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6권 17~18

나단비 | 2024.04.11 18:36:02 댓글: 5 조회: 116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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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계속해서 앤의 편이었다. 부인 선교회에서 앤에게 처칠 부인 집을 방문해서 올해 기부금을 받아왔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 처칠 부인은 교회에 나오지도 않았고 부인 선교회 회원도 아니었지만 기부금을 내달라 하면 ‘선교의 힘을 믿는다.’라며 늘 후하게 기부금을 내주었다. 다만 그 집에 기부금을 거두러 가는 일을 아무도 내켜하지 않아서 회원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그 집을 방문했고 올해는 앤 차례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앤은 글렌 마을에서 800미터 정도 떨어진 처칠 농가로 향했다. 예쁜 데이지 꽃길이 기분 좋고 시원하게 언덕마루를 넘어 죽 이어지는 길이었다. 꽃길을 지나자 좀 우중충한 농장 진입로가 나왔다. 가파른 비탈길에는 통나무를 일정한 각도로 교차시켜 세운 울타리가 서 있었다. 집에는 전등이 반짝였고, 개울도 흘렀으며, 바다까지 비탈져 있는 건초밭에서 나는 풀 냄새가 감돌았다. 정원도 있었다. 앤은 걸음을 멈추고 뜰을 둘러보았다. 앤의 뜰에 흥미는 영원히 마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앤은 제목에 ‘뜰’자만 들어가도 책을 산다고 길버트가 말한 적도 있었다.
저 아래 항구에는 작은 배 하나가 한가로이 떠 있고 더 멀리로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머물러 있었다. 앤은 저 먼 바다로 향하는 배를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젠가 프랭클린 드류 선장이 부두에서 배에 오르며 ‘오, 육지에 두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가엾도다!’ 하고 말했을 때 앤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평한 맨사드 지붕을 빙 둘러 음침한 철제 장식 울타리를 세운 커다란 처칠 저택이 항구와 모래 언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칠 부인은 적당하지만 정중하게 앤에게 인사를 하고 음침하면서도 호화로운 응접실로 안내했다. 짙은 갈색 벽지를 바른 벽에는 처칠 집안과 엘리엇 집안 조상들의 그림들이 수없이 걸려 있었다. 처칠 부인은 녹색 벨벳 소파에 앉아 길고 여윈 손을 마주 잡고 방문객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메리 처칠은 키가 크고 마른 몸에 위엄이 있어 보였다. 턱은 튀어나왔고 파란 눈은 올덴처럼 깊숙이 자리를 잡았으며 큰 입은 꽉 다물어져 있었다. 절대로 쓸데없는 말이나 소문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앤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기가 좀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칠 부인이 좋아하지 않는 항구 너머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 이야기를 하면서 어찌어찌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는 있었다.
“그 사람은 별로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처칠 부인이 차갑게 말했다.
“전 그분의 설교가 아주 훌륭하다고 들었어요.”
앤이 응수했다.
“나도 한 번 그분 설교를 들은 적이 있지만 다시는 듣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내 영혼은 먹을 것을 원하는데 음식은 안 주고 설교만 주더군요. 그분은 머리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목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로브리지 교회 목사님이 머리가 좋은 분이지요. 제 생각에 그분은 스텔라 체이스라는 젊은 아가씨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소문에 따르면 둘이 맺어질 거라고들 하던걸요.”
“지금 결혼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처칠 부인이 말했다.
앤은 호되게 야단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고 나서는 마당에 이 정도는 참고 견뎌야만 한다고 마음먹었다.
“전 그 두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해요, 처칠 부인. 스텔라는 특히 목사의 아내로 딱 좋은 사람이니까요. 제가 올덴에게도 둘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어요.”
“왜요?” 
처칠 부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물었다.
“글쎄, 사실 그렇잖아요. 아무래도 올덴에게는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체이스 씨는 어떤 사람도 스텔라에게는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올덴의 친구들은 모두 올덴이 헌 장갑처럼 버려지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걸요. 올덴같이 훌륭한 청년이 그런 꼴을 당한다면…….”
“어떤 아가씨도 내 아들을 싫다고 한 적은 없어요. 언제나 그 반대였지요. 곱슬머리라서 싫다, 소리 죽여 킥킥 웃어대서 싫다, 몸을 비비 꼰다, 비위나 맞추려 든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내 아들이 싫다고 했어요. 내 아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어떤 여자하고도 결혼할 수 있어요, 블라이드 부인. 어떤 여자하고라도요.”

처칠 부인이 입술을 꾹 다물고 말했다.
“그래요?” 하고 말하는 앤의 말투는 ‘제가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서 부인 말에 더는 반대를 안 하지만 부인은 내 생각을 바꾸지 못해요.’ 하는 의미가 분명했다. 처칠 부인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파리한 주름투성이 얼굴이 조금 붉어지더니 선교회 기부금을 가져온다며 방을 나갔다.
“여기 전망은 무척이나 좋군요.”
처칠 부인이 문 앞까지 따라 나오자 앤이 말했다.
처칠 부인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눈초리로 앤을 바라보았다.
“겨울철 동풍의 매서움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나이가 되면 전망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질걸요, 블라이드 부인. 오늘 밤은 꽤 쌀쌀한데 그렇게 얇은 옷을 입고 감기나 걸리지 않을지 걱정되는군요. 그렇다고 그 옷이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아직은 젊은 나이이니 그렇게 화려하고 허영으로 가득 찬 것에 마음이 끌리겠죠. 나는 그런 덧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랍니다.”
앤은 어둑어둑한 녹색의 황혼녘에 집을 향해 걸으며 오늘 만남이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만족했다.
앤은 숲을 갈아엎어 만든 조그만 밭에서 회의를 열고 있는 찌르레기 무리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처칠 부인을 믿거나 안심할 수는 없어. 하지만 오늘 내가 그 부인을 좀 안달하게 만든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아. 올덴이 여자에게 차였단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가 분명히 보였거든. 자, 이젠 체이스 씨만 빼놓고는 이 일에 연관된 사람에게 내 할 일은 다했어.

하지만 체이스 씨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쩐담? 그 사람이 올덴과 스텔라가 서로 연인관계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나 했는지 모르겠어. 아마 아닐 것 같아. 스텔라는 감히 올덴을 집에 데려갈 생각도 하지 못할 테니까. 자, 이제 체이스 씨를 어떻게 요리한담?”
하지만 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풀려나갔다. 어느 날 저녁에 미스 코넬리아가 와서 앤에게 함께 체이스 씨 집에 다녀오자고 부탁해온 것이다.
“교회 부엌에 새 스토브가 필요해서 리처드 체이스에게 기부금을 부탁하러 가야 해요. 나랑 같이 가서 나를 정신적으로라도 좀 도와줘요, 앤. 나 혼자 그 사람과 맞서기는 싫거든요.”
체이스 씨는 현관 계단에 서 있었다. 그 긴 다리와 긴 코가 꼭 명상에 잠긴 학처럼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머리 몇 가닥을 대머리 꼭대기로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작은 회색 눈을 깜박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체이스 씨는 코넬리아와 함께 오고 있는 저 부인이 의사 선생 부인이라면 의사 부인이 퍽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또 육촌 누이인 코넬리아는 좀 억세게 생겼고 머리는 메뚜기만큼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대로 쓰다듬어주기만 한다면 나쁜 고양이 할멈은 아니었다.
체이스 씨는 두 사람을 점잖게 서재로 맞아들였다. 미스 코넬리아는 의자에 앉으며 희미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오늘 저녁은 굉장히 덥구나. 폭풍우가 불어닥칠 것 같아. 어머나, 리처드, 저 고양이는 전보다 몸집이 훨씬 커졌구나.”
리처드 체이스에게는 몸집이 아주 큰 누런 고양이 친구가 있었다. 그 고양이가 그의 무릎 위로 올라오자 체이스 씨가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 세상에 토머스 라이머만한 고양이는 없지요. 코넬리아 아주머니를 봐라, 라이머. 친절과 애정을 표현하라고 만들어진 눈으로 참 심술 사납게도 너를 바라보는구나.”
체이스 씨가 말했다.
“내가 저런 짐승의 아주머니라니. 아무리 농담이라도 너무 지나치다.”
미스 코넬리아가 날카롭게 항의했다.
“네디 처칠의 아주머니보다는 토머스 라이머의 아주머니가 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네디는 욕심 사납게 먹어대기나 하고 술꾼이잖아요, 안 그래요? 참, 누님이 네디가 저지른 죄목을 만들었다면서요? 위스키건 암고양이 문제건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토머스 같은 훌륭한 고양이의 아주머니 쪽이 낫지 않겠어요?”
리처드 체이스는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가여운 네드는 적어도 인간이잖아.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올덴도 이상하리만큼 고양이를 좋아해. 그게 바로 올덴 처칠의 유일한 결점이지. 도대체 그런 점은 어디서 물려받은 건지 모르겠어. 올덴 어머니도 아버지도 고양이를 싫어하는데.”
“분명 분별력 있는 젊은이인 게지요.”
“분별력이 있다고! 글쎄, 충분히 분별력이 있지. 고양이와 진화론을 믿는다는 문제만 빼면. 바로 그 점도 제 어머니를 닮지 않았어.”
“있잖아요, 코넬리아 누님. 나도 진화론을 믿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리처드 체이스가 엄숙하게 말했다.
“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 글쎄, 네가 원하는 대로 믿으렴. 사내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하지만 나를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믿게 만들 건 아무것도 없다.”
“누님이 원숭이 후손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누님은 아름다운 부인이지요. 장밋빛 얼굴에 여유 있고 무척이나 점잖은 인상이거든요. 하지만 몇백만 년 전의 누님 조상은 꼬리를 나뭇가지에 감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훌쩍훌쩍 넘어 다녔지요. 과학이 입증한 얘기예요. 믿거나 말거나.”
“그럼 난 믿지 않으련다. 그런 문제로 너와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 난 믿는 종교가 있고, 그 종교에는 원숭이를 닮은 조상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아. 그나저나 리처드, 올여름 스텔라는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아 걱정이더라.”
“스텔라는 언제나 여름이면 더위를 타요. 날씨가 선선해지면 괜찮아질 거예요.”
“나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리제트도 해마다 여름이 끝나면 건강해졌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그렇지를 못했잖니. 리처드, 그걸 잊으면 안 돼. 스텔라는 제 엄마 체질을 닮았어. 그 애는 결혼 같은 건 할 것 같질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째서 그 아이가 결혼 같은 건 할 것 같지 않다는 거죠? 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여자들 사고방식은 정말 재미있어요. 도대체 어떤 전제, 또는 어떤 근거로 그런 결론을 내린 거죠? 스텔라가 결혼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이요. 아무렇게나 떠오른 순간적인 생각인 거죠?”
“글쎄다, 리처드. 솔직히 말하면 스텔라는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아가씨가 아니야. 마음씨 곱고 상냥하기는 하지만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
“스텔라를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있어요. 내가 그 녀석들을 쫓아버리려고 새총과 불도그를 사들이고 건사하는 데 돈을 얼마나 썼게요.”
“내 생각엔 그 사람들은 네 지갑을 쫓아다닌 게 아닐까 싶은데. 모두들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잖아, 안 그랬어? 네가 비웃는 소리를 퍼부으면 그냥 줄행랑들을 했잖니. 그 젊은이들이 정말로 스텔라를 좋아했다면 불도그에 도망쳐버리지는 않았을 거다. 스텔라가 좋은 배우자를 만날 만한 아가씨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게 좋아. 리제트도 그랬잖니. 네가 나타날 때까지 리제트에게 청혼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어.”
“하지만 난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지요? 확실히 리제트는 현명한 여자였어요. 나는 내 딸을 아무 젊은이에게나 줘버릴 생각이 없어요. 누님이 아무리 우습게 여기더라도 별과 같은 내 딸은 왕의 궁전에서 반짝여야 어울릴 아이니까요.”
“캐나다에는 왕이 없어. 나는 스텔라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다만 남자들이 스텔라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거지. 그 아이의 건강 상태를 생각해보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고. 그 편이 너한테도 좋지, 뭐. 넌 그 아이 없이는 못 살잖니. 스텔라가 시집이라도 가는 날에는 넌 아기처럼 어쩔 줄을 몰라 할걸. 자, 이제 교회에 스토브 레인지를 기부해주겠다고 약속이나 하지 그래. 그럼 우리는 갈 테니까. 지금 저 책을 집어 들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는 걸 나도 다 알고 있다고.”
“과연 존경스럽고 현명한 부인이십니다! 그런 누님이니 매형에게는 또 얼마나 소중한 보물이겠어요! 그래요. 나는 저 책이 읽고 싶어 죽을 지경이에요. 이런 제 마음을 알아볼 만큼 통찰력이 있거나 제 목숨을 구해줄 만큼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누님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제가 얼마를 내놓길 원하나요?”
“5달러는 내놓을 수 있겠지?”
“난 숙녀와는 절대로 입씨름하지 않지요. 여기 5달러요. 아, 가시게요? 누님은 절대로 시간도 허비하지 않는 분이지요, 참 개성이 강해요! 일단 목표를 달성하면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버린다니까요. 요즘 그런 고양이는 보기 드물지요. 잘 가세요, 매형의 소중한 진주!”
체이스 씨를 방문하는 내내 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기 대신 미스 코넬리아가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영악하게 할 말을 다 해주어서 앤은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다. 리처드 체이스는 가볍게 머리 숙여 두 사람을 배웅하려다가 별안간 앞으로 몸을 구부리며 은근하게 말했다.
“발목이 무척이나 아름답군요, 블라이드 부인. 나도 한창때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지요.”
“참 끔찍한 사람 아니에요? 언제나 저렇게 여자에게 무례한 말을 한다니까요. 저 사람 말에는 마음 쓰지 말아요, 앤.”
미스 코넬리아는 길을 걸어 내려가며 씩씩거렸다.
앤은 체이스 씨 말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처드 체이스에게 호감을 느꼈다.
‘자기 조상이 원숭이라는 건 괜찮아도 스텔라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생각은 못마땅한가 봐. 체이스 씨도 이제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들걸.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어. 올덴과 스텔라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도록 했었다고. 그리고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미스 코넬리아와 내가 처칠 부인과 체이스 씨도 잘 들쑤셔놓은 것 같아. 둘이 결혼하기를 바라는 쪽으로 말이야.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일이 어떻게 돼가는지 지켜보기나 해야겠어.’
앤은 생각했다.
한 달 후에 스텔라 체이스는 ‘잉글사이드’로 왔고 베란다 층계에 앤과 함께 앉아서 자기도 언젠가는 블라이드 부인처럼 저렇게 고상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원숙한 모습, 풍요롭고 축복받은 삶을 산 여인의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았다.
9월 초, 시원하고 노랗고 잿빛인 하루가 지더니 서늘하고 안개 자욱한 저녁이 이어졌다. 바다에서는 부드러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다가 오늘 밤엔 행복하지 않은가 봐.”
월터가 그 소리를 들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스텔라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보랏빛 하늘을 촘촘히 수놓고 있는 별을 쳐다보며 불쑥 입을 열었다.
“블라이드 부인, 저 할 말이 있어요.”
“그래, 무슨 말인데요?”
“저 올덴 처칠과 약혼했어요. 지난 크리스마스예요. 우리 아버지와 처칠 부인에게는 곧바로 말씀을 드렸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왔어요. 비밀을 간직하는 일은 너무 달콤하니까요. 우리 비밀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싫었어요. 우리 다음 달에 결혼해요.”
스텔라가 힘들여 말했다.

앤은 너무나 놀라 할 말을 잃고 굳어져 버린 사람의 연기를 훌륭하게 해보였다. 스텔라는 여전히 별을 바라보고 있어서 블라이드 부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보지 못했다. 스텔라가 아까보다는 더 쉽게 말을 이었다.
“올덴과 저는 지난 11월 로브리지 파티에서 만났어요. 우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를 사랑했어요. 그 사람은 언제나 저 같은 사람을 만나길 꿈꾸었고, 저 같은 사람을 찾아왔대요. 그 사람은 제가 문가에 나타난 것을 보고 ‘저 사람은 바로 내 아내야.’ 하고 생각했대요.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오, 우린 너무 행복해요, 블라이드 부인.”
여전히 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행복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건 우리 결혼에 대한 부인의 태도예요, 블라이드 부인. 저희 둘을 인정해줄 수는 없나요? 제가 글렌 세인트 메리에 온 이후로 부인은 언제나 제게 너무나도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셨어요. 전 부인을 제 큰언니처럼 느꼈다고요. 부인이 제 결혼을 반대한다면 전 몹시 속이 상할 거예요.”
스텔라의 목소리가 갈라졌고 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건 스텔라의 행복이에요. 나도 올덴을 좋아해요. 아주 훌륭한 청년이거든요. 단지 바람둥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어서 마음에 좀 걸린다는 거죠.”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단지 적당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고, 그런 사람을 찾아내지 못해서였던 거지요. 모르시겠어요, 블라이드 부인?”
“그 문제에 대해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아버지도 아주 좋아하세요. 올덴의 모든 점을 다 흡족해하시는걸요. 두 사람은 진화론에 대해 몇 시간이고 논쟁을 벌여요. 아버지는 언제나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저를 결혼시킬 작정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전 아버지를 떠나서 살아야 할 일이 몹시 싫지만 아버지는 젊은 새는 자기 둥지를 틀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사촌 델리아가 와서 아버지를 위해 집안일을 해줄 거예요. 아버지도 델리아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럼 올덴의 어머니는요?”
“올덴 어머니도 기뻐하세요. 지난 크리스마스에 올덴이 우리가 약혼했다고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성경을 펼쳤는데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9)하는 구절이 나왔대요. 그걸 보고 어머니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았다고 하면서 당장 승낙해주었어요. 올덴의 어머니는 로브리지에 있는 작은 집으로 가서 살겠다고 했어요.”
“그 초록색 벨벳 소파와 함께 살지 않아도 되어 잘됐군요.”
앤이 말했다.
“그 소파요? 그래요. 가구들이 너무 구식이에요, 그렇죠? 어머니가 가구들을 모두 가져가시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올덴이 가구를 모두 새로 들일 거구요. 모든 사람이 저희 결혼을 원한다고요, 블라이드 부인. 부인도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세요, 네?”
앤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스텔라의 차갑고 보드라운 볼에 입을 맞추어주었다.
“나도 무척이나 기뻐요. 두 사람의 앞날을 주님께서도 축복해주길 빌겠어요.”
스텔라가 가버리자 앤은 잠시 동안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얼른 자기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저 들판 위 동쪽 하늘 커다란 구름 뒤에서 그믐달이 나타나 자기를 비웃는 듯 얄밉게 내려다보았다.
앤은 지난 몇 주일 동안을 돌이켜보았다. 식당의 카펫을 망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소중한 가보를 둘이나 깼으며, 서재 천장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자기 딴에는 처칠 부인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내내 처칠 부인이 속으로 자기를 얼마나 비웃었을까.
앤은 달에게 물었다.
“이번 일로 누가 가장 큰 바보가 되었지? 길버트는 또 뭐라 하겠어. 이미 약혼한 두 사람을 결혼시키겠다고 그 일을 다 벌이다니. 이젠 중매쟁이 병은 고쳤어. 완전히 고쳤다고. 나 아니면 세상사람 그 누구도 결혼을 못 한다 하더라도 중매쟁이 일에는 두 번 다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겠어. 그래도 위안이 되는 소식이 한 가지는 있어서 다행이야. 오늘 젠 프링글이 우리 파티에서 만난 루이스 스테드먼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으니까. 브리스틀 촛대의 희생도 전혀 헛된 일은 아니었어. 얘야, 너희들! 그 괴상한 소리 좀 그만 지를 수 없니?”
“우리는 부엉이에요. 그러니까 부엉부엉 해야 한다고요.”
어두운 나무숲에서 젬이 소리쳤다. 젬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지게 부엉부엉 하고 있었다. 젬은 숲에 사는 모든 생물의 소리를 다 흉내 낼 수 있었다. 월터는 형만큼 부엉이 소리를 잘 낼 수 없어 부엉이 놀이를 그만두고, 환멸을 느낀 어린아이가 되어 엄마에게 달려와 위로를 구했다.
“엄마, 난 귀뚜라미가 노래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카터 플래그 씨가 귀뚜라미는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냥 뒷다리를 비비면 소리가 나는 거래요, 정말 그래요, 엄마?”
“그런 걸 거야. 나도 귀뚜라미가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 정확히는 모른단다.”
“그건 싫어요. 귀뚜라미가 노래 부르는 소리를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요.”
“아닐걸. 넌 곧 그 뒷다리 생각은 잊어버리고 추수한 들판과 가을 언덕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합창 소리만 생각하게 될 거야. 이제 잘 시간 아니니, 귀여운 엄마 아들?”
“엄마,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그리고 내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세요.”
“그럼, 그래 주어야지. 엄마가 그것도 안 해주면 되겠어?”
9. 창세기 2장 24절.




18






길버트가 말했다.
“‘바다코끼리가 말하길 이제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어.’10)개를 길러도 좋을 때가 됐다고.”
늙은 개 렉스가 독약을 먹고 죽은 뒤로 ‘잉글사이드’에서는 개를 기르지 않았다. 하지만 길버트는 남자아이는 개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언제고 개를 한 마리 구해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지만 올가을에는 너무 바빠서 그 일을 뒤로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 젬은 학교 친구네 집에서 오후 내내 놀다 품에 개를 한 마리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검은색 두 귀가 좀 건방져 보이게 곧추서 있는 조그만 노란 개였다.
“조 리즈가 줬어요, 엄마. 이 개 이름은 ‘지프’예요. 이 꼬리 정말 귀엽지 않아요? 내가 길러도 되죠, 엄마, 네?”
“무슨 종이니?”
앤이 물었다.
“글쎄 온갖 종류가 다 섞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재밌어요, 그렇죠, 엄마? 순종인 것보다 더 멋지다고요, 제발요, 엄마.”

젬이 말했다.
“그래, 아빠가 허락하시면.”
길버트는 물론 “그러렴.” 하고 말했고 젬과 지프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잉글사이드’의 모든 가족이 지프를 기꺼이 한 가족으로 맞아들였지만 슈림프만은 거부 의사를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수잔까지도 지프를 마음에 들어 했다. 주인이 학교에 가고 없는 어느 비 오는 날, 수잔이 다락방에서 물레를 돌리면 지프는 다락방 구석구석까지 상상의 쥐를 쫓아다니며 수잔과 함께 지냈다. 그러다 전에 이 집에 살던 모건 부인이 놓고 간 작은 물레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이 물레는 전혀 사용하는 일 없이 어둑한 구석에 놓여 있는데 그 모습이 꼭 등이 굽은 노파처럼 보였다.
수잔이 실을 잣는 커다란 물레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기까지 하면서 왜 그것을 지프가 무서워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수잔이 기다란 실을 돌리며 다락방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오락가락하면 저도 덩달아 곁에서 앞뒤로 뛰어다녔다.
수잔은 지프를 보면서 개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뼈가 먹고 싶으면 바닥에 벌러덩 누워 앞발을 흔들며 귀여움을 떠는 것을 보고는 어쩌면 이렇게 영리할까 하고 감탄했다. 버티 셰익스피어가 경멸하듯 “이것도 개라고 부르냐?” 하고 비웃었을 때는 젬 못지않게 분해하며 조용하지만 기분 나쁘다는 목소리로 쏘아주었다.
“그래, 우리는 개라고 불러. 넌 하마라고 부르냐?”
그날 버티는 수잔이 늘 만들어주는 ‘애플 크런치 파이’라고 부르는 그 맛있는 과자도 얻어먹지 못하고 돌아가야했다. 맥 리즈가 “그 강아지는 밀물에 떠내려 왔냐?” 하고 물었을 때는 다행히 수잔이 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젬이 벌떡 일어나 자기 개를 변호했다. 또 냇 플래그가 지프의 다리는 몸보다 너무 길다고 말했을 때도 젬은 강아지 다리는 땅에 닿을 만큼 충분히 길어야 되는 거라고 쏘아주었다. 냇은 그 말에 응수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그해 11월에는 햇빛이 거의 나지 않았고, 헐벗은 은빛 나뭇가지를 흔들며 매서운 바람만 단풍나무 숲으로 불어 닥쳤다. 골짜기는 거의 언제나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우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안개는 아니었고, 아빠 말대로 ‘음침하고 눅눅하고 우울하고 어지러운 안개’였다. ‘잉글사이드’ 조무래기들은 다락방에서 놀아야만 했는데, 저녁때가 되면 커다란 사과나무로 날아드는 명랑한 메추라기 두 마리와 아름다운 어치 다섯 마리와 놀기도 했다. 새들은 장난꾸러기들처럼 구구거리며 아이들이 준 먹이를 먹었다. 아이들을 전혀 겁내지 않고 서로 모이를 더 많이 먹으려 욕심을 내며 서로를 쫓아내기까지 했다.
12월이 되자 겨울은 깊어졌고 3주 동안이나 눈이 쉬지 않고 내렸다. ‘잉글사이드’ 건너편 들판은 사방천지가 은빛 목장으로 변했고 울타리며 문기둥도 흰 모자를 높이 쓰고 서 있었다. 창문도 모두 하얗게 환상적인 무늬를 그렸고, ‘잉글사이드’의 불빛은 눈 내리는 날의 어두컴컴한 황혼을 뚫고 밝게 퍼져 방랑자를 환영했다. 수잔은 그해 겨울만큼 아기가 많이 태어난 겨울이 없다고 생각했다. 밤마다 선생님이 먹을 밤참을 선반 그릇 속에 따로 남겨두면서 선생님 몸이 봄까지 지탱할 수 있으면 기적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드류 집안에 아홉 번째 아기가 태어났어요! 아직도 이 세상에 드류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에요.”
“우리가 릴라를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드류 부인도 자기 아기를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수잔.”
“농담이야 마음껏 하시지요, 사모님.”
눈보라가 몰아치고 보송보송한 하얀 구름이 얼어붙은 별을 가로질러 지나갈 때면 아이들은 서재나 커다란 부엌에 모여 여름이 오면 골짜기에 놀이 집 지을 계획을 세웠다. 바람이 소리 높이 불거나 나직이 불거나 난롯불이 붉게 타오르는 ‘잉글사이드’는 눈보라로부터 모두를 지켜줄 안락한 은신처였으며,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고 지친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찾아왔고 올해는 메리 마리아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도 없었다.
아이들은 눈 위로 난 토끼 발자국을 쫓기도 하고, 얼음이 언 들판을 자기 그림자와 함께 달리기도 했으며, 반짝이는 언덕을 썰매를 타고 미끄러지기도 했다. 장밋빛 석양이 물든 차가운 겨울 저녁 해를 받으며 연못에서 새로 산 스케이트를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귀는 까맣지만 몸은 노란 개도 함께 달렸다. 아니면 그렇게 놀다 집으로 돌아오면 정신없이 반갑다고 짖어대며 맞아주었다. 잠을 잘 때도 젬의 침대 발치께에서 자고, 젬이 철자 공부를 할 때는 발 언저리에 누워 있었으며, 식사를 할 때면 바로 곁에 앉아 조그만 앞발로 쿡쿡 치면서 자기에게도 먹을 것 좀 달라고 사정했다.
“엄마, 엄마, 지프가 오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지프는 말도 할 수 있어요, 엄마. 정말이에요. 있잖아요, 눈으로 말해요.”
그런데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느 날 지프가 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수잔이 특별히 지프가 아주 좋아하는 갈비뼈를 놓아주며 마음을 끌어보려고 했지만 먹으려 들지 않아 로브리지의 수의사를 불러왔다. 수의사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런 일이 생겨 무척 안됐지만 개가 숲에서 무언가 독이 든 것을 먹은 것 같아요. 나을지도 모르지만 낫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강아지는 조용히 누운 채 젬 말고는 아무에게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거의 마지막까지도 지프는 젬이 어루만지면 꼬리를 흔들려고 했다.
“엄마, 지프를 위해 기도하면 나쁜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무엇을 위해서라도 기도해도 된단다. 하지만 지프는 너무나 많이 아픈 것 같구나.”
“엄마, 지프가 죽는 건 아니겠죠?”
다음 날 아침 지프는 죽고 말았다. 젬은 처음으로 죽음이란 것과 대면했다. 누구라도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일은 잊을 수 없다. ‘한낱 조그만 개’에 지나지 않더라도.
슬픔에 젖은 ‘잉글사이드’ 사람은 그 누구도 한낱 조그만 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수잔조차도 붉어진 코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까지 개를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이젠 두 번 다시 개와 정들이지 않을 거예요. 너무도 가슴이 아파요.”
수잔은 개에게 애정을 쏟아 눈물을 흘리는 어리석음에 관한 키플링의 시는 읽은 일이 없지만 만일 그 시를 알았다면 그 시인이 뭔가 삶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밤이 되자 젬은 특히 더 힘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외출을 해야 했다. 월터는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버렸고 젬은 말을 걸어볼 개도 없이 혼자 남았다. 그 사랑스러운 갈색 눈을 들어 무척이나 믿는다는 듯 자기를 바라보고는 하던 지프는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하느님, 오늘 죽은 제 작은 개를 지켜주세요. 귀가 검은 개예요. 제발 저를 위해서 우리 강아지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젬은 기도를 올렸다.
젬은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불을 끄면 어두운 밤이 창문 너머로 젬을 들여다보겠지만 지프는 없었다. 차디찬 겨울 아침이 와도 지프는 없을 것이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몇 년이 지나도 지프는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도저히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누가 젬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아, 지프는 없어도 세상에는 아직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엄마, 언제까지나 이렇게 슬플까요?”
“아니,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아.”
앤은 젬이 곧 지프를 잊게 될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지프가 그리운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단다, 젬. 언젠가는 나아져. 전에 손을 데었지만 이제는 다 나은 것처럼 말이야. 물론 처음에는 몹시 아프단다.”
“아빠가 다른 개를 사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싫다고 해도 돼요? 전 다른 개는 싫어요, 엄마.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그래, 그럼.”
엄마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젬도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도 곧 알게 되었다. 플래그 씨네 상점에 있는 진주 목걸이를 사주고 싶었다. 언젠가 엄마가 진주 목걸이를 갖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아빠는 말했다.
“우리 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내가 진주 목걸이를 사주지, 앤 아가씨.”
그 목걸이를 살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생각해야 했다. 용돈을 받기는 했지만 그 돈은 모두 필요한 물건들을 위해 쓸 돈이고, 그 돈으로 진주 목걸이를 살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게다가 젬은 자기 스스로 그 돈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정말로 젬이 선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엄마 생일은 3월이었다. 앞으로 6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목걸이는 50센트나 한다!


10.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시 <바다코끼리와 목수>의 일부: 바다코끼리가 말하길,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여러 가지 것을 이야기하자.



추천 (1) 선물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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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썬2뉘썬2 (♡.169.♡.51) - 2024/04/12 02:52:43

진화론이 금방나왓을 때엿나바요.코넬리아가 원숭이의 후손이 아니라고 부정하는거보면.
개들이 줄줄이 독을먹고 죽네요.숲속에서 독버섯이라도 먹엇을까요?

나단비 (♡.62.♡.158) - 2024/04/12 06:32:21

어릴때 동물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이별도 배우게 되죠.

뉘썬2뉘썬2 (♡.169.♡.51) - 2024/04/12 06:59:33

나도 유쳔때 기르던개를 잡는다고해서 울엇댓어요.

나단비 (♡.62.♡.158) - 2024/04/12 11:29:32

정이 붙으면 너무 슬퍼지더라고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4/12 14:08:03

사람과 동물사이에도 어느샌가 애정이 스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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