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3부 1~2

나단비 | 2024.01.29 10:00:40 댓글: 0 조회: 93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3874
제1장
 
 
 
그들이 마차를 타고 가면서 엘리자베스는 정신이 약간 어지러운 상태에서 펨벌리의 숲이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았고, 그 저택이 있는 곳으로 들어섰을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원은 아주 넓었으며 여러 가지 형태의 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대지 중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들어섰고 아주 넓은 면적에 걸쳐서 펼쳐진 아름다운 숲을 통과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에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었으며, 단지 아름다운 전경을 보고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들은 오르막길을 반 마일 정도 올라갔으며 이윽고 높은 언덕배기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숲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 반대편에 있는 펨벌리 하우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길은 그 계곡이 있는 곳으로 꺾여 있었다. 저택은 크고 멋있는 석조 건물이었으며, 뒤로는 울창한 숲의 언덕이 있고 오르막의 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저택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인공의 느낌은 주지 않았다. 저택의 가장자리로는 언덕이 있었는데 자연미가 넘쳐흘렀다. 엘리자베스는 환희가 넘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처럼 살아 숨쉬는 곳을 본 일도 없고 서투른 인공의 솜씨로 자연미가 그처럼 훼손당하지 않은 곳도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엘리자베스는 펨벌리의 여주인이 된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언덕배기를 내려가 다리를 건넜고 그 저택의 대문을 향해서 마차를 타고 갔다. 집에 더 가까워지면서 엘리자베스는 그 집의 주인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시 밀려들었다. 여관의 하녀가 잘못 전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감도 있었다. 그들이 집을 구경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자 현관으로 안내되었다. 그들이 하녀를 기다리는 동안에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지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녀가 나타났다. 나이는 꽤 많고 세련미는 없어 보였지만 점잖은 모습에 상냥한 태도였다. 그들 일행은 그녀를 따라서 식당으로 쓰기도 하고 응접실로 쓰기도 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설비가 잘 갖추어진 거대한 실내였다. 엘리자베스는 대충 훑어본 다음에 창가로 가서 밖의 전경을 구경했다. 그들이 조금 전에 내려온 언덕배기는 숲으로 덮여 있었는데, 좀 더 멀리서 보니 더 가파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대지의 배치가 조화로웠다.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강이나 언덕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이나 꾸불꾸불 이어진 계곡 등 자기 눈길이 미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일행이 다른 방으로 들어서자 경치가 달라졌지만 어느 창문에서 보더라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방마다 거대하고 아름다웠고 값비싼 가구들로 들어차 있었는데 외양만 번지르르하지 않은 데다 쓸데없이 멋지지만도 않아서 그녀는 집주인의 심미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싱스의 가구에 비해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진실로 우아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집의 여주인이 될 수도 있었군. 그러면 지금쯤 이런 방에 익숙해졌을 테지. 이방인으로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집주인으로서 즐기고 외숙과 외숙모를 방문객으로서 접대하고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이런 마음이 들었다. ‘아냐, 그렇게 될 리가 없어. 그리고 외숙하고 외숙모를 잃었을지도 몰라. 저분들을 초대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후회감에 빠지는 것에서 그녀를 구원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녀한테 그 집 주인이 정말 그곳에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외숙이 결국 그런 질문을 던졌고 엘리자베스는 놀라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녀인 레이놀스 여사가 집주인이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많은 친구들을 대동하고서 내일 올 예정이라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들의 여행이 어떤 이유에서건 하루 연기되지 않은 점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외숙모가 그림을 하나 보라고 그녀를 부르는 것이었다. 가서 보니 벽난로 위의 다른 몇 가지 세밀화 사이로 위컴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외숙모는 엘리자베스에게 그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하녀가 다가와서는 그 그림이 사망한 관리인의 아들인 젊은 신사인데, 작고한 그 집 주인이 그를 키워주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모양인데, 아주 방탕한 사람이 돼버린 걸로 알고 있어요.”

가드너 부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카를 바라보았지만 엘리자베스 그녀도 미소를 지어줄 수가 없었다.

하녀가 다른 세밀화 하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저건 현재 이 집 주인님이세요. 정말 비슷하게 그려졌지요. 이것도 다른 것하고 같은 시기에 그려진 거예요. 8년 전에 그렸을 거예요.”

가드너 여사가 그 그림을 보며 말했다. “주인님이 좋은 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잘생겼군요. 리지, 네가 이 그림이 실물하고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말해주렴.”
하녀인 레이놀스 여사는 엘리자베스가 자기 주인을 안다는 말을 듣고 그녀에 대한 공경심이 커졌다.

“저 젊은 분이 다씨 선생님을 아시나요?”

이 말에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붉히고는 “약간요”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렇다면 그분이 아주 잘생기셨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예, 아주 잘생겼어요.”

“전 그분만큼 잘생긴 분을 보지 못했어요. 근데 위층에 가보면 이것보다 더 크고 좋은 그림이 있어요. 이 방은 돌아가신 주인님께서 좋아하시던 방이고 이 세밀화는 그때 그대로예요. 작고하신 주인님은 이 그림들을 아주 좋아하셨지요.”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그림이 거기에 같이 놓여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레이놀스 여사는 다씨 여동생의 초상화 중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했는데, 그 그림은 그 여동생이 겨우 여덟 살 때 그린 것이었다.

“근데 저 여동생도 오빠처럼 잘생겼나요?” 가드너 여사가 물어보았다.

“아, 그럼요. 그만한 미인도 없을 거예요. 게다가 학식도 넘치고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고 노래 부르시죠. 다음 방으로 들어가면 그분 오빠가 선물해주신 피아노가 있어요. 그녀도 내일 주인님하고 함께 이리오세요.”

소탈하고 유쾌한 성격의 가드너는 이런저런 말을 하고 질문을 해대면서 그 하녀가 설명해주도록 부추겼다. 하녀는 자부심에서도 그렇고 애정으로도 그렇고 자기의 주인과 그 주인의 여동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을 해주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주인님은 1년 중에 여기 머무르는 시간이 많나요?” 가드너가 물어보았다.

“제가 바라는 이상으로 많이 머무르시지는 않아요. 그치만 1년중 절반은 머무신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그분 여동생은 여름철이면 항상 이곳으로 오세요.”
엘리자베스가 옆에서 말했다. “램스게이트에 가 있지 않을 때는 이리 오겠군요. 근데 주인님이 결혼하시면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겠네요?”

“그러시겠죠. 근데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분한테 어울리는 훌륭한 숙녀 분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가드너 부부가 그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가 좋은 분이란 의미가 되겠네요?”

“전 사실대로 말씀드릴 뿐이고, 그분을 아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해드리는 거예요.” 하녀가 대답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하녀가 다시 이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듣고는 놀라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그분이 네 살 때부터 모셔왔는데, 그분에게 나쁜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어요.”

이것은 모든 찬사 중에서도 가장 특이했고 엘리자베스가 갖고 있던 생각과 상반된 것이었다. 그는 성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그녀의 확고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관심이 지대해져서 무슨 말을 더 듣고 싶었는데 외숙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칭송할 수 있는 분은 아주 드물죠. 그런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니 운이 좋으시군요.”

“예,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온 세상을 돌아다녀도 그분처럼 좋은 사람은 만날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 성품이 좋은 사람이 어른이 돼서도 좋은 사람이 된다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분은 어렸을 때 항상 선량하고 자비심이 넘치는 분이셨죠.”

엘리자베스는 하녀를 바라보면서 ‘이게 다씨 그 사람 얘기인가?’라고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 아버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죠.” 가드너 여사가 말했다.

“예, 정말 그러셨죠. 그리고 다씨 선생님도 그분과 마찬가지로 좋은 분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분이세요.”

엘리자베스는 그런 말에 귀를 기울였고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더 많은 말을 듣고 싶었다. 레이놀스 여사는 엘리자베스에게 다른 화젯거리로는 흥미를 줄 수가 없었다. 그 하녀는 그림이나 방의 크기나 가구의 가격 등에 대해서 말했지만 엘리자베스의 귀에 그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가드너는 자기 주인을 과도하게 칭송하는 하녀의 말이 재미있어서 화제를 다시 그 방면으로 돌렸다. 하녀는 넓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자기 주인의 여러 장점에 대해 계속해서 열렬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주로서도 그렇고 집주인으로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세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요즘 젊은 사람들하고는 다르지요. 소작인이나 하인들 중에서 그분을 좋게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거만하다는 말을 하긴 해요. 그치만 전 그런 면을 전혀 볼 수가 없어요. 제 생각에는 그분이 다른 젊은 사람들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이 되네.’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외숙모가 엘리자베스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위컴이라는 그 불쌍한 친구에게 한 일은 어울리지가 않는구나.”

“우리가 속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우리도 나름대로 좋은 판단을 하고 있을 테니까.”

위층의 넓은 복도에 이르러서 일행은 아주 아름다운 거실로 안내를 받았는데, 아래층 방들보다 더 우아하고 밝은 색으로 최근에 꾸며놓은 곳이었다. 그들은 다씨의 여동생이 지난번에 왔을 때 그 거실을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그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꾸민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좋은 오빠임에는 틀림없는 거 같군요.” 엘리자베스가 창가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하녀는 다씨의 여동생이 그곳을 보면 흡족해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이처럼 마음을 써주시죠. 동생 분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즉시 해주세요. 동생 분이 좋아하는데 못해주실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이제 남은 구경거리는 화랑과 두세 개의 중요한 침실뿐이었다. 화랑에는 여러 가지 좋은 그림이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런 예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그림은 이미 아래층에서 보았기 때문에 이제 그녀는 크레용으로 다씨의 여동생이 그린 그림을 구경했는데, 그것이 더 흥미롭고 이해하기도 쉬워 보였다.

화랑에는 그 가족에 대한 여러 가지 초상화가 걸려 있었지만 이방인들이 그런 것까지 관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서 걸음을 옮겼다. 결국 그녀는 다씨를 정확히 그려낸 초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가 그녀를 바라다볼 때 보인,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미소를 짓는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화랑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그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하녀인 레이놀스 여사는 그 그림이 다씨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그려진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그림을 보고서 그녀가 그 사람을 한창 만나던 시절보다 더 좋은 감정으로 그림을 대하고 있었다. 하녀가 그에 대해서 한 칭송의 말은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현명한 하녀의 칭찬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겠는가! 오빠로서, 지주로서, 집주인으로서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있을 것인가! 그의 권한으로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선이나 악을 자기 나름대로 베풀 수 있었겠는가! 하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같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보는 내용이었는데, 그 사람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 그의 눈길을 마주하면서 그녀는 그가 모든 사람에게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그려볼 수 있었고 그 사람이 이전에 부적절하게 말한 점에 대해서는 마음이 누그러지게 되었다.

외부 사람들에게 공개될 수 있는 저택의 모든 부분을 보고 난 일행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하녀와 작별한 다음에 현관에서 정원사의 안내를 받게 되었다.

일행이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강 쪽으로 갈 때 엘리자베스는 저택을 다시 보기 위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외숙과 외숙모도 걸음을 멈추었다. 외숙이 건물의 건축 시기를 예상해보고 있는데, 그때 그 저택의 주인이 마구간 쪽으로 난 길에서 갑자기 앞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와 다씨는 서로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다씨가 너무나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그들의 눈이 즉각적으로 마주쳤고 두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씨는 깜짝 놀랐는데 너무나 놀라서 잠시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곧 제정신을 가다듬고 그 일행에게로 가까이 왔으며, 완전히 침착하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예의를 갖추면서 인사를 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기는 했지만, 그가 다가오자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서 그의 인사를 받았다. 다씨를 처음 본 다른 두 사람은 조금 전에 감상한 그림과 흡사한 점만 가지고는 그가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었지만, 정원사가 그를 보면서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집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다씨가 엘리자베스에게 얘기할 때 조금 떨어져 서 있었는데, 엘리자베스는 너무 놀라고 혼란스러워서 그가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말에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만난 뒤로 그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고는 놀랐고, 그가 말을 할 때마다 놀라움이 더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 서 있는 몇 분이 그녀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간이었다. 그도 마음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말을 할 때 평상시의 침착함을 볼 수 없었다. 롱본을 언제 떠났는지, 그리고 더비셔에는 언제까지 머물 것인지 등에 대해서 물어볼 때 서둘러서 여러 번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결국 그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는 갑자기 정신을 되찾아 작별 인사를 했고, 그들은 헤어졌다.

다른 두 사람이 그녀에게로 다가와서 그 남자의 생김새를 칭찬했지만 엘리자베스에게는 그런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완전히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에서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가기만 했다. 수치심과 분노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가 거기에 온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고 가장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 사람에게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 것인가! 그 사람처럼 자만심이 강한 사람에게 자기가 얼마나 주책머리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인가! 자기가 고의로 그 사람 앞에 나타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오, 내가 왜 왔더란 말인가! 그 사람은 왜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나타났단 말인가! 그들이 10분만 빨리 왔더라도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바로 그때 당도했으며 마차나 말에서 막 내린 것이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 이상스런 만남에 대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또 붉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는데, 그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정중한 말투로 가족의 안부까지 묻다니! 그가 지금처럼 위엄을 부리지 않는 때가 없었고 이번 만남에서처럼 말을 부드럽게 한 적이 없었다. 로싱스 정원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쥐어주면서 보인 태도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그녀는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제 물가로 난 아름다운 길로 들어섰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지는 더 아름다워졌으며 숲도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그 어느 것도 지각할 수가 없었다. 외숙이나 외숙모가 내뱉는 감탄사에 그녀는 기계적으로 응답했고, 두 사람이 가리키는 쪽으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실지로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지금 다씨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펨벌리 저택의 어느 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지금 이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든 점을 제쳐놓고서 그가 아직도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이제 마음이 홀가분해졌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처럼 공손하게 대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편안함만 깃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그녀를 보고서 고통이 더해졌는지, 즐거움이 더해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녀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두 사람이 왜 그처럼 정신 나간 상태가 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주어서 그녀는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느꼈다.

그들은 숲으로 들어갔으며 한동안 강과는 작별을 하고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무들 사이로 계곡의 여러 가지 멋진 경치가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고 숲이 넓게 펼쳐져 있는 맞은편의 언덕, 그리고 가끔씩 강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가드너는 전원의 전체를 돌아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걸어서 그렇게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정원사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 전원의 둘레가 10마일은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으로 이제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들은 순환로를 따라서 가게 되었다. 잠시 후에 늘어진 나무 사이로 내리막길이 나타났고 강의 폭이 가장 좁은 곳에 이르렀다. 이제 전체적인 전경과 잘 어울리는 꾸밈없는 다리를 지났는데, 계곡도 그곳에서는 아주 좁아진 협곡을 이루었으며 강과 그곳을 마주 보고 있는 무성한 숲 사이로 좁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오솔길을 전부 다 답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리를 건너가 집에서 한창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걷는 데는 자신이 없던 가드너 여사가 더 이상 갈 수가 없다고 했으며 어서 빨리 마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그 말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고, 사람들은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여 강의 맞은편에 있는 저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낚시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면서도 즐길 기회는 별로 없는 가드너가 이따금씩 강에서 나타나는 송어를 보고 정원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발걸음이 더뎌졌다. 그렇게 느릿느릿 가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다씨가 다가오는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고 엘리자베스는 맨 처음과 마찬가지로 놀랐다. 그곳의 오솔길은 건너편에 비하면 시야가 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씨를 갑자기 마주치기 전에 볼 수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놀라기는 했어도 적어도 처음보다는 그를 대면할 준비를 더 잘할 수 있었고, 그가 정말로 그들을 만나러 오는 길이라면 이제 침착하게 말을 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녀는 잠깐 그가 다른 길로 들어설 걸로 생각했다. 길이 구부러진 곳에서 그가 잠시 보이지 않을 때 그녀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구부러진 길을 통과하자 그가 그들 앞에 즉시 보이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조금 전의 상냥한 태도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쪽에서 그곳의 아름다움을 칭찬해주었다. 그렇지만 “아주 유쾌한 곳이군요”라거나 “매력적인 곳이에요”라는 말을 하고 나자 어떤 안 좋은 생각이 끼어들었고, 펨벌리를 칭찬하는 말을 그가 나쁜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가드너 여사는 엘리자베스의 조금 뒤에 서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말을 멈추자 다씨는 그녀에게 일행을 소개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그녀가 기대하지도 않던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리고 그가 안다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을 소개시켜달라는 말을 듣고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분들이 누군지 안다면 저 사람이 얼마나 놀랄까? 아마 속으로는 이분들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간주하고 있을 테지’라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소개를 하면서 그 사람들과 자신의 관계를 말해주었으며, 소개를 마치고 나서 다씨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그의 표정을 슬그머니 살폈다. 그가 그런 별 볼일 없는 사람들로부터 되도록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가 그런 사실을 알고서 놀라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기는커녕 가드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이 반가웠고 마음이 흡족해졌다. 다씨의 입장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대할 수 있는 친척을 엘리자베스가 두고 있다는 점을 그가 알게 된 것은 그녀에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을 모두 경청했고 외숙이 지성과 매너를 갖추고서 하는 모든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의 대화는 곧 낚시로 이어졌고, 다씨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엘리자베스의 외숙이 근처에 머무르는 동안에 자주 거기서 낚시를 해도 된다는 말을 했다. 그 말과 함께 외숙에게 낚시 도구를 빌려주겠으며, 강의 어느 부분에서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지도 알려주었다. 엘리자베스와 팔짱을 끼고서 걸어가던 가드너 여사는 놀라는 표정으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흡족한 마음이었다. 그처럼 다씨가 친절을 베푸는 일이 그녀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굉장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달라졌지? 어디서 저런 태도가 나오는 거야? 날 위해서 저럴 리는 없어. 태도가 저렇게 변한 게 나를 위해서는 아닐 거야. 내가 헌스포드에서 그처럼 비난했다고 해서 저렇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저 사람이 나를 지금도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해.’

여자들은 앞에서 걷고 남자들은 뒤에서 걸어가다가 어떤 묘하게 생긴 수중식물을 보기 위해서 강의 가장자리로 다녀온 뒤에 그들의 행렬에 변화가 생겼다. 너무 많이 걸어서 매우 지쳐버린 가드너 여사가 이제 엘리자베스의 팔에만 매달려 가기에는 충분치 않아 남편의 팔에 의지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씨가 엘리자베스의 옆에 붙게 되었고 그런 상태로 그들은 걸어나갔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에 숙녀 쪽에서 먼저 말을 붙였다. 그녀는 다씨가 그곳에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오게 됐다는 사실을 그가 알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가 그곳에 나타난 게 아주 뜻밖이라는 말을 하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여관에서 일하던 분 말로는 다씨 선생님이 내일까지는 여기 계시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우리가 떠날 때는 선생님이 여기 분명히 안 계실 거라고 생각하고서 왔던 거죠.” 그녀가 말해주었다.

그는 그 말이 맞는다고 말해준 뒤에 집사와 무슨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 사람들은 내일 일찍 여기로 올 거예요. 그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양이 아는 사람도 있어요. 빙리하고 그 누이들 말이죠.”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조금 숙이면서 응답했다. 그녀의 생각은 그녀와 다씨 사이에 빙리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언급되던 때로 즉시 돌아갔고, 다씨의 얼굴 표정을 살피자 그도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다씨가 이런 말을 했다. “일행 중에는 엘리자베스 양하고 특별히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나 있어요. 이 근처에 머무르시는 동안에 내 동생을 엘리자베스 양한테 소개해도 되는지, 그러면 너무 번거롭지 않을지 알고 싶군요.”

그러한 제안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너무 뜻밖의 제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씨의 여동생이 엘리자베스를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다씨가 동생을 부추겼기 때문일 것이라고 엘리자베스는 즉시 감지할 수 있었다. 다씨가 그녀 때문에 분개했던 일이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는 데는 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그들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생각에 빠져서 침묵 속에 걸어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동생을 그녀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어 하는 그의 소망은 엘리자베스에게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걸어갔고, 마차에 도착했을 때 가드너 부부는 100미터 정도 뒤처져 있었다.

다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엘리자베스는 피곤하지 않다고 했으며, 그래서 그들은 잔디밭 위에서 함께 서 있었다. 그런 시간에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고 침묵만 지킨다는 게 아주 어색해 보일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무슨 말을 하고는 싶었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그래서 매틀록이나 도브데일 같은 고장에 대해서 겨우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뒤에 따라오는 일행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으며 둘이서 하는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엘리자베스는 말하는 데 지쳐버렸다. 가드너 부부가 도착하자 다씨는 일행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 기운을 낸 다음에 떠나도록 했지만 그 제안은 거절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헤어졌다. 다씨는 여자들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으며 마차가 떠나갈 때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집 쪽으로 서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외숙과 외숙모의 평가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다씨가 자기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선량하고 예의 바르고 겸손한 사람이더구나.” 외숙이 논평했다.

“약간 고압적인 자세가 보이기는 해. 그치만 겉모양이 그렇다는 얘기고, 점잖은 사람으로 보이더라고. 나도 이제 아까 그 하녀처럼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즉 어떤 사람들은 그가 거만해 보인다고 하지만 난 그런 점을 느낄 수가 없었어.” 외숙모가 얘기해주었다.

“그 사람이 우리한테 보이는 태도가 예상 밖이었어. 그건 공손함 이상이야. 정말 세심하게 생각해주더구나.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야. 그 사람이 너하고 안다고 해서 그게 대단한 건 아닐 텐데.”

이번에는 외숙모가 이렇게 말했다. “리지, 그 사람이 위컴만큼 잘생긴 건 아냐. 완벽하게 잘생긴 위컴에는 못 미치겠지. 근데 넌 왜 그 사람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한 거니?”

엘리자베스는 최대한으로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에 켄트 주에서 만났을 때는 그 전에 비해 그가 더 낫게 보였는데, 그가 오늘처럼 선량하게 보인 때는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이 변덕스러운 사람인지도 모르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런 경우가 많거든. 그러니 낚시에 관해서 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할 거야. 다음에 만날 때는 마음이 변해가지고 날 쫓아버릴지도 모르니까.” 외숙이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외숙이 다씨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드너 여사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보고 판단해보았을 때, 난 그 사람이 위컴에게 했다는 그런 잔인한 행동을 어느 누구에게든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 얼굴에 악한 구석이 없잖아. 오히려 말할 때는 입가에 웃음기가 있더라. 생김새에 품위가 어려 있어서 누가 악한 사람으로는 보지 않겠어. 그치만 우리를 안내해준 하녀는 그 사람을 너무 과대하게 평가해주고 있었어. 어떤 땐 웃음이 나오더라. 그치만 주인으로선 좋은 사람일 테니 하인이 좋게 말할 수밖에 없지.”

엘리자베스는 위컴에게 다씨가 한 일에 대해서 어떤 변호를 해주어야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켄트 주에서 자기가 다씨의 어떤 친척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그의 행동이 아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해주었다. 하트포드셔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씨의 성격이 나쁜 것이 아니고 위컴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말도 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한테 들었는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들었다면서 둘 사이에 있었던 금전적인 거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가드너 여사는 그 말에 놀라기도 하고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예전에 즐겁게 지내던 장소가 가까워지자 옛날 추억을 떠올리느라 다른 생각은 해볼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이곳저곳 흥미 있는 곳을 알려주느라 다른 데 정신을 팔 수도 없었다. 오전 나절의 산책으로 지쳐 있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부인은 옛날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러 나섰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저녁때는 마음이 흡족해졌다.

엘리자베스는 오전 중에 벌어진 일로 너무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새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는 흥미를 가질 수가 없었다. 다씨의 상냥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여동생을 자기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어 하는 그의 속마음에 대해서 의아해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2장
 
 
 
엘리자베스는 만약 다씨가 여동생을 데리고 자신을 방문한다면 여동생이 도착한 다음 날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날 오전 중에는 여관에서 기다려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추측은 빗나갔다. 왜냐하면 여동생이 도착한 날 바로 그 방문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일행이 새로 만난 사람들과 여관 주변을 산책하고서 막 여관으로 돌아온 뒤에 식사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마차 소리가 들려서 창문 쪽으로 가보니 신사와 숙녀 한 사람씩을 태운 마차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한눈에 그들을 알아보고서 외숙과 외숙모에게 의외의 사람을 소개시켜줄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말해주었다. 외숙과 외숙모는 정말 의외라고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말하면서 놀라는 표정, 그러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게 된 점, 그리고 그 전날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이제 색다른 눈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전에는 그런 점을 느낄 수가 없었지만 이런 때 다씨가 그런 관심을 보여주는 사실 자체가 자기 조카에 대한 애정으로밖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동안에 엘리자베스의 감정상의 동요는 점점 더 늘어만 갔다. 자기 자신이 그처럼 불안한 데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런 불안감 가운데서도 다씨가 자신에게 애정을 품어서 동생한테 자신에 대해 너무 좋게만 말해주지 않았는가 하는 걱정이 가장 앞서는 것이었다. 자기가 그 동생한테 아주 잘 대해줘야겠다는 욕심이 지나쳐서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오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다씨 일행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문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외숙과 외숙모는 호기심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어서 그것이 더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놓았다.

다씨와 그의 여동생이 나타났고 거창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가 놀라는 만큼이나 다씨의 여동생도 놀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고장에 온 이후로 다씨의 여동생이 거만한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몇 분 동안 관찰해보니 단지 아주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단어 하나조차도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다씨의 여동생은 키가 크고 몸집도 엘리자베스보다 컸다. 나이가 열여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완전히 성숙한 모습이었고 여자다움과 우아함이 넘쳐흘렀다. 얼굴 자체는 오빠만은 못해 보였지만 생김새에서 총명함과 재치가 엿보이고 태도는 겸손하고 유순해 보였다. 다씨처럼 날카롭고 침착한 면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들이 함께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씨는 빙리도 그녀를 방문하러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만족감을 표시하고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빙리의 빠른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렸고 곧바로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반감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지만 설사 그녀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해도 그녀를 다시 만나 반갑게 대해주는 그의 태도를 보고는 그런 생각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는 다정하게 엘리자베스 가족의 안부를 물었고 그 전처럼 상냥한 모습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엘리자베스 못지않게 가드너 부부도 빙리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사실 그들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열렬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다씨와 그들의 조카를 두고서 발생했던 의문은 이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두 사람을 열심히 관찰하게끔 유도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찰을 한 결과 적어도 엘리자베스와 다씨 중의 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여자 쪽의 감정에 대해 그들은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남자 쪽에서는 경모의 마음이 넘쳐흐르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로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방문객들이 각각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녀 자신의 감정은 가라앉히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보이고 싶었다. 후자에 있어서 그녀는 자신이 실패할까 봐 두려움을 가졌지만 결국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잘 대해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그녀 자신에게 잘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빙리는 그녀에게 잘 대해줄 준비가 항시 되어 있었고, 조지아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며, 다씨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빙리를 보자 엘리자베스의 생각은 자연히 제인에게로 향했다. 빙리가 언니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를 절실히 바랐다. 빙리가 그 전보다는 말수가 적어졌으며, 엘리자베스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제인을 회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그녀의 상상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제인의 라이벌로 인식되던 다씨의 여동생 조지아나를 빙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명백해 보였다. 어느 쪽이든 상대방에게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다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빙리의 여동생이 바라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엘리자베스는 곧 만족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헤어지기 전에 빙리가 제인에 대해서 아쉬워하고 있다는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고, 제인에 대한 대화를 계속했으면 하는 심정이 엿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는 “언니를 만나본 즐거움을 누린 지가 아주 오래됐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거기에 대해서 무슨 응답을 해주려고 하기 전에 빙리는 다시 이런 말을 덧붙였다. “8개월이 넘어버렸군요. 네더필드 무도회장에서 본 게 11월 26일이었는데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네요.”

엘리자베스는 빙리가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점을 알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틈을 타서, 엘리자베스의 자매들이 모두 지금도 롱본에 살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한 질문이나 앞에서 했던 말에 무슨 심각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떤 암시를 해주는 표정이나 태도를 읽어볼 수는 있었다.

그녀가 다씨에게는 자주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지만, 잠깐씩 그를 보았을 때는 상냥한 표정이었다. 또한 그가 하는 말에도 교만함이라든가 사람들을 경멸하는 투와는 너무나 다른 게 스며들어 있어서, 어제 자신이 목격한 그의 온화한 태도가 결국 일시적인 것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만 하루는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안다는 것 자체부터 수치로 여겼을 사람들과 잘 지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헌스포드의 목사관에서의 마지막 좋지 않은 장면을 회상해보았을 때, 이제 그때와의 차이나 변화가 너무 크고 충격을 크게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놀라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더필드에서 그가 자기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나 로싱스 저택에서 그 귀한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지금처럼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려 하면서 자만심을 떨쳐버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네더필드 저택이나 로싱스 저택의 여자들에게는 조롱이나 반감을 살 만한 인물들인데도 말이다.

방문자들은 반 시간 조금 넘게 머물렀다가 이제 떠나가려고 일어섰는데, 그때 다씨는 가드너 부부와 엘리자베스가 그 고장을 떠나기 전에 펨벌리 저택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는 자신의 제안에 그의 여동생이 동의해주도록 요구했다. 다씨의 여동생은 무슨 초대를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터라 약간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가드너 여사는 그 초대에 가장 관련돼 있는 엘리자베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지만 그 제안이 싫어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당황하여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가드너 여사로서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자기 남편이 기꺼이 받아들일 것으로 간주하고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서 다음 다음 날로 약속이 정해졌다.

빙리는 엘리자베스에게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고 하트포드셔에서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에 다시 엘리자베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언니에 대해서 듣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흡족해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방문객들이 떠나간 뒤로 그들과 함께한 30분이 만족스러웠다고 여기게 되었다. 비록 그 방문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그런 만족감을 가질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외숙과 외숙모가 이것저것 물어볼까 두려웠기 때문에, 빙리에 대해서 두 사람이 칭찬을 늘어놓는 것을 들은 뒤에는 옷을 갈아입겠다고 하면 서 그 방을 나왔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드너 부부의 호기심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강제적으로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에 알던 것보다 엘리자베스가 다씨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엘리자베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점도 분명해 보였다. 흥미를 줄 요소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귀찮게 질문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가드너 부부는 다씨를 좋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겪어본 바로는 어떤 허물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게다. 그의 상냥스러움에 대해서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느낌이나 그 사람의 하인이 말하는 바에 따라서 그 사람을 언급한다면 하트포드셔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다씨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그 하녀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씨가 네 살 때부터 알아왔고 믿을 만하다고 간주되는 하인이 하는 말을 무시해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고장 램튼에 사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봐도 마찬가지 결론이 나왔다. 다씨의 결점으로는 자만심밖에 지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만심은 다씨가 갖고 있는 요소로 누구나 간주할 만한 것이었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씨와 교류가 없는 그 고장 사람들은 그가 그런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인정 많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자비를 베푼다는 사실은 누구나 수긍하고 있었다.

그 일행은 위컴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컴이 다씨와 어떤 관계인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가 없었지만, 위컴이 더비셔를 떠나면서 많은 빚을 남겨놓았고 그것을 나중에 다씨가 처리해줬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펨벌리 저택에 대해서 지난 밤보다는 오늘 밤에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밤의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펨벌리의 주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두 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고민했다. 그녀가 이제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했다. 아니, 미움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그를 싫어하는 감정을 가졌었다는 사실 자체를 이제는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확인하면서 느껴진 그에 대한 공경심은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은 상태에서 인정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져갔고 어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좋게 평가해주고 그의 장점을 지적해주면서 이제는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외감보다도 엘리자베스가 더 간과할 수 없는 그의 자질은 감사함이었다. 즉 자기를 사랑해주는 데 대한 감사함, 그를 거절할 때 불쾌하고 매섭게 대한 점과 거절하면서 보인 온갖 부당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데 대한 감사함이었다.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기의 가장 혐오스러운 적으로 생각하고서 대해야 했는데도 그 우연히 이루어진 만남에서 좋은 감정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그녀에 대해서 다른 어떤 혐오감도 드러내지 않고서 그 자신에 대한 호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으며, 자기 누이동생을 그녀에게 소개시켜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만심이 그처럼 강한 사람이 그토록 달라진 점이 놀라울 뿐만 아니라 감사함이 밀려왔던 것이다. 그것은 사랑, 열렬한 사랑 때문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다. 그러한 변화에서 그녀가 어떤 단정을 할 수는 없었지만 불쾌한 감정은 아니었고 어떤 격려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를 존경하고 칭송하는 마음이 우러나왔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으며 그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러한 행복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달려 있는지, 그가 다시 청혼하게 할 만큼 그녀에게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어서 그러한 행복으로 유도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날 저녁에 외숙과 외숙모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다씨의 여동생이 펨벌리 저택에 도착해서 늦은 아침을 먹고서 바로 그들을 방문해준 그러한 놀라운 예의에 대해서 자기네들도 거기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그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에 펨벌리 저택으로 다씨의 여동생을 방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이 났다. 엘리자베스는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할 거리가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가드너는 아침을 먹고서 바로 떠났다. 그 전날 낚시 계획을 다시 새로 짜게 되었고, 펨벌리 저택에서 정오까지는 몇몇 신사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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