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37

더좋은래일 | 2023.10.31 15:43:38 댓글: 1 조회: 238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3499



37

해관에서 재치있게 몸을 빼친 찰스 신-신영호씨의 호화판생은 아주 순조로왔다. 려송연과 샴팡이 항시 그와 더불어있었다. 경마장과 포구장 그리고 하이알라이의 출입이 주요한 생활내용으로 되여 적잖은 액수의 돈을 때로는 따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잃기도 하였다. <<메트로폴리스>>와 <<파라다이스>>와 <<오리엔탈>>의 댄서 아가씨들이 그윽한 돈내를 맡고 드러난 웃음과 은근한 추파로 밤낮없이 그를 에워쌌다. 꽃향기에 끌리는 나비들처럼. 민족은 해 무엇하며 나라는 해 무엇하랴. 신영호씨는 이 세상이 요대로 조금도 변치 말고 천년을 가고 또 만년을 가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상해의 공공조계와 프랑스조계가 길이 보존되여주기를 바랐다. 신영호씨의 아래배가 차차 게사니알모양으로 불러오름을 따라 집지기 불독의 살진 두볼도 중태처럼 점점 늘어졌다.

이날 신영호씨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조반을 막 먹고났을때 전화의 벨이 울렸다. 수하기를 벗겨드니 들려오는것은 곱고 달콤한 녀자의 목소리다.

<<아 여보세요. 여기는 광화생명보험입니다. 신선생님을 찾습니다. 아 녜 안녕하십니까? 저 오늘 오전 10시쯤 저의 회사의 담당의사가 선생님의 검진을 나가겠습니다. 그 시각에 선생님께서 어디 출입하지 마시구 댁에 계셔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10시?>>

<<녜녜 10시. 10시 정각에 꼭 당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신영호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자그만큼 일금 5원야(也)의 생명보험을 들었던것이다.

(이왕이면 녀의사나 보내지. 당초에 영업을 할줄들 모른단 말이야. 고객의 심리두 파악 못하구 무슨 영업을 한담. 나 같으면 남자가입자한테는 젊은 녀의사를 보내구 그리고 녀자가입자한테는 젊은 남자의사를 보내겠다.)

이와 같은 잡생각을 하며 신영호씨는 쏘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영문자신문 <<노츠 챠이나 데일리 뉴즈>>즉 <<자림서보(字林西报)>>를 펼쳐들었다. <<자림서보>>는 영제국주의가 상해에서 발간하는 신문이다.

10시 정각에 깜장빛승용차 한대가 신영호씨댁 화단앞에 와 멎어서더니 뒤좌석의 문이 열리며 곧 사람 둘이 내리는데 그중 하나는 의사인듯 양복우에 하얀 가운을 덧입은 말라꽹이이고 또 하나는 깜장빛가방을 든 나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인데 의사의 조수쯤되는 모양이였다. 운전석에는 운전사가 그리고 조수석에는 애숭이청년 하나가 각각 앉았는데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서로 무어라고 지껄이고있다. 현관옆 하늘색 뼁끼칠을 한 개집에서 사슬에 매인 불독이 못마땅한 상통으로 내다보며 목구멍속으로 우우 소리를 내기는 하였으나 일어나오지는 아니하였다.

주인의 분부가 미리 있었던 모양으로 초인종을 누르기가 바쁘게 긴 머리태를 엉뎅이우에까지 드리운 젊은 하녀가 나와 문을 열고 찾아온 뜻도 묻지 않고 곧바로 손님들을 안으로 청해들였다. 객실에 인도된 손님들이 주인과 한훤수작을 하는중에 고대 그 하녀가 차반에 커피 석잔을 받쳐들고 들어오더니 주객 세 사람앞에 각각 한잔씩을 놓은 뒤에 목례를 하고 조용히 물러나갔다. 커피를 마시고나서 의사가 주인을 보고

<<선생님, 앉은자리에서 웃옷만 좀 헤치시지요.>>

말한 다음 조수를 향하여

<<청진기.>>하고 손을 내밀었다.

조수가 가방을 열고 청진기를 꺼내는 동안에 신영호씨는 입고있던 줄무늬가 간 파자마의 앞섶을 헤치고 진찰을 받을 준비로 쏘파에 편안히 기대앉았다. 신영호씨가 태평한 마음으로 무심히 바라보니 젊은 조수가 가방속에서 꺼내가지고 의사에게 건네는것이 천만뜻밖에도 청진기가 아니고 권총이다. 신영호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곧 빗보지 않은것으르 깨달았다. 너무도 놀라와 어찌할바를 몰라하는중에 의사가 권총을 받아서 테블우에 놓는데 총구가 곧바로 자신을 향하였다. 여직껏 중국인으로만 알았던 의사가 례사 언성으로 말을 묻는데 그 말은 틀림없는 조선말이다. 신영호씨가 속으로

(아차 속았구나!)

웨쳤으나 이미 때는 늦어 성복후의 약방문이였다. 가짜의사가 뚱딴지같이

<<신선생, 지금 댁에 현금이 얼마나 있습니까?>>하고 말을 묻는데 그 말씨만은 강도답지 않게 깍듯한 존경어다.

신영호씨가 그 말을 알아들어도 뜻이 얼른 머리속으로 들어와 주지를 않아서

<<녜?>> 하고 어리뻥하여 되물으니 가짜의사는

<<신선생 진정하십시오. 흥분하면 신상에 해롭습니다.>> 하고 권총을 제앞으로 한치가량 당겨놓았다.

<<현재 댁에 현금이 얼마나 있느냐구 물었습니다.>>

<<아 녜 현금... 현금 말씀입니까? 현금은 집에다 둔게 하나두 없습니다. 녜 하나두 없습니다.>>

<<그런줄 알았습니다. 그럼 수표책을 꺼내실가요.>>

신영호씨는 억이 막히는지 말을 못하고 두눈이 멀뚱멀뚱하여 가운입은 강도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화기은행의 수표책... 시간이 촉박하니 좀 빨리 서두르십시오.>>

<<그렇지만...>>

가짜의사의 기색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잽싸게 테블우의 권총을 집어들어 실린더를 열었다. 그 말 없는 엄포에 신영호씨가 굴복하였다. 얼굴빛이 노래져가지고 한동안 아무 소리 못하고 앉았다가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그럼 웃층에 올라가 가져오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바로 일어서려고 하는것을 가짜의사가 눈을 부라리며

<<올라가긴 어딜 올라가?>>하고 꾸짖어서 도로 주저앉혔다.

<<네가 웃층을 올라간다구 해놓구 공부국에다 알릴 생각이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럼 여기 앉아서 하녀를 불러다 말해라.>>

가짜의사는 팔을 늘여 테블우의 신문-주인이 보다만 <<자림서보>>를 집어다 권총을 덮어놓았다. 신영호씨가 꿀꺽소리 못하고 쏘파옆 앞상에 놓인 요령을 집어들어 두어번 흔들었다. 요령소리를 듣고 하녀가 지체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나리?>>

<<응, 너 아씨한테 올라가 화기은행의 수표책을 꺼내달래서 가져오나.>>

<<녜 나리.>>

하녀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고 고개만 한번 까닥이고 문을 도로 닫고 물러나갔다. 고수머리 가짜조수가 신영호씨 눈앞에서 똑똑히 보라는듯이 또 한자루의 권총을 가방에서 꺼내서 제 양복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권연 한가치를 피워물고 한가롭게 쏘파등받이에 벌렁 나가누웠다. 이윽고 하녀가 수표책을 들고 들어와 주인앞에 놓으면서

<<아씨께서 조목사님댁에 마작을 놀러 가시잖겠느냐구 여쭤보라십니다.>> 하고 품하니 신영호씨는 귀찮은듯이

<<이따 이따.>> 하고 손을 내저었다. 두 권총강도가 아닌보살하고 지켜보는 앞에서 눈치채지 않게 하느라고 신영호씨는 땀을 빼였다.

하녀가 나간 뒤에 신영호가 울며 겨자먹기로 수표책을 펼쳐놓고 가짜의사가 가운호주머니에서 뽑아주는 만년필을 받아쥐였다. 그리고 충실한 개가 애원하는 눈으로 불량스러운 주인을 쳐다보듯이 가짜의사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서 떨어지는 수자가 제 인생의 운명을 결정할것이기때문이다.

<<5만원.>>

신영호씨는 어깨죽지가 도끼에 콱 찍혀 떨어져나가는것 같은 모진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곧 또 한편으로는 모가지가 찍혀 떨어지지 않은게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 같은것도 없지는 않았다. 33만원에 비하면 5만원은 필경 어깨죽지 하나 폭밖에 아니되였었다.

<<그렇지만 모두 정기예금이 돼놔서...>> 하고 신영호씨는 낭긑에서 미자막으로 한번 버티여보았다.

<<정기예금이라두 기일전에 헐수 있잖은가... 리자만 손해를 본다면.>>

<<그렇지만...>>

<<그놈의 `그렇지만` 이제 좀 그만해!>>

가짜의사의 말이 힘진데 눌리여 신영호씨는 손톱여물을 썰면서도 시키는대로 수자를 적어넣고 또 서명까지 하였다. 가짜의사가 받아서 한번 보고 고수머리에게 건네주며 턱을 한번 추썩였다. 고수머리는 수표를 받아쥐자 곧 방문을 가볍게 여닫으며 복도로 나와 현관을 거쳐서 밖으로 나왔다. 화단옆에는 발동을 끄지 않고 털털거리는 자동차가 그냥 서있었다. 고수머리는 운전사옆에 앉아있는 애숭이에게 열려있는 차창으로 수표를 건네주며

<<조심.>> 하고 당부하였다.

애숭이가 수표를 받아서 액면도 보지 않고 가로 한번 접고 또 세로 한번 접어서 호주머니에 간직을 하기가 바쁘게 자동차가 떠났다. 고수머리가 되짚어들어와보니 가짜의사와 주인은 닭 소보듯 덤덤히 마주앉아있었다. 고수머리가 원래 자리에 막 앉았을 때에 전화의 벨이 울렸다. 주인이 앞상우의 전화기와 가짜의사를 반반씩 갈라보았다. 가짜의사가 고개짓으로 허락하였다. 주인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눈으로는 가짜의사를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통화를 하였다.

<<녜 제가 신영호올시다. 아 녜 조목사님이십니까. 녜녜... 지금 마침 타관손님들이 와계셔서... 녜 아니... 조목사님은 잘 모르실분들입니다. 아니, 오실것 없습니다. 이따 오후에 제가 뵈러 갑지요. 녜 집사람하구 같이 가겠습니다. 물론입지요. 예 그럼 자시 대하겠습니다.>>

<<조목사님은 잘 모르실 타관손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심스러운 전화가 끝이 나니 객실안은 또다시 잠잠해졌다. 이윽고 가짜의사가 입을 열었다.

<<신선생, 당신이 사로니까호에서 한짓을 속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혜로인이 인체에 어떤 해독을 끼친다는걸 당신두 잘 알고있을거요. 만성의 청산가리나 마찬가지란걸... 당신은 아마 우리보다두 더 잘 알게요. 그런데두 당신은 저 하나 호이호식을 하겠다구 그런 무서운 독물을 중국민중의 머리우에 마구 뿌렸단 말이요. 뿌리는걸 도왔단 말이요. 그 죄로 말하면 죽어마땅하지만 여러가지 생각하는바가 있어서 이번 한번은 용서를 하니 그런줄이나 아시오. 그리구 의당 전 재산을 몰수해 고생을 톡톡히 시켜야 할것이지만 십분 참구 사정을 두니 고마운줄이나 아시오. 일후 우리에게... 그럴리는 만만 없겠찌만... 만약시 조금이라두 불측한 맘을 먹는다면 그때는 제 목숨을 제가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테니까... 알아서 하시오.>>

이와 같이 준렬히 토죄를 하고 또 무시무시하게 으름장까지 놓았다.

신영호씨는 두 강도가 엄포로 권총을 들먹이기는 하나 죽일 의사까지는 없다는것을 알게 되자 송구한 마음이 적이 가라앉는 한편 5만원이란 거금을 떼우게 된것이 새삼스레 아깝고 분해서 가슴이 쓰리고 치가 떨리였다. 이때 또 어디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영호씨가 조건반사적으로 따르르따르르 우는 전화기와 가짜의사를 번갈아보는데 생각지 않는 고수머리가 벌떡 일어나 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기다리는 전화가 걸려온걸로 아는 눈치였다. 고수머리는

<<아 나요>>하다가

<<응?>> 하고 놀라 얼른 한손으로 송화기를 막고 가짜의사를 돌아보았다.

<<아닌데...?...>>

<<아니라구? 그럼?...>>

가짜의사가 긴장하여 잽싸게 권총을 움켜쥐며 되물었다. 그리고 금세 뛰여일어날듯이 웃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영어야... 당초에 못 듣던 목소리.>>

가짜의사가 곧 주인에게 명령하였다.

<<당신이 받으시오.>>

고수머리가 수화기를 주인에게 건네였다. 가짜의사는 얼른 테이블을 에돌아 신영호씨곁에 붙어서서 귀를 기울이고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엿들었다. 고수머리의 권총이 수화기를 받아쥔 신영호씨의 옆구리를 바싹 겨누었다.

<<헬로우, 미스터 신을 찾습니다. 여기는 화기은행 지배인실... 저는 죤 엔더슨입니다. 아 녜 안녕하십니까. 저 한가지 좀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녜 그 저 정기예금을 헐어서 중국화페루 5만원을 지출해달라구 수표를 떼셨는데... 매우 드문 일이기에... 지배인님의 몸을 받아... 한번 확인을 해볼가 해서 그러는겁니다. 우리의 통화는 현재 록음이 되구있습니다.>>

신영호씨가 얼굴이 해쓱하여 선뜻 대답을 못하고 가짜의사를 흘끔 돌아보니 가짜의사는 매몰차게 턱을 한번 추썩였다.

<<아 녜 틀림이 없습니다. 급한 용도가 좀 있어서 부득이 그렇게 하잖을수 없습니다. 귀 은행의 주도세밀한 봉사성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야말로 울며 겨자먹기로 벙어리 랭가슴앓기였다. 신영호씨의 말소리가 떨려나오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그럼 그대루 지출해도 괜찮겠습니까? 상당한 액수의 리자를 밑지게 되실텐데요.>>

깐깐한 양코배기은행원이 일을 분명히 하느라고 다시한번 따져물어서 신영호씨는 터져나오려는 통곡을 꿀꺽 삼키고

<<녜 그대루 해주십시오. 수고하십니다. 굳빠이.>>

가장 신사답게 말하고 아수한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았다.

초조한 기대가운데 장중한 뻐꾹종이 쉬지 않고 초를 저며서 분침이 두번째 수자를 넘어설즈음에 전화의 벨이 또 울리니 전화기옆에 붙어서서 대기하던 고수머리가 데꺽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아 나요.>>

분명한 서선장-애숭이청년의 목소리가 수화기속에서 짧게 한마디

<<나루는 건넜음.>>

알리고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수머리와 가짜의사가 서로 눈짓한 뒤 가짜의사가 주인을 향하여

<<신선생, 수고스럽지만 우리를 좀 바래주셔야겠습니다. 외출복을 갈아입으시지요.>> 하고 례의바르게 명령하였다.

신영호씨가 마지못해 옆방에 들어가 옷을 갈이입는 동안 고수머리는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사이문설주에 기대서서 넌지시 감시하였다. 군동작이란 털끝만큼도 있을수가 없었다.

신영호씨가 죽지 못해 자가용크라이슬러에 올라앉아 핸들을 잡는데 바로 옆자리에는 고수머리가 가방을 무릎우에 놓고 앉고 그리고 뒤좌석에는 가짜의사가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지르고 앉았다. 차가 막 떠날 때 웃층 창문으로 내다보고 주인아씨가 무어라고 소리를 쳤으나 차바퀴는 그대로 굴기 시작하였다.

<<서가회루 갑시다.>>

고수머리가 앞유리창으로 걷잡을수없이 안겨오는 아스팔트길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하였다.

차머리가 서쪽으로 카브를 꺾어돌아 서가회를 향하였다. 신영호씨는 이런 고급차를 장만할 당시, 저를 해치는 원쑤의 도적놈들을 태우고 시키는대로 굽석굽석 상해거리를 몰고 다닐줄을 꿈에도 몰랐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질노릇이였다. 순찰중의 순경이나 십자거리에서 교통을 정리하는 교통순경이 눈에 뜨일적마다 급정거를 하고 잽싸게 뛰여나리며

<<강도! 사람 살리우! 강도, 강도!>>

소리를 지르고싶은 충동에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당장 뒤통수에 깜장콩알이 박힐가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이날따라 그 흔한 가두검신도 한번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서가회를 언뜻 지나 한동안 더 달리니 큰길도 현저히 행이 드물어졌다. 큰길에서 벗어나서 돌길을 잡아들어 5분 더 달렸을 때 고수머리가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차가 멎어서자 가짜의사와 고수머리는 다짜고짜로 달려들어 가방속에 미리 준비해가지고 온 바줄로 신영호씨를 뒤결박을 지웠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여 아갈잡이까지 단단히 한 뒤 좌석밑에다 딩굴려놓았다. 그런 연후에 가짜의사가 조용조용한 말소리로

<<신선생, 미안하지만 넉넉잡구 한 두어시간만 좀 이렇게 누워계시우. 우리가 들어가는 길루 곧 댁에다 전화를 걸어서 아리리다. 가급적으루 빠른 시간내에 와 찾도록 대드릴테니 맘놓구 가다리시우. 너무 참혹한 대접을 했다구 우릴 원망을랑 마시우. 우리두 이러구싶어서 이러는건 아니니.>>

이와 같이 타일렀다.

두 괴한-윤대성과 리정호는 식언을 하지 않았다. 늦은 점심때가 채 못되여서 신영호씨는 가족과 경찰의 구원을 받아 자유로운 몸으로 되였다.

이보다 앞서 선장이는 신영호씨네 화단옆에서 발동을 끄지 않은 자동차에 앉아 긴장히 대기하다가 리정호가 내다주는 수표를 받아쥐자 곧 화기은행으로 차를 달렸다. 그가 탄 차를 모는것은 장준광이라는 갓 스물에 나는 조선청년으로서 공공조계 모리스자동차수리소의 견습공인데 리춘근에게 포섭이 되여 이번 행동에 가담을 하였었다. 장준광은 평양사람으로 오목눈에 옥이박이인데 천생 타고난 모험가였다. 그는 자원하여 외국사람이 수리해달라고 갖다맡긴 승용차를 주인 몰래 몰고 나와 사로니까행동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것이였다.

일이 안될 때라서인지 순조롭게 달리던 자동차가 화기은행을 지척에 두고 갑자기 발동이 꺼져버렸다. 핸들을 잡은 장준광과 수표가 든 호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덮어누른 선장이가 놀란 눈으로 서로 돌아보았다. 분초를 다투는 고비관이였다. 윤대성과 리정호는 신영호를 붙들고 앉아서 전화가 걸려오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장준광이 다급하여 앞이마에 땀을 흘리며 악세레다를 밟아보고 또 열심히 이것저것을 눌러보는것을 내버려두고 선장이는 차문을 덜컥 열고 길우에 뛰여내렸다. 화기은행을 향하고 오금에서 바람이 나게 걸어갔다. 왼손으로는 수표가 든 호주머니를 누르고 오른손에다는 돈뭉치를 받아챙길 거뿐한 인조혁들가방을 들고.

으리으리한 회전문을 밀어열고 들어서니 한쪽옆에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허리에 특대호 리볼바-자동권총을 찬 인도수위가 서있었다. 모두 영문으로 표식을 한 창구들을 눈으로 더듬었다. 해당 창구를 찾아가 짐짓 태연한체 수표를 들이미니 안에 앉아있던 양코배기은행원이 받아들고 한번 번드쳐보더니 무슨 미심한 점이 있는 모양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이를 보자 선장이의 가슴속에서는 곧 쌍다듬이질이 시작되였다.

(저 자식이 무슨 낌새를 채였나?)

양코배기은행원은 새파란 눈을 들어 미심쩍게 선장이를 한버 가늠해보더니 제법 부드러운 바리톤으로

<<웨이트 어 미니트 플리즈(잠간만 좀 기다려주십시오).>>

말하고 곧 수표를 손에 쥔채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안쪽으로 걸어갔다. 선장이의 귀가에서 약삭바른 악마가 속삭였다.

<<어서 내빼라?>>

꼴을 보아하니 수표에 미심한 점이 있는것만은 대개 틀림이 없는 모양이였다.

(뛸가말가?)

속으로는 자저하며 회전문쪽을 슬며시 돌아보니 인물이 그럴듯하게 생긴 인도수위가 마주 바라보고 심심해 웃는 웃음을 싱긋 웃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하였다. 양코배기은행원이 지배인실로 들어가는것이 바라보였다. 지배인실은 간막이 전면이 판유리로 되였으므로 안에서도 밖이 환히 내다보이고 또 밖에서도 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양코배기은행원이 이도 역시 미국인인 지배인앞에다 문제의 수표를 내놓았다. 그리고 몇마디 말을 주고받는 모양이더니 바로 지배인 책상우에 놓인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이얄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선장이는 간이 콩알만해졌다. 뛰자니 그렇고 안 뛰자니 그렇고... 어찌할바를 몰라 왼새끼를 꼬았다. 공부국(조계의 경찰서)의 순찰차가 금세 들이닥치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운명을 하늘에 맞기고 견뎌배겼다. 이윽고 양코배기은행원이 한손에 수표를 쥔채 돌아오는데 그 평화로운 기색을 한번 보자 선장이는 숨이 후 나왔다. 고비사위는 이젠 넘어섰다는것을 륙감으로 깨달았다.

선장이도 꿈에도 다루어본적이 없는 엄청난 액수의 지전뭉치를 한가방 그들먹이 담아들고 제정신없이 회전문을 나와 2단으로 된 넓은 층계를 내려섰다. 막 인력거를 부르려고 하는데 마침맞게 장준광이 애써 고친 자동차가 들이닥쳤다. 장준광이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차창안에서 히쭉 웃는데 승냥이 이발 같은 송곳이의 덧이가 눈부시게 드러났다.

이날 저녁 애인리 42호에서는 간소 경축연이 베풀어졌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원래의 그 식구-김혜숙과 송일엽, 전보경과 서선장 그리고 이모-다섯이였다. 이브닝드레스를 입은데다가 귀에고리까지 달아 화려하게 화장을 한 송일엽이 손바닥으로 샴페인의 병밑을 탁 쳐서 코르크마개를 뽑는데 총소리 같은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다리가 높고 아구리가 번 유리잔 다섯에다 골막골막 따라놓고 송일염이 선참으로 잔 하나를 집어들고 좌중을 돌아보며

<<사로니까행동의 승리를 축하하며.>> 하고 멋스럽게 건배할것을 청하여 일시에 잔을 들어 서로 맞부딪치고 잔들을 말리였다.

명절기분의 경축연이 파한 뒤에 송일엽은 바로 일터로 나가고 이모는 뒤설겆이를 해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김혜숙, 전보경 올케시누이와 서선장이 세 사람은 김혜숙이 거처하는 큰방에서 한담들 하였다. 주요한 화제는 더 말할것도 없이 낮에 있은 모험활동에 관한것이였다(생명보험회사의 녀직원을 사칭하고 맨먼저 찰스 신에게 전화를 건것은 김혜숙이였었다). 전보경이 선장이를 보고 웃으면서

<<미스터 서두 인젠 당당한 일원이 되셨네요.>> 하고 칭찬을 하여 선장이가

<<글쎄올시다... 이제 겨우 견습생으루나 채용이 된 셈이겠지요.>> 하고 웃음의 소리로 겸사하니 김혜숙은 상글상글 웃으면서

<<훌륭한 역군인데... 견습생은 다 무어예요.>>하고 기특한듯이 선장이의 등을 도닥거렸다.

<<그때 내가 지레 겁을 먹구 도망질을 쳤더라면... 모든 계획이 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건데... 아마두 하늘이 굽어살폈는가봅니다.>>

<<용케 견뎠에요. 수표를 가지구 지배인실에 들어가 전화를 거는데... 누군들 도망칠 생각이 안 났겠어요.>>

<<미스 전 말이 맞아요. 웬만한 담력으룬 거기 그대루 서있기 어렵지요. 어렵다마다.>>

<<너무 그렇게 좋게만 해석하지 마십시오. 게면쩍어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윤대성과 리정호에게로 번져서 선장이가

<<지금쯤은 배에들 올랐을가요?>> 하고 물으니 김혜숙은

<<아마 그렇겠지요.>> 하고 가볍게 대답하였다. 기차로 가는것은 북정거장을 거쳐야 하므로 안전하지 못하다고 리춘근은 두사람의 회정로선을 배편으로 잡아주었었다. 그들은 이미 면모가 드러난 까닭에 하루라도 상해에 머무르는것은 불긴하였다.

<<이젠 강녕별장두 좀 개변이 되겠지요?>>

<<글쎄요. 공작비가 워낙 딸리는 형편이라서 거기까지 혜택이 미치겠는지는 마침 모르겠는걸요. 우리 여긴 일선이라구 이만한 생활대우가 있지만 내지에서는 한달 생활비가 일률적으로 12만원이랍니다.>>

<<우리 조직이 그 지경 구차합니까?>>

<<그러찮으면 왜 목숨들을 걸구 이런 모험을 하겠습니까.>>

전보경이 옆에서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듣고있다가 나중에

<<미스터 서, 이젠 고만 올라가잖겠어요?>> 하고 몸을 일으켜서 선장이도 따라 일어나며 김혜숙에게

<<해피주림(좋은 꿈 꾸시기를).>>

자는 인사하고 전보경을 따라 3층으로 올라왔다.

<<나한테 좀 들리잖으실래요? 졸리세요?>>

<<아니요.>>

선장이가 군말없이 끄는대로 따라들어갔다. 룡연향의 향기 같은 그윽한 향기가 알릴듯말듯 풍기는 방안은 간소하고도 안온하였다. 송일엽의 거실이 모란이 성개한 화초밭처럼 농염한데 비하여 전보경의 규방은 코스모스들이 바람에 설레는 뜰같이 담담하였다.

둘이 같이 앨범을 들여다보며 하나는 설명을 하고 하나는 듣는중에 전보경이 느닷없이

<<우리 언제 기념사진 하나 안 찍으실래요? 공원에 가서.>> 하고 말을 내여 선장이가 무심코

<<좋겠지요. 날씨가 좋은 때 우리 다같이 가 한번 찍두룩 하시지요.>> 하고 찬성하는데 전보경이 대꾸가 없어서 그 얼굴을 쳐다보니 덜 좋아하는 기색이 력연하다. 그래 얼른 싹싹하게 말을 고치여

<<둘이 한번 가 찍으십시다.>>하고 비위를 맞춰주었다. 선장이도 어느 틈에 세고에 숙달한 사내꼬부랑이가 되였었다.

전보경과 선장이는 서로 사귄 뒤 이날 밤 처음으로 갈라질 때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녀자의 손의 매끈매끈한 감촉이 선장이가 잠이 들 때까지 그저 남아있었다. 불을 끄고 곤히 자는중에 무엇이 가슴에 와 얹히는것 같아서 안쪽으로 돌아누우려니까 얹힌것이 돌아눕지 못하게 그러당겼다. 잠에 취해 거슴츠레한 눈을 떠보니

(아, 이게 웬 일이냐?)

희미한 속에 헬끔한 녀자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가! 깜짝 놀라 잠이 다 달아났다. 선장이가 부지런히 일으키려 하니 녀자는 일어나지 못하게 힘주어 누르면서

<<어 풀(a fool 바보).>> 하고 킥 웃었다.

선장이가 경황하여 제몸을 다시한번 살펴보니

(어렵쇼)

어느 틈에 좁은 침대에 몹시 배좁게 둘이 누웠다는 기성사실이 드러났다. 송일엽의 입과 몸에서 풍기는 냄새와 담배냄새, 향수남새와 분냄새 그리고 녀자냄새... 강렬한 냄새의 칵테일이 선장이를 콱 질식시켰다...

두 사람의 시계바늘이 멎어섰다. 두 사람을 실은 지구도 자전을 멈추었다...



추천 (2) 선물 (0명)
IP: ♡.50.♡.214
로즈박 (♡.39.♡.172) - 2023/10/31 22:33:55

헐..어떻게 이런 일이..
전보경이랑 좋아하는건데 어쩌다가 송일엽이까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하회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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