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1

단차 | 2023.11.18 12:50:58 댓글: 0 조회: 28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8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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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전화는 다케오 도오루에게는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근무하던 경호 보안 회사와의 계약이 끊기고 두 달쯤 된 참이었다. 회사에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은 건 건강진단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산 수치가 규정보다 높게 나왔다. “여차할 때 통풍 증세가 나타나면 곤란하잖아”라고 인사부 담당자는 말했다. 건강관리에 유념해 곧바로 수치를 떨어뜨리도록 하겠다고 버텨봤지만 결국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 요산 수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회사의 실적이 전혀 호전되지 않는 것에 속을 끓이던 간부들이 경비 절감에 나선 것일 터였다.

  곧바로 일거리를 찾아봤지만 좀체 자리가 나지 않았다. 다케오의 장점이라면 큰 체격과 전직 경찰이라는 경력뿐이다. 일을 찾다 보면 역시 경호 보안 업체 쪽이었다. 하지만 사십 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최소한 두세 살만 젊어도 좋았을 텐데, 라고 노골적으로 말한 인사 담당자도 있었다.

  경찰을 사직한 이유에 대해 간단히 ‘가정 사정’이라는 설명만으로 끝내버린 것도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는지 모른다. 지방 경찰서에 1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상사의 거듭되는 부하 여경에 대한 눈꼴사나운 성추행을 넌지시 지적했더니 그 앙갚음으로 벽지 파출소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게 화가 나서 사표를 냈다, 라는 게 진상이었다. 그런 저간 사정을 누누이 늘어놓지 않은 탓에 무슨 문제를 일으켜 경찰에서 잘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면도 없잖아 있었다.

  경호 이외의 일은 더욱더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다케오는 사무 일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다. 장부의 숫자는 암호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고향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가, 라고 슬슬 생각하던 참이었다. 다케오의 본가는 미야자키로, 조부 때부터 해오던 양계장을 형이 물려받았다. 그 양계장 일과 늙은 부모님의 봉양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전부터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고향 떠난 게 열여덟 살 때 일이다. 이제 새삼 고향에 내려가봤자 친한 친구도 없다.

  그러던 차에 이번 전화가 걸려 왔다.

  연락한 사람은 기리미야 레이라는 여자였다. 이름만 듣고는 얼핏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가이메이 대학이라는 말을 듣고는 아, 그때 그 사람, 하고 생각이 났다.

  “다케오 씨에게 부탁드릴 게 있어요.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기리미야 레이는 말했다.

  “그야 괜찮지만, 내가 경호 보안 회사 그만뒀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 문의해봤으니까요.”

  “그러면 용건은 일에 대한 것이 아니군요?”

  “아뇨, 일에 대한 것입니다.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드리겠지만, 어떤 사람의 경호를 맡아주셨으면 해서요.”

 
 “경호?” 저도 모르게 전화기를 움켜쥐었다.

  “어떠세요, 나오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대학입니까?”

  “네, 우선 대학으로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리미야 레이는 날짜와 시간을 제시했다. 그걸로 좋다고 대답하고 자세한 일정을 상의한 다음에 전화를 끊었다.

  다케오는 주먹을 부르쥐었다. 일이 들어온 것 자체도 물론 고마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경호’라는 단어에 가슴이 뛰었다.

  경찰 시절, 주로 경비과에 있었다. 체격과 유도 3단의 실력을 높이 쳐주어 주로 요인의 경호 업무가 주어지는 일이 많았다. 내 한 몸을 던져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낸다는 것에서 사명감과 정의감이 강한 자극을 받았다. 이게 천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SP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꿈꾸었던 시기도 있었다.

  경호 보안 회사와 처음 계약했을 때도 단순한 경비원이 아니라 뭔가를 지키는 임무, 가능하면 요인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고 싶다는 희망을 적어 냈다. 실제로 그런 지시가 내려오는 일이 많았다. 해외에서 유명한 아티스트가 방문한다는 뉴스를 들으면 자신에게 그 경호 업무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내심 기대했다.

  오른팔을 힘주어 굽혀보았다. 불룩한 근육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트레이닝을 해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가이메이 대학은 이공계가 우수한 것으로 유명한 종합대학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연구자를 다수 배출한 바 있다. 기리미야 레이는 그 대학 사람이었다.

  그녀를 만난 건 2년 전이다. 어떤 물건을 도쿄에서 뉴욕으로 옮기는 일을 당시 다케오가 일하던 경호 보안 회사가 맡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을 경호해달라는 의뢰였다. 다케오를 포함한 세 명의 경호 담당자가 파견되었다.

  그 물건은 작은 가방에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내용물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운반자는 중년 남성이고 그의 비서로 기리미야 레이가 동행했다.

  다케오 팀은 두 사람을 호위해 가이메이 대학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했고 그다음에는 다케오 혼자서만 그들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갔다. 가방을 든 남자를 뉴욕에서 대기하던 사람에게 무사히 인도하고 당일 일본으로 되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기리미야 레이와 둘만 남게 되었지만 기내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비즈니스 클래스, 다케오의 좌석은 이코노미였기 때문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그녀와 헤어지고 다케오는 회사에 출근해 임무 완료를 보고했다.

  그 이후 기리미야 레이와는 만난 적이 없었다. 이번에 왜 그녀가 경호 보안 회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일을 의뢰했는지 다케오는 전혀 짚이는 게 없었다.

  약속한 날, 다케오는 양복을 입고 가이메이 대학으로 향했다. 덥수룩하던 수염은 깨끗이 밀었다. 이발소는 그 전날 다녀왔다. 일에 임하는 자세는 충분히 갖춰졌다.

  대학 정문 앞에 도착해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문기둥을 바라보며 기리미야 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데리러 갈 테니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다케오는 정문 옆에 서서 대학생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똑똑해 보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일류 대학에 선발된 인간이라는 자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 뒤 세단 한 대가 옆에 와서 멈추더니 운전석의 파워윈도가 열렸다. “다케오 씨.”

  운전하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약간 긴 얼굴에 콧날이 오뚝한 미인이다. 다케오는 인사를 하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라고 기리미야 레이는 웃음을 건넸다.

  “그렇군요.”

  “별일 없으시죠?”

  “네, 덕분에.”

  “다행이네요. 안심했습니다.” 기리미야 레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꼬리가 약간 처져 얼핏 졸린 듯한 표정으로 보이지만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린 눈에는 냉철하게 상대를 관찰하는 번뜩임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던 점이지만,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다.

 
 “타시죠.” 그녀가 말했다. “지금 가려는 데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서요.”

  “알겠습니다.”

  다케오는 조수석 쪽으로 돌아가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기리미야 레이는 검은 바지정장 차림이었다. 그 긴 다리로 액셀을 밟았다.

  “연락받고 좀 놀랐습니다.”

  다케오의 말에 그녀는 턱을 끄덕였다. “그러시겠죠.”

  “왜 나한테?”

  그녀는 한 박자 뜸을 들이고 나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라고 말했다. 시선은 앞을 향한 채였다.

  알겠습니다, 라고 다케오는 대답했다.

  세단은 10여 분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부자연스러울 만큼 새하얀 건물 앞이었다. 입구에 <독립행정법인 수리학 연구소>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차에서 내려 기리미야 레이의 안내를 받으며 다케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안쪽에 보안 검색 게이트가 있었다. 이거, 라면서 그녀가 내밀어준 것은 방문자용 패스인 것 같았다. 끈이 달려 있어서 다케오는 그것을 목에 걸었다.

  게이트를 통과해 복도로 들어갔다. 이윽고 기리미야 레이는 어느 문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녀가 노크를 하자 예에, 라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돌아왔다.

  기리미야 레이는 문을 열고 말했다. “다케오 씨가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요.”

  그녀가 어서 들어가라는 눈빛을 건네 왔다. 다케오는 실례합니다, 라고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회의실인 것 같았다. 커다란 테이블을 둘러싸듯이 소파가 몇 개나 놓여 있었다.

  거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섰다. 다케오와는 그다지 나이 차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단지 체격은 전혀 다르다. 남자는 마른 몸매에 턱도 뾰족했다. 좀 더 다른 것은 얼굴 생김새다. 이지적이고 두뇌가 명석해 보였다. 이 사람과 비교한다면 자신은 고릴라처럼 보일 거라고 다케오는 생각했다.

  남자가 다가와 다케오의 몸을 쓰윽 훑어본 뒤에 “수치는 떨어졌습니까?”라고 물었다.

  “예?”

  “요산 수치 말이에요. 무사히 정상치로 떨어졌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다케오는 허를 찔려 크게 당황했다. 엇 하고 입을 헤벌리고 말았다.

  “예에,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정상이에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물었다. “근데 어떻게 그걸?”

  남자가 빙긋이 웃었다.

  “중요한 일을 의뢰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래저래 알아봐야지요.”

  “회사 쪽에서 들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누설해도 되는가.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남자는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저었다.

  “당신과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를 그쪽 회사에서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록 자체는 컴퓨터에 남아 있어서 그걸 살짝 들여다본 겁니다. 이 연구소에는 그런 일에 능숙한 사람도 많으니까요.”

  아무래도 회사 네트워크에 침입했던 모양이다.

  다케오는 기리미야 레이 쪽을 돌아보았다. “경호 대상은 이분입니까?”

  “아니, 내가 아니에요.” 남자가 대답하더니 기리미야 레이를 향해 물었다. “다케오 씨에게 자세한 얘기는?”

  “아직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래?” 남자는 새삼 다케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추천한 건 기리미야 씨예요. 부디 면접에 합격하기를 바랍니다.”

  “면접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잠깐 인사나 하려고 기다렸어요. 자, 그럼 잘 부탁합니다.” 기리미야 레이 쪽에도 눈인사를 건네고 남자는 회의실을 나갔다.

  다케오가 멍하니 문 쪽을 쳐다보자 “자, 앉으세요”라면서 기리미야 레이가 소파를 가리켰다. “기본적으로 보디가드는 자리에 앉지 않는 게 규칙이라지만, 아직 채용이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세상 만만하게 되는 일이 없다.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고 다케오는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에 서류 몇 장이 놓여 있었다. 그중 한 장에는 다케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자잘한 글씨로 적혀 있는 건 그의 경력 사항일 것이다. 이런 것도 역시 이전의 경호 보안 회사에서 훔쳐 온 모양이다.

  “묻지 않으시는군요.” 기리미야 레이가 어질러진 서류를 정리하면서 물었다. “방금 그분이 누구인지.”

  “물어보는 게 좋았습니까?”

  그의 반문에 기리미야 레이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뇨, 그게 다케오 씨의 장점이에요. 공연히 뭔가를 알려고 하지 않으시죠. 제가 다케오 씨를 추천한 이유 중 하나예요.”

  “경호 대상이 아닌 사람에 대해 알아봤자 별 의미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개중에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나저나 지난번에 하신 일의 내용은 기억하고 계세요?”

  “물론이지요. 가방을 든 남자를 뉴욕까지 경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다케오 씨는 한 번도 묻지 않으셨어요. 궁금해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죠.”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라는 얘기는 회사에서 들었어요. 나 한 사람의 목숨쯤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라는 말도.”

  “그게 어떤 것인지, 알고 싶지 않으셨어요?”

  다케오는 어깨를 으쓱 쳐들었다. “위험한 물건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기리미야 레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런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알고 싶기는 한데 일을 위해 호기심을 억누르는 것뿐이라면 저희로서는 좀 불안하거든요.”

  아무래도 이번 일 역시 상당히 민감한 업무인 모양이다. 공공연히 밝힐 수 없는 ‘뭔가’를 지키라는 뜻일 것이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 기리미야 레이가 말했다. “그때 그건 소수素數였어요.”

  “소수?”

  “수학의 소수. 2나 3이나 5처럼 1과 그 자신 이외에는 나누어지지 않는 숫자예요. 그때 가방 속에는 어떤 소수를 기록한 것이 들어 있었어요. 단지 단위 수가 엄청나게 큰 숫자였죠.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간단히는 발견할 수 없는 숫자예요. 현재 그런 소수가 정보의 암호화에 사용된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들은 적은 있어요.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설명을 들어봤자 아마 이해하지도 못할 터였다.

  “암호화된 정보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데는 그 소수가 필요합니다. 즉 대단히 중요한 것이죠. 수송하는 데도 엄중한 주의가 필요해요. 그래서 그쪽 회사에 경호를 의뢰했었어요.”

  “흠.” 다케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리미야 레이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래서요?”

  그녀는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네요.”

  “나하고는 평생 관계없는 얘기인 것 같아서. 왜, 안 됩니까?”

  “아뇨, 그게 좋아요. 이제 곧 여기로 어떤 사람이 올 거예요.” 그녀는 상의 안주머니에서 메모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다케오는 그것을 손에 들었다. ‘우하라 마도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앞으로 다케오 씨가 경호를 맡아줄 인물, 우하라 마도카입니다. 평소에는 이 건물 안의 방에서 생활하지만 이따금 외출하는 일이 있어요. 그런 때에 그녀의 보디가드로서 동행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디에 가든 절대로 시선을 떼지 말고 다양한 위험에서 그녀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라면서 기리미야 레이가 검지를 바짝 치켜들었다.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어요. 결코 그녀에 대해 뭔가 알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왜 그녀가 이곳에 있는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등등, 그녀에 관한 질문은 일절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경호에 필요한 질문도 안 됩니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은 그때그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명이 좀 늦었지만, 그녀가 외출할 때는 저도 함께 행동할 거예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경호 대상이 상당히 복잡한 인물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까다로운 일거리라는 건 미리 각오한 바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다케오 개인에게 일을 의뢰할 리 없다.

  잘 알겠다고 다케오는 대답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열려 있어”라고 기리미야 레이가 대꾸했다. 다케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애가 들어왔다. 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긴 머리에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고 미니 청치마 밑으로 쭉 뻗은 다리가 가늘었다.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아주 커서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다케오는 내심 뜻밖이었다. 어쩐지 경호 대상이 나이 지긋한 여자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기리미야 레이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이쪽은 다케오 도오루 씨. 너의 보디가드 일을 맡아달라고 얘기하던 참이야.” 그리고 이번에는 다케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우하라 마도카예요.”

  잘 부탁합니다, 라고 다케오는 머리를 숙였다.

  우하라 마도카가 큼직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의 온몸을 체크하듯이 시선이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무슨 문제라도?” 다케오가 물었다.

  “잠깐만 걸어보실래요?” 마도카가 말했다. 약간 코에 걸린 목소리였다.

  “응?”

  “여기를 잠깐만 걸어보세요. 내가 좋다고 할 때까지요.” 바닥을 가리키며 손끝으로 원을 그렸다.

 
 다케오는 당황스러워서 기리미야 레이 쪽을 보았다. 그녀는 원하는 대로 해주라는 듯이 슬쩍 눈짓을 보내 왔다.

  어쩔 수 없이 다케오는 늘어선 소파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한 바퀴 돌아온 참에 마도카가 됐어요, 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도 아프진 않아요?” 다케오의 허리께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아프다니, 어디가?”

  “허리요, 오른쪽 허리. 요통이 있잖아요.”

  딱 잘라 말하는 바람에 다케오는 놀랐다. 맞는 말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요통에 시달려왔다.

  “어떻게 알았지?”

  “보면 알아요.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있거든요. 그나저나 어때요, 뛸 수 있어요? 여차할 때 뛰지 못하는 보디가드라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기리미야 레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다케오는 자신의 가슴팍을 툭 쳤다.

 

  “문제없어. 분명 요통은 내 지병이지만 평소에 충분히 케어하고 있으니까.”

  흥 하는 콧소리를 내더니 마도카는 손을 들어 다케오의 입가를 가리켰다.

  “케어도 좋지만 치과에 가시는 게 더 빠를걸요? 몸의 균형이 무너진 건 위아래 이가 잘 맞물리지 않은 게 원인이니까요.”

  다케오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턱에 손을 댔다. 이가 맞물리지 않는 다니, 그런 건 여태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마도카는 손을 내리고 “이분, 좋아요”라고 기리미야 레이에게 말하더니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다케오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기리미야 레이가 그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 대해 당장 뭔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얼굴이신데요?”

  “아, 그건 아니고…….” 말끝을 흐렸지만 딱 맞는 말이었다. 대체 뭔가, 저 여자애는.

 

  “그녀의 면접시험에는 합격하신 것 같아요. 어떠세요, 일을 맡아주시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해주신다면…….” 기리미야 레이는 보수를 제시했다. 그것은 다케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였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해봅시다, 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부터 다케오는 경호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첫날은 하루 종일 연구소 로비에서 보냈다. 얘기를 들어보니 마도카는 식사도 연구소 안에서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저녁 식사 전인 오후 6시가 되자, 오늘은 그만 돌아가도 좋다는 기리미야 레이의 지시가 내려왔다.

  “마도카가 외출하는 빈도는 어떻게 됩니까?”

  다케오의 질문에 기리미야 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마음 내키는 대로예요. 연일 외출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 넘게 연구소에 틀어박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니 막상 그때가 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어요. 이런 얘기,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나요?”

  “아뇨, 그렇다면 뭐, 그것도 괜찮습니다.”

  대기 상태로 지내면서 보수를 받을 수 있다면 그야 편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좋은 일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이튿날, 다케오는 처음으로 마도카의 외출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기리미야 레이가 운전하는 차가 향한 곳은 대형 쇼핑몰이었다. 그 안에서 마도카는 가게를 몇 군데나 돌아다니며 옷을 입어보고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액세서리를 살펴보고 다녔다. 그녀가 이동할 때마다 다케오는 기리미야 레이와 함께 그 뒤를 밟았다. 물론 수상한 인물이 주위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서.

  어린 여자의 쇼핑을 따라다니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경호 업무로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도카의 움직임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다케오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여자애에게 보디가드가 필요할까. 어디서나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소녀다. 대부호의 따님이라면 그나마 경계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런 거라면 연구소 같은 데서 먹고 자면서 지낼 리 없다.

  하지만 다케오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도카에게 흥미를 갖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던 데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날, 한 가지 기억에 남은 일이 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기리미야 레이가 운전하는 차가 쇼핑몰의 입체주차장을 나섰을 때, 마도카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잠깐만 차 좀 세워주세요.”

  기리미야 레이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무슨 일이야?”

  다케오는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마도카가 창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주 한심한 사람이 내 눈에 포착됐어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올려다보니 입체주차장 3층에서 한 남자가 몸을 내민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다른 손의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간간이 재를 떨었다. 그 바로 아래쪽은 주차장 통로여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쇼핑객이 드나들었다.

  “그냥 내버려두지?” 기리미야 레이가 말했다.

  “그건 안 되죠. 저 아래로 어린애가 지나가다가 눈에 담배 불똥이라도 들어가면 큰일이잖아요.” 마도카는 주위를 둘레둘레 둘러본 뒤에, 마침 딱 잘됐다고 중얼거리면서 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케오도 즉각 차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바로 옆에 엄청나게 많은 풍선을 든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모양이었다. 마도카는 그에게 다가가 한두 마디 말을 건네더니 빨간 풍선을 받아 왔다.

  “그걸로 뭘 하려고?”

  다케오의 질문에 마도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지켜보라는 듯이 입체주차장 쪽으로 갔다. 3층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여전히 손에 든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양이다. 이쪽은 내려다보는 기척도 없었다.

  마도카가 멈춰 섰다. 3층까지의 높이는 10미터 가까이 될 터였다. 거기에 가로 방향의 거리도 그 비슷한 정도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왼편으로 두 걸음 이동했다. 그리고 타이밍을 재는 것처럼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손에 쥔 풍선의 끈을 놓았다.

  빨간 풍선은 쑥쑥 올라갔다. 그뿐만 아니라 바람에 날려 비스듬히 사선을 그으며 상승했다. 마치 빨려 들 듯이 3층의 그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풍선이 남자의 왼손에 도착했다. 그 순간, 빵 소리를 내며 풍선이 터졌다. 담뱃불에 닿은 모양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남자의 몸이 흠칫 뒤로 젖혀지는 게 보였다.

  뭔가 아래로 떨어져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놀라는 참에 남자가 떨어뜨린 것 같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주우러 내려올 모양이었다.

  “저 스마트폰, 고장 났을걸요? 흥, 고소해.” 마도카는 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다케오와 마도카가 돌아오자 기리미야 레이가 물었다. “이제 속이 시원해?”

  그녀는 차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의 전말을 지켜봤을 터였다.

  “뭐, 그럭저럭?” 마도카가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기리미야 레이가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마도카가 한 일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고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다케오가 괜한 질문을 던지는 일도 없었다. 그 뒤, 세 사람은 말이 없는 채로 연구소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마도카는 이따금 외출을 했다. 기리미야 레이가 말했던 대로, 빈번하게 나가는 일도 있고 한동안 뜸한 시기도 있었다. 행선지는 다양해서 영화도 보러 가고 쇼핑도 다니고 미용실에도 갔다. 단, 항상 혼자였다. 누군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은 교외의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였다. 문패에 ‘에비사와’라고 적힌 걸 보니 외조모인 모양이었다. 다케오와는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자그마한 몸매에 기품 있는 노부인이었다.

  우하라 마도카가 외출할 때마다 다케오는 보디가드로서 어디든 따라다녔다. 그래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다니다 보니 서서히 짚이는 게 있었다. 마도카 주위에서는 자주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외조모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집 근처에 개천이 있어서 마도카는 외조모와 함께 천변을 산책했다. 다케오는 기리미야 레이와 더불어 조금 떨어져서 따라갔다. 그러자 갑작스레 바람이 불어 외조모가 쓰고 있던 챙 넓은 모자가 날아갔다. 모자는 물 위에 떨어져 느릿느릿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천변에서의 거리는 10여 미터나 되었다.

  마도카는 외조모를 남겨두고 빠른 걸음으로 천변을 걸어갔다. 아무래도 모자를 주워 오려는 것 같았다. 다케오는 그 뒤를 따라가며, 이건 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이쪽이 원하는 대로 마침맞게 모자가 물가로 떠내려올 리는 없었다.

  마도카는 20미터쯤 걸어가더니 멈춰 섰다. 다케오가 깜짝 놀란 것은 그 직후였다. 바람의 방향이 슬쩍 바뀌는가 싶더니 물에 떨어진 모자가 곡선을 그리며 마도카가 멈춰 선 곳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번 풍선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이쪽으로 빨려 드는 것처럼.

  그녀는 모자를 집어 외조모에게로 돌아갔다. 자그마한 몸매의 노부인은 모자를 받아 들더니 고맙다면서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공원을 지나는데 남자애들 몇몇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종이비행기는 모두 제대로 날지 못했다. 우연히 그 종이비행기 하나가 마도카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녀가 그것을 주워 들었을 때, 종이비행기를 날린 남자애가 뛰어왔다.

  마도카는 남자애에게 뭔가 얘기하더니 종이비행기의 모양을 바로잡고 주위를 둘러본 뒤에 휘익 날렸다. 마도카의 손을 떠난 종이비행기는 마치 동력을 얻은 것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완만하게 선회하는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계속 날아가던 종이비행기가 기막힐 만큼 정확하게 마도카와 남자애 앞으로 돌아왔다. 마도카가 그걸 척 잡아 남자애에게 건넸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미처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기색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멍해져 있었다.

  마도카는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다케오와 기리미야도 그 뒤를 따랐다. 도중에 문득 마음에 걸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남자애가 종이비행기를 날려보고 있었다. 힘껏 던졌지만 조금 전처럼은 날지 않았다.

  그 밖에 이런 일도 있었다. 미용실에 갔을 때였다. 마도카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다케오는 미용실 밖에서 기다리며 서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잠깐 사이에 하늘이 점점 어둑어둑해지더니 결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미용실은 주차장이 없어서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다케오도 마도카도 우산이 없었다.

 

  다케오는 미용실로 들어가 대기석에 앉아 있던 기리미야 레이에게 우산을 사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거 없다, 우산을 사도 쓸 일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돌아가셔도 좋다고 말했다.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케오는 제자리로 돌아와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10월로 접어든 참이라 비에 젖으면 상당히 추울 듯한 기온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 빗발이 점점 잦아들더니 이윽고 뚝 그쳤다. 다만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미용실 문이 열리고 마도카가 나온 건 그 직후였다. 머리가 약간 짧아져 있었다.

  뒤를 이어 기리미야 레이가 나왔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른 걸음이었다. 다케오는 서둘러 그녀들 뒤를 따라갔다.

  결국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다케오는 안도하며 조수석에 앉았다. 하지만 그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앞 유리에 빗방울이 다시 투두둑 떨어졌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기세를 올려 죽죽 쏟아졌다. 기리미야 레이는 아직 엔진을 켜지도 않은 참이었다. 그 뒤로 비는 밤까지 계속해서 내렸다.

  모두 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일은 아니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케오는 그런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장본인인 마도카뿐만 아니라 목격자의 한 사람인 기리미야 레이까지 전혀 아무 느낌도 없는 것처럼 태연한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모자를 다시 건져서 좋았다든가 종이비행기가 그렇게 멋지게 날아갈 줄 몰랐다든가 마침 비가 그친 틈에 나와서 다행이라든가, 그때그때 합당한 느낌을 밝히는 게 일반적이 아닌가. 하지만 마도카도 기리미야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마치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식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다케오는 몇 번이나 물어보려다가 아슬아슬한 참에 그 질문을 꾹 참아냈다. 이유는 다시 말할 것도 없다. 마도카에 관한 질문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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