尼采和莊子如是说4-5~6

나단비 | 2024.06.11 19:01:46 댓글: 0 조회: 97 추천: 0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75994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5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Nietzsche
삶의 '정오' 무렵이면 이상한 휴식 욕구가 엄습한다. 주위는 고요해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멀어진다. 태양은 바로 위에서 그를 비춘다. 그의 심장은 정지되고 그의 눈만 살아 있다.
그것은 눈을 뜨고 있는 죽음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전에 본 적 없던 많은 것들을 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莊子
내면세계를 기르는 데에만 집착하지 말라. 외면세계만을 강조해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지도 말라. 마른 나무처럼 중앙에 서 있어라. 이 내부, 외부, 중앙의 조화를 잘 터득한다면, 그는 반드시 지극한 존재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달생」
니체가 말하는 '정오'는 이쪽으로부터 저쪽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잠시 정지하는 휴식기다. 가운데 서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폭넓은 자세를 은유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니체는 태양이 바로 위에서 그를 비추는 가운데 죽음과 같이 고요히 있으면서 전에 본 적이 없는 많은 것을 본다고 표현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 더 많은 감정을 기울여 표현할수록, 그것을 보기 위해 더 많은 눈을 사용할수록,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객관성'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다양한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관점만을 절대시하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연하게 자신의 관점을 되돌아보면서 다른 다양한 관점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열린 정신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눈,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항상 이쪽과 저쪽의 특성이 모두 공유되는 경계면에 위치한다. 이를 인간의 신체에서 찾으면 욕망의 창조적 지대라 볼 수 있는 성감대가 될 것이다. 성감대는 항상 이쪽과 저쪽의 경계면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생식기, 눈, 코, 입 등 각 신체의 구멍과 목덜미 등 말이다. 이를 사회에서 찾으면 항구나 공항이 될 것이다. 항구나 공항은 나와 타자가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경계 지역이며, 역사적으로도 이 경계면에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발전이 집중되곤 했다.
요컨대 장자의 이쪽 지평과 저쪽 지평이 어우러진 경계 영역은, 다소 시적인 표현을 쓰자면 향수 어린 욕망으로 버무려진 환상의 공간이 갖는 매우 매혹적인 공간이다.
중국에서 인도 불교가 정착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승려 구마라습의 『아미타경』 중국어 번역본에는 원래 불경에는 없는 전설의 새가 등장한다. 이 새는 머리가 두 개이고 몸통은 하나인데, 한쪽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한쪽 머리는 밤에 일어나 언제나 서로 시기하고 으르렁댔다고 한다. 결국은 한편이 다른 편에게 독을 먹이고 함께 죽고 만다.
이 전설은 선악과 같은 상반된 성향을 함께 지니고 있는 인간의 모순을 상징한다. 만약 두 마리가 서로 성향이 다른 점을 잘 승화시켜 싸우지 않고 함께 공존했다면 그 몸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쪽 가치만 고집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6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넘나들자
Nietzsche
세계가 어떤 영원한 합리성의 총괄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이성이 반드시 이성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통해 증명된다. 만약 인간의 이성이 항상 현명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나머지 세계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莊子
대인 大人의 행위는 남을 해치지는 않지만, 인애 仁愛와 은혜를 남에게 베푸는 것을 장려하지도 않는다. 재물을 인해 다투는 일은 없지만, 남에게 사양하는 것을 훌륭한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일할 때 남의 힘을 빌리는 예는 없지만, 자력으로 먹고사는 것을 훌륭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또한, 탐욕이 많은 사람을 천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행동은 세속과 다른데도 기이한 행동을 좋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따라서 세속적인 벼슬이나 봉록으로는 그를 유혹할 수 없고, 형벌이나 치욕으로도 그를 욕되게 할 수 없다. 그는 옳고 그름은 분별할 수 없고 작고 큰 것도 분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수」
합리적인 행동이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성을 강조하는 철학 입장은 감각적 경험을 불신했다. 감각적 경험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니만큼 믿을 수가 없고, 무엇보다 '절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성에 의하면 감각은 덧없는 것이다. 이성주의자들의 감각에 대한 불신은 '신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니체의 관점에 의하면, 나에게 일어나는 감각이나 감정을 비웃거나 억압해서는 안 되고 '이해'해야만 한다. 인간은 가장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감정이나 정서를 비하하곤 한다. 자기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도 바로 자기를 '이해'하는 데 있다. 감정이나 감각으로부터 종속되는 것이 문제일 때도, 이것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이해하는 태도를 지녀야만 종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말은 슬픔.기쁨.분노.욕망 등의 감정이나 감각이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임을 인식하고, 일어나는 감정이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운명애'를 지닐 때, 인간은 질투와 분노.탐욕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이성주의자들이 신체를 불신하는 것을 비웃었다. 무엇보다 이성이 '절대성'을 추구하는 것을 비웃었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현실은 신체적 현실이다. 니체는 특히 '도구적 이성'을 비판했다. '도구적 이성'이란 모든 대상을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성을 말한다. 물론 이안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이른바 합리적인 생산 방식을 내세우면서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앞에 노동자들을 온종일 세워주고 일을 시키는 행위가 도구적 이성의 결과다. 또, 과학기술을 맹신하면서 환경을 마구 파괴하는 행위, 나아가 대량살상을 위한 첨단무기를 마구 만드는 행위도 도구적 이성이 원인이다.
니체가 말하는 참된 이성은 '신체 이성'이었다. 신체는 말이 없지만, 사태를 왜곡하는 일이 없고 자신을 속이지도 않는다. 니체는 신체를 '큰 이성'이라고 불렀다. 이성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성, 즉 도구적 이성은 '작은 이성'이다. 도구와 장난감에 불과한 작은 이성은 도구와 장난감으로만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일개 수단인 작은 이성이 큰 이성인 신체를 지배하려 든다. 이것은 도구적 이성의 활약으로 최첨단 무기를 제작했지만, 이 최첨단 무기가 아무 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겁박하는 것과 흡사하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월남전 등은 당시 최고의 무기가 동원된 첨단 과학의 경연장이었다.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질소 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연 독일의 프리트 하버 Fritz Haber는 이 성과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인류의 계몽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과학의 결정체였다. 다른 한편 프리츠 하버의 '이성'은 도구적으로도 발휘되어 치클론 Bzykon B라는 독가스를 발명했다. 이 독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표적인 강제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사용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이러한 도구적 이성이 발휘된 참담한 결과다.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기도 했던 위대한 철학자 다석 류영모 선생도 '이성'의 폭력성에 대해 한말씀 하신 바 있다.
"우리는 태양(이성)이 있으므로 다른 별들을 못 본다. 태양을 꺼라. 그러면 다른 별이 보일 것이다."
장자에게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 혹은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포리즘에서 대인 大人은 성인이나 진인처럼 장자가 말하는 이상적 인간형에 속한다. 대인은 도가의 이상적 인간형임에도 유가의 인의를 실천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것은 인의라는 도덕적 개념을 일부러 실천하고자 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다. 비록 이익이나 재물을 위해 다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사양하는 태도를 일부러 강조하지도 않는다. 이런 행위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것일 뿐, 어떤 도덕적 가치를 일부러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인은 겉으로 보기에 분명히 기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는 기이한 행동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장자의 태도는 겉으로 드러난 명분과 실질 사이의 괴리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 사실상 오늘날을 보더라도 소외된 계층을 조용히 돕는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겉으로 요란스럽게 선전되는 기부 행위는 진상을 알지도 못한 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 이런 기부 행위는 정치적 목적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이념적인 문제도 그러한 가치를 자연스럽게 추구하면서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기가 원하기 때문에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내가 다른 경우가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장자는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내 내면의 자연스러운 참 존재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따라서 세속적인 명예나 모욕은 그에게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다. 그는 옳고 그름이나 크고 작음은 일시적인 규정일 뿐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잘 아는 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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