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85회)

죽으나사나 | 2024.06.12 06:34:41 댓글: 0 조회: 331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76055
너를 탐내도 될까? (85회) 후회.

며칠 후, 

“윤 대리님~ 같이 가요.”

회사 건물을 벗어나는 하정을 부른 건 장 대리였다. 

“어? 장 대리님. 오늘 운전하고 오신 거 아니에요?”

“그러고 싶었는데요. 제가 거의 아들처럼 업어 키운 막내 동생이 놀러 간다고 제 차를 갖고 갔네요.“

”아, 그러시구나.“

푸념하는 장 대리의 말을 들으며 그녀와 함께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누굴 찾아요?“

자꾸 뒤를 살피는 장 대리를 이상하게 여긴 하정이가 저도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 아니요.“

당황한 건 장 대리였고 세차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 하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게 여겼지만 이내  픽 웃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또 다시 뒤를 한 번 힐끔 쳐다본 장 대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안 오셨네.“

”네?“

하정이 걸음을 멈추고 장 대리를 살폈다. 그냥 별 일이  아닌 듯 지나칠 수도 있었건만 하정은 장 대리가 당황해서 얼굴이 발개지는 걸 확인하고는 안 물을 수가 없었다.

“혹시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

하정은 그저 장 대리가 같이 가려는 동료가 있나 싶었다. 

“저 먼저 갈까요? 기다리는 사람 있으시면.”

“아, 아니요! 그런 거 아니고요…”

장 대리가 머뭇거렸다. 

“아까부터 뒤를 살피던데... 누굴 기다리는 걸로 보이는데요.”

하정이 옅게 웃으며 추궁 아닌 추궁을 했다. 

“그게…. 저 윤 대리님한테 질문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윤 대리님은 길을 걸어 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습관 없죠?”

장 대리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네. 없죠. 일반은?”

머리를 약간 끄덕이는 하정은 이상한 질문이라 생각되었지만 답했다.

“근데 그런 질문은 왜….”

“그럼 그 분이 맨날 찾아 온 건 정말 몰랐겠네요.”

“그 분이라니, 누구요?”

이마를 긁적이던 장 대리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털어놓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혼자 궁금하고 끙끙 앓기엔 자신은 그렇게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권기혁 대표님이요. 윤 대리님이 퇴근할 때면 항상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는데, 모르셨죠?"

쿵 ——,

순간, 하정이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누가 맨날 찾아왔다고요?”

장 대리의 양 어깨를 부여잡은 하정이가 그녀를 다그쳤다. 

“영진 그룹, 권기혁 대표님이 맨날 회사 앞으로 왔었다고요. 윤 대리님 뱃속 아기 아빠요!”

알고 있던 걸 너무나 한 번에 뱉은 건지 장 대리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놀란 하정이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벌어진 제 입을 틀어 막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이나 아무 말도 못한 하정이가 그 자세로 멈춰있었다. 그러다 겨우 제 정신이 돌아온 하정이가 입술을 떼었다. 

”장 대리님이 어떻게 그걸….“

”왜 몰라요~. 윤 대리님이 봉사 활동하러 간 날 쓰러지고는 처음 연락 온 게 그분이었는데요. 병실 배치부터 그날 병원에서의 모든 일은  대표님이 직접 관여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대표님이 그 병원에 왔었다고요?“

하정은 몰랐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맥스에서 해준 걸로 알고 있었어요.”

하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맥스에서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VIP 병실은 오바라고 생각해야 했다.
조금만 생각을 더 해보면 왜 병원 원장까지 와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고 갔는지 의심할만도 했는데 그리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 거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긴 했는데 윤 대리님한테 사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어요. 권 대표님하고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매일 몰래 찾아오고 있는 건지…. 오지랖인 거 같아서 차마 묻지 못했지만……“

하정은 더 이상 장 대리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 속이 하얘져서 어찌 할지 몰랐다. 

아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자신의 폭언을 끝으로 권기혁은 연락이 없었다. 이제 정말 포기했겠구나 싶어서 안심을 한 건 딱 하루였다. 

안심이라니…. 하정이 쓰게 웃었다.
저한테 은서의 존재를 미리 얘기해주지 않은 그에 대한 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벌을 받은 건 하정이 제 자신인 듯했다. 

매일이고 조용해진 휴대폰을  매만지는 건 물론 그에게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건 하정이었다.
그렇게 그 사람을 내치고 먼저 연락하는 건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이제 저를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텐데. 

그러라고, 잊으라고 그런 못 된 말도 했으면서….

그런데 그 사람이 매일 회사로 찾아왔었다고? 제 주변에 있었으면서 조용히 보고만 갔다고?
아는 척을 하지. 아는 척을 좀 해주지….

하정이 괴로움에 갑자기 숨이 가파로워지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윤 대리님!”

장 대리가 놀라서 흐트러지는 그녀를 부축해 버스 정류장에 비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혔다. 

하정이 급하게 가방에서 휴대폰을 뒤졌다. 옅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번호를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 음이 한참이나 갔는데도 통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끝내는 끊겨버렸다. 하정이 마음이 더 조급해져 갔다. 한 번을 더 시도했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채 연결 음이 끊겨버렸다. 하정이 다시 한 번 더 누르려고 하자 장 대리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때 보니까 곁에 수행 비서가 있던데 그분한테 해보시는 게 어때요?”

장 대리가 기혁이와 함께 병원에 왔던 이한을 떠올렸다. 하정이 그런 장 대리를 멍 하니 쳐다보다가 이한이 생각 났는지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윤하정이에요.”

하정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네. 오랜만이에요. 잘 계시죠?”

조금 놀란 듯한 이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하정이가 이한에게 연락할 일이 없었으니…. 특히나 기혁을 밀어내면서  더욱 더 없었다.

”저… 대표님한테 연락을 해보았는데  안 받아서요. 혹시 함께 있는 건지 해서… 이한 씨한테 해본 건데 죄송해요.“

“누구? 하정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정연이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이와 함께 있는 건 정연이었다. 

“네. 하정 씨에요. 아, 하정 씨. 대표님 요즘 업무도 거의 안 보셔서 폰을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놓고 거의 안 보세요. 대표님을 급히 찾는 이유라도 있을까요? 지금쯤 집에서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고 계실 거 같은데요.”

“공항이요?“

”네. 오늘 개인적인 일로 급히 스위스로 가야 해서 아까 티켓을 끊어드렸거든요. 공항엔 혼자 가신다고 하셔서 저는 퇴근했고요.“

스위스로 간다니….

하정이 넋을 잃고 말았다. 

“혹시 뭔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

”하정 씨?“

”그게 아니라…. 대표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네?“

”잠깐 바꿔줘 봐요. 하정아. 윤하정?”

전화기 너머 정연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한이 휴대폰을 넘겨 받은 거 같았다. 

“응.”

“하정아. 너 그냥 이렇게 대표님 보내드릴 거야? 이대로 강은서한테 가도 넌 괜찮냐고.”

“...강은서한테 가는 거라고?”

“그럼 스위스에 뭐 하러 가겠어. 지금 공항 갈 수 있겠어? 출발하기 전에 네 마음을 보여주란 말이야. 윤하정. 고집 그만 부리고 네가 마음을 열어야 돼. 듣고 있어? … 윤하정?“
정연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하정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왜 그러세요? 윤 대리님. 어디 가시게요?"
"저 공항에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마음이 급한 하정이가 멈추지 않은 채 이들을 지나치기만 하는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까지 들어가려고 하자 장 대리가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
"윤 대리님. 진정 하시고요. 지금은 도로가 막힐 시간이라 택시보다 공항 철도를 이용하는 게 더 빨라요. 제가 가는 방법을 아니까 저랑 같이 가요."
정신이 없어보이던 하정은 장 대리의 말에 진정을 하는 듯 했고 그녀의 말에 응하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장 대리를 따라 지하철을 타고 공항 철도로 갈아탄 하정은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왜 이리 불안한 거지. 이대로 그 사람이 훌쩍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다 거짓말이었는데... 보고 싶지 않다는 말, 궁금하지 않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는데 이제 영영 그 사람을 못 보게 되면 어떡하지?
너무 후회되었다. 강은서의 말이 맞았다. 
[...좋아하면 다 되는 줄 알았고 그게 영원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노력이 필요했고 타이밍이란 게 있었더라.]
강은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음에도 고집을 더 피우고 싶었다. 그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알아서 더욱 그랬다. 아무 일 없 듯이 그 사람한테 굽히기 싫었다.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도 싫어서 애꿎은 시간만 흘러 보냈다.
허나, 그 사람이 이렇게 떠나서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딱 한 가지만 떠올랐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난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 사람한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너무 늦지 말아야 할 텐데.
...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던 공항은 생각보다 금방 왔다. 하정이 제 배를 부여잡고  뛰려고 하자 장 대리가 또 다시 그녀를 잡았다.
"아까부터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지는데 윤 대리님 폰 아니에요?"
하정이 그제야 진동을 느끼며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고 화면에 뜬 이름은...
권기혁이었다.
"대표님!"
하정이 통화 버튼을 누르기 바쁘게 큰 목소리로 기혁을 불렀다.
"네. 하정 씨."
기혁이 특유의 잔잔한 음성이 귓속에 스며들자 하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정 씨가 전화를 하셨네요."
믿어지지 않는 다는 말투라고 해야 할까. 하정은 그렇게 들렸다. 
"대표님 지금 어디세요? 저 대표님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요."
하정이 급하게 입을 떼었다. 이대로 절대 이 사람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전화기 너머는 조용했다.
"대표님? 이미 들어가신 거에요?"
절망에 가까운 하정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정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그렇다고, 그렇게 떠날 수가...."
"전 하정 씨를 본 거 같습니다."
하정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요? 어디..."
그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한테로 걸어오고 있는 기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수트 위에 체크무늬 롱 코트를 걸친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울먹이는 하정을 발견하고 긴 다리를 빨리 움직이는 그였지만 끝내 기다리지 못한 하정이가 기혁에게 뛰어갔다.
기혁이 품에 와락 안기며 하정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기혁은 하정이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른 채 팔을 주춤하다가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토닥 했다. 

하정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기혁이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하정은 울고 그는 달래주었다.
"안 가면 안 돼요? 스위스 안 가면 안될 까요? 대표님."
고개를 살며시 든 하정이가 기혁을 가엾게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하정 씨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저 가야 합니다."
기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정은 그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강은서한테 꼭 가야 하는 구나... 
하정이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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