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봉단편 3

3학년2반 | 2021.12.31 10:06:45 댓글: 0 조회: 52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8680
제 4장 이교리의 안신
1
그 처녀는 분홍 모시 적삼에 청베 치마를 입었는데 적삼은 낡아서 군데군데
미어졌고 치마는 승새가 굵어서 어레미집 같으니 구차한 집 처자인 것이 분명
하고, 또 빨래하는 손을 보더라도 살이 희기는 희나 결이 곱지 못하고 마디가
굵으니 험한 일을 하는 표적이 드러난다. ‘저런 차자에게 장가를 들고 시골 구
석에 묻히허 지냈더면 이런 죽을 고생도 아니할 것이지.’ 이교리는 팔자 한탄
하다가 자기의 한숨 소리에 처녀가 혹 돌아볼까 생각하여 방망이 소리가 그칠
때에는 한숨을 땅이 꺼지도록 크게 쉬었다. 그 처녀는 방망이질을 그치면 비비
고 쥐어짜고 또다시 방망이질을 시작하고 한숨 쉬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은
아는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이교리가 처녀에게 말을 불이고 싶으나 혹 무악을 볼지 몰라서 할까말까 주저
하다가 방망이가 쉬는 틈에 처녀에게로 고개를 내밀며 “날 좀 보아.” 하고 반
말을 붙이니 그 쳐녀가 돌아본다. 시원한 눈 속에는 총명이 가득하고 천연스러
운 얼굴에는 웃도 모양도 없고 성내는 기색도 없다. “버들잎은 무어야?” 이교
리는 할 말이 없는 것보다도 그 버들잎이 종시 알고 싶었던 것이다. 처녀는 웃
는 듯 마는 듯하게 웃고 말이 없이 다시 방망이를 잡는다. 이교리가 처녀의 대
답을 듣지 못하고 또 지싯지싯 말을 붙이다가는 견모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앉았던 자리에 드러누워서 아까 허둥지둥 쫓겨오던 모양과 지금의
방망이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는 모양을 함께 머릿속에 그리어 보고 지금 같이
다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워서는 곧 잡힌다 하여도 도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어느 틈에 해는 너웃너웃 지게 되고 빨래도 끝이났다. 처녀는 빨랫가지를 자
배기에 주워담고 밥 담았던 바가지를 그 위에 놓고나서 머리 위에 또아리를 얹
고 자배기를 들어 이려는데, 종일 빨래질에 팔에 알이 배었든지 자배기를 드는
모양이 남보기에도 거북하다. 처녀의 거동을 보고 있던 이교리가 언덕에서 쫓아
내려와서 자배기 드는 것을 부축하여 머리 위에 얹어주니 처녀는 또 웃는 듯 마
는 듯 웃고 말이 없이 돌아서 간다. 시내에서 활 한 바탕이 착실히 되느 곳에
외딴집이 있다. 멀찍이 처녀의 뒤를 따라온 이교리는 그 집 삽작 밖에 와서 “
주인 좀 보입시다.” 주인을 찾으니 나이 사오십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안에서
나오며 “무슨 일로 찾소?” 하고 이교리의 아래위를 훑어본다. 이교리가 “집
없는 고객으로 하룻밤 자자고 왔소.” 온 뜻을 말하니 그 사나이가 곧 대답을
아니하고 안을 향하여 “과객이 와서 하룻밤 재워 달라는데 어찌할까?” 물어
서, 거센 여인의 목소리로
“어디 재울 데 있소?” 하는 것을 듣고 그제야 “잘 데 없소, 다른 데로 가오.
” 하고 쫓는다. “하룻밤 자고 갑시다.” “잘 데 없다니까 그래.” “좀 자고
갑시다.” “아따 잔소리 말고 가오.” “사람의 집에서 사람이 못 잔단 말이오?
” “사람의 집이면 다 당신의 집이오?” 삽작 밖에서 ‘자자’‘못잔다’시비
판이 벌어졌을 때, 안에서 얼굴이 둥글고 넓적한 심술스러운 여인 하나와 빨래
하던 어여쁜 처녀가 내다보고서 그 처녀가 고운 목소리로 “어머니!” 불러가지
고 그 여인에게 ‘무어라 무어라’말을 하더니 그 여인이
“여보, 저렇게 염치 없이 모리악 쓰는 이는 처음 보겠구려. 말하기 귀찮거든
아무데서나 하룻밤 재워 보내오.” 사나이에게 말하니 그 사나이는 “그럴 테면
진작 재워 보내자지.” 혀를 툭툭 차고 나서 이교려를 보며 “과객질을 유년 해
보았구려. 들어오.” 볼멘 소리를 하였다.
2
그 집 주인은 아랫방이 불 안 때는 방이라 덥지가 않다고 과객을 인도하여,
이교리가 그 아랫방에 들어와서 보니, 이구석 저구석에 버들 일거리가 늘어놓였
다. 다 만든 모코리,동고리도 있고 날개를 꾸미지 아니한 키바탕도 있다. 이교리
는 선뜻 ‘백정의 집이구나.’ 짐작하고 자기가 삼한갑족의 양반으로 백정의 집
에 와서 자는 것은 창피하게 여기거나 또는 옥당 문관의 신분으로 백정의 집에
와서 자게 된 것을 한심하게 생각하느니보다도 ‘그 처자가 백정의 딸이라니 개
천에서 용 나는 격이다.’ 처녀의 본색이 미천한 것을 의외일로 생각하며 ‘그
처자의 그 버들잎이 본색을 가리키는 군호이었구나.’ 처녀의 의사를 자기 마음
대로 추측하고 그 총명을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그날 밤에 이교리가 자는지마는지 하게 한잠을 자고 나니 골치가 패는 듯 아
프고 몸이 오그라들도록 오한이 나서 큰 키를 한줌만하게 뭉치고 머리를 부둥키
고 누웠다가 외기가 싫은 까닥에 억지로 일어나서 초저녁에 덥다고 열어놓았던
창문을 간신히 닫고, 그리하고 다시 누운 뒤에는 한기가 돌다 신열이 났다하는
통에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앓으며 반밤을 지내었다.
이튿날 식전이다. 그 집 식구들이 모두 일어났을 때, 아랫방의 창문이 닫기고
과객의 기척이 없는 것을 괴상히 생각하여 안여인이 그 사나이더러 “여보, 과
객 좀 깨우. 과객질하는 신세에 늦잠은 다 무어야.” 그 사살을 끝내자마자, 집
뒤에 있는 가죽나무에서 여러 까마귀들이 야단스럽게 우는 것을 듣고 아래윗니
를 탁탁 맞히며 침을 세번 뱉으니 그 사나이도 여인을 따라서 침을 튀튀 배앝고
아랫방 창문 밖으로 와서 “여보!” 소리를 지르며 문을 왈칵 열고 보더니 바로
여인 있는 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큰일났소! 과객 죽었소!” 소리를 친다. 여인
은 “죽다니?” 처녀는 “죽다니요?” 하고 모두 창문 밖으로 와서 ‘참말 죽었
나’하고 들여다를 보니 과객은 그 큰 엄장에 네활개를 벌리고 가슴을 풀어젖히
고 눈을 감고 누웠는데 죽은 사람 같기도 하나, 이따금 ‘응응’하는 앓는 소리
가 들린다. 여인이 사나이더러 불러보라고 하여 “여보 여보!” 여러 번 불러보
았으나 대답은 없고 ‘응응’소리만 들릴 뿐이다. 과객이 죽은 것이 아니라 앓
는 것인 줄은 알았으나 큰일은 일반이라 내외간 공론이 시작되었다. “저걸 어
떻게 하오?” “길에 내다버립시다.” “누가 드나?” “당신이 들지 누가 들
어? 내가 부축해 주리다.” 참말로 내다버릴 거조를 차리려고 하니 옆에 있던
처녀는 “인정에 차마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 부모의 하는 말을 딱하게 여긴
다. 그 여인이 딸에게 손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요년아, 네가 어제 공연히 불쌍
해 보이느니 무어니 해서 재운 까닭에 큰일을 내고도 또 무슨 소리냐!” 화를
내니 사나이가 “그 애야 무슨 죄가 있소.” 여인의 심사를 거스르지 않을 만큼
두둔하고 “화는 고만 내고 우리 얼른 저 반송장이나 처치합시다.” 안해의 비
위를 맞추려고 한다. 여인은 그가 딸 역성 들려는데 비위가 틀리어 화를 더 내
며 “여보, 당신은 말도 마오. 죽지도 않은 것을 왜 죽었다고 소리 질렀어. 나는
놀라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었소.” 사나이에게로 돌려붙는 것을 사나이가 “
아따, 잘못했소.” 피하니까 다시 딸에게로 화를 돌리어
“너는 집에서 궂은일이 나도 좋겠니?” 야단한다. 처녀는 부드럽게‘어머니’
불러가지고
“그럴 것이 무어 있어요? 아랫말 작은아버지더러 좀 와보라고 하시지요. 약 몇
첩 써서 나을 병 같으면 고쳐주는 것도 적덕 아니에요?” 여인은 ‘적덕’이란
딸의 말을 뇌면서도 나중에 사나이더러 “어떻게 하겠소?” 물으니 그 사나이가
딸의 말이 근리하다 하여 내외간에 공론을 다시 하고 의약 묘리 잘 아는 그 아
우를 불러다 보인 뒤에 병이 할 수 없다거든 그때 내다버리기로 하였다. “아랫
말 네가 갔다오너라.” 그 딸을 보내면서도 여인은 “요년,팔자에 없는 송장만
치게 돼봐라.” 딸을 벼르고 그 사나이는 “내괴, 식전부터 까마귀가 야단이야.
” 하고 또 침을 퉤퉤 배앝았다.
3
처녀가 간 뒤 한식경이 지났다. 그 내외가 번갈아 가며 “그만하면 올 터인데.
” “그만하면 올 터인데.” 하고 기다리던 차에 처녀가 혼자 돌아왔다. 처녀의
입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그 여인이 “너 어째 혼자왔니?” 혼자 온 것을 나
무라는 듯이 물으니 “작은아버지가 집에 아니 계십디다. 그래서 고원댁 오빠를
가보고 좀 찾아서 뫼시고 오라고 했지요. 나는 어머니 아버지가 기다리실까 봐
먼제 왔세요.” 처녀는 청하러 갔던 삼촌과 같이 오지 못한 것을 발명하이 대답
하였다.
아랫방 병자는 앓는 소리조차 없어지고 시각이 위태할 것 같은데, 의원 아우
는 좀처럼 오지 아니하여 주인 사나이가 여러 번 삽작 밖을 내다보았다. 그가
나중번에 내다보다가 들어오며 “저기 돌이하고 같이 오는군.” 선성을 놓으니
그 여인은 안방문 앞에 놓인 들마루에 앉았다가 일어서며 “돌이란 놈은 왜 오
나? 저의 집에 나무나 해주지 않고.”
하고 혀를 찼다. 조금 있다가 주인의 아우와 돌이라는 떠꺼머리 총각이 앞서거
니 뒤서거니 들어오더니 주인의 아우는 바로 사나이에게로 와서 인사하며 “어
떤 손이 와서 앓는다지요?” 묻고 총각은 처녀를 보고 “너의 작은아버지를 뫼
셔 왔으니 인제 상급이 있어야지. 염낭이나 하나 지어다고.” 조롱한다. 여인은
먼저 자기를 아는 체하지 않는 데 심술이 나서 돌이를 불러세우고 “며칠 만에
들 보면서 인사 한마디가 없단 말이냐! 아지미 대접은 알뜰히 한다. 그리하고 실
없는 소리만 하면 제일이란 말이냐! 너도 나이 이십이니 지각 좀 차려라!” 꾸짖
는데 시동생까지도 껴잡이 넣으니 돌이가 “고모님,잘못 되었소이다. 차후에는
지각을 차리겠소이다.” 사과하고 주인의 아우도 빙그레 웃으며 “아주머니, 날
새 안녕하십니까?” 인사한 까닭에 여인의 심술은 즉시 풀리었다. 주인의 아우
가 아랫방에 와서 병자의 모양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 또 맥을 짚어보더니 하마
터면 탈이 날 뻔하였다고 하며, 약낭 끈을 끄르고 우황청심환 한 개를 내어 동
변이 없으면 온수라도 좋다고 온수에 개어서 병자의 입을 어기고 흘려넣었다.
아랫방 문을 닫아 두고 나와서 식구들이 아침을 먹으려고 할 제 여인이 “아
침 좀 잡수.” 시동생에게 밥을 권하니 주인의 아우는 “먹고 왔습니다. 어서들
잡스세요.” 하고
“봉단아!” 처녀를 불러서 “나 물이나 한그릇 떠다 다오.” 하여 물그릇을 막
받아들자, 아랫방에서 “애구애구 물 좀 주십시오.” 하는 병자의 갈라진 목소리
가 들리니까 주인의 아우가 그 물을 먹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일어선다.
봉단이가 “작은아바지 잡수세요. 다시 떠다 주지요.” 무심히 말하는 것을 그
삼촌이 물끄러미 보며 “네가 갖다 먹이려느냐?” 하고 물그릇을 내주려는 체하
니 봉단이는 “아니에요, 작은 아버지도.” 하고 얼굴을 붉힌다.
주인의 아우가 그 물그릇을 가지고 가더니 병자를 먹이고 와서 “물그릇을 뺏
어가다시피 받아가지고 한숨에 다 키어버리던걸.” 여럿에게 휘뚜루 들으라고
말하고 특별히 형수에게 대하여 말을 붙인다. “아주머니, 앓는 손의 얼굴을 잘
보셨소?” “잘 보고 말고요.” “얼굴이 사내답지요? 천정이 번듯하고 코도 좋
고 입도 좋고 눈이 또 썩 좋아. 아까 물 받아먹을때 눈을 뜨는데 앓던 사람이라
열기가 없을 뿐이지 눈만 보아도 초초한 인물이 아닌 표가 납니다. 그렇지 않아
요? 그 골격도 사내답지요?” “상판대기가 과객질할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과객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니.” “일시 과객질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세
요?” 수숙간에 왕래하는 말을 듣고 있던 그 형이 일시 과객질이란 말을 타내서
“아니다. 과객질은 유년 해본 사람이더라. 일시가 다 무어냐.” 말하니까 지각
차리느라고 이때껏 잠자코 있던 돌이가 참례를 들어 “나 보기엔 과객질보다 한
량질 해먹는 사람 같든데요.” 저의 고모부의 말이 당치 않은 듯이 말한다.
주인의 아우는 형의 말이나 돌이의 말이나 모두 접어놓고 조카딸더러 “너 보
기엔 어떻더냐?” 묻다가 그 얼굴 붉히는 것을 보고 무슨 의미가 있는 드ㅆ이
‘허허허’웃으니 봉단이 부모와 돌이는 아무 의미도 없이 모두 그 웃음에 끄리
어 웃었다.봉단이의 얼굴은 더 붉었졌다.
4
인사불성하고 앓고 이교리가 청심환 한 개에 기운이 통하고 가미삼금탕 몇 첩
에 대세가 돌리어서 그날로 드나드는 사람을 알아볼 뿐이 아니라 사람을 보면
머리를 들썩거리며 ‘미안하다’, ‘감사하다’ 말하게 되었다.
며칠동안 이교리가 병을 조리하는 중에 주인집의 일을 자연히 많이 알게 되었
으니 주인의 성명이 양주삼인 것과 봉단이가 주인의 무남독녀로 지금 나이가 18
세인 것도 알았고, 주인의 아우 주팔이가 의약뿐이 아니라 문식이 있는 까닭에
근처 양민들이 백정환자라고 별명지어 부른다는 것과 주인의 처질 돌이가 성이
임가요, 돌이의 아버지가 고원 가서 장가든 까닭에 결찌끼리 고원댁이라고 택호
로 부른다는 것도 알았다.
이교리가 자기는 서울사는 김대건이란 사람으로 어느 대가에서 하인 노릇하다
가 애매히 죄명을 쓰고 쫓겨나서 홧김에 팔도강산을 구경다닌다고 거짓말로 본
색을 감춘 까닭에 그 사람들은 모두 이교리를 김서방이라고 불렀다.
이교리인 김서방이 긴 이야기를 할 만큼 병이 나으니까 김서방의 서울 이야기
를 듣느라고 아랫방에는 사람이 비지 아니하였다. 주팔이는 김서방과 연상약할
뿐이 아니라 유식한 것이 마음에 맞아 2마장이나 되는 아랫말서 하루 두서너번
씩 보러오고, 돌이는 김서방의 언어 거동이 점잖아서 비위에 맞지 아니하나 못
듣던 이야기를 듣는데 팔리어서 매일 저녁으로 놀러왔다.
김서방은 이 집을 떠나서 갈 데도 없거니와 여러 사람들과 정분이 생기고 더
욱이 봉단이가 있는 까닭에 이 집을 떠나갈 마음도 없었다. 봉단이의 어머니가
혹 불시에 축객령이나 놓지 아니할까 속으로 겁이나서 그 여인이 간혹 서울일을
물으면 정성껏 대답하고 또 재미스러운 이야기와 웃을 만할 말로 환심을 사려고
애쓴결과, 가라는 영이 내리기는 고사하고 조밥은 먹을 것이 있으니 몸이 소복
되도록 안심하고 있으라는 특별한 혜택을 입게 되었다.
어느날 초저녁에 그 집 식구들과 주팔이와 돌이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서로 이야기하는데, 이야기거리가 변변치 아니하여 이야기
판이 심심하여지니까 봉단이 어머니가 “김서방을 불러내서 우스운 소리나 좀
지껄이라고 합시다.” 말하고 곧 “김서방!” 부르니 주인이 “바깥에 나와 오래
앉았어도 괜찮을까?” 김서방의 병이 채 다 낫지 아니한 것을 염려하여 말하는
것을 “무얼 젊은 사내자식이 그것쯤 어떨라구.” 말대꾸를 하며 일변 “이리좀
나오.” 소리를 질렀다. 김서방이 “네.” 하고 나오는데 어지러운 까닭으로 걸
음이 비슬비슬하였다.
김서방 나오려는 것을 보고 봉단이는 어느 틈에 슬그머니 몸을 일어 들마루에
올라가서 등잔불을 켜놓고 하다 둔 고리짝을 겯기 시직하였다.
김서방이 나와 앉아서 가끔 들마루 편을 바라보며 봉단이 어머니의 하라는 대
로 또 서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가, 근래 서울은 팔도에서 기생들이 올라와서
계집천지가 되고 서방있는 계집들도 염치가 없어져서 두번 세번 시집을 간다고
이야기 하니 턱을 치어들고 듣던 돌이가 “제기 서울이나 갈까 부다. 장가 좀
들어보게.” 말하여 그 말에 여러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주팔이는 웃으면서 “
여보 김서방, 당신 안해는 다시 시집 못가게 단단히 두고 왔소?” 물어서 그 묻
는 말에 여러 사람은 또다시 웃었다.
김서방은 자기가 3년전 스물여섯까지 돌이같이 떠꺼머리로 있다가 간신히 장
가를 들었는데, 안해의 얼굴이 반주그레한 탓으로 곧 상전 양반에게 빼앗기고
지금은 안해가 없다고 이야기하니 다른 사람은 들을 만하고 있고 돌이는 남의
일일망정 분하여 한다. “여보, 계집을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었단 말이오?” “
그럼 양반을 어떻게 하나?” “양반의 배때기엔 칼이 안 들어가오? 양반을 어떻
게 하나라니 당신의 키가 아깝소.” 김서방은 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웃었다.
그럭저럭 이야기판이 식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던 주팔이는 너무 아래
바깥에 나와 앉아서 몸에 이롭지 못하다고 김서방을 권하여 방으로 들여보낸뒤,
김서방이 안해가 없다니 사위로 얻으면 어떻겠느냐고 형수와 형에게 발을 비친
즉 형은 대답이 없이 그 형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형수는 말없이 고개를 외칠 뿐
인데 돌이가 “누이를 갖다가 또 빼앗기라고?” 분기가 남은 어조로 말을한다.
그리하니까 주팔이는 “너는 잠자코 있어라!”
돌이를 제지하고 형수의 기색을 보며 “이 담날 다시 이야기합시다.” 뒤를
두고 말을 그치었다.
5
며칠뒤에 주팔이가 조용히 형과 형수를 대하여 사윗감으로 김서방보다 더 나
은 사람을 고를 수 없을 것이니 불계하고 혼인하라고 권하였다. 주삼의 안해는
사람이 거세기는 하나 지각이 많은 시동생의 말을 남편의 말보다는 더 중하게
여기는 터이라 그 권을 받아 “아재 말대로 그년의 혼인을 정합시다.” 말하게
까지 되었는데 주삼이는 그 아우의 권유요, 그 안해의 말이지만 선뜻 허락하기
를 주저하였다.
“나이가 너무 틀려. 스물아홉하고 열여덟하고.” “여보, 다릴사위는 나이 좀
지긋한 것이 좋소.” “형님, 사내 나이 많으면 나중에 같이 늙게 되지요.” 그
안해와 그 아우의 말이 이유는 각각 다르더라도 사나이의 나이 많은것을 좋다기
는 일반이라 주삼이가 나이 틀리는 것을 탈잡다가 말이 몰리니까 “그래도 막중
대사를 그렇게 경솔히 정할 수가 있나. 좀더 생각해보지. 그러고 우선 김서방의
의향이 어떤지도 알아야지.” 저 편에서 장가들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알아보고
서 말하자고 한다. “의향이 무슨 의향이야? 감지덕지할 터이지.” “가죽신에
짚신날이 소용 있나? 김서방도 우리네와는 다른 사람이라 그 의향을 알 수 없
지.” “저는 삼정승 육판서의 자식인가? 무슨 말라죽을 의향이야! 싫다거든 고
만두지.” “그러자니 창피하지.” “우리가 창피한가 제가 고약하지. 다 죽은
것을 우리가 살려주지 않았는가베.” 내외간에 쓸데없는 말이 왔다갔다 하느 것
을 주팔이가 듣다 못하여서 "그것일랑 내게 맡기시오. 내가 창피지 않게 물어볼
것이니.” 하고 말을 가로막고 “지금이라도 물어보리까?” 하고 형과 형수의
얼굴을 번갈아 치어다보니 주삼이는 “아무케나 하려무나.” 고개를 끄덕이고
주삼의 안해는 “그 자식이 두말만 하거든 다리를 퉁겨 내쫓읍시다.” 눈섭을
일으켰다.
주팔이가 아랫방으로 내려가서 김서방을 보고 이 말 저 말 수어하다가 “만일
우리 형님이 봉단이를 당신 준다면 당신이 어찌할 터이오?” 물으니 김서방은
아 입을 벌리고서 한참 대답이 없더니 “어찌하다니요?” 뒤잡아 묻는데, 그
묻는 것이 묻고 싶어 묻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없이 앉았기가 겸연쩍어서 엄
적으로 묻는 것 같았다. 주팔이는 웃으면서 “봉단이가 싫진 않지만 뒷생각 없
이 선뜻 장가간다든가 어려울것 아니오?” 남의 속을 뚫고 들여다보듯이 말하니
김서방은 한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치어들며 “나로는 두말할 것이 없소. 날
같은 사람을 줄는지들 모르지.” 말하는데 얼굴에 무슨 결심하는 빛이 보이었다.
주팔이는 “잘 알았소. 이따라도 또 오리다.” 하고 몸을 일어서 나갔다.
이교리인 김서방은 주팔의 말이 아니라도 뒷날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목전
안신하는데 제일 상책이라고 생각하여 두말이 없다고까지 단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쉽사리 단언하도록 결심하게 된것은 봉단에게 마음이 끌리었던 까닭이
다. 주팔이가 형을 보고 “김서방은 두말이 없답디다.” 하니 그 형수가 내달이
말하였다. “그렇지,당초에 두말이 있을게요” 이리하여 김서방과 봉단의 혼사가
결정되고 주팔이가 날을 받아 칠월칠석날로 혼인 날짜까지 작정되었다.
주삼이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주팔이와 돌이는 혼인 준비하느라고 여러 날
동안 분주히 지내다가 혼인 전날밤에 들어가 돌마루에 앉아있는 봉단의 옆에 와
서 가까이 앉으며
“봉단아, 너는 내일이면 어른이구나. 어른 되었다고 오래비 대접을 조금이라도
나쁘게하면 네 대신으로 김서방을 경쳐놓을 테다!” 너털웃음을 웃고서 “이애
그러나 저러나 김서방이 안해가 없다더니 그것이 멀쩡한 거짓말이래. 네가 첩노
릇할 일이 딱하다.” 봉단이는 김서방과 혼인을 정하게 된 것이 마음에 싫지는
아니하여도 김서방이 안해가 있지 아니한가 의심은 없지 아니하던터라, 지금 돌
이의 말이 자기를 조롱하는 시없은 소리인줄은 알지마는 그 의심은 속으로 더하
여졌다.
6
그날 밤에 봉단이가 자다가 갑자기 병이 났다. 날은 거의 샐 때가 되었는데
봉단이는 머리를 동이고 누워서 앓는 소리를 그치지 아니하니 주산의 안해는 “
이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법석을 벌이고 주삼이는 “공교한 일이지. 평일에
병이 없던 아이가 하필 혼인 전날 밤에 병이 나다니 내일 대사는 다 지냈다. 할
수 없이 날짜를 눌리는 수 밖에 없다.” 쓴입맛을 다시고 또 주팔이는 “신열이
좀 있어도 대단치 아니하고 맥은 아무렇지도 아니한데 괴상스럽다.” 의심을 마
지 아니하였다. 부모와 삼촌이 모두 봉단의 좌우에 둘러 앉아 그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무엇이 체했느냐, 속이 아프냐?” “감기가 들었느냐, 머리만 아프냐?
” 여러 가지로 물어보아도 봉단이는 대답이 없었다.
나중의 주삼의 안해가 “뜬것이 들린 것이오. 그렇기에 이렇게 갑자기 병이
나지.” 말하자, 봉단이가 별안간 정신기가 좀 나는듯이 그 어머니를 치어다보며
꿈을 꾸고 병을 얻었으니 뜬것이 분명하다는 뜻을 말하였다. “무슨 꿈이냐?”
“꿈 이야기 좀 해라.” 다투어 말하는 그 아버지나 삼촌은 본체만체하고 봉단
이는 “어머니!” 불러가지고 “아까 꿈에요.” 하고 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늙은 할망구 하나가 날이 시퍼런 칼을 쥐고 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년
너를 죽이러 천리길을 쫓아왔다.’ 대번에 호령합디다. 무서운 마음을 참고 ‘무
슨 죄인지 죄나 알고 죽어지이다’ 빌며 말하니까 ‘내 딸이 있는데 내 사위를
빼앗아 가는 년은 죽여 마땅하다!’ 또 호령합디다. 부끄러운 마음을 참고 ‘저
의 부모가 안해 없단 말을 듣고 정한 일이랍니다.’ 발명하니까 ‘거짓말을 곧
이듣다니 죽일 년이다!’ 여전히 호령합디다. 그제는 마음에 좀 분한 생각이 나
서 ‘거짓말을 했든지 곧이를 들었든지간에 내게야 무슨 아랑곳이 있겠습니까?
” 말을 불쾌히 하였더니 ’요년, 무슨 앙탈이냐! 죽어봐라!‘ 소리를 지르며 칼
을 들고 달려듭디다. 잠이 깨면 곧 한전이 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지금
도 머리가 정신없이 아파요.“ 병난 사연을 말하여 꿈 이야기를 마치었다.
“가위가 눌렸던 것이구나.” “의심을 하면 울타리에 널린 치마가 허깨비의
옷자락으로 보이는 법이야. 네가 의심을 가졌던 것이지.” 주삼의 형제가 봉단에
게 말하고 있는 틈에 주삼의 안해는 몸을 일어 방 밖으로 나갔다.
한참동안이나 지나도 다시 들어오지 아니하니까 주팔이는 그 형수가 김서방의
방에 가서 해거를 부리고 있지 아니한가 의심하여 “아주머니가 어디를 갔을까?
나가 보고 오리다.” 하고 방에서 나오다가 마침 그 형수가 무엇을 두 손에 들
고 삽작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부정 풀러 가는 줄을 짐작하면서 그 뒤를 따라
갔다.
주삼의 안해는 길가에 있는 어두컴컴한 풀밭머리에 가서 동향하고 서더니 “
물 우에 김첨지 물 아래 김낭청 동무들과 같이 가소, 걸게 먹고 빨리 가소, 가지
않고 지체하면 , 엄나무 말뚝 무쇠 두멍에, 세상 구경 못하리니, 여율령 어서 가
소 쉑쉑. ”하면서 바가지에 담은 묽은 조죽을 내끼얹고 또 왼발을 구르면서 식
칼을 세 번 내던지고 그리하고 돌아서 들어온다. “여보 아주머니!” 주팔이가
부르니 “에구 깜짝 놀라겠구려!” 하고 우뚝 선다. “김낭청이고 김첨지고 고만
두고 나를 따라 김서방한테나 가봅시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말을 듣기만 하시오.
그리하여 수숙이 같이 아랫방으로 와서 자는 김서방을 깨워가지고 주팔이가
봉단의 병난 이야기와 봉단의 꿈 이야기를 대강대강 말하고서 “의심이 있었던
까닭에 꿈도 꾸고 병도 난 것이니 그 의심을 풀어주어야 할 터인데...” 하고 수
단 없는 것을 걱정한즉 김서방은 자기의 안해를 상전에게 빼앗긴 것은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 사실이라고 중언부언하고 만일 이것이 거짓말이면 발설지옥에
떨어져 죽어도 한가를 아니한다고 맹세를 치며 말하였다. 주팔이는 “우리야 어
디 의심하오마는 나이 어린 계집애라 그렇소그려. ” 하고 도로 나와 윗방으로
오는 길에 그 형수에게 말하였다. “지금 들은 말씀을 한마디 빼지 말고 봉단이
에게 들려주시지요. ”
7
주팔이가 형수와 같이 방으로 들어와서 봉단을 보고 “아까와 좀 어떠냐?”
물으니까 봉단이는 말이 없고 주삼이가 “앓는 소리를 아니하니 그만한 것 같
다. ” 하고 대신 대답하였다. 주팔이는 형수를 돌아보며 “죽 쑤어 버린 효험이
당장에 났습니다그려. 그렇지만 김서방의 맹세만은 못하리다. 김서방의 말을 좀
자세히 들려주시지요. ”
봉단의 어머니가 김서방이 맹세치며 하던 말을 다소간 보태어 옮기었다. 봉단
이는 스르르 눈을 감고 혼곤히 잠이 든 것같이 누웠더니 혼인날인 칠석날 아침
해가 높이 돋았을 때, 씻은 듯 부신 듯 일어났다.
“대사를 받은 날에 지내게 되니 불행중 다행이다. ” “네년의 덕에 잠 못자
고 눈이 아파 죽겠다. ” 기뻐하는 부모를 대할 때는 봉단의 얼굴에 미안히 여
기는 기색이 많았으나 “김서방의 맹세가 당약이다. ” 조롱하는 삼촌을 볼 때
에는 봉단이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여 얼굴을 붉히었다.
해가 미처 한낮 때 못 되어서 초례청의 준비도 다 되었고 신랑 신부의 치장도
다 되었다. 준비니 치장이니 하여야 별것이 없었다. 주삼의 내외가 주팔의 주장
을 좇아서 여간 것은 모두 제폐하였다. 마당에 차일 치고 멍석 위에 새 돗 펴고
돗자리 위에 주팔의 글씨로 도지단 복지원이라 써붙이고 정한 사발에 정화수를
가득히 떠서 깨끗한 소반에 올려 놓은 것이 초례청의 준비이었으며, 망건을 쓰
고 초립을 쓰고 청베 도포에 붉은 술띠를 둘러 띤 것과 큰 다리 작은 다리를 꼭
지꼭지 한데 묶어서 큰머리 명색을 틀어 얹고 한삼 달린 겹저고리에 긴 치마를
늘인 것이 신랑 신부의 치장이었다.
또 대사를 지내는 주삼의 집이 외딴집일 뿐 아니라 가근방에 사는 주삼의 결
찌가 많지 못하던 까닭에 대사의 구경꾼도 몇 사람이 못 되었다. 말하자면 구메
혼인이나 별로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초례 절차도 주팔이가 간단하게 정하여 그날로 초례청인 마당에서 교배를 마
치고 신방인 건넌방에서 방합례를 지내고 그날 밤으로 신방을 차리게 되었다.
해가 지고 저녁밥이 끝난 뒤에 신방에는 황초 한 쌍을 켜서 놓고 떡과 고기를
늘어놓은 상 한상을 차려놓고 나이 지긋한 여인 하나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와서
일어섰던 신랑과 마주 대하여 앉히어 놓고 문을 닫고 나갔다.
이교리인 김서방은 연분이란 정한 것이 있는 게다. ‘북방길’이 이 연분을
가리킨 것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어여쁜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고 앉았다가 신
부에게로 가까이 가서 정수리를 누르는 큰머리를 떼 내려주고 빙그레 웃으면서
신부의 발을 끌어낸다. 맨발질하던 마당발이라 버선이 모양 없다. 신랑이 발을
잡고 버선을 벗기려고 하니 신부는 치마 밑으로 오므렸다. 오므리면 끌어내고
끌어내면 오므리고 신랑은 가도를 이 발에서 세우려는 듯이 짐짓 끌어내고 신부
는 편심을 이 발로 드러내려는 듯이 굳이 오므린다. 바깥에서 이 모양을 엿보던
신방 지키는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여 낄낄 소리를 내니 김서방은 한번 소
리를 내어 웃고 발을 놓고 일어서서 부집게로 촛불들을 집어 끄고 부스럭부스럭
신부의 옷을 벗기었다.
이튿날 돌이가 일지 중 젊은 사람을 두서넛 데리고 와서 ‘자리보기’한다고
한참 동안 야단법석을 벌이었다. 김서방의 족장을 때려 색시 훔친 죄를 물어보
겠다고 돌이가 얼쩡거리다가 “신랑 다는 것이 총각놈에게 당치 않은 일이다.
” 고모에게 야단도 만났으려니와 김서방같이 큰 사람에게 손걸기가 엄청나서
“족장만은 용서하자. ” 그만두고 김서방과 봉단이를 등을 대어 묶어놓고 갖은
조롱을 다하였다. 돌이의 법석 바람에 주삼의 집의 술 몇 병, 떡 몇 그릇, 도야
지고기 몇 접시가 없어졌다.
혼인 지내고 오는 손님을 치른 뒤에는 주삼이가 김서방을 데리고 가근방에 사
는 일지를 찾아보러 다니었다. 그리하여 김서방은 주팔의 집에 가서 쇠가죽 다
루는 것도 구경하고 돌이의 집에 가서 돌이의 늙은 아버지에게 버들 벗기는 법
도 이야기 듣게 되었다. 돌이의 어머니는 골골하는 병객이나 돌이의 아버지는
육십 넘은 늙은이가 기운이 좋아서 젊은 사람만 못지 아니하던 것이다. 그 기운
좋은 늙은이가 김서방을 보고 “돌이란 놈이 집에 좀 붙어 있었으면 나도 나다
닐 틈이 있겠는데 병객 하나만 남겨두고 집을 비울 수가 있어야지. 틈 있거든
놀러와서 재미있는 서울 이야기나 좀 들려주소. 나도 시골 이야기를 들려줄 것
이니. ”
돌이 아버지는 고담이 일수라고같이 갔던 주삼이가 김서방에게 말하였다.
8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서 봉단이가 남 보는 데서는 김서방과 서로 말을 하지
아니하여도 단둘이 있어서는 정답게 속살거리고 더욱이 베개 위에서 이야기할
때는 재미가 참깨같이 쏟아졌다.
어느 날 저녁에 김서방이 주팔에게 놀러 갔다가 밤이 든 뒤에 돌아오니 그의
젊은 안해가 마당에 맷방석을 깔고 혼자 앉아서 동고리를 만들며 기다리고 있다
가 삽작문을 열어주면서 “인제 오세요?” 인사하고 뒤를 따라 들어오며 “내가
하든 일을 조금만 더하면 끝을 마치겠으니 먼저 방에 들어가 주무세요.” 하는
것을 김서방이 “좀 있다 같이 들어가지. ” 하고 머리에 동였던 수건을 끄르고
면빗질을 하며 안해가 일거리 잡는 옆에 와서 가까이 붙어앉았다. “혼자 앉았
기 무섭지 않아?” “무섭긴 무에 무서워요. ” “도깨비. ” “나는 도깨비를
본 적이 없는데요. ” “그러면 호랑이. ” “호랑이도 말만 들었세요. ”
이렇게 입으로 말대답을 하면서도 손은 여전히 재빠르게 놀리어 동고리 테가
한 테 두테 늘어가니, 김서방이 이것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묻는 말이 “하룻밤
에 동고리를 서너 개 만들 수 있소?” “서너 개를 어떻세 만들어요. 내가 남의
두 몫 일을 한다고 남들은 칭찬하지만 긴긴 밤에 한 개 반이나 만들까요. ” “
장인 장모는 초저녁부터 끼고 자는 것이 일이신가?” “당신은 별걱정을 다하시
오. ” 봉단이는 잠깐 남편에게 눈을 흘기었다.
밤이 으슥하여질수록 바람은 더욱 선선하고 달빛은 더욱 밝다. 김서방이 안해
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홑적삼 하나 입고 춥지 않소?” 하고 등을 만져보는 체
하다가 살짝 꼬집으니 봉단이는 가만히 “아야!” 하고 “두 번만 추우냐고 물
으시다가는 사람의 등에 살점을 남기지 않으시겠소. ” 골이 난 모양으로 김서
방을 뒤에 두고 돌아앉아서 김서방이 “잘못했소. 도로 이리 돌아앉으우. ” 청
하여도 들은 체 만 체 하고 부지런히 일만 한다. 김서방이 달을 치어다보며 “
달이야 참 밝다. 별이 하나 둘 셋...”
별 수를 세다가 종시 싱겁든지 그만두고 조그만 버들 끄트럭을 봉단의 볼에
닿을 듯 말 듯하게 쥐고서 “애구 이것 보게. ” 갑자기 무엇을 보고 놀라는 체
하여 봉단이가 돌아보다가 볼이 버들에 찔리었다. 봉단이가 김서방의 버들 쥔
손을 뿌리쳐 치우면서 “점잖지도 못하시우. ” 나무라니 김서방은 “어여쁜 사
람 앞에서는 점잖은 이의 머리가 자라목같이 들어가는 법이야. ” 잘한 체하고
웃는다. 그때 마침 안방에서 기침소기가 나는 것을 듣고 봉단이는 “어머니가
깨시면 잔소리를 하실지 모르니 소리내서 웃지 마시오. ” 나직이 말하였다. 김
서방이 웃음을 그치고 한참 말이 없이 앉았다가 안해의 일이 끝나는 것을 보고
“인제 방으로 들어가지.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치우지. ” 하며 일어서서 버들
채의 흐트러진 것을 묶어서 봉당 위에 세우고 안해더러 일어나라고 한 뒤 맷방
석을 말아서 처마 밑에 들여놓고 다 만든 동고리를 들고 섰는 안해를 뒤로 가서
번쩍 안고 아랫방으로 향하는데 안겨 가는 봉단이는 “이게 무슨 짓이예요. ”
하며 달 아래 그림자를 부끄러워하고 안고 가는 김서방은 “치우자면 이렇게 다
치워야지. ” 하며 다시 웃음을 시작하였다. 방에 들어와서 자리 보고 누운 뒤에
봉단이가 “너무 실없이 굴지 마세요. 남의 눈에 띄일까 봐서 마음이 조마조마
해요. ” 소곤소곤 말을 하니 김서방이 “네, 말씀대로 하오리다. ” 하고 외손
가락으로 살그머니 안해의 턱을 치어들었다. “이런 짓을 마시란 말이에요. ”
“네, 말씀대로 하오리다. ” 하고 다시 그 손가락으로 안해의 겨드랑이를 간질
렀다. “당신이 하우불이시요그려. ” “상지불이는 어떤가? 문자를 쓰는 품이
백정학자의 교훈이 많으시오그려. ” “학자면 학자이지 백정학자란 건 다 무언
지. 미친 놈들이지. ” “여보, 과하오. 그러면 버들학자라고 할까?” “지각 좀
채리세요. ” “어른더러 지각을 차리라니 버릇없어 못 쓰겠군. 버들학자 좋지않
아? 처음 만날 때 가르쳐 준 것이니. ” “누가 가르쳐요?” “왜 버들잎으로
군호했었지?” “군호는 다 무어요? 딱도 하시오. 그때 당신 모양이 보기에 하
도 황당하기에 급히 자시지 말라고 일부러 버들잎을 띄웠지요. 군호는 무슨 군
호?”
이렇게 내외가 재미있게 속살거리다가 닭 울 때가 되어서 간신히 잠들이 들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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