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타령

네로 | 2003.02.28 18:03:47 댓글: 6 조회: 309 추천: 1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1337
아침에 눈을 뜨니 으스스해난다. 비록 장판은 따스하지만 군데군데 찬바람이 스며드는게 피부로 느껴졌다. 출근준비를 하면서 옷장을 들춰서 쫄쫄이내복을 찾아입었다.

쫄쫄이내복을 입게 된건 좀 우스운 사연이 있다.
몇년전 겨울, 건축현장에서 용접을 할때 매일 출근해서 하는 처음 하는일이 작업복을 갈아입는것이였다.
탈의실겸 사용하는 간이창고에서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진 작업복바지를 다리에 꿰차는 순간 입이 벌려지고 으흐흐~하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양씨아저씨가 바지를 벗는 순간 벌린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글쎄 속에 아름다운? 다리의 실루엣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는 스타킹을 입고있는것이였다!

순간 언젠가 발레공연을 볼때 남자무용수들이 입은 민망한 모습의 무용복이 머리에 피끗 떠올랐다.
"사모님의 스타킹 도둑질해 입으셨습니까?" 내가 이죽거리면서 한마디 던지자 양씨아저씨는 손사래를 지으면서 변명했다. "스타킹이라니? 이거 남자용이야,봐봐,앞에 구멍이 뚫렸잖어?" 아닌게 아니라 남자용이라는것을 증명하듯 앞에 구멍이 뻥 뚤려져있었다.

양씨아저씨의 말인즉슨 보기에는 좀 구차할지 몰라도 착용감이 좋은데다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다는것이였다.  처음엔 비웃던 나도 귀가 솔깃해서 일명 타이즈로 불리는 쫄쫄이 남성내복을 한개 사입었는데 과연 입을만했다. 더우기 좋은건 몸에 착 달라붙어서 내복입은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나나 양씨아저씨처럼 내복을 입고다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특히 젊은층들에서는 내복을 입으면 "내복맨"이라고 골려주기까지 하고 방송에서는 빨간내복을 촌스러움을 대표하는 단골소품으로 사용한다.

그렇다고 겨울이 내복을 안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한건 절대로 아니다. 추울때는 영하 10도이하로 내려간다. 그런 날씨에도 속살이 훤히 비치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다니는 젊은이들이꼭 있는데 코등이 파래서 후들후들 떨다가도"왜 내복 안입어?"라고 물어보면 "으응~ 불편해서..."라고 말끝을 흐린다.

이건 약과다. 새하얀 눈이 덮힌 거리를 교복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들을 보면 연민의 정이 솟구친다.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데 이나라의 교육제도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학생들은 겨울에도 반드시 교복치마를 입어야 한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다.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의례 그러려니 하는건가?

아무튼 나로써는 미스테리다.
연변에서는 내복이 필수다. 봄가을에도 입는다. 엷은 내복을 가리켜서 "춘추내복"이라고 부를 정도로 일상화가 되여있고 누가 내복을 입었다고 비웃는 일도 결코 없다. 그냥 내복은 당연히 입어야 하는것인줄로만 안다.

한술 더 떠서 겨울이 되면 게도내복이라고 불리는 털실로 짠 내복을 입는다.
게도내복은 사서 입는것이 아니라 털실을 사서 집에서 뜨개질로 해서 입는것이 보통인데 어머니는 가을부터 집식구들의 게도내복을 뜨느라고 분주히 서둘러야만 했다. 게다가 세타까지 떠야 했으므로 뜨개바늘과 털실을 항상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가끔은 한숨을 쉬면서 말하셨다."나도 이젠 늙었나봐, 한창때는 하루저녁이면 다리 한개씩 떴는데말이다."

자식들은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기땜에 지난해의 게도내복을 번마다 풀어서 다시 뜨셔야 했는데 그러다보면 모자란 털실을 여기저기 보태서 뜨기때문에 왼쪽다리는 파랗고 오른쪽다리는 검게 되거나 아예 칠색무지개처럼 아롱다롱하게 만들어질때도 있었다. 챙피해서 안입겠다고 떼질쓰는 나를 달래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을가?

지금은 집식구들이 게도내복차림으로 모여있을때 그 웃긋불긋 화려한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피여난다.
이번겨울은 어디라 누구라 할것없이 모두 내복을 입고다니는 따뜻한 겨울이 되였으면 한다.
추천 (1) 선물 (0명)
IP: ♡.27.♡.234
보라 (♡.133.♡.177) - 2003/02/28 19:01:03

^^

사막 (♡.35.♡.150) - 2003/03/01 09:28:06

가슴에 와닿는 글들이네요, 이 몇편 다~~

영이 (♡.176.♡.141) - 2003/03/01 15:28:24

^^* ,

rena (♡.242.♡.6) - 2003/03/01 18:27:22

^_^

부녀주임 (♡.27.♡.184) - 2003/03/10 15:38:13

잼있네.

지나가는비 (♡.59.♡.88) - 2003/03/10 18:45:37

쥔장님..
오랜만에 올리신 글이네요..
참 진실감이 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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