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 환(1)

동녘해 | 2012.10.15 16:24:09 댓글: 1 조회: 936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1581158

(1) 

 

그를 처음 만난것은 남광장앞 천하갤러리에서였다.

하늘이 노랗게 번져가면서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고 속에서는 꾸역꾸역 열물이 치솟고있었다. 정우는 오른손바닥을 쫙 펴서 명치끝을 꼭 누르면서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들어가 변기에 대고 머리를 숙였다. 달려올 때는 내장이 그대로 쏟아질것 같았지만 던져지는 걸레처럼 변기에 머리를 틀어박고보니 그렇다할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는것도 아니였다. 꽥꽥 연신 헛구역질만 터질뿐이였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상체를 지탱한채 두손으로 변기의 변두리를 잡고는 힘껏 머리를 숙이면서 젖 먹던 힘까지 다내서 무엇이라도 토해보려고 바득바득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요란한 소리만 날뿐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선뜻 일어설수도 없었다. 일어나려고 머리를 쳐들면 다시 속이 들볶였다.

정우는 변기에 머리를 박은채로 두눈을 꼭 감았다. 토닥토닥심장 뛰는 소리가 귀전에 들리는듯싶었다.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거나 아닐가?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이런 엉뚱한 생각이 뇌를 쳤다. 내장이 파도를 칠 때 같아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것만 같은 생각이였다.

진정하자, 잠간 진정하고 일어나자. 후―후―

정우는 변기에 머리를 박은대로 길게 숨을 내뿜었다. 그 바람에 역한 냄새가 고패를 치다가 직접 코속으로 날아들었다. 신듯하면서도 매운 맛이 섞인듯한 그 냄새는 사정없이 페부를 파고들더니 문뜩 정우로 하여금 비릿한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

정우는 불시로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꺽꺽 딸꾹질이 올라올 때마다 비릿한것 같은 그 냄새가 가슴을 뻑뻑 긁었다. 정우는 가까스로 쳐든 머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떨리는 왼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간신히 화장실을 나가 세면대에 다가섰다.

꺽꺽!

딸꾹질은 아까 파도를 치던 내장들보다 더 힘들게 잘근잘근 정우를 씹어주려는듯 무시로 가슴을 톺으며 올라왔다. 정우는 길게 들숨을 쉬였다가 뚝 그대로 호흡을 멈추어버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몇초가 지나면 딸꾹질이 멈출 때도 있었다. 막힌 호흡때문에 가슴이 금시 뻥 하고 터질 같은데도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아갔다. 정우는 두손으로 세면대를 짚고서서 두눈을 꼭 감았다.

꺽꺽꺽…

끝없이 올라오는 딱꾹질을 두고 정우는 스스로가 그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참 하얬어. 백설같이 하얬단 말이야. 누구의 발길 한번 닿지 않은 백설 같았지.

련속 터지는 딱꾹질로 하여 몽롱한 머리속에서 문뜩 하얀 물체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있었다. 그 힘든 상황에서 백설 같은 그 모습이 떠오른다는게 이상했다.

그래, 너무 하얘서 선뜻 다치기 미안했었지. 하얬다구, 너무 하얬다구

―너무하얘요. 백지장 같아요.

하얀게 탈이였어. 하얀데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줄로 알았었지.

―아저씨, 불편하세요? 병원 가보세요. 떨고있어요. 아저씨.

-?

백설로 뒤덮인 하얀계곡에서 들려오는듯한 그 조용한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정우는 간신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이 참 희다고 생각되였다. 그가 다가오고있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를 내놓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누구던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정우는 세면대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떨려 뜻대로 몸이 돌아서주지 않았다. 정우는 몸을 흠칫하면서 왼손을 뒤로 하여 다시 세면대를 짚었다.

그렇게 하얄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얀손을 그가 내밀어 비틀하는 정우의 어깨를 잡고있었다.

―조심하세요. 몹시 편찮은것 같은데 병원 가야죠.

―괜괜, 괜찮아요. 속이

―속이 불편해서 딸꾹질이 나는거예요? 딸꾹질, 그게 진짜 힘든건데.

그가 정우를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 하얀 얼굴에서 빛나는 이가 눈부셨다.

―아니, 그런건 아니구, 종종 도지는 버릇이라서

―그렇구나.

너무하얘요. 백지장 같아요.” 하고 속삭이듯 하던 그 목소리가 아니라 한결 산뜻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런 목소리로 그는 아저씨, 딸꾹질하는 버릇이 있는구나.” 하면서 또 한번 웃음을 빼여 물었다. 정우는 그 소리에 애써 얼굴을 펴면서 아니…” 하고 한마디 던지고는 애써 목소리를 고르며 아래 말을 이었다.

―딸꾹질 하는 버릇이 아니구

―그럼? 왜 이렇게 힘들어 하시죠?

―그게

정우는 뭐라고 해석을 하려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놀랬잖아요? 방금은. , 아저씨 얼굴색이 그새 약간 폈어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얼굴색이 이렇게 빨리 변한다는게. 아저씨, 저쪽 걸상에 가서 잠간 앉아요.

그가 정우의 팔을 부축하면서 말했다.

―좋겠네, 그게.

정우는 그에게 팔을 내준채 나란히 걸어서 로비에 나와 걸상을 찾아 앉았다. 정적이 흐르는 공간에서 그의 숨소리가 고르롭게 정우의 귀전을 파고 들었다. 그 숨소리를 누르며 아까 보다 훨씬 뜸을 들여 정우의 딸꾹질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그는 머리를 돌려 정우를 훔쳐보았다. 정우도 그에게 눈길을 돌리다가 공중에서 그이 눈길과 부딪쳤다. 정우가 다시 입가에 웃음을 피워 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그가 먼저 그림…”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림구경 왔댔어요?

정우가 그의 뜻을 넘겨짚으며 이렇게 물었다.

―네, 김교수의 그림이 전시됐다기에.

―김교수의 그림을 좋아해요?

―김교수의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가 정우를 바라보며 입가에 익살스러운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 바람에 정우는 웬 일이냐는듯 힘 없는 두눈을 애써 올롱하게 떴다. 분부시게 하얀 그의 이가 정우의 눈에 날아들었다.

―이상하죠?

―뭐가?

―아저씨 눈에 그렇게 씌여져 있는데요.

―아닐텐데. 내 눈에는 지금 힘들어, 너무 힘들어 하구 쓰여져 있을텐데.

―김교수가 라체화를 잘 그리잖아요? 라체화라면 나는 누구의 작품이나 다 좋아하거든요.

그가 큰 비밀이나 루설하듯 정우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목소리를 한껏 깔며 속삭였다. 정우의 동공이 커지고있었다. 진짜 이상하다는듯한 표정이였다.

―아저씬 라체화를 좋아 하지 않아요?

―나빠하지는 않지만.

―그럼 좋아하는거지요. 거부하지 않으면

―그렇다구 해서 그렇게 좋아하는것은 아니지.

―좋아하는것과 좋아하지 않는것. 세상 사는게 거기서 거기 잖아요. 안 그래요? 아저씨.

그가 정우의 옆으로 한뽐 다가 앉았다. 그러는 그를 향해 정우가 물었다.

―학생은 몇살이지?

―스물 두살. 하지만 학생은 아닌데요.

그의 말이 분명하게 정우의 귀를 파고들었다. 정우는 또 한번 놀랍다는듯 두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

―미술지식이 보통이 아닌데

―좋아했죠, 학교때. 미술써클에 다녔었거든요.

―그랬었구나.

―김교수가 그때 우리 학교에 와서 미술써클조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적이 있었어요. 그때 김교수가 자신은 라체화가 특장이라고 했었거든요.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김교수가 미술전을 열었다는 기사를 본거예요. 그래서 오늘

―근데 왜? 그냥 미술공부를 하지?

―아, 그게그게됐어요. 아저씨. 설마 진짜 대답을 듣고싶은건 아니죠?

―아, 그래. 그렇지 뭐.

정우는 순간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나 않았나 하고 후회하면서 그의 눈길을 피했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또다시 그의 숨소리가 고르롭게 귀전을 스쳤다. 하지만 정우의 딸꾹질은 그새 어디로 갔는지 그 정적을 깨뜨리지 못하고있었다.

토닥토닥

숨소리외의 그 소리는 심장 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참 조용하구나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도 따라 일어섰다.

―가실려구요?

―가야지. 점심시간도 훨씬 지난것 같은데.

―아저씨도 화가세요?

그의 눈이 화가라고 대답하세요 하고 말하는듯싶었다.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그림을 감상하기 좋아 하거든.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아까 그 습관이라는게 뭔지 말씀 안 했잖아요. 아저씨.

―그게그게너 설마 진짜 대답을 듣고싶은건 아니지?

―와, 진짜 제대로 먹었네요, 꼴을.

그가 소리치며 두손을 탁 마주쳤다.

―그래, 이게 선수의 본색이거든.

정우가 그를 향해 코끝을 찡긋해보였다. 그러는 정우를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저, 환이예요. 종종 만나 이야기해요. 오늘 참 즐거웠어요.

―그래, 나두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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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기1 (♡.162.♡.21) - 2012/10/16 11:45:24

환, 기대된다. 의문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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