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4권 5~6

나단비 | 2024.03.30 17:56:11 댓글: 0 조회: 88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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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11월 오후, 앤은 탑 방 창가에 앉아 펜을 입에 물고 눈은 아련히 꿈에 젖어 땅거미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저 묘지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무렵 산책으로는 자작나무와 단풍나무 숲 그리고 항구 쪽으로 난 길을 더 좋아했지 묘지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11월이면 언제나 잎이 다 떨어져 버린 숲에 들어가기가 적절치 못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나무들의 현세에서의 영광은 사라지고 순수한 영혼과 천상의 영광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앤은 묘지로 나서보기로 했다. 사기가 완전히 꺾여버렸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묘지가 더 기운 나게 해주는 곳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그 묘지는 온통 프링글이 차지하고 있다지 않은가. 레베카 듀도 그 묘지에는 프링글이 대대로 묻혔다고 했다. 새 묘지가 있는데도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때까지 그 오래된 묘지에 묻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앤은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힐 수 없는 프링글이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하는 일도 격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링글 집안이라면 앤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까지 이르렀다. 프링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갈수록 더 악몽이었다. 젠 프링글이 은근히 주도하는 불복종과 무시 운동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지난주 어느 날에는 3학년 학생들에게 ‘이번 주 가장 의미가 컸던 일’을 주제로 작문을 하도록 했다. 젠 프링글은 아주 돋보이는 작문을 제출했다. 그 작은 악마는 앤을 모욕하는 말을 아주 교묘하게 은근슬쩍 끼워 넣은 글을 써냈다. 너무나 신랄해서 도저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앤은 다시 학교에 돌아오고 싶으면 사과를 해야만 한다고 이르고 젠을 집으로 돌려보내 버렸다. 이 일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이제 앤과 프링글 집안 사이에는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느 쪽에 승리의 깃발이 나부낄지는 불을 보듯 훤했다. 학교 이사회마저도 프링글 편을 들고 나섰다. 젠을 학교에 다시 나오도록 하든지 아니면 사직서를 내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하라는 권고가 떨어진 것이다.
앤은 기분이 몹시도 씁쓸했다. 최선을 다했건만, 아니 진정으로 싸울 기회만 있었더라도 이길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런 결사조직에다 그런 전략을 내세우는데 싸워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앤은 비참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고 만 채로 ‘초록 지붕 집’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린드 아주머니의 분노와 파이 사람들의 환호를 어떻게 견디지! 친구들이 모두 동정해준다고 해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서머사이드에서 실패했다는 얘기가 퍼진다면 다른 학교에 일자리를 얻기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프링글 집안사람들은 연극 사건에서만큼은 앤을 이기지 못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앤의 눈에 좀 심술궂은 미소가 넘쳤다.
앤은 중등학교 연극 클럽을 조직했다. 그리고 교실에 걸 좋은 판화 그림을 살 기금을 마련하려고 급하게 조그만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열정을 갖고 주도한 계획이었으며 캐서린 브룩에게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캐서린의 도움이 딱히 필요했기보다는 무슨 일에건 언제나 소외되어 보이던 캐서린이 안돼 보여서였다. 하지만 그 일로 앤은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캐서린의 무뚝뚝하고 빈정대는 태도가 평소보다도 더 심했으니까. 매번 연습 때마다 캐서린은 눈썹을추어올리며무슨 꼬투리든 잡아서 기분 상할 말을 해댔다. 더욱 나빴던 것은, 젠 프링글이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역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었다. 캐서린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학교에 이 역을 소화해낼 아이는 젠 외엔 없어요. 그 역에 어울리는 성격을 가진 아이는 젠 외엔 아무도 없다고요.”
하지만 앤의 생각은 달랐다. 소피 싱클레어라는 키가 크고 갈색 눈에 숱 많은 밤색 머리를 가진 소녀가 젠보다 훨씬 메리 여왕 역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피는 연극반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연극을 해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연극에 경험도 없는 아이는 안 돼요. 잘되지도 않을 게 뻔하니까 그 아이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요.”
캐서린이 아주 불쾌하게 말을 잘라버려서 앤은 그만 양보해버렸다. 그리고 젠도 아주 잘해주었다. 연극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기라도 했는지 무대에 선 젠은 너무나 빛이 났고 자기 역할에 기꺼이 최선을 다했다. 연습은 저녁에 일주일에 네 번씩 했고, 겉보기에는 모든 일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젠은 아주 열심히 연습했고 어쩐 일인지 연극에 관한 한 태도도 아주 반듯했다. 앤은 연극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고 젠을 지도하는 일도 캐서린에게 일임했다. 그러나 한두 번 젠의 얼굴에 떠오른 교활한 승리의 표정을 보고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앤은 당혹스러웠다.

연극 연습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앤은 소피 싱클레어가 여학생 휴게실 한구석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에 소피는 갈색 눈을 힘주어 끔벅이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이내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저도 정말로 연극에 참여하고 싶어요. 메리 여왕이 되어보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제겐 가능한 일이 아니죠. 아버지가 연극 클럽에 들지 못하게 하세요. 낼 회비가 없으니까요. 우리 집 형편으로는 한 푼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물론 저는 경험이 없어요. 하지만 언제나 전 메리 여왕을 좋아했어요.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제 손가락 끝까지 전율이 일어요. 전 메리 여왕이 단리 경을 죽였다는 말도 믿지 않아요. 절대로 그런 일과는 관계도 없을 거예요. 절대로요. 잠깐이라도 제가 메리 여왕이 되어볼 수 있다면 너무 멋질 것 같아요.”
소피는 흐느끼며 말했다.
앤은 나중에 그때 내린 결론이 아무래도 수호천사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사를 적어줄게, 소피. 그리고 연기 지도도 해줄게. 넌 아주 잘할 수 있을 거야. 이 연극은 여기서 잘되면 다른 데서도 상연할 계획이거든. 젠이 출연할 수 없는 경우에는 대신 메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좋아. 하지만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
소피는 다음 날까지 대사를 모두 외워버렸다. 날마다 수업이 끝나면 앤과 함께 ‘윈디 포플러’ 집 탑 방으로 가서 연습했다. 소피는 조용하면서도 무척 쾌활한 소녀이라서 두 사람은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이 연극은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시내 공회당에서 막을 올리기로 되었다. 대대적으로 광고를 한 덕에 모든 좌석이 매진되었다. 앤과 캐서린은 이틀에 걸쳐 교회당을 장식했고 밴드를 빌렸으며 연극 막간을 장식하려고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도 샬럿타운에서 오기로 되었다. 의상까지 갖춰 입고 한 마지막 연습은 누가 봐도 성공이었다. 젠은 무척이나 훌륭했고 다른 배역을 맡은 아이들도 젠 못지않게 다들 잘해주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젠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젠의 어머니가 젠이 아프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목이 심하게 아파 모두들 편도선염이 아닐까 몹시 걱정하고 있단다. 연극에 관계되는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젠이 오늘 저녁 연극에 출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캐서린과 앤은 처음으로 같은 놀라움과 절망을 공유하며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캐서린이 천천히 입을 뗐다.
“우린 연극을 미룰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은 이 연극이 실패라는 거지요. 12월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모든 행사가 다 몰려요. 일 년 중에 이렇게 바쁜 시기에 연극을 한다고 할 때부터 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린 연극을 미루지 않아요.”
앤이 말했다. 앤의 눈빛이 젠의 눈빛 못지않게 녹색으로 빛났다. 앤은 캐서린 브룩에게 그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젠 프링글이 편도선염 같은 것에 걸렸을 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 프링글 집안이 이 연극을 후원한다 해도 앤 셜리가 주도하고 있는 이 연극을 망쳐버리려는 젠의 고의적인 책략일 뿐이다.
“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그 역을 대신할 사람이라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실패는 마찬가지예요. 메리 역은 이 연극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요.”

캐서린은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메리 여왕 역이라면 소피 싱클레어가 젠 못지않게 할 수 있어요. 의상도 몸에 맞을 거예요. 다행히 의상은 선생님이 만들었으니, 젠이 아니라 선생님이 갖고 있죠?”
그날 밤 연극은 꽉 찬 관중 앞에서 막이 올랐다. 신이 난 소피는 젠 프링글은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메리 여왕 역할을 해냈다. 주름이 잡힌 벨벳 가운을 걸치고 보석을 단 소피는 메리 여왕 역에 너무도 잘 어울렸다. 서머사이드 학교 학생들은 거무스름한 드레스에 모양새 없는 코트를 입고 다 낡은 모자를 쓰고 다니던 평범하고 촌스러운 모습의 소피밖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소피를 보고는 모두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장에 소피를 연극 클럽 종신회원으로 가입시켜야 한다고들 했다. 그래서 앤이 가입비는 내주기로 했다. 이제 소피는 서머사이드 중등학교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후의 일까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소피 자신도 그날 밤 자기가 스타를 향한 길에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20년 후 소피 싱클레어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여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소피 인생에 그날 밤 서머사이드 회관에서 커튼이 내려오며 터진 박수갈채보다 더 달콤했던 박수갈채는 없었다.
제임스 프링글 부인은 집에 있는 딸 젠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이미 듣지 못했다면 이 귀한 집 아이의 눈이 질투로 불타 녹색으로 변해버릴 이야기를. 예전에 레베카 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듯이 젠은 이제야 예전에 이미 받았어야 할 응징을 받은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앞서 얘기한 ‘중요한 일’에 관한 작문에서 젠이 앤을 모욕하는 글을 써내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앤은 마차바큇자국이 깊게 난 오솔길을 따라 그 오래된 묘지로 내려갔다. 길 양쪽에 서 있는 돌담에는 이끼가 끼었고 그 위로 난 고사리는 서리를 맞아 시들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보랏빛 언덕을 배경으로 11월의 바람에도 아직 잎을 다 떨어뜨리지 않은 날씬하고 끝이 뾰족한 미루나무들이 거뭇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비석들이 절반은 술에 취한 듯 비스듬히 서 있는 오래된 묘지를 키가 크고 거뭇한 전나무들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앤은 그곳에서 어느 누구와 마주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문으로 막 들어서자마자 섬세하고도 긴 코, 엷은 입술, 우아하게 처진 어깨와 범접하기 어려운 숙녀다움이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미스 밸런타인 코탤로와 마주쳐 좀 당황스러웠다.
물론 앤은 서머사이드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스 밸런타인을 알았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양재사이며, 살아 있는 사람 일이든 죽은 사람 일이든 모르는 일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미스 밸런타인이 모르는 일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단정해도 좋을 정도였다. 앤은 혼자 묘지를 거닐며 기묘한 옛 비문을 읽어보고,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채 잠들어 있는 연인들의 이름도 더듬어보고 싶었지만, 미스 밸런타인이 앤의 팔에 살짝 자기 팔을 끼워 넣으며 묘지를 안내하겠다고 나서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묘지에는 프링글 집안사람 못지않게 코탤로 집안사람도 많이 잠들어 있었다.
미스 밸런타인을 기분 좋게 대하기는 힘들지 않았다. 프링글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사람도 아니고, 미스 밸런타인의 조카는 앤이 귀여워하는 학생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하나 명심해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은 미스 밸런타인이 ‘생활 때문에 바느질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아는 척해서는 안 되었다. 미스 밸런타인은 그 점에 아주 예민하다는 소문이었다.

“오늘 저녁 여기 오길 참 잘했네요. 내가 여기에 묻힌 사람들에 관해 모조리 이야기해줄게요. 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여기 묻힌 사람들을 잘 알면 묘지도 아주 즐거운 곳이 된다고 말해요. 나는 새 묘지보다 여기 옛 묘지가 더 좋아요. 여기에 묻힌 이들은 오래된 집안사람들뿐이거든요. 톰이니 딕이니 해리 같은 평범한 집안사람은 새 묘지에 묻혀요. 코탤로 사람들은 이쪽이에요. 정말이지 우리 집안에서는 굉장히 많은 장례를 치렀어요.”
미스 밸런타인은 말했다.
“오래된 집안은 모두 그렇겠죠.”
미스 밸런타인이 무슨 대꾸를 바라는 것 같아 앤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 집안처럼 많은 장례를 치른 집안은 없어요.”
미스 밸런타인은 그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말했다.
“우리 집안에는 폐병이 많아요. 다들 기침에 시달리다 돌아가셨어요. 이건 베시 고모 무덤이에요. 우리 베시 고모는 세상에 그런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어요. 베시 고모 동생인 세실리아 고모 얘기도 무척 흥미롭죠. 내가 마지막으로 세실리아 고모를 봤을 때 고모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앉아라, 얘야, 앉아. 난 오늘 저녁 11시 10분에 죽을 거야. 그렇다고 마지막으로 즐겁게 수다를 떨지 못할 이유야 없지 않니.’ 믿기 힘든 일이지만, 셜리 선생님. 우리 고모는 그날 밤 11시 10분에 정말로 숨을 거두었어요. 어떻게 자기가 정확히 죽을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요?”
앤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무덤은 우리 증조할아버지 코탤로의 무덤이에요. 1760년에 태어났고, 물레 만드는 일을 했어요. 평생 1,400대의 물레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 예배에서 목사님이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14)라는 성경 구절로 말씀을 하셨는데, 마이럼 프링글이 ‘그럼 그 집 조상들이 간 천국 길에는 물레로 가득 메워졌겠네.’ 하고 말했대요. 그런 말이 지각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세요, 셜리 선생님?”
“세상에나, 아니지요.”
그렇게 말하며 앤은 두개골 아래로 대퇴골 두개를 교차시킨 묘비 장식이 그리 지각 있는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듯 흘끗 바라보았다. 만일 프링글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더라면 앤이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대꾸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기에는 우리 사촌 도라가 묻혀 있어요. 남편이 모두 셋이었는데 모두들 결혼하자마자 곧 죽어버렸죠. 불쌍한 도라는 건강한 남편을 얻을 운은 없었던 모양이에요. 마지막 남편은벤저민배닝이었어요. 여기 묻히진 않았죠. 로우벨에 있는 자기 첫 번째 부인 곁에 묻혔어요. 그 사람은 죽는 걸 몹시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도라가 남편에게 더 나은 세상으로 갈 거니까 걱정 말라고 했대요. 하지만 그 가여운벤저민은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여기 불완전한 세상에 더 익숙해 있어서.’ 하고 말했대요. 그 사람은 약을 예순한 가지나 먹었어요. 그래도 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요. 데이비드 코텔로 삼촌 가족은 여기 다 모여 있어요. 무덤 발치마다 장미가 심어져 있는데 이 장미들이 모두 피어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난 여름마다 여기 와서 장미를 꺾어다 내 꽃병에 꽂아둬요. 그냥 여기 내버려두기엔 아깝잖아요, 그렇죠?”
“아, 네, 그런 것 같네요.”

“내 불쌍한 여동생 해리엇은 여기 누워 있어요.”
미스 밸런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머리가 무척 아름다웠어요. 꼭 선생님 머리 색깔이었어요. 아마 그렇게 빨갛지는 않았던 것도 같고.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왔어요. 약혼한 상태에서 저세상으로 갔어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선생님도 약혼하셨다고요. 난 별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약혼을 하면 참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오, 물론 나도 약혼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내가 너무 까다롭게 굴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코탤로 집안사람이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다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럴 수는 없는 일 같기도 했다.
“저 구석 옻나무 밑에 잠든 프랭크 딕비가 나를 좋아했어요. 저 사람을 거절했을 때 좀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딕비 집안사람이라니, 안 되죠! 그래서 그 사람은 조지너 트루프와 결혼했어요. 조지너는 자기 옷을 자랑하려고 교회에 늦게 나타나고는 했던 여자예요. 정말로 옷치장을 즐겼죠! 죽어 무덤에 누웠을 때는 예쁜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어요. 내가 결혼식에 입고 갈 옷으로 만들어주었는데 자기 장례식에 입게 되다니. 조지너에게는 아이들이 셋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모두 귀여웠죠. 교회에 가면 늘 내 앞자리에 앉고는 해서 내가 사탕을 주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건 나쁜 일일까요, 셜리 선생님? 박하사탕은 아니었어요. 박하사탕이라면 좋았을 텐데. 박하사탕은 어딘지 종교적인 구석이 있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그 아이들이 박하사탕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코텔로 집안 묘지 구역이 끝나자 미스 밸런타인의 기억을 더듬는 말에 가시가 돋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텔로 집안사람과 다른 집안사람이 특별히 차이가 나서는 아닐 것이다.
“러셀 프링글 할머니는 여기 묻혔어요. 난 종종 그분이 천국에 가 있을지 궁금하답니다.”
“아니, 왜요?”
앤이 좀 놀라 물었다.
“그 할머니는 자기 언니 메리 앤을 미워했어요. 언니는 몇 달 먼저 죽었죠. ‘만일 메리 앤 언니가 천국에 있으면 난 거기 가지 않을 테야.’ 하고 말했거든요. 그 할머니는 언제나 자기가 뱉은 말엔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어요. 영락없는 프링글 사람이었죠. 프링글 집안에서 태어나서 결혼도 자기 사촌인 러셀하고 했으니까요. 이 무덤은 댄 프링글 부인의 묘예요. 제니터 버드라고. 죽을 때 일흔 살에서 딱 하루가 모자랐어요. 사람들은 이 부인이 일흔 살에서 하루라도 더 살다 죽는 건 잘못이라고 여겨서 하루 모자라게 죽었을 거라고들 했죠. 그것이 성경에 정해진 사람의 수명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사람들이란 게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왜. 제니터가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멋대로 한 일은 죽은 일뿐이라고들 했어요. 그 남편이라는 사람이 제니터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자를 사왔다고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아니, 모르겠는데요.”
“그 모자를 먹어치웠대요.”
미스 밸런타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아주 작은 모자였어요. 레이스와꽃장식이 달린. 깃털은 달리지 않았고요. 그래도 그것이 소화가 될 리는 없었을 텐데. 아주 한참 동안 배에 심한 통증이 있었겠죠? 물론 그 사람이 모자를 먹는 걸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난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어요. 그럴 것 같지 않나요?”
“전 프링글 사람 이야기라면 뭐든 믿어요.”
앤이 쓰디쓴 표정으로 답했다.
미스 밸런타인이 다 이해한다는 듯 팔을지그시눌러왔다.
“난 선생님 마음을 알아요, 그럼요.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이지 못됐어요. 하지만 서머사이드에 프링글 사람만 사는 건 아니라고요, 셜리 선생님.”
“하지만 전 여기에 프링글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앤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선생님이 그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잊지 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들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 속에는 못된 악마가 들어 있어요. 게다가 똘똘 뭉치죠. 그리고 미스 사라는 자기 집안사람이 그 학교 교장이 되길 원했어요.”
“이 무덤에는 나단 프링글이 잠들어 있어요. 나단은 항상 자기 부인이 자기를 독살하려 하지만 자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다녔죠. 그래서 인생이 더 스릴 있다나요. 한 번은 부인이 자기 죽에 비산을 넣은 것 같아서 그 죽을 돼지에게 주어버렸대요. 그런데 진짜로 그 돼지가 3주 후에 죽었대요. 하지만 그 사람은 그건 우연일지도 모르고 죽어버린 돼지가 자기가 죽을 준 그 돼지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자기 부인이 자기보다 먼저 죽자 그 사람은 자기 아내가 그 한 가지만 빼놓고는 정말로 좋은 아내였다고 했죠. 그렇지만 그 한 가지란 것도 그 사람이 오해를 한 거라고 믿는 게 좋겠지요.”
“‘미스 킨제이의 기억에 바치며’ 묘비명이 이상하기도 해라! 이분에게 다른 이름은 없나요?”
앤이 놀라 물었다.
“있었겠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노바스코샤에서 온 사람인데 조지 프링글 씨 집에서 40년 동안 일했어요. 자기 이름은 미스 킨제이라고만 했으니 모두들 그렇게 불렀죠. 그런데 갑자기 죽는 바람에 아무도 그 여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죠. 친척도 찾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비문에 이렇게 쓴 거예요. 조지 프링글은 그 여자 장례를 잘 치러주었고 묘비도 이렇게 세워줬죠. 아주 충직하고 일도 열심히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여자를 한 번이라도 봤더라면 참 타고나기를 미스 킨제이로타고났구나했을 거예요. 제임스 몰리 부부는 여기 누웠네요. 내가 이 부부의 금혼식에 초대받았는데, 굉장했어요. 선물이니 연설이니 꽃이니. 자식들도 모두 집에 왔고 부부는 싱글벙글하며이 사람저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죠.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온 힘을 다해 서로를 미워했어요.”
“서로 미워했다고요?”
“대단했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요. 몇십 년을 그렇게 지냈어요. 결혼하면서부터 줄곧 그렇게 살았으니까. 사실 결혼식을 끝내고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써 싸우기 시작했대요. 그런 사람들이 어쩌면 이토록 사이좋게 나란히 묻혔는지 정말 이상해요.”
앤은 또다시 몸서리를 쳤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식탁에마주 앉아밥을 먹고, 밤에는 곁에 누워 잠들었을 테고, 자기들 아기의 세례도 함께 받았을 테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서로를 미워하며 살았다니! 그래도 처음에는 서로 사랑했겠지. 길버트와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당치않아! 프링글은 정말 기가 막힌 사람들이야.
“아주 잘생긴 남자였던 존 맥탑은 여기 묻혀 있어요. 사람들은 이 남자 때문에 어네터 케네디가 물에 빠져죽었을 거라고 쑥덕거렸죠. 맥탑 집안사람은 모두들 잘생기기는 했지만 그 사람들 말은 하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여기는 존의 삼촌인 새뮤얼의 비석이 서 있던 자리예요. 50년 전에 존의 삼촌이 바다에서 빠져죽었다는 기별이 왔었죠. 그래서 비석을 세운 건데 나중에 그 사람이 살아 돌아와 그 집안에서 비석을 치워버렸어요. 그런데 그 비석을 판 집에서 돈을 물려주지 않자 새뮤얼의 아내가 그 비석을 빵 반죽하는 판으로 썼지요. 대리석 묘비 위에서밀가루 반죽을 했다는 얘기죠! 새뮤얼 부인은 그 오래된 비석이 빵을 밀기엔 그만이었다고 했어요. 맥탑네 아이들은 늘 학교에 글씨나 숫자가 새겨진 과자를 가져왔어요. 비문이 찍힌 거지요. 그 집 아이들은 아주 인심 좋게 그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는 했지만 나는 찜찜해서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나는 결벽증이 있었거든요. 이 무덤은 할리 프링글 씨 무덤이에요. 이 사람은 언젠가 선거에서 내기를 했다가 지는 바람에 부인 모자를 쓰고 피터 맥탑을 손수레에 태워 큰길까지 밀고 가야 했어요. 온 서머사이드 사람들이 모조리 구경을 나왔지요. 물론 프링글 집안사람들만 빼놓고요. 그 사람들이야 수치감으로 치를 떨었겠죠. 이 무덤은 밀리 프링글의 무덤이군요. 밀리는 참 착한 사람이었어요. 밀리도 프링글 집안사람이긴 했지만. 가끔씩 오늘 밤 같은 날이면 난 밀리가 무덤에서 빠져나와 예전처럼 춤을 추고 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요. 하지만 그리스도교인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지요. 여긴 허브 프링글의 무덤이에요. 이 사람도 프링글치고는 좋은 사람이었지요. 항상 사람들을 웃게 했어요. 한번은 교회에서도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니까요. 메타 프링글이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모자에 달린 꽃에서 쥐가 튀어나왔거든요. 하지만 난 웃을 마음이 없었어요. 그 쥐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어떻게 웃음이 나와요. 난 교회에서 나올 때까지 발목에서부터 내 치맛자락을 꽉 붙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설교 말씀을 하나도 듣지 못했죠. 허브는 바로 내 뒤에 앉아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쥐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사람은 죽었어도 그 웃음소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만일 허브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선생님 편을 들어주었을 거예요. 사라가 아니라 사라 할아비가 와도요. 아, 이건 이미 알아보셨겠지만 에이브러햄 프링글 선장의 기념비예요.”
그 기념비가 이 묘지를 다 압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네 단의 네모진 받침돌 위에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서 있고, 꼭대기에는 천이 잔뜩 늘어진 항아리를 인 통통한 천사가 피리를 불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정말이지 꼴불견이네요!”
앤이 솔직하게 말했다.
“어머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미스 밸런타인은 좀 놀란 모양이었다.
“처음 세웠을 땐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했죠. 저 상은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 가브리엘이에요. 나는 저 기념비가 이 묘지를 근사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데요. 돈을 9백 달러나 들였대요. 에이브러햄 선장은 정말 훌륭한 노인이었어요.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는 게 아쉬워요. 선장님이 살아 계셨다면 그 사람들도 지금처럼 선생님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거예요. 미스 사라와 미스엘런이 자기 아버지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에요. 정도가 좀 심하기는 하지만.”
묘지 정문에서 앤은 방금 걸어온 쪽을 돌아보았다. 바람도 없는 묘지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화로운 고요가 머물고 있었다. 달빛이 기다랗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어둑어둑한 전나무 숲 사이로 스며들어 여기저기 비석에 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래, 묘지는 슬픈 장소가 아니다. 미스 밸런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여기 누운 사람들이 모두 살아 있는 듯 느껴졌다.
“선생님은 소설을 쓴다고 들었는데, 내가 한 이야기들을 소설에 넣지는 말아주세요.”
두 사람이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미스 밸런타인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넣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앤은 약속했다.
“죽은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건 정말로 잘못된 일, 아니, 위험한 일일까요?”
미스 밸런타인은 정말로 걱정스러운 듯 속삭였다.
“전 잘못도 위험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좀 불공평한 게 아닐까요. 자기 몸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을 때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미스 밸런타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히 심한 말은 하지 않았어요.”
앤이 말했다.
“나단 프링글이 아내가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의심을 했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건 오해일 거라고 나단 부인을 두둔했잖아요.”
이 말에 미스 밸런타인은 안심하고 돌아갔다.
14. 요한계시록 14장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 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일 따름이라 하시더라.





6





집으로 돌아와 앤은 길버트에게 편지를 썼다.

오늘 저녁때 난 묘지로 발길을 돌렸어. ‘발길을 돌리다’란 말이 너무 멋지게 들리지 않아? 앞으로는 그 말을 자주써볼까 해. 묘지 산책을 즐겼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즐거웠어. 미스 밸런타인이 해준 이야기들이 굉장히 흥미로웠거든. 인생에는 희극과 비극이 뒤섞여 있어, 길버트. 50년이나 함께 살면서 늘 서로를 미워했다는 부부의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달라붙어 떠나지를 않아. 그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살았을까? 누군가가 ‘미움이란 사랑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라고 말했다지만, 둘이 서로 미워하는 마음 뒤에는 두 사람 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하면서도 너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죽음이 그 두 사람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었을 거라고 생각해. 삶에 뭔가를 좀 알게 되어 기뻐. 그리고 묘지에서 프링글 사람 중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죽은 사람들이지만.
어젯밤 내가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갔더니 세상에나, 케이트 아주머니도 부엌에서 버터밀크를 얼굴에 바르고 계셨어. 채티 아주머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더라.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할 거라면서. 난 절대로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렸지.
그 여자는 기관지염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엘리자베스가 우유를 받으러 나와. 캠벨 부인도 프링글 사람인데 엘리자베스를 내보내는 게 좀 이상해. 지난 토요일 밤에는 엘리자베스, 아니 그날 밤에는 베티였어, 베티가 나와 헤어져 노래를 부르면서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현관문에서 그 여자가 “안식일이 가까웠는데 그런 노래를 부르는 건 안 될 일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그 여자는 어떤 날이고 간에 엘리자베스가 노래 부르는 걸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엘리자베스는 그날 밤 진한 포도주 빛깔 새 드레스를 입었어. 그 사람들은 아이 옷만큼은 예쁘게 만들어 입히지.
“오늘 밤 이 옷을 입었을 때 제가 예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셜리 선생님. 아빠가 제 모습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내일에는 아빠가 절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가끔씩 내일이 너무 느리게 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셜리 선생님.”
엘리자베스는 생각에 잠겨 말했어.
이제 길버트, 난 기하 문제를 좀 풀어야 해. 기하 문제는 레베카가 내 ‘문학 수업’이라고 지칭한 그 시간을 다 앗아가 버려. 난 가끔씩 내가 수업 중에 아이들이 묻는 기하 문제를 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시달려. 그럼 프링글 아이들이 뭐라고 수군대겠어. 오,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그나저나 길버트, 나와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저 상처받고 학대받는 수고양이를 위해 기도 좀 해줘. 며칠 전에 부엌에서 쥐 한 마리가 레베카 듀의 발 위로 지나갔어. 그날 이후로 레베카는 무지막지하게 화를 내고 있어.
“저 고양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고 먹기만 하면서 쥐가 이 집을 점령하게 놔둔다니까. 저 고양이는 정말이지 가관이야.”
어찌 됐든 레베카가 괴롭혀 대는 통에 더스티는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해. 더스티가 좋아하는 쿠션도 빼앗아버렸어. 거기다 고양이를 밖으로 내놓으면서 발로 세게 차는 걸 내 눈으로 보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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