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2ㅡ폴 매카트니

뉘썬2뉘썬2 | 2023.12.04 07:56:44 댓글: 2 조회: 209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4704

2

수미는 버스에 타면서 우리와 친해졋다.고등학교에 미달로 붙엇다고 하도 자랑스럽게 말해서 우리
를 웃게햇다.수미는 언제나 낙천적이고 편안한 얼굴이엿지만 수미의 어떤 상황들이 다른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들곤햇다.

주수미.운명적으로 주꾸미라는 별명이 붙을 수밖에 없는 이름이엿다.교복의 상의도 하의도 잘맞지
않아 성의없이 만든 허수아비를 연상시켯고 송이는 늘 고쳐주고 싶어햇엇다.수미와 수미의 남동생
수호는 할머니네 얹혀사는 처지엿다.

수미네는 전형적인 밀집형 공장식 양계장을 햇다.딱한번 그 양계장안에 들어간적이 잇다.수미네 집
에서는 놀일이 별로 없엇기 때문에 라면에넣을 달걀을 가지러간 그한번이 다엿다.


이제는 동물복지 달걀도 마트에서 쉽게 찾아볼수 잇지만 얼마전까지 누가 닭들의 안위를 생각햇던
.달걀집이니까 달걀이 많겟지하고 들어갓다가 지독히작은 철망에 층층이 갇힌채 부리가 뒤틀리
고 털이반쯤빠진 닭들의 지옥도를 목격하고는 그냥 뒤돌아나왓다.눈멀고 미친닭들의 처참한 냄새와
소리가 문을닫고도 따라나왓다.

결국 수미가 다시 달걀을 가지고왓고 나는 그날 라면도 제대로 먹지못햇다.한동안 달걀도 닭고기도
쳐다보지 않앗던 기억이난다.

수미네 외삼촌은 항상 화가나잇엇다.그런 사람이여서 양계장 상태가 더 유난햇는지도 모른다.세상
이 언제나 자기를 부당하게 대한다고 믿고잇어서 누구와도 싸울준비가 되여잇엇다.

우울하면서도 호전적인 눈빛도 눈빛이지만은 로션이고 뭐고간에 보습제품은 하나도 쓰지않는게 분
명한 거칠고 상태나쁜 피부가 그닭들을 연상시켯다.

동네에서 누가 싸웟다하면 꼭 한쪽은 수미네 삼촌이엿다.나머지 한쪽은 계속 바뀌엿지만 말이다.
미네 어머니와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결혼도 하지않은 젊은 삼촌이엿는데도 수미는 삼촌을 무서워햇
.

수미어머니가 가끔 돌아오는 날이면 분위기가 험해졋다.수미어머니는 짧게 요약할 수 없이 문제적
인 인물로 직업또한 문제적이엿던듯하다.

남의얘기 하는거아니다.여자셋이 모이면 아들자식중 하나는 도둑놈이고 딸자식 하나는 나가요니
.”

엄마의 가르침대로 나는 자세히 알고싶어하지 않앗다.자주오는 해에는 분기별로 한번씩 소원한해
면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수미어머니는 파주에 돌아왓다.수미는 그시기에 화를 내기도하고 기뻐
하기도 햇지만 주로 안절부절못햇다.

어제는 할머니가 엄마뺨을 때려서 엄마가 넘어졋거든.근데 삼촌이 넘어진 엄마목을 눌럿어.”

태여나서 그렇게 끔찍한 말들은 처음 들어봣다.우리집에선 분쟁이라 해봐야 할머니의 삐침정도인
데 그와는 비교도 되지않앗다.게다가 그런말들을 털어놓는 수미의 얼굴이 워낙 심상해서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더알수없엇다.

그거그렇게 익숙해지면 안되는일이야,너 거기서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해,라고 말할만큼 나는 단
단하지 못햇다.안온하고 좁은 세계에서 성장은 유예되고만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없어.하나도 안사랑해도돼.”

수미한테 그렇게말한건 민웅이엿다.마치 그가수 앨범의 모든트랙을 들을필요는 없어.좋아하는 노
래만 들어정도의 말을하듯 가볍게 말햇다.민웅이가 아니면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못햇을거다.
런말을 사람을 구하는말을 아무렇지도 않게하는 민웅이엿다.

여하튼 사랑할 수 없는 가족들을 사랑할필요 없다는 새로운 지침은 수미에게 꽤 충격이엿던 것 같
.어떤 해방감을 느낀 수미는 해방된 모든사랑을 다 민웅이에게 쏟기 시작햇다.부담스러울만도
햇을텐데 민웅이는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앗다.그도그랫을것이 그무렵엔 누구나 민웅이를 사랑
햇다.

민웅이는 아무 방어도 하지않고 누구에게나 곁을쉽게 주엇고 그래서 그곁은 360도 사람들로 가득
찻다.모두의 골든보이엿다.나나 송이조차도 가끔 민웅이랑같이 버스를타고 다닌다는걸 좀 과시하
고싶어질때가 잇엇다.때탄 초록줄 버스가 파주왕자의 마차엿다.


0004.MPEG

찬겸 ㅡ어 민웅이왓다.

민웅 ㅡ늦어서 미안.

찬겸 ㅡ경기는좋고?

민웅 ㅡ늙은이처럼 무슨경기를 물어.

주연 ㅡ태풍피해는 안봣어?심햇잫아.추석전에.

민웅 ㅡ그럴줄알고 사과를 반쯤 조생종으로 바꿧어.이미다땃지.나머지반은 좀 상하긴햇지만 뭐.

나 ㅡ좀 마른것같애.

민웅 ㅡ턱선좀살지?

송이 ㅡ치워.

ㅡㅡ


일찍 어른이되는 남자애들이 잇다.민웅이가 딱그랫다.시끌벅적한 사촌형들을 따라다니다 그렇게
되기도 햇겟지만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틀이잡힌 얼굴이엿다.

입이컷다.입안공간이 남아돌아서 웃으면 양쪽끝에 깊고검은 삼각형 동굴이 생길 정도엿다.온얼굴
로 웃으면 한쪽뺨에만 세로로 길게 보조개가 생겻다.얼굴이 길엇다.눈썹이 처졋고 짝눈이엿다.따져
보면 잘생긴 얼굴이 아닌데 모두 잘생겻다고 생각햇다.

목이굵엇고 일찍이 중저음이란 강력한 무기를 얻엇다.학교대표 높이뛰기 선수엿고 도대회에서 4
을햇다.어릴때부터 과수원에서 일을 도왓기때문에 원래피부색은 알수없으나 늘 타잇엇다.엉덩이
색은 하얗다고 주장하나 확인할길이 없다.

쟨참 균일하게 부자같이 타네.”

나중에 주연이가 말햇을 때 다들 동의햇다.축복받은 존재는 타도 빈티나게 타지않는다.돈주고 태닝
한것처럼 탄다.

초등학교 3학년때엿을거다.민웅이의 사촌형들이 동네애들을 봉고에 몽땅태우고 막 들어서기 시작한
신도시로 나갓다.사촌형들이라 해봐야 고등학생이엿고 무면허엿다.

봉고는 과수원 안에서만 쓰는거여서 번호판도 없엇고 녹슨레일문도 본래 달려잇던게 아니라 어디선
가 짜맞춘것이엿다.열고열고닫을 때 손가락이 날아가고 파상풍까지 걸릴 것 같앗다.

나는 괜히 따라왓다싶어 조마조마햇다.시트아래 스프링이 자꾸 등허리를 찔러왓다.그렇게 많은 애
들이 그렇게 위험하게 신도시까지 갓다왓는데 들키지 않앗다니 아직도 믿을수없다.아마 신도시가
텅 비여잇엇기 때문에 가능햇을것이다.

새로세운 신호등에는 불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앗다.파란비닐이 높은 신호등에 친친 감겨잇엇다.
도 거의없엇다.우리는 개통되지않은 8차선도로 가운데에 봉고를 세우고 우르르 내렷다.이상한 광경
이엿다.익숙하지않은 큰도로가 그렇게 비여잇는 것은 민웅이는 아주 신나잇엇다.그나이 남자애들에
겐 모험이엿을거다.

해가진후 돌아올때는 온통 깊이 땅을파놓은 공사장들 사이로 다른단지보다 먼저들어선 아파트에 반
쯤 불이들어와 잇엇다.좁은길 양편으로는 깊은구덩이인 경우가 허다해서 마치 절벽사이에 길이난것
같앗다.아파트단지는 그길끝의 마왕성과도 같은 모습이엿다.

나중에 입주가 완료되고 나서도 신도시를 생각하면 그 기이하고 황량한 풍경이 떠오른다.신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파주가 기이하고 황량하다고 햇지만 말이다.

민웅이는 파주의 아이돌로 자랏다.답답하면 밤늦게 혼자 막 트랙을 달렷는데 달리고나면 일찍배운
담배를 피웟다.종합해서 건강에 좋앗을지 나빳을지 모르겟다.

당시 유행하던 굵은흰선이 들어간 추리닝을 입고 민웅이가 트랙에 잇는걸 누가보면 여자애들 사이
에서 쫙퍼졋다.열정적인 애들은 포카리스웨트 같은걸 사들고 나갓다고 하는데 아마 민웅인 잘받아
마셧을거다.



파주는 언뜻보이는것과는 달리 질릴정도로 생명력이잇는 땅이다.조경예산이 부족해서 더 그렇겟지
만 초목은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침범하고 건물을 위협한다.비가오면 수천수만마리의 달팽이가 크고
작은 길에 올라와 사람과차에 밟힌다.

으깨지고 눌린 달팽이들은 한자리에 오래머물며 누가 뱉어놓은 가래침 점묘화 같은 꼴이된다.지렁
이는 삼십센티까지 자라 이무기같고 펼쳐놓은 연습장엔 밤새 커다란 나방들이 떨어져잇다.뱀과 들
쥐와 부엉이를 보는게 그리 놀랍지않은 곳이다.

임진강은 나일강도 아니면서 해를걸러 범람햇다.바다의 오색거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검은 흙에서
민웅이가 태여낫다.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가장근사한 형태로 빚어진 작품이엿다.민웅이는 그렇게 파
주의 아도니스요 줄리앙이엿다.

버스에서 우리는 이렇게 앉앗다.기사님 바로뒷자리,찬겸이가 가로대에 영어 단어장이니 수학공식집
따위를 걸치고앉앗다.말도안되는 승차감이여서 눈만더 나빠졋을거다.

나와송이가 앞뒤로 앉앗다.나란히 앉을법도 햇지만 어차피 각자 음악을 들으며 갓으니까 괜찮은게
잇으면 가끔서로 들려주엇다.나는 당시흔햇던 MD플레이어를 썻고 송이는 겨우 열두곡 남짓 들어가
MP3를 썻는데 그런면에서 송이는 확실히 트렌드 세터다.MP3가 대세가 되다니,그땐정말 상상도
못햇다.

스트리밍에 대해서는 더욱 어림도없엇다.MD의 시대가 십년이십년 갈줄알앗다.그래도 송이는 질린
노래를 지우고 새노래를 채우느라 꽤 부지런해야 햇을것이다.

나와송이 뒤쪽으로 민웅이가 창가에 앉앗고 수미가 꼭그옆에 앉앗다.수미는 주로 민웅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탓다.두사람은 까득까득거리며 과자를 먹엇는데 수미는 전날본 TV얘기를 하곤햇다.

여름이면 종종 배탈이난 찬겸이가 버스에서 내렷는데 논밭과 창고사이에서 화장실을 어떻게 찾앗을
까 궁금하면서도 물어보고싶진 않앗다.


0005.MPEG

민웅 너 그집에서 혼자사는거 안무서워?

주연 안쓰는 방은 다 닫아놧으니까 별로.원룸에사는 기분이야.

민웅 그래도 외지잖아.

주연 언제는 안외졋나.항상외졋지.

ㅡㅡ


외지지 않앗던적도 잇엇다.그점을 지적하고 싶엇다.그집이 그리니치천문대처럼 기준이고 중심이엿
던적도 잇다.그렇게 반박하고 싶엇는데 가까스로 멈출수 잇엇다.지금까지의 인생을 집약하는 단어가
가까스로가 아닐까 가까스로 생각한다.

적어도 이십년은 비여잇던 흉가가 허물어지고 새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햇을 때 아무도 그게 사람사
는 집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햇다.물류창고나 작은공장같은게 들어올줄 알앗다.그런데 점점 드러나는
건물의 윤곽이 심상치 않앗다.노출 콘크리트에 거친 외장재,통유리가 섞인집은 요즘에야 흔하지만
그때만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엇다.

저거 대단하지 않아요?”

나는 신이나서 창용오빠와 인영언니한테 물엇다.마침 작업실에서 그집이 잘보엿다.

안도 다다오 삘인데.”

창용오빠는 심드렁햇다.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본적없엇던 나는 꺾이지않고 그집을 계속 궁금해햇
.큰골조가 세워지고 회색의면이 채워지고 내부마감을 하느라 밤늦게까지 불이 들어와잇는 것을
오래오래 쳐다보앗다.

창용오빠는 아예 망원경을 사라고 놀렷다.그러고 잇을때에도 그집안에 들어가볼수 잇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앗다.

이제는 그비슷한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섯고 그집은 전형적인 파주풍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멀리서 보기만해도 가슴가운데가 죈다.낡고 관리되지않아 아름다움을 잃어가도 여
전히 혹은 그래서 더더욱 말이다.

그런면에서 아이언맨은 꽤정확한 셈이다.심장은 가슴한가운데에 잇다.아주약간만 왼쪽인데 심장
이 멎을 때 심실을 자극하기위해 왼가슴을 압박하는것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착각하고만다.

실제 심장은 이렇게나 가운데다.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상실감 때문에 명치가 아프다면 위나 다른
곳이 아픈게 아니다.정말 심장이다.상심이란 말을 매일다시 배우며산다.



그집에 우리또래의 여자애가 이사를왓다.그집 사람들은 떡도 돌리지않고 인사를 돌지도 않앗는데
어찌알앗는지 사람들마다 그얘기를 나한테 전햇다.네또래의 여자애가 왓다고 마치 친구가 되라고
강요하는것만 같앗다.

반백의 신사와 우아한 사모님이 래시 같은 개를 데리고오지 않을까 햇는데 평범한 부부가 내또래
의 여자애를 데리고왓다.어찌되엿든 친해질수 없을거라 여겻지만 그여자애가 2번버스를 탓다.

같은 학년이라는걸 바로알앗다.한학년 위엿다면 버스를 일찍탓을거고 아래엿다면 한타임뒤의 버
스를 탓을 테니까.여자애가 웃지않고 비참한 얼굴을 하고잇엇으므로 호감이갓다.웃어주고싶지 않
을 때 웃지않는 사람이라면 친해질수 잇을것같앗다.주연이는 그렇게 2번버스 맴버가 되엿다.

처음 그집에 들어섯을 때 현관부터 가장안쪽까지 들어선 책꽂이들이 가장큰 충격이엿다.장서의
질같은건 알수없엇으니 어디까지나 시각적인 충격이엿다.나중에 세여보자 대형책꽂이만 열여섯
개엿는데 중후한 원목은 두께가잇고 그중몇에는 유리를 덧대여 책먼지를 막앗다.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의 영어책이 다수엿고 이해하기 어려운 배열로 꽂힌 책들앞에는 종종 이국
적인 장식품들이 놓여잇엇다.아마 인도 물건이엿을것이다.

우리집에는 내키만한 싸구려MDF 책꽂이가 하나잇엇다.네층 여덟칸인 그초라한 아동용책꽂이는
그나마도 비스듬하게 기울어잇엇다.옆면에는 변신요정 스티커와 피자쿠폰 등등이 덕지덕지 붙어
잇엇다.그게 온전한 내책꽂이냐면 그것도 아니엿다.온가족의 책꽂이엿다.

할아버지가 보시던 작은 일본어책들,엄마의 졸업앨범,아빠의 교통지도책,내 문제집과 팬시용품
에 가깝던 십대취향의 책들이 몇.심지어 아빠의 교통지도책은 1986년에 발행된것이다.도로가 많
이 바뀌지 않앗느냐고 내가 버리려하자 아빠가 화를냇던게 지난 대청소때의 일이다.

하지만 왠지 책꽂이가 하나잇는 집에서 자란 사람의 머릿속은 건강할거 같아.”

주연이가 말도안되는 부럼움을 표햇을 때 처음엔는 그게대체 무슨소린가햇고 나중에는 어느정도
일리가 잇다고 생각햇지만 결과적으로 주연이나 나나 머릿속 건강은 무리한 바람이 되여버렷다.

주연이는 책꽂이 사이에서 태여낫고 책꽂이 사이에서 죽을것이다.벗어나기는 애초에 불가능햇고
출판사에 취직한 후로는 더더욱 물건너갓다.증식하는 책들을보면 월급대신 책을받는게 분명햇다.

돌이켜 고백하자면 그집을 처음 방문햇을 때 내가 느낀 가장분명한 감정은 탐욕이엿다.읽을수없
는 책,접해보지못한 문화에대한 탐욕말이다.거기서서 손끝으로 작은코끼리 조각에박힌 원석들을
건드려보며 역류한 위산 같은 따가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잇엇다.

탐욕인줄 알앗다면 덜탐욕스러울수 잇엇을까.그집에 드나든다는 것을 왠지 엄마에게 바로 말할
수없엇던걸 보면 무의식적으로는 알고잇엇던것도 같다.내가 누리지못햇던 것을 나도모르게 간절
히 원햇다는걸 말이다.

짐만 많은거지 부자는 야니야.진짜 부자엿으면 파주로 왓겟어?인도가기전에 원래살던 동네로 갓
겟지.재개발이 무산된 코딱지만한 서울아파트에 그짐들을 다끌고 도로 못들어가니까 파주로 온
거야.대단한게 아니라니까.”

주연이는 핵심을 이해하지못해 무신경햇다.나는그저 부유함에 감탄한게 아니엿다.현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그순간의 갈급으로부터 벗어나지못한 나로서는 제대로 설명할 기회가
없엇다.



그저귀찮은 숙제를 같이하려고 간것이엿다.할일이 없어서 조금일찍갓고 환기중인지 창문과 현관
이 모두 열려잇엇다.파주 사람들은 도둑도 귀찮아서 파주까지 오지않는다는 이상한 믿음이 잇엇
고 그믿음은 종종 배신당햇다.문단속에 대해 얘기해줘야지 하며 소리가나는 방으로 향햇다.

바닥의 진동을 따라갓더니 역시나 내가 다다른방은 홈시어터엿다.책꽂이보다 조금 폭이좁은 선
반에는 비디오와 DVD와 테이프와 CD가 꽂혀잇엇다.그렇게 폭넓은 매체를 애용하던때는 이제다
시 오지않을것 같다.

다른창문들은 다 열려잇엇지만 그방은 아니엿다.암막커튼까지 드리워져잇어 갑자기 한낮에서
밤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앗다.벽면을향한 프로젝터 빛속에서 먼지가 불규칙하게 움직엿다.
국인 체구에는 별로 어울리지않는 커다란 소파가 보엿고 주연이의 머리꼭대기가 올라와잇엇다.

주연이의 머리색은 옅엇다.원래 그머리색인지 해볕에 바랜것인지 색소가빠진 머리색이엿다.놀래
주려고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옆에 털썩앉아 한쪽다리를 걔무릎에 올렷다.곁에서 숨삼키는 소리
가나서 웃으며 쳐다보니 주연이가 아니엿다.

남자애엿다.어지간히 놀랏는지 앉은자리에서 십오센티쯤 튀여올랏다.얼굴의 모든구멍이 다 열린
것같은 표정이엿다.아마 함부로 걸친다리를 수습하던 나도 비슷한 얼굴이엿을것이다.놀랍도록
닮은걸보니 형제가 분명햇는데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앗을까.그순간에도 원망스러웟다.

그러다 인영언니와의 대화가 떠올랏다.언니가 이집 발코니에 남자애가 서잇는걸 봣다햇을 때 그
거 내친구라고 애가 삐죽해서 그렇다고 말햇던것이다.

“..주연이 캐롤라인 가서 아직 안왓는데.”

남자애가 약간 정신을 차렷는지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줫다.캐롤라인은 취향좋은 사장님이 운영
하던 일산시내의 음반사엿다.주연이는 사장님에게 인정받는 몇안되는 고등학생이엿다.사장님은
음악 좀듣는다싶은 애들에게 특별한 음반을 권해주기로 유명햇다.

주연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앗던듯 싶지만 캐롤라인 사장님과 친하다는건 애들사이에서 미묘하게
명예로운 일이엿다.거기서 늦게 출발한 모양이엿다.엉거주춤 크기만하고 딱딱한 소파에서 일어
서려는데 침착함을 찾은 남자애가 말햇다.

기다리면서 같이봐도돼.”

남자애의 목소리는 듣고잇으니 신시사이저를 연상시켯다.갈라지는 전자음 같으면서도 별로 거 슬
리지는 않앗다.

주완이에대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야기하게 되면 어떻게 생겻는지 설명좀 해보라고 사람들
은 요구한다.그럼 나는 폴 매카트니와 로저 테일러를 섞어놓은 것 같은 외모엿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비틀스 팬은 비틀스 팬대로 퀸팬은 퀸팬대로 독특한 미남이엿겟네 하고 반응한다.두그룹
의 팬들이 들으면 기가막힐 말이지만 나는사실 주완이를 만낫을 당시엔 폴 매카트니도 로저 테일
러도 알지못햇다.

그때 알앗더라면 닮앗다고 말해줫을텐데 그러면 아마도 기뻐햇을텐데 말이다.앞세대의 음악을
자연스레 함께듣는 행운은 생각보다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그것은 국세청 모르게 젊은 부자들이
물려받는 유산과도 같다.

둘중에 어느쪽이냐면 그래도 폴 매카트니를 좀더 닮앗다.비틀스를 잘알지 못햇으므로 매카트니
는 내 관심사가 아니엿다.가끔 해외연예가십에 뜨는 결혼을 자꾸하는 영국할아버지 정도엿달까.
음악으로 먼저 만나지 못햇다.내가 폴 매카트니를 만난건 첫 배우자인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집
에서엿다.

그리고 그사진집을 꺼내든건 멀고먼 서점의 높고높은 선반에서엿다.


0006.MPEG

주연 ㅡ가끔 기분이 염소같아.

찬겸 ㅡ할로겐 원소 Cl을 말하는거야 아님 음매애애 염소를 말하는거야?

주연 ㅡ그거 아무래도 음매쪽이 먼저 나오는게 보통아냐?

찬겸 ㅡ실생활에서 더흔히 접하고 사용하는건 Cl쪽이지.일년에 동물염소 몇번봐?클로린은 의약
,폭발물,산화제,표백제,소독제로도 쓰이고..

송이 ㅡ왜 기분이 염소같아?

주연 ㅡ다들 착한양처럼 순하고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운데 나만 그사이에 낀 염소처럼 고집을
부리고 이것저것 결정하려들어.

민웅 ㅡ그런거라면 넌 흑염소네.(웃음)

나 ㅡ뿔도 뾰족할거야.

ㅡㅡ


모두가 여행이 나에게 좋을거라고 햇다.전문가이든 아니든 나를아끼든 아끼지않든 모두가 말이
.따뜻한 권고부터 냉철한 지시까지를 오가며 여행을 가라고햇다.불과 몇해전인데도 지금보다
다른사람말을 잘 들엇는지 나는정말 여행을갓다.대개의 날들은 그사람들이 다틀린 것 같앗고
어떤날은 수긍할만한 점을 찾기도햇다.

송이는 나에게 유럽에 가자고햇다.이미계획을 다짜두엇으니 몸만 오면된다고 햇다.송이의 말을
믿엇다.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계획과 송이의 계획은 개념이 달랏다.그계획이란게 비행기표와
유레일패스 달랑두개인줄 알앗더라면 따라가지 않앗을것이다.

게다가 송이가 파리에서 만난 독일남자애랑 사랑에 빠지는바람에 남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가
던 여름 우리는 얼떨결에 독일북부 해안에 도착해잇엇다.

독일에 바다가잇어?”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많이들 묻는다.잇다.심지어 아름답다.북쪽 바다만이 가질수잇는 아름다움
이다.파주의 아름다움과도 일맥상통하는 그런유의 아름다움 말이다.

크리스티안이 송이를 머리위로 안아들엇다 바다에 던질 때 나는 조금걷거나 서점에갓다.숙소는
오래잇을곳이 못되엿기 때문에 밖에 나오긴 나와야햇다.서점창가에는 긴의자들이 잇어서 사람
들이 잠들어잇엇다.배에 책이 얹혀잇는 사람이 대부분이엿지만 아예 책이없는 경우도 많앗다.

서점에 자러오는건지 자도 아무도 깨우지 않는지 묻고싶엇지만 독일어를 할줄몰랏다.나도 의자
를 하나 차지하고앉아 수입되면 값이 두배로 뛰는 아트서적들을 보앗다.기원전부터 지난봄까지
의 작품들이 연속적이엿다가 불연속적이엿다가 하며 꽂혀잇엇다.

소도시의 서점인걸 감안하면 충분히 연속적이엿다.언어의 한계 때문에 다른책은 볼수없엇다.
하루종일 그런책들을 보다가 감각이 지나치게 자극받앗다 싶으면 달력코너로 옮겨갓다.해가
바뀌려면 한참먼 한여름인데도 거의한층이 달력코너엿다.개나고양이 위주엿지만 그밖에도 웬
만큼 귀여운 동물들은 달력을 한권씩 다찍은 모양이엿다.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집은 떠나기전날 발견햇다.마지막에 펼친 책이여서 단지 그순서덕분에
내안어떤 중심부에 생생한 지문을 남겻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사진들은 특별햇다.폴 매카
트니의 팬이 아니엿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그와사랑에 빠졋다.

음악을 모르면서 폴 매카트니에게 반한다는것은 얼마나 바보 같은 이야기인가.주완이와 닮아
서만도 아니엿다.

익살스러운 표지와 애니 리버비츠의 발문에이어 1960년대의 에센스를담은 사진들까지는 가
벼운 감탄으로 보앗다.린다 매카트니는 롤링스톤의 커버사진을 찍은 최초의 여성사진작가엿
고 믹 재거와 재니스 조플린과 지미 헨드릭스와 어리사 프랭클린과 밥 딜런과 사이먼 앤드 가
펑클이 나와도 훌륭하다는 감상이 들뿐이엿다.

그러다가 비틀스가 나오면서 개인적이 되엿다.개인적이 되는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
할 정도로 개인적인 사진이엿다.

폴과린다 두사람은 연결되여잇엇다.눈에서 눈으로 사슬같은게 매달리지 않앗나싶게 이어져
잇엇다.사랑스럽다면 사랑스럽고 끔찍하다면 끔찍할 정도의 연결선이엿다.폴 매카트니가 카
메라 이쪽의 린다를 볼때에 지금의 우리까지 덜컹할 정도라면 실제로는 더햇을것이다.

린다와폴이 아직 사랑에 빠지기전의 사진들만봐도 뒤의일들을 예감할수밖에없다.렌즈도 존
재하지않고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찍은지 삼십년 사십년이 된 사진들인데도 그모든 감정들이 훼손되지 않앗다.

어두운곳에 잇는폴,빛을 받고잇는 폴,맴버들과 잇는폴,혼자잇는 폴,무대위의 폴,휴가지의 폴,
턱수염을 기른폴,메이크업을한 폴,모자를쓴 폴,거품에 잠긴폴,가까운 폴,원경의 폴,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들,두꺼운 스웨터와 털북숭이 애완동물들.

뒤늦게 이해햇다.린다 매카트니가 1998년 내가 주완이를 만나기 일년전에 죽고나서 폴 매카
트니가 그녀를닮은 여자들과 거듭 결혼해야햇던 이유를.현명한 결정이 아니엿음에도 자녀들
이 폴 매카트니를 계속 지지햇던 이유를.그들이 세계에 남기고잇는 흔적들을.

두사람과 같은관계는 일생을 지배한다.그런사랑이 끝나면 끝나도 끝난게 아니며 다시는 돌아
갈수없다.

그리하여 기이한 순서로 나는 비틀스를 듣고 솔로앨범을 듣고 윙스를 들엇다.’롱 헤어드 레
이디를 들을 때 린다 매카트니의 목소리가 들렷다.

추천 (1) 선물 (0명)
이젠 너의뒤에서 널 안아주고싶어
너의모든걸 내가 지켜줄께

넌 혼자가아냐. 내손을잡아
함께잇을께
IP: ♡.169.♡.51
단차 (♡.252.♡.103) - 2023/12/04 10:28:47

이번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어요. 제가 중2때 mp3를 처음 사서 음악 50곡 넣고 계속 반복해서 듣던 일이 떠오르네요. 너무 들어서 곡 순서까지 다 외울정도였죠.
그리고 dvd대여점에 가서 씨디 빌려다가 친구 집에서 공포영화 같이 보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3/12/05 20:11:58

나는 학교때 록음테프로 1세대 아이돌노래를 마스터햇죠.졸업후 mp3는 많이안듣고
컴퓨터 사니까 컴퓨터로 노래.드라마를 듣고보고 핸드폰 산담에는 폰으로 노래들엇
고 dvd기계 산담에는 디비디로 음악도듣고 꽝판사다가 비디오를 밧지요.

우리아저씨는 cd를 많이들엇어요.밤에잘때면 씨디들으며 잠들어서 이튿날에 눈뜨면
항상 씨디를 깔구잣죠.나는 눈뜨자마자 아저씨 귀에잇는 이어폰부터 빼주고요.

나중에는 티비랑 인터넷 연결해서 커팅에서 티비켜놓구 健美操를 추고 티비로 영화
두보구 음악두 종류별로 선택해서 들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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