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9

더좋은래일 | 2023.11.06 15:48:56 댓글: 0 조회: 194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5357


49

달밤에 네댓이 거루배를 타고 그림 같고 꿈같은 동호에서 배놀이를 하다가 장준광이 제법 솜씨있는 말주변으로 <<8.13>> 때 첫 전투에서 당황망조하던 이야기를 하여 사람들을 웃기였다.

<<... 포탄이 머리꼭대기에 무데기루 쏟아지는 바람에 질겁을 했지 뭐야. 귀를 꼭 막구 입을 헤 벌리구 전호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바지에다 오줌을 싸는것두 몰랐지 뭐야...>>

이렇게 말하며 허둥지둥하던 꼴을 입짓, 몸짓으로 형용까지 해보이는 바람에 좁은 배우에서는 유쾌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오쎌로가

<<나두 마찬가지야. 나중에 보니까 글쎄 군화속에 오줌이 질컥질컥하잖아.>> 하고 한술을 더 써서 씨동이가 웃으며

<<인제 허풍 좀 고만 쳐!>> 하고 손을 내저었다. 선장이가 옆에서

<<살인범이 양간한체하는군!>> 하고 빈정거리니 오쎌로도 지지 않고

<<너는?>> 하고 마주 빈정거렸다. 반역자를 아령으로 까죽였거나 일본경부를 권총으로 쏴죽였거 살인은 매한가지 살인이였다.

이어 네댓이 각기 다른 목청으로 신나게 <<양산도>>를 부르고있을 때 달빛을 받아 거울 같은 호면을 수상비행장쪽에서 요트 한척이 미끄러지듯이 달려왔다. 그 요트가 선장이들의 거루배옆에 와 엇비스듬히 멎어서다니 그우에 탄 운동복 같은것을 입은 남자가 한손에 키를 잡은채

<<조선동무들 아닙니까?>>

황해도사투리가 약간 알리는 조선말로 묻는것이였다. 씨동이가 여럿을 대표하여 선뜻

<<녜 그렇습니다.>>

대답하고 다시

<<그런데 동무는 누굽니까?>> 하고 되물으니 그 남자는

<<아 나는 저 비행장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동무들의 노래소리를 듣구 반가와서 쫓아왔습니다.>> 하고 달뜬 어조로 대답하는것이였다.

<<비행삽니까?>>

<<녜 그렇습니다.>>

<<그 비행장에 우리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 나 혼잡니다. 고적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정신적인 정배살이를 하고있는 백의동포였다. <<양산도>> 소리에 끌리여 쫓아온 그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비위살 좋은 오쎌로가

<<우리두 비행기 한번 좀 태워주지 않을랍니까?>> 하고 교섭을 하니 그 비행사는 웃으며

<<좋습니다. 이 비행정이 하루 한번씩 중경을 갔다오는데... 손님들은 대개 다 장강에서 타구 내리니까... 여기서 장강까지는 한번씩 거저 태워드릴수 있습니다.>> 하고 선선하게 대답하였다.

<<애개 겨우 여기서 장강까지야? 고게 얼마나 된다구? 엎어지면 코닿을덴데!>>

<<그래두 한 5분씩은 타보잖습니까?>>

<<5분!>>

요트와 거루배에서 동시에 웃음보가 터졌다.

국제반파쑈조직에서 주최한 대회가 한구에서 열렸는데 조선대표단성원으로 참가하였던 운대성이 와 이야기하는것을 듣고 선장이는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대회참석자들이 <<국제가(인터나쇼날)>>를 부르던 장면이 뇌리에 박혔다.

<<피부색들이 다른 세계 각국 사람이 모였으니까 `국제가`두 다 각기 제 나라 말루 부릅디다. 영어, 로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어... 우리야 물론 조선말루 불렀지요. 취주악대의 주악에 맞춰 부르는데 분위가 장엄하기라니 뭐... 온몸의 털구멍이 다 닫기는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묘한것은 끄트머리의 `인터나쇼날`만은 다 똑같은 말루 `인-터-타-쇼-날`이라구 부르잖겠습니까. 세계공통의 언어라는 느낌이 가슴에 콱 안겨옵디다.>>

선장이가 자격이 부족하여 반파쑈대회에는 참석을 못하였지만 한구 황가화원에서 열린 총정치부가 소집한 회의에는 참석을 하였다. 이때 국공합작의 산물의 하나인 군사위원회 총정치부의 인원구성을 볼작시면-부장에 진성, 부부장에 주은래, 황기상 그리고 제3청에 청장에 곽말약... 대개 이러하였다.

조직의 지명을 받고 선장이와 리정호 둘이 갔는데 리정호는 이런 방면에 들어서는 선장이보다 까맣게 높은 선배였다. 두 사람이 황가화원 정문까지 왔을 때 마침 찌프차(이때는 아직 짚차라는 말을 몰라서 다들 지휘차라고 불렀다) 한대가 앞에 와 멎어서는데 보니 앞좌석 운전사옆자리에 난쟁이 진성이가 두무릎사이에 로획품 일본군도를 짚고 젠체하고 앉았었다. 1년 반전에 서안에서 호텔지하실 맥주상자틈에 들어가 숨었다가 꼭뒤잡이를 당해 끌려나온것은 이 진성이가 아니고 다른 진성이기라도 한것모양 우쭐하였었다. 진성이는 이때 총정치부 부장외에도 호북성정 부주석에다 제9전구 사령장관에다 무한위수사령까지 겸하고있었다.

회장은 화원안의 음악당인데 제3청 청장의 자격으로 곽말약이 사회를 하였다.

<<내 말이 맞지?>> 하고 리정호가 선장이의 옆구리를 직신거렸다. 아닌게아니라 곽말약은 대성 두알 박힌 령장을 달고있었다. 선장이는 그 금판대기령장을 보자 어쩐지 평소에 그 량반을 존경하던 마음이 푹 줄어드는것을 느꼈다. 나중에 조선청년대표의 자격으로 그와 악수를 할 때도 예상밖에 덜 감격하였고 또 그와 함께 영화를 찍히울 때도 별로 흥분하지 않았다(촬영소들도 제3청의 관할하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습경보를 만났다. 둘이 가로수밑에 들어서서 쳐다보니 빨간색 고약표식을 그린 일본공군의 급하강폭격기 여섯대가 날아와 강건너 무창의 엄페된 군용창고-어떻게 알았는지-번가라들며 이악스레 폭격을 해대였다. 적기가 나타나자 강 이편에 정박중인 프랑스구축함에서 빨간 방울 모양의 털실송이가 달린 수병모를 쓴 수병들이 부리나케 고사포의 카바들을 벗기더니 들입다 대공사격을 해대였다. 저의 령공을 침범하였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일본공군기들은 가래지 않고 제 할 폭격만 다하고는 그냥 기수들을 돌려버렸다. 폭경당한 군용창고에서는 시꺼먼 연기에 싸여 삼단같은 불길이 솟구쳤다. 폭격을 하거나 소사를 하거나 프랑스조계안은 태평이였다. 복잡한 정세하에서 진행되는 전쟁이였다.

선장이가 이해 여름 무창에서 만나본 외국사람들중에 가장 인상이 깊은것은 프랑스의 진보적신문 <<유마니떼>>의 두 기자-쟈크리씨와 올리베씨 그리고 일본작가 가지 와다루씨부부였다.

프랑스기자들은 조선의용대의 대장으로 내정된 김청산의 안내를 받아 동호기슭까지 찾아왔는데 프랑스말을 통역할 사람이 없어서 영어를 사용하였다. 이때 처음 선장이는 외국사람의 입에서 <<코리안 볼룬티어>> 즉 조선의용대란 말을 들었다. 일본파쑈의 침략에 대항하는 <<코리안 볼루티어>>의 탄생은 동방의 반파쑈전선에 또 하나의 봉화가 오른것을 의미한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리고 휴대한 카메라로 사진들을 찍은 뒤에 본국에 돌아가면 <<유마니떼>>에다 대대적으로 소개를 하여 전세계 반파쑈전사들의 사기를 고무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래방은 조선의용대(아직 대회적으로 선포하지 않은 )대원들의 사기를 크게 고무해주었다. 우리의 벗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는것을 알려주었기때문이다.

가지 와다루씨부부와의 첫 상봉은 무창성안 장지동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정원 련못가 플라타나스의 그늘에서 있었다. 가지 부인의 이름은 이께다 사찌꼬라고 하는데 내외가 다 인물이 조촐할뿐아니라 옷차림까지 말쑥들 하였다. 가지씨는 도꾜제국대학 졸업생으로 총정치부 제3청의 풍내초와 동기동창인데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작가였으므로 당국의 박해를 받아 내외 함께 중국으로 망명을 한것이였다. 그들 내외와의 상봉은 선장이에게 매우 의의있는 실물교육으로 되였다. 참전이래 선장이는 왜놈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악귀, 살인귀로만 보여 이를 갈아왔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앉아있는 두 일본의 지성인은 본국정부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다가 그 박해에 못이겨 우리 편으로 넘어오지 않았는가!

(이런 일본사람두 있었구나!)

선장이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진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가지씨 부부에 대하여 동지적인 사랑까지를 느꼈다.

(얼마나 고상한 인간들인가!)

이야기를 나누는중에 가지씨가 일본의 걸출한 프로작가 고바야시 다끼지 생시의 전우였던것을 알고 선장이는 더욱 감동하고 또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되였다. 한창 이야기에 열중하고들 있을즈음 불시에 공습경보가 났다. 다들 잠시 흩어져 대피를 하는데 부근에는 대피호도 방공호도 다 없었다. 그래 그저 제각기 땅바닥에 엎드려 폭격기 편대가 무시무시한 폭음을 울리며 날아오는것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떨어져내려오는 폭탄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머리우를 날아지나 목표물들에 명중하여 벼락치는 소리를 낼 때마다 엎드린 배밑의 땅이 움찔움찔 들놀았다. 일본공군의 야만적폭격을 일본사람하고 같이 겪는 선장이의 마음은 야릇하였다. 사찌꼬부인의 얼굴이 해쓱해진것을 보고 선장이는 동정을 금할수 없었다.

(얼마나 놀랐으랴!)

밤에 오락회에서 가지씨는 짚고 다니는 호신용개화장속에서 칼을 빼들고 칼춤을 추며 옛스러운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군영에 서리가 차니
가을기운이 맑도다
기러기떼 날아지나니
달은 적적 삼경이라

그리고 사찌꼬 부인이 <<황성의 달>>을 부를 때는 만좌가 다같이 따라 불렀다.

봄날 고루에 베푼 꽃달임잔치
순배가 돌고돌아 달빛우리니
락락장송 가지를 헤치며 나온
그 옛날의 그림자 지금은 어디?

가지씨부부도 그렇고 조선의용대 젊은이들도 그렇고 일본제국주의가 망하지 않으면 고국땅을 밟아볼수 없는 신세들이였다. 그들은 공통한 운명으로 얽혀진 동지이고 또 전우였다.

간봄에-4월29일 일본천황의 생일날에-머리가 뜨거워난 적군은 무한시민들의 항전의 의지를 꺾어볼 속셈으로 전투기의 엄호를 받는 폭격기편대를 대거 충돌하여 무한삼진에다 위압적인 폭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매떼 같은 <<정의의검>>-쏘련공군의용대 E-15와 E-16 전투기들이 내달아올줄을. 수십만쌍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한상공에서의 활극적공중전은 20분 가까이 계속되였다. 그 결과 적들은 허무하게도 불과 10여분동안에 21대의 비행기를 격추당해 공중의 패잔병꼴이 되여가지고 창황히 도망질들을 쳤다. 우리측의 손실은 5대, 휘황한 전과였다 그후부터 적의 중폭격기들은 야간폭격을 위주로 하였다. 공중전을 피면할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울도 웃도 못할 활극이 벌어졌다. 프랑스조계안에 잠복한 적의 간첩들 또는 민족반역자들이 신호탄을 쏘아 상공에 침입한 공중강도들에게 폭격할 목표를 지시해주는것이였다. 그러나 프랑스조계를 수색해 숨어있는 악당들을 잡아낼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머리들을 쥐여짠 끝에 묘한 대책 하나가 강구되였다. 우리 편에서도 상응한 수자의 인원을 조계안에 들어보내여 간첩, 반역자들의 신호탄이 목표를 가리킬 때 그와 정반대되는 방향에다 또는 아무데나 허턱대고 마구 신호탄들을 쏘아올려 공중의 강도들의 갈피를 잡을수가 없게 만들어놓는것이였다

(이런 제기,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한단 말이냐?)

이런것을 이독공독(以毒攻毒)이라고 한다. 적기가 무한상공에 날아들기만 하면 탐조등의 광망이 거대한 장검처럼 밤하늘을 가르고 고사포탄들이 높은 하늘에다 탄막을 펼치는데 낮은 하늘에서는 푸른빛, 누른빛, 붉은빛, 흰빛의 가지각색 신호탄들이 란무하여 찬란한 불꽃놀이를 방불케 하는 성항을 이루었다. 이것을 바라보는 선장이는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하였다.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들은 어느때나 또 어느곳에나 있게 마련이였다. 그게 인간세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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