상대에게 순종한 뒤 주도권을 쟁취한다는 전략이다. ‘반수위공反守爲功’이라고도 한다. 노자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노자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시종여일하게 견지했다. 다만 불가피하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을 경우 어디까지나 수비를 위주로 해야 하며, 그로써 반드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물론 이러한 군사이론은 아래에 처하고(거하居下), 물러나서 지키는 것(퇴수退守)을 원칙으로 삼는 그의 처세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이 글로부터 “교만한 군사는 반드시 패하고, 비분에 잠긴 군사는 반드시 이긴다[驕兵必敗, 哀兵必勝]”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70 장

말에는 원칙이 있고, 일을 행함에는 근거가 있다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나의 말은 이해하기가 매우 쉽고 실행하기도 매우 쉽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원칙이 있고, 일을 행함에는 근거가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더욱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도를 지닌 성인은 항상 남루한 베옷을 입고서 구슬을 품에 감춘다.

 
 


  ― 한자 풀이

   

  言有宗 언유종 종宗은 ‘원칙’이라는 뜻이다.

  事有君 사유군 군君은 ‘근거’를 말한다.

  則 칙 법法과 통하여 “본받다.”, “따르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남루한 베옷을 입고서 구슬을 품에 감추다

   

  이 글에서 당시 통치자들에 대한 노자의 실망감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오吾’는 노자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고 ‘도道’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정靜, 유柔, 검약, 자애, 부쟁不爭, 무위 등은 모두 자연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쉽게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자는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고 빨리 공을 세우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무위의 원칙을 위배한다. 그리하여 “남루한 베옷을 입고서 품에 구슬을 감추고 있는” 지아자희知我者希,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노자의 그 마음은 오늘 우리의 마음에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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