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기]영화동호회

네로 | 2002.01.17 10:23:59 댓글: 0 조회: 808 추천: 0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72
11월 14일 그날은 무비데이(movie day,영화의 날)라고 한다.사랑하는 사람끼리 영화를 보는 날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기념일인것 같지는 않다.한국의 젊은이들사이에는 매월 14일마다 무슨 데이(day 날)라고 이름하여 애인과 같이 지내는것이 보통인데 여자들이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쵸컬릿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라는 서양풍습을 패러디하여 블랙데이라는것도 만들어냈고,(화이트데이는 하얀날이라는 뜻의 영어인데 블랙데이는 검정날이라는 뜻이 되겠음.)블랙데이를 기념하는 방법은 쇼킹하게도 짜장면을 먹는다고 한다.짜장면도 검정색이기때문이라나? 이밖에 옐로우데이(yellow day)에는 노란색 카레(인도의 향신료를 넣고 만든 스프,중국에서는 까리라고 부름)를 먹고 심지어 모 제과회사의 빼빼로라는 막대기과자를 먹는 빼빼로데이까지 있다.

뭐 달력에 빨간날로 적혀있는 공휴일도 아니고 생긴지도 얼마 안된 풍속이라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많고 나도 역시 그중의 한사람이였다.그런데 무비데이에 대화방을 들어갔다가 제로라고 하는 여자애한테서 이러루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제로는 그날 심야영화할인티켓(優惠券)을 어디서 한다발 구해왔는데 퍼그나 여유가 있는지라 같이볼사람이 없냐고 물어봤다. 영화를 좋아하는데다가 모임같은곳에 한번 참가해보고싶었는지라 나는 첫사람으로 신청했다.

대화방에 식구는 많았지만 서울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태반인지라 그날 모임에 참가하기로 한 사람은 많지 못했다.나밖에 별기와 미인송이 같이 참가하겠다고 했다.물론 이야기는 나눠봤으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다.

거뭇거뭇 땅거미가 질때즈음 나는 약속장소인 광화문역의 세종문회회관앞에 나타났다. 커다란 정문앞에 조그마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는데 나를 보자 앞으로 다가온다.

<혹시 무우님?> <그럼 제로님이세요?> 서로 알아보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다들 완즈방에서 대방의 얼굴을 보았으니까.게다가 나는 유표하게 샛노란 머리를 하고있었다.처음엔 다소 서먹서먹해서 수인사를 나누다가 길가에 자리잡은 종로빈대떡이라는 가게에 들어가서 빈대떡을 시켜놓고 앉았다. 가게내부는 비좁고도 북적거렸으며 밥상이나 걸상도 어느 도끼목수의 솜씨인듯 투박하고 거칠기 그지없었다.서울시 한복판에 이런 가게가 있다는것이 놀라울 지경이였지만 손님은 신기할 정도로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로는 나보다 몇살아래이고 현재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중인 유학생이고 모임에 같이 참가하기로 한 별기와 미인송도 유학생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내가 부천이라는곳에서 막일을 하고있다는것은 제로도 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미 알고있었다.

좀 있으니 별기와 미인송도 약속대로 찾아왔다. 자리를 정리하고 우리가 찾아간곳은 정동스타식스라는 극장이였다. 제로는 할인티켓으로 덤으로 제공하는 콜라까지 뽑아왔다.

이른바 심야영화란 영화 3편을 연이어 상영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2편정도의 요금을 받았는데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은 볼수가 없으므로 관객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어느 여중인지는 몰라도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퍼그나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있는데 입을 벌리고 자는 애들도 눈에 몇몇 들어왔다.

그날 영화는 "리베라매"라는 한국영화와 키에누리브스가 주연한"왓쳐"그리고 장만옥과 양조휘가 나오는 "화양연화"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화양연화"는 유려한 영상미와 애절한 배경음악으로 보는이의 심금을 울렸다.주제가(사운드트랙)에서 키쓰아스라는 말이 자주 나오자 나는 그만 머리를 갸우뚱했다. 왜 키스미(kiss me)도 아니고 키스유(kiss you)도 아닌 키스아스(kiss us)란 말인가? 우리를 키스해달라고?

참지못하고 살그머니 물어봤더니 모두 배를 그러안고 웃는다.알고보니 주제가는 영어가 아닌 멕시코노래였고 키스아스도 kiss us가 아니였던것이다.

세편의 영화가 끝났을때에는 이미 새벽무렵이였다.출출한 배를 그러안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때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있을리 없었다. 전철운행시간까지는 퍼그나 남아있었으므로  요행을 바라고 주변을 맴도던중 큰길가에서 24시간편의점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들은 편의점에 들어가더니 익숙한 솜씨로 컵라면을 꺼내서 정수기의 더운물을 받았다.판매원보고 나무젓가락을 달라고 하는가하면 온장고에서 오뎅을 꺼낸다.나는 모든게 신기할뿐이였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을수 있다는것조차 몰랐으니까...

편의점밖의 코카콜라로고가 큼직하게 박혀있는 비닐의자에 앉아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웃었다. 이국타향에서 이렇게 만나서,그것도 동틀녘의 큰길가에서 컵라면을 같이 먹게 될줄은 누가 알았으랴?

별기는 길가의 고층빌딩에서 번쩍이는 거대한 전광판을 가리키며<야,저 텔레비 크기두 하다야,보면서 먹기쇼.>라고 너스레를 떤다.제로도 뒤질세라 한마디 보탠다.<배경이 정말 멋있슴다. 양옆에는 고층빌딩이 줄서있고 옆의 큰길에서는 승용차가 실북나들듯 하고,좀 있다가 해돋이까지 보면서 라면을 먹으면 더 멋있을텐데..ㅎㅎㅎ>  차분한 성격의 미인송은 앉아서 웃기만 한다.

서로 좀전에 본 영화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하고 어느것은 재미없다고 흉을 보기도 하고, 쌀쌀한 늦가울의 추위속에서도 우리의 아침식사는 즐겁기만 하였다.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입구에서 서로 작별인사를 하려니까 다들 아쉬웠다.다시만날것을 약속하다가 누군가 먼저 말한다.<우리 이럴것이 아니라 아예 모임을 만들어서 자주 만납시다.>즉석에서 네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일치를 보았고 "영화동호회"라는 소모임을 결성하였다. 회장에는 제로가 담당하였고 나도 팔자에 없는 서기라는 영광스러운 직함?을 한자리 얻어가지게 되였다.

우리의 영화동호회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네사람으로 시작된 영화동호회는 차츰 규모를 갖춰갔다.그도 그럴것이 한국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모임같은것은 기존에 별로 없었고 한두번 만나더라도 지속적으로 만날 계기가 없었는데 영화모임이라는 가벼운 주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회포도 풀수 있었던것이다.

얼마안지나서 영화동호회는 창립모임을 가졌는데 장소는 신촌의 그랜드마트영화관이였다.제로는 심지어 6mm 디지털캠코더까지 메고나와  "현장녹화"를 담당하였다. 참가자들은 나만 빼고 죄다 유학생들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대화방을 다니는 사람들치고 유학생이 많은데다가 나같은"노가다"들은 거개가 인터넷과 담을 쌓고 살았으니까...

참가자중에는 조선족유학생사이트의 운영진인 들레와 운중이도 있었다.알고보니 운중이는 나와 같은 화룡고중동창이였다.세상은 참 넓고도 좁은가부다.

회식자리는 신촌역근처의 안주백화점이라는 허름한 음식점이였다.음식점은 길가에 있는데 어찌나 꺼진곳에 있는지 길에서면 발이 지붕보다 더 높았다. 집안내부는 더욱 가관이였는데 세멘트가 울퉁불퉁한 바닥에다 벽은 모두 낡은 신문지따위로 도배가 되여있다. 하지만 까닭없이 이곳도 신촌의 유명장소였다.입구의 벽에는 유명인들의 싸인이 즐비했다. 영화배우 박신양의 싸인이 있는가 하면 이름난 만화가 박광수가 그린 "광수생각"도 있었다.

그것을 본 우리가 가만히 지나칠수가 없었다. <아줌마,여기 매직펜 좀 주세욥!> 아줌마는 기가 막혀서 안줄려고 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는지라 마지못해 펜을 내준다. 나는 매직펜을 받아서 중국말로 큼직하게 갈겨썼다.<우리 영동회,여기서 놀다가다!> 얼마전에 우연히 안주백화점을 들려보았는데 다소 서투른 내 필체가 아직도 무사하게 남아있음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그후에도 우리는 제로의 홈페이지 ( http://myhome.naver.com/jinling)를 영동회의 아지트를 삼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각자가 점점 바빠지는데다가 그렇다할만한 신구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활동이 점점 소강상태에 빠지고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지워져가게 되였다.

하지만 만들어왔던 아름다운 추억들과 친구들은 내곁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행복하다.영동회여,영원하라!


ps: 다른사람들의 아이디와 사실도 부득불 들어가게 되여 내심 불안합니다. 요청하시면 수개하거나 삭제조치를 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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