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 환(5)

동녘해 | 2012.10.22 13:08:26 댓글: 1 조회: 532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1581169

(5)

 

하얬다. 너무 하얘서 티 한점 묻지 않을것 같았다. 티 한점 묻지 않을것 같은 셔츠를 들고 환은 정우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때요? 이 셔츠가?

―좋네, 깨끗해 보여.

―그렇죠? 아저씨.

―그래, 네가 입으면 딱이겠다. 네 얼굴색과 잘 어울것 같다.

정우가 제일처럼 기뻐 하며 말했다. 그러는 정우를 향해 환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죠. 아저씨.

―아니라니?

두서를 잡지 못해 망연하게 자기를 바라보는 정우를 향해 씩 웃어보인 환이는 두손으로 셔츠를 들어 정우의 몸에 대보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저에게 딱이면 안되죠.

―그럼?

―아저씨 몸에 맞아야죠.

―뭐? 내 몸에?

정우는 깜짝 놀라면서 환을 쳐다보았다. 환이 웃고있었다. 웃는 얼굴에 이가 눈부셨다.

―아까 내려오던 길로 시장에 가서 이 셔츠를 샀어요. 다시 공원으로 갈가 하구 생각하다가 그래두 여기가 좋을것 같았어요. 시장 가까이니 편하잖아요. 혹시 아저씨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뛰여가 바꿀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일을 해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애들같이 순진한 얼굴로 정우를 바라보며 환은 술술 이야기를 엮어 나갔다. 그러는 환을 쳐다보면서 정우는 점점 오리무중에 빠져드는듯싶었다.

나에게 셔츠라니? 웬 일루 얘가… 내 옷이 람루해보였나?

정우는 생각을 굴리면서 머리를 숙여 자기가 입고있는 웃옷을 내려다보았다. 새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환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낡아서 초라한것은 아니였다.

그럼 얘가 도대체 왜 이 셔츠를 샀을가?

눈덩이를 굴리듯 의문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줄도 모르고 환은 여전히 맑은 목소리로 씨뚝해서 말했다.

―제가 얼마나 애썼는데요.

―왜?

―아저씨 몸에 어울릴만한것을 고르느라구그랬죠.

―왜?

―왜 자꾸 왜 하구 물어요? 아저씨는.

―왜 샀느냐구 왜 하구 묻는거지 왜 왜 하구 묻겠니?

―대답했잖아요. 아저씨께 드리자구 샀다구요.

―참!

정우가 입을 다시며 다시 환을 쳐다보았다. 정우의 눈길이 집요했다. 영문을 알아 내고야 말겠다는듯싶었다. 환의 입가에 아지랑이 같은 실웃음이 피여 올랐다.

―불쌍했어요.

―누가?

―아저씨 말이죠. 웃옷 벗어요.

환이 정우의 몸에 걸쳐진 웃옷을 벗겨내며 말했다.

―내가 왜 불쌍한데?

정우는 환에게 웃몸을 맡겨버린채 바투 들이댔다. 환은 벗겨낸 웃옷을 들어 툭툭  털면서 정우쪽에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아까는 밉기까지 했어요.

―누가?

―아저씨 말이죠.  입어보세요.

환은 셔츠를 정우의 어깨에 씌우며 말했다.

―아저씨가 바보 같았어요. 아저씨 친구들이 말 잘했죠. 소설을 쓴거죠. 아니, 비극을 쓴거죠.

―왜 그렇게 생각하니?

―저 아직 어려서 어른들 세계가  뭐가 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사람 사는게 다 똑 같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행복해지려는 그 욕망 말이죠. 아저씨가 행복해지려면 그때 아저씨와 근사한 직업을 가진 아주머니를 찾아야 했어요.

―그때두 지금두 나는 그 녀자를 안해로 맞은걸 후회는 안한다.

―지금두요?

환의 눈길이 커지고있었다.

―그렇지, 지금두. 내 선택이였거든. 글구 그때 나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었구.

―세상에, 이처럼 비참하게 상처를 받고서두 안한다구요? 후회를.

환이 되려 년장자라도 되는듯 두팔을 쭉 펴며 어깨를 뜰썩해보였다.

―후회라면 내가 못나구 돈이 없은것을 후회해야지…

정우가 뒤말을 흐리며 환을 쳐다보았다.

―세상에, 어쩌면 아저씨를. 쯧쯧쯧…  

환이 혀끝을 차면서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래쪽으로부터 단추가 하나하나 채워져 올라올수록 정우는 자기의 가슴이 쿵쿵 높뛰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게 아니지 하면서도 또 뭐가 아닌지를 종잡을수 없었다.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고있었다. 그 하얀 운무속에서 정우는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 무기력한 자기의 몸에 하아얀 껍질을 씌워놓고  이리저리 료리해나가는 환이가 자기에게 무엇으로 비쳐지는지 궁금했다.

그때 숙이가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이 여유가 있을 때 아이를 갖자”고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쯤은 환이또래의 자식이 있을것이였다.

그게 아들이였다면 지금 이 순간 환이처럼  살뜰하게 나를 바라봐줄수 있을가?

환의 손이 정우의 가슴을 건드리고있었다. 네번째 단추를 채우려는것이였다.

―여기까지만 해요. 셔츠는 그래도 제일 웃쪽 단추 하나는 남겨둬야 제멋이 나거든요.

환은 네번째 단추까지 다 채운후 두손으로 정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당겨 잔주름을 펴면서 한결 겨벼운 목소리를 뽑아올렸다.

―바로 이 화면이잖아요? 셔츠 한견지 바꿔 입었을뿐인데 와늘 다른 사람이 됐잖아요. 남자는 나이 들수록 몸을 꾸밀줄알아야 해요. 그래야 남에게 꿀리지 않고 당당해질수가 있거든요.

잊지도 않는 아들을 그려보고있는 정우였지만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아들이 아니라 숙이였다.

―웃 단추 하나는 남겨요. 당신, 알아요? 당신처럼 목이 밭은 사람이 웃단추까지 채우면 아예 목이 없어보인다니까요.

숙이도 하얀 손을 들어 잔주름을 톡톡 털어 당겨 펴면서 늘 그렇게 잔소리를 했던것이다.

왜 이러지, 왜 지지리도 쳐죽이고싶은 그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거지? 환의 얼굴이 왜 자꾸 그 얼굴과 겹쳐지는거지?

―됐어요, 아지씨. 저 오늘 소원을 풀었어요.

제 손으로 다듬어 내놓은 련인을 바라보듯 그윽한 눈길로 한참이나 정우를 바라보던 환이가 정우의 어깨에 올렸던 두손을 내리워 툭 마주치면서 기쁘게 말했다.

―뭐, 소원을 풀었다구?

정우가 흠칫 놀라면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래요. 저 꼭 아저씨 같은 남자를 상대루 이걸 해보고싶었어요.

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차분하게 들렸다. 정우는 헉 하고 숨을 멈췄다가 푸 하고 내쉬며 뚫어질듯 환을 바라보았다. 날아오는 환의 눈길과 공중에서 부딪쳤다. 환의 눈길이 반짝이고있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길이 아니였다. 그런 눈길은 절대 그렇게 환의 눈길처럼 은은한  빛을 뿌릴수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눈길이 전하는 뜻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정우는 온몸으로 전률을 느끼고있었다.

―환아!

―아저씨.

―너…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니?

―아버지가 불쌍했어요. 돈을 벌어 식구들 호강시키겠다구 이국 타향에 갔다가 깽단에 맞아 죽으면서 울 아버지 뭘 생각했을가싶었어요. 아버지만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남의 마누라로 되여 아양을 떨어댈 내 엄마가 찢어죽이고싶게 미웠어요. 엄마를 생각하면 녀성이라는 그 존재가 싫었어요. 녀자들 모두가 제 잘 살겠다고 자식 버리는 비정의 인간들로 생각되였어요. 물론 영화며 텔레비죤에서는 모성에 대하여 하늘높이 가송하고들 있지만요.

―너너, 너 그게…

―저도 힘들구 외로왔어요. 스스로 제가 허허 벌판에 던져진 고양이 같이 생각될 때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어떤 아저씨가 저를 주어다 키워주었으면 하는 꽃 같은 꿈을 꾸었더랬죠.

―물론 삼촌이 자주 전화를 걸어와서 걱정은 했지만 그게 되려 저에게는 부담이였어요. 자기 자식 셋을 뒤바라지 하느라 큰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소처럼 엉기엉기 기여가는 삼촌에게 저는 완전  천덕꾸러기였으니까요.

―시루속같이 비좁은 뻐스에 오르기를 좋아했어요. 올라가 아저씨들 뒤에가 서기를 좋아했어요. 차가 들추는 사이를 타서 앞에선 아저씨의 어깨에 얼굴을 대보고싶었어요. 그리구 내 손으로 고른 셔츠를 그 아저씨에게 입히고싶었어요.

―너 그게 얼마나 허황한 생각인지 아니?

―그날 아지씨를 보는 순간, 웬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는 아저씨를  안아드리고싶었어요. 과연 저의 느낌이 적중했던거죠. 아까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련민이라 할가요? 아니, 그보다도 진한 동지애를 느끼게 된거죠.

―나는 막부득이한 환경에서 막부득이 하게 그런 습관이 생겼지만 넌…

정우는 열변을 토하려다가 그만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환의 말대로라면 환 역시 충분하게 엄마를 싫어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들어왔던것이다.

뭐라고 말해야 할가? 정녕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얼어든 얘 가슴을 녹여줄수 있을가?

정우는 스르르 두눈을 감고 얼굴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해볕이 정우의 얼굴을 아프게 찌르고있었다. 찌르는듯한 그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싶었다. 그 아픔을 받아서 삼검불같이 엉켜지는 머리속이며 터질듯이 갑갑해 지는 가슴이며에 골고루 보내주고싶었다. 그러느라면 되려 아픔이 사라지고 마음이 따스하고 푸근해질것만 같았다.

해살처럼 퍼져나가는 아픔을 뚫고 쌕쌕 고르롭게 내쉬는 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고르로운 숨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콩콩 하는 강아지 짖음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정우는 그 소리에 두눈을 천천히 뜨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시장광장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은 많은데 그들처럼 걸상에 자리를 하고 앉은 사람은 몇이 안되였다. 그들로부터 약간 떨어진 분수대옆의 걸상에 앉아 하얀 털의 강아지 두마리를 지켜보고있는 두 녀인도 그 몇 안되는 사람들중의 일부였다. 앞발에 약간 까만 털이 있는 강아지가 쏘세지를 먹고있는 코등이 까만 강아지를 향해 짖어대고있었다. 하지만 코등이 까만 강아지는 앞발에 까만 털이 있는 강아지가 짖건 말건 여전히 열심히 쏘세지만 먹어댔다.

―꼬미야, 짖지만 말구 너두 와서 먹어라. 얘가 다 먹어버리겠다.

선글라스를 건 녀인이 코등이 까만 강아지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놈은 쏘세지에 관심이 없는듯 여전히 앞발에 까만 털이 있는 놈을 향해 콩콩 짖어댔다. 그러자 코등에 까만 털이 있는 놈이 아쉬운듯 쏘세지를 곁눈질 하면서 앞발에 까만 털이 있는 놈곁으로 다가갔다. 두놈은 한순간 얼굴을 맞대고 킁킁거리더니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 나란히 앞을 바라고 뛰여갔다.

선글라스를 건 녀인이 강아지들을 가리키며 옆에 앉은 친구인듯한 녀인에게 말했다.

―쟤들이 눈이 맞았나봐요. 련애하러 가는것 같아요.

녀인의 목소리가 별로 높지 않게 들렸지만 정우는 웬지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듯싶어 그쪽에 아니꼬운 눈길을 날렸다가 천천히 환에게로 돌렸다. 환의 눈길이 달려가는 강아지들에게 쏠려있었다.

―그놈들, 털이 참 하얗지?

정우가 환의 기색을 살피며 담담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조조, 조 앞발이 까만년이 나빠요. 코등이 까만놈을 홀렸다니까요. 조조, 조 꼬리질을 하는 꼴을 좀 봐요.

환이 강아지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다. 코등이 까만 강아지가 앞발이 까만 강아지의 궁둥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꼬리를 하늘거리고있었다. 환이가 성난듯 그 모양을 지켜보다가 격하게 내뱉었다.

―저놈도 바보, 천치, 부실이예요. 그년이 뭐가 좋다고 궁둥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지…

―환아.

정우가 환의 말을 중동무이했다.

환이 정우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저 구름이 참 하얗지?

생각과는 달리 정우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에 환은 머리를 들어 하늘가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구름에 눈길을 가져갔다. 환이 잠간 하얀 구름송이들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하얀 구름속에 얼마나 많은 비가 섞여있을가요?

―거야 비로 변해봐야 알겠지. 저 하얀 구름속에 얼마나 많은 비가 숨어있을지는…

―탈을 좋아해요? 아저씨는.

     환이가 문뜩 화제를 돌렸다. 

―어, 퍼런색이 됐네.

정우는 그제야 아까 셔츠를 입느라고 내려놓았던 탈을 떠올리며 걸상에 눈길을 가져갔다.

―전 뻘건색이 더 좋아요.

―왜?

정우가 탈을 주어들었다. 그것을 환이 당겨다가 툭 쳐서 뻘건 색을 만들며 말했다.   

―뜨거워 보이잖아요. 뻘건색이. 가슴이 시릴 때 전 뻘건 탈을 쓰군해요. 뻘건 탈을 쓰면 자신이 생기거든요. 안마방, 참 재수 없을 때가 많아요. 별별 손님들이 다 있거든요. 가끔은 제가 버러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뻘건 탈을 쓰고 버러지처럼 벌벌 방안에서 기여다녀요. 그럼 함께 있는 애들이 제가 청승을 떤다면서 제 궁둥이를 걷어 차요. 그 발길질에 저는 다시 일어서게 되죠.

     환의 목소리에는 제법 유머감까지 녹아 흐르고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환은 이 이야기를 이처럼 쉽게 가볍게 할수 있을가?

정우는 그런 생각을 굴리다가 정우의 눈길을 정시하며 말했다.

―다시 일어날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환아.

―생각하기 나름이죠. 아저씨…

환이 그렇게 정우를 부르고는 아래말을 씹었다. 정우는 환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며 아래말을 기다렸지만 환은 아무 말 없이 씩 웃기만 했다.

궁금했다.

환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가?

정우는 환의 곁으로 한뽐 다가 앉으며 물었다.

―왜 불러놓고 말이 없니?

―좋아서요.

―뭐? 좋아서?

―네.

―뭐가 그렇게 말까지 잊을 정도로 좋은데?

정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환을 쳐다보았다. 환이 주먹으로 입가를 쓱 문대며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탈놀음을 해요. 담날…

 

 

  

추천 (1) 선물 (0명)
IP: ♡.27.♡.212
하늘보기1 (♡.27.♡.212) - 2012/10/23 06:55:47

헉~ 숨이 막혀오네요. 우리 사회의 진실은 어디까지 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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