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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파티는 23일에 열렷다.아무도
종교적이진 않앗지만 24일과 25일은 가족들과 송이의
경우엔
남자친구와 잇으려햇기 때문이다.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별로 종교적이진 않다.어쩌면 그런
시들시들한 부분이 우리를 한묶음으로 묶엇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조금쯤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고잇는 주연이엿지만 의외로 파티는 굉장히 좋아해서 아주전
부터 의욕적으로 준비에
들어갓다.일찍 준비한 덕분에 그렇게 맛잇는 햄을 먹을수 잇엇다.냉동햄밖
에
몰랏을 때 동굴에 매달아말린 프로슈토를 먹은건 충격이엿다.그얇고 붉은 조각을 동네빵집에서
사온 바게트에
올렷더니 잊을 수 없는 맛이낫다.
“멜론을 못삿네.잇긴잇엇는데
작고 맛없어 보엿거든.”
막상 하주들은 빵이랑만 먹기좀 아쉬워햇지만 나머지들은 한동안 말없이 프로슈토를 먹엇다.지금
은 백화점 지하매장에도 잇고 웬만한 음식점에서 애피타이저로 흔히 나오지만 전엔 가끔 그신기한
맛이 입안을
맴돌때가 잇엇다.피맛,흉터맛,소금과 죽음의맛,그렇지만 기막힌맛.
그리고 아보카도도 태여나서 처음으로 먹어봣다.주완이가 내귓가에 아보카도를
딸랑딸랑 흔들엇다.
이유를 몰라서 쳐다보니 씨가 흔들리는 소리가 나야 다익은거라고 햇다.다시들어보니 그런소리가
나는 것도 같앗ㄷㅏ.막상 깎앗을때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아서 그랫는지 과일인지 뭔지모를 맛이라
고 생각햇다.과카몰레를 만드니까 그럴듯해졋다.파스타와 몇가지 메인요리는 금방 떨어졋으므로 그
다음부터는 나초뿐이엿다.과카몰레가
없엇으면 나초에 금방 질렷을것이다.
배가차니 친구들이 얼마나 신경써서 입고왓는지가 눈에들어왓다.드레스
코드는 파티초심자들을 위
한 빨강과 초록이엿다.송이는 아마도 직접떳을 빨간바탕에 초록도트무늬 목도리를
하고잇엇는데 한
번 휘감겨내려온 목도리 양끝에달린 주머니에 손을넣고 앉은폼이 귀여웟다.민웅이는 교복셔츠에다
분명 아버지것일듯한 오래된 초록넥타이를 매고 빨간보석이 달린 진한금색 넥타이핀을 달앗다.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을 즐기는게 민웅이다웟다.
그날만은 민웅이와 수미사이도 나아보여서 민웅이가 수미의 양갈래머리에
한쪽씩매단 초록과 빨강
의 털방울을 칭찬햇다.주연이는 작은진주들이 수놓인 빨간니트와 초록 플레어스커트를
입고잇엇고
나는 빨강과 초록이 뒤섞인 체크무늬 플리츠스커트에 무릎에 눈사람이 그려진 스타킹을 신엇다.한
쪽구석에
수줍게 앉아잇던 주완이는 늘입던 회색티셔츠에 나와비슷한 체크무늬의 나비넥타이를 맨
목에 하고잇엇다.
지금
생각하면 맨살에 나비텍타이라니 다소위험한 느낌인데,당시엔 체크무늬가 의도하지않은 커플
룩같아서 기뻣다.친구들은 나와주완이 사이를 몰랏고 나도 말할생각이 없엇지만 한편으로는 알아
채주길 바바랏던 것도같다.
주완이는 나와친구들이 얘기하고 툭툭거리는걸 조용히 보고 잇엇다.ㅊㅓ음엔
불편해하나 싶어 표정
을 살폇는데 아무래도 웃고잇는듯햇다.그런 미세한 표정을 난늘 잡아낼수 잇엇다.
“한살 많다면서요?형이네요.”
민웅이가 넉살좋게 말을걸엇고 주완이는 형이라고 부르지말라고 햇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민웅이는
그날내내 형형 해댓다.찬겸이도 어느새 주완이 곁에앉아서 무려 영어듣기 평가에대해 이야기를 시작
햇다.찬겸이는
원래 귀가나빠서 한국말도 잘못알아들을 때가 많은데 학교의 스피커는 형편없고 애들
도자꾸 바스락거려서 놓치고만다는 것이엿다.
주완이가 거기에 어떤 해결책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엿지만 나는 주완이가 알아서 그둘사이를 헤쳐나
오도록 내버려두고
편하게 기대앉앗다.
프로젝터를 식당쪽으로 옮겨와서 흰벽에 ‘라비린스’를 틀엇다.따지고보면 크리스마스랑은 별로 상 관
없는 영화엿는데 어째서
그영화엿을까싶다.어린동생을 고블린킹에게 납치당한 십대소녀가 미로와
갖은 난관을 통과해나가는 이야기엿다.그런데 고블린킹의 인상이 보통이 아니엿다.
“누구야 저거?”
“..데이비드 보위?”
내가묻자 주연이가 약간 당황해하며 대답햇다.알아야하는 사람인가 싶엇지만
나는 개의치않고 넘어
갓다.유명한 가수인데 영화의 음악도 보위가 담당햇다고 주완이가 얼른 설명해줫다.
멋진망토를 걸치고 대단한 헤어스타일을 한 데이비드 보위가 직접 고블린킹으로 나와 수십수백마리
의 고블린인형들과
노래를 불럿다.어쩜그렇게 잘생겻는지 나는 종종 영화에 집중하지않는 친구들을
거슬려하며 ㄷㅔ이비드보위의
얼굴을 바라보앗다.
저런얼굴이 언젠가 망가진다면 슬플거라 생각햇는데 기우도 그런기우가 없엇다.내가 주인공이엿다
면 돌아오지않고 그멋진 세트에서 데이비드보위와 살아버렷을거다.올바른
결정은 아니엿겟지만..그
때만큼은 주완이도 깜빡 까먹엇다.
“마음에들어?”
나중에 주완이가 영화에대해 물어왓을 때 데이비드보위를 입 헤벌리고 바라보는 날 주완이가 보고잇
엇다니 약간 부끄러워졋다.
얼마전에 갑자기 ‘라비린스’의
미술이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기괴할대로 기괴햇던 그 고블
린인형들을 만든사람이 세서미 스트리트의 짐헨슨이엿단걸 알고 한참을 웃엇다.어쩐지 기괴하면서도
유쾌하더라니.
“인도영화는 없어?인도
살다왓다며?”
수미가 조르는 바람에 우리는 지금도 구해보기힘든 발리우드 영화들을 볼수잇엇다.영어자막을
따라
가기는 어려워서 주로 뮤직비디오 같은 부분만 넘겨가며 보다가 나중엔 그냥 배경으로 틀어두엇지만
분위기가 흥겨워졋다.송이가 여주인공들의 사리를 엄청탐냇다.
밤이깊자 먼지쌓인 선반에서 보드게임 상자들을 내렷다.단순한 게임부터
머리를 좀써야하는 게임까
지 두루잇엇다.영어로된 설명서는 하주남매가 얼마나 열심히 봣는지 이미 나달나달햇는데
슬쩍 들춰
보더니 재빠르게 설명해줫다.한꺼번에 한게임을 하기에는 사람이 많앗으므로 여러판으로 나누엇다.
친구들이 식충식물위로 사다리를타고 지나가고 고대유적을 발견하고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투르드모
나코에서 레이싱을 하는동안
나와주완이는 슬그머니 이인용게임으로 빠졋다.정말 슬그머니엿는지도
모르겟다.우리딴에는 슬그머니 라고 생각햇다.
‘배틀십’을 가장오래햇다.좌표판위 상대방의 배를 추리해서 침몰시키는 게임이엿다.우리는 기가막혓
다.마치서로의 머릿속을 들여다볼수 잇는것처럼 모형배들에 가공의 포탄을 적중시켯다.회를
거듭할
수록 약간 무서울정도로 적중률이 높아졋다.그런유의 심리게임을 몇개더 하다보니 그이상 하면 안쪽
을
다 들켜버릴까봐 그만하고 싶어졋다.촌스럽고 뻔한내안을 보여주고 싶지않앗다.
몇 년전에 ‘배틀십’을
모티프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졋는데 스토리 자체는 단순햇지만 게임의 느낌
을 잘 가져왓다고 생각햇다.보드게임이
영화가 되다니 처음게임을 만든 사람들이 봣으면 굉장히 기
뻐햇을텐데 1931년의 게임이니 저승에서나 그럴수
잇엇을것이다.그런데 그영화가 연말에 그해최악
의 영화후보에 오르고 배역을 맡은 리한나가 최악의 여우조연상
후보에 거명되는 바람에 좋아햇던
관객으로서 좀속상햇다.
원작게임을 사랑한 사람들은 그영화도 귀엽게 느꼇을텐데
그렇게까지 단점만보고 지적하다니 영화
계는 비정하다.멀리 갈것도없다.내가
작업한 영화들중에서도 호평을 받은건 고작 한두편에 불과하다.
23일은 목요일이엿다.24일은
방학식이엿다.한시간 늦게가도 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밤을새웟다.
가벼운
디저트와인과 맥주몇캔을 마시고나서 집에가기전 가글을 열심히하며 들키지 않으려고 애썻
다.
주연이가 짝짝 박수를 두번치고 파티가 끝낫음을 알렷다.송이가 얼른일어나
굉장한 균형감각을 뽐
내며 한꺼번에 그릇다섯개를 치웟다.수미가 분리배출할 것들을 나누엇고 민웅이가 의자를
옮겻다.
주연이가 부엌을 찬겸이가 거실을 마무리할 동안 나와주완이는 걸레질을햇다.
“영화보러갈래?내일?”
엎드린채 열심히 걸레질을하며 주완이에게 물엇다.내나름으로는 회심의
데이트신청이엿다.무릎이
시렷는데 그집의 난방문제엿는지 스타킹의 눈사람모양 때문이엿는지 모르겟다.주완이의 대답이 느
렷으므로 내걸레질은 점점 빨라졋다.
“응.”
고개를 돌리니 주완이의 얼굴이 바로옆이엿다.
0029.MPEG
다른조명은 켜져잇지않고 TV의빛만 주연이의 얼굴위에 어린다.
주연 ㅡ내생각에 인간이란 종은 아주가끔을 빼곤 좀처럼 아름답지않아.아름다운 생물이아냐.
나 ㅡㅡ그럼언제가 그가끔이야?
주연 ㅡ플래시몹을 할 때?아주성공적인 플래시몹을 할때정도만.
카메라를들고 주연이의 옆자리로 이동.TV에는 어딘가 다른나라의 사람들이
쇼핑몰과 공연장의 중
간쯤 되는곳에서 춤을추기 시작한다.TV위로 검은선이 반복해서 지나간다.
나 ㅡㅡ(내래이션)주연이가 ‘내생각에’하고 한말을 다모으면 세상에서 가장 비관적인 그러나 핵심
적진실에
극도로 근접한 잠언집이 나올것같다.
ㅡㅡ
우리중에 대학생활에 제일잘 적응할 사람은 주연이라고들 여겻다.가감없는
솔직한 태도가 고등학
생일때도 대학생인것만 같앗으니까.
가서마음껏 사회를 비판하고 토론을하고 우리가 채워주지 못햇던 부분을 채우며 우리를 잊겟지.각
오를 햇엇다.그런데 예상과달리 여름이 오기도전에 주연이는 과생활을
거의접엇다.
“왜?사람들이 별로야?”
“응 별로야.”
선배들이 후배들을 찍어누르는 분위기가 영맞지않앗던 모양이다.폭음후엔
꼭 한놈이 다른한놈을
때리는것도 눈살찌푸리게 햇고 여성주의 세미나가 굴러가는 와중에 추행사건과 강간미수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것도 환멸감을 더햇다.강압적이고 교조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공기에 그대로 젖어들
기엔 주연이는 이미 ㄴㅓ무많은걸 읽은다음이엿다.
“소수자와 약자의 곁에서겟다는 기치에는 완전히 동의하는데 왜 함께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안생기지?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폭력적이면 어쩌라는거야?가끔싫어하는 기성정치
인의 표정이 선배들의 얼굴위로 지나갈때가 잇어.이사람
결국 그런게 되겟구나 싶어지는거지.도
저히 옆에 잇고싶지가않아.이모든걸
한마디로 표현할수 잇을것같은데 뭘까?”
주연이가 답을 찾을때까지 기다리며 고개가 이리저리 기우는걸 보고잇엇다.
“무엇보다 개인에대한 이해가없어.그래그거야.”
어쩌면 주연이는 학생운동이나 학과자체보다는 그다지 진화하지않은 인간본성에 넌덜머리가 낫던
걸지도 모른다.도무지 참여적이거나 협조적이지 않앗던 주연이에겐 곧 ‘부르주아’라는 딱지가 붙엇
다.주연이가 내심 ‘반동분자’역할을 즐겻을거라는게 나머지 친구들의 추측이엿다.
“뭔가 좀 잘못 걸린것같아.안맞는
사람들틈에 낀것같아.”
비틀린 마음이지만 나는기뻣다.대학교 사람들에게 주연이를 빼앗길거라
걱정햇는데 여전히 거의
맨날 만날수 잇엇으니까.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신촌이나 일산쯤에 엎어져서 놀앗다.호수공
원은 인공호수이긴 해도 굵은비가 쏟아질때면 장관이엿다.그런날은
우리둘밖에 없엇고 우산위로
비의충격을 느끼며 공격받고잇는 호수의 표면을 오래오래 바라보앗다.
그물의색감,냄새,불법방생한 물고기들이 몸을사리는 기척이 주연이와 내피부로 스며들엇다.불법
방생은 큰문제엿다.물고기도 물고기지만 황소개구리떼가 한때 인공호수를
가득메워서 시차원에
서 황소개구리 축제를열어 낚시를하고 구워먹기까지 햇다.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충격이엿
다.
날씨가 좋은날엔 사람들이 온통 돗자리를들고 나왓으므로 차라리 쇼핑몰쪽이 한적햇다.일산인구
에 비해 너무많은 쇼핑몰이 들어선탓이엿다.여러가지 비리에대한
의혹과 소문들위로 이상가가 떳
다 저상가가 떳다햇다.스티커사진기와 아케이드로 웅성거리던 쇼핑몰 높은층들이
유령도시처럼
비여가는 것을 구경햇다.도시가 스테레오 액정화면의 막대그래프처럼 높낮이를 달리하는걸 지켜
보앗다.
노후한 모델하우스가 큰화제로 전소햇고 끝내 분양이안된 상가의 부실한 외장재가 태풍에 도로
를 덮쳣다.이식된 어린가로수들이 계속 죽엇으므로 어디선가 나무들이 끝없이 실려왓다.젖은담
요로
뿌리를 감싸고 트럭뒤에 누운 나무들은 잠든아이들 같앗다.
주연이는 멀고먼 통학길을 핑계삼아 가는둥마는둥 학교를 다니다가 복수전공과 부전공을 밥먹듯
바꿧다.서양사를 햇다가 사회학을 햇다가 영문학을 햇다.프랑스 문화원에 방학내내
나가더니 그
다음 방학엔 독일문화원으로 방향을 틀엇고 스페인어 학원도 오래다녓다.라틴어 계통이야 그렇
다치고
일어와 중국어자격증을 땃을땐 친구들도 화들짝햇다.
그도그럴것이 주연이가 통과한 교육과정엔 한문관련 부분이
뻥 뚫려잇엇기 때문이다.언젠가 어
떤 남자애가 주연이에게 “너는어쩜
그런 섬섬옥수로 공부를하니?”하고 추파를 던졋을 때 “그게무
슨
기계야?”라고 되물은적도 잇엇다.그런애가 어떻게 일어와 중국어를
얘도보통이 아니긴 아니
구나 싶엇다.
이 갈지자걸음을 보통회사에서 받아들이긴 힘들엇을것이다.난다긴다하던
주연이엿지만 서른군
데쯤 면접에서 떨어졋다.우리의 주연이가 면접이라고 또 굉장히 화사한 얼굴을 하지는
않앗을것
이고 결국 출판계행이 결정되엿다.출판계는 갈지자걸음을 ‘풍부한소양’으로 쳐주엇고 대신 엄청
난 박봉을 지급햇다.
“초봉이 천팔백이라고?”
전화너머로 인도네시아에 계신 주연이 아버지가 펄펄 뛰셧다고 햇지만 다행히 주연이는 연봉협
상 때마다 평균보다 높은
인상률을 적용받앗다.중간중간 착취하다시피하는 형편없는 회사들을 만
낫을때는 과감하게 이직을햇다.잘풀린 편이엿지만 그것도 모두에게 가능한일은 아니란걸 확실하
게 알고잇엇다.
“이직도 당장 돌봐야할 사람이없는 아픈가족이 없는 부모가 자식보단
부자인 나 같은 애나 마음
대로 할수잇는건데 그런건 변하잖아.대개는 아파지고 가난해지잖아.어떻게 요행을 믿고살겟어.”
십년이넘게 계속 천팔백을 받는 편집자들도잇고 근로기준법은 거의 지켜지지 않앗다.화장실에
갈수잇는 횟수가 정해져 잇기도하고 탕비실문을 아침에만열고 잠가버리는 곳도 드물지않앗다.
저자에게 받은
작은선물같은 것을 무조건 사장에게 바쳐야하거나 사이비 명상같은 것을 강요받
ㄱㅣ도하고 사장에게 정신적문제가 생겨 직원들이 책과 비품을 훔쳐간다며
책상검사나 가방검
사를 하는 회사까지 잇엇다.그러니까 21세기에도
자칫 잘못하면 폭압의 왕국에 살게되여버리는
게 현실이엿다.
“진보적인 사람들도 가짜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에겐 누군가 편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절
반쯤 불순물이 섞여든다해도 조직이 필요하고.”
결벽증적인 개인주의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그런가보다 친구들은 수긍햇다.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하던애가 껍데기까지 일단안고 가자고 말하게 된 것이 성장일지 타협일지는 아
무도 확신하지 못햇지만말이다.
“너 그래도 자리 잘잡앗다.대단해.좋아하는일 하잖아.그렇게 책을 읽어대더니만.”
“모르겟어.우리업계에서 자리를 잘잡으려면 사기꾼이여야 해.”
“그럴리가.”
“기본교정교열도 못보고 저자관리도 못하는 낙하산이 허세만으로 높은자리를
꿰차는일이 허다
해.막상 진짜 일하는 사람들은 매출 다올리고도 욕만먹고.”
“그런건 어디나 그렇지 않을까?”
“가까이가서 귀에다 소곤거려주고싶어.”
“뭐라고?”
“너같은건 가짜라고.”
“으악.”
“오래오래 살아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 몰락하는걸 보고 죽고싶다.”
“지독한말을 잘도하네.”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성질좀 죽이라는데 그런사람들이랑은 말이안통해.
성질죽이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걸 왜몰라.”
이상한 일이다.나는 주연이가 지독한 말들을 할때가 좋앗다.나에겐 예방주사 같은 말들이엿다.
가끔은 예방주사 정도에서 그치지않고
세상에대한 물렁한 기대들을 외과적수술로 제거해주는
느낌도 들엇다.
그러나 나처럼 모두 주연이를 좋아한건 아니엿기에 주연이는 업무능력과는 상관없이 큰팀을 맡
지못햇고 대개는 팀원없는
팀장에 그쳣다.
0030.MPEG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유진의 얼굴.한 화장품회사의 프로모션으로
발효에센스의 일
반인 홍보대사가 된 모양이다.여전히 모공없는 피부에 광택이 어려잇다.
나 ㅡ(내래이션)외국계 은행에 다니는구나.괄호안의 나이는 우리와 같지만 어떤경로로
지금에
이르럿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않는다.수월한 시간이엿길 바란다.민웅이가
이광고를 봣을
까?어째선지 못봣거나 봐도 못알아보지 않앗을까싶다.
시간을 달리해 다시가서 광포판을 찍는다.얼굴뒤쪽에서 빛이 들어오니
한층 그럴듯해 보인다.정
류장옆에 세워진 LED막대조명에 커다란
나방들이 들끓고잇다.
ㅡㅡ
지금은 일산에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대규모로 들어선데다 시설도 영화마니아들을 불러들
일만큼 좋아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해여름까지 우리가 다니던 영화관은 한군데엿다.후에
3관으로 늘긴햇지만 당시까지 단관이엿던 일산최초의 영화관 나운시네마엿다.멀티플렉스란 말이
어색햇고 영화를 고르는게 아니라 그저 다니는 극장이 잇던때엿다.
1999년 9월에 일산
롯데백화점에 전국최초로 롯데시네마가 생겨 학교애들은 좋아라 그쪽으로 몰
렷다.방학식날이엿으니 더그쪽으로
몰릴게 뻔햇다.아무래도 친구들과 마주치면 주완이가 낯을 가
릴것같아 나운시네마에 가서 표를끊엇다.일말의 충성심도 잇긴햇다.방학식이 끝나고 바로갓으니
열한시도 넘기지않는
시간이엿다.
그러고나서 다시파주로 주완이를 데리러갓다.교복도 갈아입을 셈이엿지만
한시간 거리의 파주로
돌아간건 합리적인 동선계산은 아니엿다.주완이가 그냥 일산으로 오는게 더빨랏겟지만
어째선지
나는 자연스럽게 주완이를 데리러갓다.혼자 멀리나가는 모습을 본적이 없엇기에 무리시키고 싶지
않앗다.그랫다가는 데이트가 무산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잇엇을것이다.
집에가서 폭풍처럼 옷을갈아입고 언제삿는지 기억도 나지않는 학생용 파우더를 콧등에 두드렷다.
애초에 질이좋지않은 몇천원짜리 파우더여서 까만얼굴이 동동떳고 어떻게해도 갑자기 예뻐지진
않아 신경질을 내며 머리를
눌러빗엇다.급하게 주완이네 쪽으로 달려가니 이층의 발코니덱에서
주완이가 기다리고잇엇다.평소의 회색추리닝이 아니엿다.미묘하게 녹색이 묻어나는 청바지에 피
코트를
입고잇엇다.
나는 그때 피코트란 말을 몰랏지만 그렇게생긴 코트가 주완이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감탄햇
엇다.흔한 디자인의 코트엿는데 주완이가 입으니 달랏다.조그만 생수병목을
세번째 손ㄱㅏ락과
네번째 손가락에 걸친채 들고잇엇는데 그렇게 느슨하고 멋지게 물병을 들수잇구나 싶엇다.나를
발견하자 주완이는 다른손에 잇던 무언가를 입에넣고 생수로 넘겻다.웃으면서 크지만 섬세한 손
을흔들엇다.
“아파?”
“알레르기 약.콧물이나서.”
그렇구나.하주에게도 콧물이 잇구나.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것처럼 되풀이햇다.주완이가 현
관으로 내려왓고 모처럼 온가족이 배웅하러 나왓다.눈가가 언제나 피곤해보이던 하주네 어머니
와 그때가 거의처음 제대로 본것이엿던 아버지,이미 방학모드로 완전히 돌입한 주연이가 빼꼼
내다밧다.
“뭐봐?”
주연이가 물엇다.
“토이스토리2.”
내가 대답햇다.
“여고괴담2 안보고?”
“응 그건 롯데에서 해.”
“나운 가는구나.”
“응.”
“너도갈래?”
주연이가 어이없어하며 웃어서 민망해졋다.아버지쪽이 지갑에서 몇만원인가를
꺼내여 주완이
에게 건넷다.주완이는 잃어버리기 딱좋게 바지주머니에 돈을 밀어넣엇고 가족들은 다시집안으
로
들어갓다.
“갈까.”
집에서 좀 멀어지자 주완이가 손을잡앗다.뛰여온 내손은 뜨거웟고 집안에잇던
주완이손은 차가
웟다.버스를 기다리는동안 결국 두사람의 손이다 미지근해졋다.이게 열전도구나 나는 슬기로운
생활책의 실험을하는 초등학생처럼 기뻐햇다.
버스에서 주완이는 겹겹이 일어난 버스벽에 옆머리를 대고 졸앗는데 졸면서도 손을 놓지않앗으
므로 섭섭하지 않앗다.똑같이 새벽까지 깨여잇엇는데 나는 하나도 졸리지 않앗다.영화를 볼때도
이 완전한 각성상태는 계속되엿다.주완이가 팝콘을 사줫는데 약간 이상한 말일지 몰라도 팝콘은
20세기가 더 맛잇엇던 것 같다.
영화를보며 많이웃엇고 조금울엇다.주완이도 글썽엿기 때문에 나는 주완이가
인도어디에 장난
감들을 두고왓나 궁금햇다.주완이가 버리고온 장난감들과 아직도 가지고잇는 장난감들을 모두
보고싶엇다.
저녁은 아니고 간식으로 햄버거를 먹엇다.크리스마스이브여서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할것같앗
다.아빠는 ‘양놈명절도 명절’이라며 가족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햇다.주완이가 ‘한입먹을래?’하며
내쪽으로 맛이다른 햄버거를 내밀엇다.왠지 예쁘게먹을 자신이 없어서 웃으며 거절햇다.그때그
햄버거를 먹엇어야
햇는데 지금까지도 후회가된다.나중에 궁금할만한 것은 남겨두지 않는게 좋
은것같다.
돌아오는길에 해가졋다.하주는 알레르기약을 하나더먹고 졸고잇엇고 나도따라
졸앗다.둘다 잠
시 깻을 때 그애가 말햇다.
“넌 모를거야.”
뭘 모르냐고 물엇어야 햇는데 그때는 그대로도 괜찮앗다.왜 몰라주느냐는
추궁이 아니라 미묘하
게 다정한 단정이엿으므로 나는내가 모르는것들을 언젠가 알게될거라 여겻고 함께 기대여조는
감미로운 시간들이 계속될것이라 믿엇다.
0031.MPEG
여름.밖은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지나가고잇다.주연이는 잠시 놀러왓다가 돌아가지못한 채 대
나무 자리에 누워잇다.다리는
방만하게 소파에 걸쳐둿다.자기집에서보다 더편한 자세다.휴대
전화
게임을 하고잇는데 농장을 경영하는 내용의 게임인것같다.
주연 ㅡ요즘 휴대전화 게임이 죄다 재미가없게 느껴지는데 그럼 게임이 재미가 없는걸까 사실
은 사는게 재미가 없는걸까.
나 ㅡㅡ어쨋든 잠시 지우지말고 둬봐.하던게임 너무쉽게 지우는 사람들은 냉정한 것 같아.
주연이가 내이마에 손가락을대고 나를 앱처럼 지우는 흉내를냇다.내가
고개를 흔들흔들거리자
이마모서리 가상의 엑스표를 정말로 눌러버렷다.
나 ㅡㅡ나쁜년.
앵글을 바꾸어 소파에 올라가잇는 주연이 다리와 내다리.
나 ㅡ(내래이션)주연이와 영원히 그대로 잇을수도 잇겟다는 생각이 들엇다.나는 평화롭고
세
상은 대홍수.그렇게 이기적으로 멈춰도 될것 같은 기분이엿다.
ㅡㅡ
내가 기억하는건 냄새다.어미사슴은 풀숲에 숨겨놓은 아기사슴의 눈물냄새를
맡을수잇다고 햇
다.사슴마다 눈물냄새가 고유해서 바로 구별해낸 다음 달려가 달래줄수 잇다고 말이다.우리동네
는 밤이되면 사슴과 동물들이 내려오는 사슴들의 나라엿다.특히
고라니나 노루가 많앗다.밤이
물러가도 눈물냄새는 고여잇어 언제나 그남은 입자들을 들이마시고 잇엇는지도
모르겟다.
그리고 그속에서 나는 주완이의 눈물냄새를 바로 알아차릴수 잇을거라고 믿엇다.가끔새벽에 그
런느낌이 들때가 잇엇다.지금 하주가 운다고 우는 것 같다고
한번도 우는모습을 본적이 없으면
서도.
주완이가 혼자 산책을 간 것은 새벽이 아니라 늦은오후엿다.나는 송이네에
잇엇다.수미와 주연
이까지 넷이서 송이네 언니들이 모아놓은 ‘앙앙’이나 ‘논노’같은 일본
패션잡지를 구경햇다.평소
에 나는 그잡지들을 좋아햇다.같은
페이지를 보고 또봐도 질리지 않앗다.잡지들은 너덜너덜해
지면서 연륜이 붙어 오히려 잡스럽지 않아졋고 소중하게
간직되엿다.
하지만 그날은 잡지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앗다.그뿐만아니라 친구들이
이상하게 불편햇다.
수미는 그새 몇살은 더 먹은것 같은 얼굴이엿다.나는
수미가 점점 좋지않은 얼굴로 늙을까봐
불안해졋고 그런변화에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송이의 태연함이 어쩐지 얄미웟다.
대지진이
나서 우리가 벌건 맨틀층까지 떨어진다해도 송이는 늘웃는 요괴표정일듯햇다.주연이
는 그날따라 한마디도 없엇다.아니 딱한마디 햇나? 송이방 창밖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햇다.
“엄마아빠가 우릴 이런데 가둬놓다니 믿을수없어.”
광활하다싶은 풍경과 가둔다는 말은 좀처럼 어울릴것같지 않으면서도 착붙엇다.그말을
하고
나서는 입을 꾹닫앗다.독설도 가끔은 받아주기 힘들지만 말하기싫은 기분이라고 저렇게까지
한마디도 안하면
어쩌나싶엇다.모두가 불편햇다.유난히 불편햇다.
창용오빠네 갈까,가서 남는재료들을 가지고 장난을치다 컵라면이나 얻어먹을까
고민햇다.궁
리하면서도 먼저 일어서면 나도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셈일것같아서 잡지만 천천히 넘겻
다.읽을수없는 글자들을 미끄러지는 눈길로 따라다녓다.
“비가 올것 같은 냄새가나.”
환기를 시키며 말햇는데 친구들은 별반응이 없엇다.우산이 없이도 별로
걱정하지않던 때엿
으니까.하얗고 두꺼운 겨울파주의 하늘에선 어떤기색도 읽기힘들엇다.
하지만 내가햇던말도 그날의 날씨도 불편한 공기도 아무래도 조작된 기억일 가능성이높다.알
면서도 그날과 비슷한 냄새가나면 어쩔수없이 그날로 돌아간다.의식적으로
세여보니 일년에
열여섯번정도 그날같은 공기를 느끼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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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不为己,天诛地灭
여기는 적들이 안와서 너무좋아요.
소설 분위기가 꼭 영화같아요.
동영상 설명이 많아서 더욱그래요.주인장 직업이 영화미술이기도 하구요.
출판사얘기는 불공평한 직장의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엇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상력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너무 감탄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