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 환(4)

동녘해 | 2012.10.21 13:28:37 댓글: 1 조회: 65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1581168

(4)

토탁토닥...
정우는 그 시각 분명 환의 높뛰는  심장소리를 듣고있었다.
토탁토닥...
정우는 그 시각 분명 자기의 가슴에서도 무엇인가 높뛰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이마가 달아오르기 사작했다. 이마로부터 온 얼굴이 화끈화끈 뜨거워졌다. 정우는 꼭 감았던 두눈을 천천히 뜨고 자기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쏘고있는 환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긴장때문인지 환의 왼쪽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환아.
갈린 정우의 목소리가 이사이로 터져나왔다. 
환이 감싸안았던 정우의 두볼에서 손을 떼고 이윽토록 정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정우도 몸을 흠칫하면서 자세를 바로 앉아 중얼거렸다.
-어, 덥네.
-아저씨, 쉬다 오세요. 저 먼저 갈게요.
말을 마친 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을 놓았다. 환의 노오란 T셔츠가 정우의 눈에서 멀어지고있었다. 자기의 손을 떠나 저 멀리 하늘가로 날아가는  고무풍선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애들처럼 정우는  하나의 노란 점으로 되여가는  환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면서 다시 두눈을  꼭 감았다.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고있었다. 화끈거리다 못해 이마는 지지는듯 아파나기까지 했다. 정우는  두손을  쫙 펴들고 고통스럽게 이마를 감싸쥐였다. 머리속에서 천마리의 송충이가 스멀스멀 기여다니는듯 어지럽기 이를데 없었다. 스멀거리는 천마리의 송충이들을 헤집고 하아얀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왼쪽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안해 숙이의 얼굴인듯싶었고 다시보면 환의 얼굴은듯싶기도 했다.

하얗구나.
그날밤, 안마를 끝내고  숙이가 정우의 이마에 도톰한 입술을 살며시 가져다 댔을 때 정우는 그닥 밝지 않은 불그스름한 보조조명 빛을 빌어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끝났어요. 편히 쉬세요.
숙이는 밝은 조명등을 켠 후 가지고 들어온 물수건과  발을 담궜던 물통을  들고  일어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제야 정우는 화뜰 몸을 떨면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왜왜, 왜 여기에 몸을 담게 되였소?
그렇게 당돌한 물음을 던져버린 정우는 맞선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방귀를 터쳐버린 로총각처럼 몸둘바를 몰라했다. 숙이도 정우의 물음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문쪽을 향해 세걸음째 옮기다가 굳어져서 정우쪽으로 몸을 돌렸다. 숙이의 눈길이 집요하게  정우의 얼굴을 훑고있었다. 정우는 웬지 그 눈길을 정시할 자신이 없었다. 하여 다시 자리에 등을 던지면서 애써 목소리를 골라 덤덤하게 한마디 했다.
-수고했소.
-대학교 다니는 동생이 있어요. 잘 생기고 공부 잘하고 셈이 든 애예요. 그애의 학비를 벌어야 해요. 이 일이 돈이 빨리 벌어져요.
숙이는 그렇게 많은  말을 뱉어냈지만  목소리는 정우의 목소리만치나 담담했다. 그때 정우는 담담하게 그런 말을 더듬어내는  숙이의 왼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다것을 느낄수 있었다.  미세한 그 떨림마저 느낄수 있다는게 신비하리만치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자기가 빗본것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숙이에게 눈길을 박았다. 그때 숙이는 다시 나가려고 이미 몸을 돌린 상태였다. 하지만 정우는 여전히 숙이의 왼쪽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다는 환각이 머리를 치고들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제야 정우는 그 느낌이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지는것이 아니라 토닥토닥 높뛰는심장소리와 함께  푸들푸들 떨어대는  이마로부터 느껴지는것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왜 꼭 그녀의 왼쪽볼이라고  믿고싶은지 알수 없었다. 정우는  벌떡 일어나 앉아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
-그럼 부모님들은?
정우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전에 숙이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정우는 숙이가 사라진 문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벌렁 등을 던졌다.
그녀가 왜 내 이마에 키스를 했을가? 아니, 내가 키스라고 생각하지 그녀에게도 그게 키스였을가? 대학교에 간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 몸을 던졌다는  녀자, 어디까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가?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달고 온 혹부리령감처럼 정우는 그날부터 시종 머리속에서 야금야금  자리를 틀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을수 없었다. 
-경운기에 옥수수를 싣고 벼랑가를 지나게 되였어요. 아버지가 경운기를 몰았고 엄마는 아버지곁에 앉았었지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에 고장이 생긴거예요. 경운기는 내리막길에서  쏜살같이 달렸고 아버지는 경운기에 제동을 걸려고 허둥거리다가 그만 벼랑가에 굴러떨어진거예요.   세상 뜬 아버지어머니를 가슴 아파하기보다 사람들은 나와 동생을 두고 더 가슴 아파했어요. 저는 그해 고중 2학년이였고 동생은 초중 2학년이였어요. 하루새에 고아로 된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어요. 생활이 유족하지는 못해도 부모들 품에서 별 고생 못해보고 자라났거든요. 그 힘든 와중에도 동생을 꼭 공부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어요. 저는 단연히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에 나왔어요. 그해 나는 20살,  동생은 16살이였어요. 벌써 6년이 지났네요.
그녀를 찾아 다시 그 안마원으로 갔을 때 숙이는 무좀이 번져가는  정우의  발가락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남의 이야기를 하듯 차분하게  엮어내려갔다. 드라마에서의 방백처럼 들려오는 숙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우의 머리속에서는 진짜 한부의 드라마가 펼쳐지고있었다.
친구들이며 동료들이  정우를 두고 "소설을 쓴다"면서 도리머리를 했다. 시골에 사는 누나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꺼이꺼이 곡까지 하면서 죽을둥 살둥 막아나섰다.
-안된다. 이것만은 절대 안된다. 네가 우리 가문에서 어떤 사람인데. 우리 가문의 유일한 대학생이라구. 가문을 떠멜 사람이라구. 그런데 농촌녀자를 데려와? 안된다. 안돼. 절대로 안된다.
그러는 누나의 마음을 모르는것은 아니였지만 정우의 귀에는 더 이상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치 정우는 자기가 숙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자신하고있었다. 정우가 기어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자 친구들은 내 놓고 " 이 미친것아, 사랑은 무슨 얼어죽을 사랑이냐? 너 그 녀자의 껍질에 홀린거지?" 하면서  정곡을 찔러 댔다. 그 말에는 정우도 구구히 변명할수 없었다. 키가 1.65 메터도 되나마나한 정우는 피부마저도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사람 같지 않게 검실검실하고 몸매는 바람이  불면 훅 날아버릴것처럼 갸날팠다.  반면에 숙이는 정우의 키를 초과할만치 늘씬했는데 얼굴색마저 티 한점 묻지 않은듯 밝고 하얬다.  숙이와 나란히 거리를 거닐 때면 정우는 자기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는게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부러운 그 눈길들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능력이 있다고 엄지손가락을 흔들어주는것 같아 그렇게 만족스러울수가 없었다. 
지인들의 곱지 않은 눈길속에서 1년 반 가까이 련애를 한후  그들은 끝내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숙이는 농촌호구를 시내호구로 넘겨 정우의 호적에 올렸다. 그새 서시장에 옷매대도 하나 장만했다. 정우는 숙이와 함께 하는 그 나날들이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다. 숙이도 진심으로 정우를 커하고 아끼는것 같았다. 단지 아이만은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이 여유가 있을 때 가지자고 해서 좀 섭섭할뿐이였다.
그렇게 아기자기 4년철을 숙이와 살아온 정우였다.
감쪽같이 숙이에게 속혀 살아온 4년철을 돌이켜보면 정우는 악몽을 꾼것 같으면서도 또 그것을 악몽이라고 믿고싶지 않았다.
숙이가 자기의 옷가지들까지 꿍져가지고 집을 나가자 부럽게 정우네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이어 이러저러한 소문들을 날라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숙이와 불륜을 태운 그 남자가 결혼전에 만나던 남자라는 말도 있었고 지난해부터 가게에 드나들다가 눈이 맞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날밤, 불륜의 현장에서 후줄근한 남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부들부들 떨고있던 그 남자를 곰곰히 떠올려보노라니 정우도 그 남자가 자기와는 비교도 안될만치 잘 생기고 건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부터 어떻게 어긋났는지 알수 없었다. 자기의 진정이 어떻게 되여 그처럼 비참하게 찟기고 짓밟혀야 했는지를 가늠할수 없었다. 지어는 숙이가  자기를  사랑한적이나 있었는지마저 의심스러웠다.  그 의심이 시종   정우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었고 그 앙금이 물을 만나 고요하던 정우의 가슴을 휘저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정우는 숙이와 갈라진후 애써 자기를 숨기고 살아왔다.  세상앞에 나서서 춤을 추다가 혹시 누구에게 상처를 다치울가, 다치워 상처에서 진물이 흐릴가 내내 발걸음마저 제겨디디며 살아왔던것이다.

하얬어, 
정우는 생각을 굴리면서도 환의 입술이 닿았던 이마가 여전히 화끈거리고있음을 느꼈다.
왼볼이였다니까.
파들파들 떨고있던 숙이의 얼굴이 눈가에 클로즈업되고 또 클로즈업된 그 얼굴이 환의 얼굴로 바뀌여지는 환각이 무시로 덮쳐드는것을 정우로서도 어쩔수 없었다.
왜왜, 왜 숙이의 얼굴에서 환의 얼굴이 떠오르는것일가? 쳐죽이고싶었던 그 징글징글한 얼굴이 왜 환의 얼굴로 바뀌는것이냐구?
정우는 두눈을 꼭 감고 부르르 머리를 떨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정우는 허리를 굽혀 두손으로 걸상등받이를 짚고서서 잠간 머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뻘건색이였다.
환이가 들고왔던 탈은 뻘건색 얼굴로 정우를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정우는 뻘건 탈을 주어들었다. 주어드는 순간 탈에 힘이 갔던지 탈은  퍼런색으로 변했다. 정우가 왼손을 들어  신경질적으로  퍼런 탈을 툭 치자 탈은 다시 뻘건색으로 돌아왔다.
환, 얘는 어디로 갔을가? 왜 그렇게 총망하게 떠났을가?
정우는 다시 탈을 툭 쳐서 퍼런색으로 만들어놓은후 몸을 돌려 정자가 있는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자가 가까와 왔다.
앞뒤에 큼직한 목단꽃을 수놓은 치포를 차려 입은 그 녀인이 그때까지도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 보였다. 올라올 때 시작한것이 그때까지인지 아니면 그새 한쉼 쉬고 다시 부른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정우는 정자곁을 지나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이 밭을 다루면 나는 천을 짤게요
당신이 물을 길어오면 나는 정원을 가꿀래요
집은 낡았어도 비바람을 막을수 있고
우리 살림 힘들어도 달콤하기만 해요

녀인은 노래를 부르면서 요리조리 몸까지 탈았다.  곁에 앉은 남자들이 꽹과리를 두드리고 아쟁을 치느라 열을 올리고있었다.
찌릉찌릉...
진동으로 놓은 핸드폰이 호주머니를 뚫고 정우의 허벅다리를 찔렀다. 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차분한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저 환이예요, 아저씨.


 

추천 (1) 선물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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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기1 (♡.27.♡.212) - 2012/10/23 06:57:56

어쩜...
믿고싶지 않으면서도 기대되네요. 홧팅!
끝까지 보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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