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 [4편] (최종회)

진달래8 | 2023.06.15 12:38:57 댓글: 12 조회: 4267 추천: 7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4479748
딸은 집을 한번 떠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란
참 쉽지 않다고 하셨던 할머니의 얘기가 기억났다.
특히나 시집 간 딸은 더 그렇다고 하셨다.

여러가지 희노애락과 다재다난을 겪으면서 단단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실은 스치는 바람에도 갈대처럼 흔들릴수 있는게 내가 믿고 있는 사랑이였다.

어머니는 내가 시 집갈 때 신신당부 하셨다.
남편에게 저녁 밥상은 차려주지 못하더라도
꼭 아침밥상은 차려줘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어디에서 나온 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머니가 만드신 "현처양모"의 길을 잘도 따랐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는 달리 남편은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사이에도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가상세계에 하루 여가 시간을 전부 소비하는 남편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쇼핑 2시간, 본인 게임 1시간, 나름대로의 합의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장점보다는 단점으로만 모든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1,3,5,7년 권태기가 온다고들 하였는데 나에게도 여지없이 찾아왔다.
남편이 싫었다기보다 내 자신이 너무 존재감이 없어 보이고
그 사람에겐 내 존재가 당연하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남편은 내편이 아닌 항상 남의 편이였다.
그게 이 사랑과 혼인을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거 같다.

중국 영화 "前任"에서 나왔듯이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하다. 여러번 집에서 나왔는데 갈곳이 없어 다시 같이 사는 집에 돌아갔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가 마음 먹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한국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짐을 싸고 나온 나는 다시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편은 매일과 같이 자살소동을 벌이면서 온갖 불쌍한척을 다 했다
밥 못 먹고 다니는 내가 불쌍하지 않냐? 나를 버리는 거냐? 등등
하지만 난 그 순간에도 나의 맘을 헤아릴줄 몰라주는 그 사람이
오직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그 사람이
있을때나 더 잘 할것이지 맘이 떠나니 잡으려고 하는 그 사람이 얄미웠다.


하여 남편에게 도박판처럼 주사위를 던졌다.

"내가 당신한테 5년이란 시간을 투자했는데
당신이라는 사람조차도 나에게 남지 않았오.
당신이 나에게 과감히 앞으로의 5년을 투자 해보겠오?"


남편은 게임보이만이 아닌 마마보이기도 했다.
엄마가 만들어준 틀에서 벗어나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마마보이였다.
나는 남편 부모나 친척들이 없는 곳에서
우리둘만이 서로 의지하면서 오손도속 미래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주변에 "여자 따라가면 망한다느니" 온갖 유언비어에 흔들렸다.

나중엔 핑계를 대가다
조선족인 우리로서 한국말을 못 알아 듣는다느니,
가면 너네 아버지처럼 노가다를 해야느니
찌질한 변명만 늘여놨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 어머니한테는 한국에 놀러 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맘의 상처가 깊어 오갈데가 결국엔 부모님옆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노가다 목수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셨다.
나는 알바도 시작했고 우리는 3명이 누우면 꽉차는 코딱지만한 원룸에서 살았다.

"3개월 뒤면 일 배우면서 중국 갈겠음다. "
그 말도 두세번 반복하니 아비저도 눈치 채신거 같았다.

이 세상에 당연한건 없다지만
나는 부모님은 당연히 받아 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된거지만. 나의 부모님도 태여나 처음 부모 하는거라
실망할수도 있고 받아들이기 힘든것들이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일이 끝나시고 저녁에 갑자기 짐을 차에 실으시더니
작은 마티즈를 끌고 목포항을 통해 제주도로 가신단다.
난 처음에 일때문에 갑자기 가시는구나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제주도 가셨다.

그렇게 나는 혼자 원룸에 남아 있게 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제주도 귤 한 박스와
아버지가 보내신 장편 편지를 받았다.


항상 믿었던 나에게서 한번도 아닌 두세번씩 뒤통수 맞으셨으니
아버지도 여간 충격이 크셨던게 아니셨나 보다.
자기 자식한테는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으실줄 알았는데
반대를 하는 결혼을 했으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하는게 아니라
결혼 1년만에 포기해버리고 다시 돌아왔으니 ...부모님도 충격이 크신거 같았다.


사실은 결혼식 전날 어머니가 나의 방에 찾아와 물었었다.
"지금이라도 결혼 후회되면 친척들한테 문자 돌릴테니 괜찮아"

나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스톱이라고 웨칠만한 용기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원망스럽다고 하셨다.
화목했던 우리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장본인이 나인거 같다고 하셨다.
한번도 눈치 챈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아버지의 마음속 말들이였다.
순간 부모님한테까지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남편도, 부모도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하루 하루 줄근 하는게 송장 같았다. .
낮엔 그래도 웃으면서 일해야 하니 어쩔수 없었지만
저녁엔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눈물만 났다.
무서운 시간들이였다.
우울함이란거... 자살이라는 것이 무서운게
당사자들은 그 순간을 감지 못하고 잘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밀려 올때면 나 자신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른채 일이 발생하니깐.

이겨내려고 무진장 걷기만 했다.
힘들어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집에 들어갔다.
몇달을 반복하다가 나는 용기를 내서 제주도로 찾아갔다.
자식은 어쩔수 없이 자식이고 끊어 낼라고 해도 낼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나중에 시간이 좀 더 흘러 알게 된 것이지만
인생의 큰 결정과 선택의 기로에서 적어도 내가 한 결정과 선택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고 포기를 하던 참고 견디던
그 무게가 무겁더라도 나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큰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이였다.


아버지는 다시 나의 아버지로 돌아오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제주도에 정착하셨고
나는 이혼수속을 끝내고 서울의 작은 방을 얻어 새로운 시작을 했다.
여름 휴가철이나 구정 때면 가끔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로 놀러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인천에 계셨던 어머니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일하다...쓰러...지셨...대.... "


며칠전 까지만 해도 환갑잔치를 어떻게 해드릴가 논의하다가
본인은 아무것도 싫으니 나중에 70세때 제대로 축하하자고 하시던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현장에서 쓰러지셨단다.


"하늘이 무너진다"라는 말이 이 상황을 놓고 하는 말인거 같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지만, 기절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며 백번이고 자신한테 되뇌였다.
나는 꾹 참고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로 향했다.
(우리 아버지 꼭 살게만 해주세요.)

다행히 한국이여서 주치의사가 전화로 보호자 승낙을 받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5시간 수술 끝에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뇌수술은 수술 이후가 더 관건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일주일 정도 있으셨는게 정말 그 시간이 10년과도 같았다.

술도 안 하시고 담배도 안 하시고 항상 건강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쓰러지는데는 정말 한 순간이였다.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옮겨서도 뇌손상으로 인한 부분 마비 떄문에
혼자서 움직일수가 없으셔서 24시간 보호자가 옆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를 살리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직장도 그만두고
오로지 간병과 아버지의 재활에만 매달렸다.
어머니와 함께 밤과 낮을 바꿔가면서 간병했지만
뇌송상 환자는 병동에서도 치매 다음으로 기피 대상자였다.
원래 성격 좋으신 분은 나빠지고, 원래 나빳던 분은 더 난폭하다는 썰이 있었다.

사춘기의 애들처럼, 갱년기의 중년처럼
아버지는 인생의 날벼락 같은 형용할수 없는 또 다른 시기를 겪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실감하기 전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막막하셨는지 어머니와 나를 모질게도 대하셨다.

"내 너네 내처럼 아프다면 언녕 버리고 달아났겠다"

그 말 뒤엔 "버리지 말아달라" 라는 의미를 내포한건 알고 있지만
언제 하루 조용한 날이 없이 투정에 난동을 부리셨고
쩍하면 6인 병실에서 우리를 쫓아 내셨고 폭력까지 쓰기 시작하셨다.
여러번 휘두르는 팔에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엄마한테 들킬가봐 머리를 짤라 단발로 다니기도 했다.
한번씩 난동 부릴 때마다 정말 버리고 도망갈가도 싶을 정도였지만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아버지 이 맘을 알아줄가 싶어
다시 마음 다잡고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버지는 항상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하셨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셔서 항상 내 기억속에서는 "아들~아들~" 하셨다. .
ICU에서 눈을 뜨고 했던 첫마디도 "내 아들은?" 이였다.
하지만 그 아들은 출국을 할수가 없었고 지켜야 할 어린 가족이 있었다.

6개월 동안 처음으로 성인이 되고 아버지와 가장 오래 보낸 시간이였다.
심리적으로 뭔가 가족한테 얘기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을거 같아
심리과 상담을 신청했는데 처음으로 쓰러진 후 본인의 속내를 내비치셨다.

" 왜 잠이 안 올가요? "
"선생님, 제가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 됩니다. 가족들은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자식들도 이젠 다 컸잖아요"
"아닙니다. 얘네 엄마나 자식들은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이 가정을 위해 희생해오셨다.
할아버지는 이른 나이에 돌아가셔서 아버지를 제대로 리드해줄 가장은 없었다.
어릴때부터 집안의 책임을 짊어지고 농촌에서 출세하여 도시로 이사왔고
온 가족의 모든 작은 일, 큰 일은 아버지 손을 안 거쳐가는 것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는 가족에, 친적들에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셨다.
어느 누구 요구한것도 없이 항상 열정이 넘치셨고 남을 위해 평생 살아오셨다.


수술 후 6개월 뒤, 의사샘이 이젠 비행기 타도 되신다는 얘기에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중의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내일 날자로 당장 비행기표를 구해달라고 하셔서
항공사 연락해 환자이동 수속을 밟아 티켓을 끊었다.

갑작스런 퇴원에, 중국행까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수속을 끝내고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나한테나 어머니한테 안부도 묻지 말고 이젠 니가 하고 싶은거 맘껏 해라"
그러고는 승무원언니한테 빨리 들어가자고 휠체어를 돌리라고 하셨다.


6개월 동안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다니는 직장도 그만 두게 되었고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던 남자랑도 그만두게 되였고
그동안 모아온 적금도 전부 깨고 오로지 아버지한테만 신경 썻다.
돈은 다시 벌수 있지만 아버지는 한번 잃으면 다신 없으니깐
근데 그게 아버지도 가슴이 아프면서 부담스러우셨나 보다.

나중에 안전히 중국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영상 하나를 보내주셨다.

"너네 아버지 비행기안에서 어찌도 우는지 겨우 데리고 왔다야.
사정 모르는 사람은 너네 아버지 납치당해 중국에 붙잡혀 오는줄 알았겠다야"


아버지가 흘리셨던 4번째 눈물이셨다.
그 눈물의 함의가 아마도 어린 아이에서 보호자로 성장한 딸의 대견함
"딸을 낳기 잘했네"라고 했던 든든함, 가족에 대 한 고마움 등 여러가지
감정들이 섞인 가장 진실했던 눈물이 아닐가 싶다.


불쌍한 우리 아버지,
내가 본 우리 아버지의 인생 엔 "아버지" 자신은 없었다.

==========================================================================
4편 후기:

아버지는 언제 한번 "우리 딸, 우리 딸" 하신적이 없으신 분이셨다.
항상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셨던 분이셨고
한국 나온지 십여년간 아들 장가보내고 집 사주시고 차 사주고
이제 좀 숨돌려 노후 준비를 하시려는 타임에 뇌출혈 오셨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부터 5년이란 시간동안 아버지는 " 우리 딸 우리 딸"을 그렇게 많이도 해주셨고
" 나중에 아버지 나으면 우리 딸한테 젤 좋은 집, 젤 좋은 차 사줄게" 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셨다.
그게 아마도 미처 전달하지 못하셨던 딸에 대한 사랑의 아낌없는 표현이셨을 것이다.


2023년 1월 1일,
5년 투병끝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픔과 고통이 없는 저 세상으로 가셨다.

"아버지 미안함다. 그리고 사랑함다.
아버지는 나에게 최고셨습니다."

아버지는 눈을 깜빡이시며 마지막 눈물을 흘리셨다.
그게 나의 아버지 마지막 모습이셨다.


평생, 눈을 감는 날까지도 남을 위해 살다가 가셨다.
어머니가 절대 딸 생일날에 돌아가시면 안된다고 하셔서
며칠째 버티셨단다. 그저께 나의 생일였으니.
아버지가 생일날에 돌아가시면 다신 생일을 축하하지 못할가봐 걱정하셨단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여도 나를 믿고
내 편을 해주시던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였다.
아마도 지금쯤은 혼자서 자유롭게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셨을거 같다.그게 아버지 소원이셨으니.


====================================================================


2014년에 이어 2023년, 9년이란 시간이 흘러 최종회까지 완성하게 되였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즈박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산동신사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눈생각님이 3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7) 선물 (3명)
IP: ♡.121.♡.216
달나라가자 (♡.116.♡.252) - 2023/06/15 18:33:21

첫단추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많은 고생을 한것 같아요ㅜㅜ
그치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네요. 애가 없으니 얼마든지 새로운 시작 잘 할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게 혼자든 아님 새로운 사람 만나든요…
우리아빠도 건강이 안좋아서 님 마음 어땠을지 너무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저는 아직은 떠나보낼 준비는 안됐습니다만, 언젠가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在拥有一份缘分的时候,好好地去珍惜,大家好好的在一起,如果有一天缘分散了,那就大家有一个good ending,我们好好的结束这个事情就ok了。不需要happy ending。
어떤 결말은 해피 엔딩이 될 수 없기에, 좋은 엔딩으로 보내줍시다…

진달래8 (♡.121.♡.216) - 2023/06/16 08:46:04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은 철 없던 지난 날에 현명하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할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후회는 없어요
그것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였을거니깐요.


아버지를 이젠 더이상 만날수 없지만
기억이든, 추억이든 제가 잊지 않는 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 하고 있어서
그나마 잘 이겨냈던거 같애요.


우리에겐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옆에 계시는게 큰 복이고 재산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아번님 건강이 안 좋으셔서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그래도 옆을 지켜주는 가족이 있어
아번님도 든든하실거예요. 좋은 하루 되세요.

마음의변화 (♡.197.♡.172) - 2023/06/17 00:52:06

우리가 태여나보니 부모님은 정해져있고 주변과 둘러보니 잘해주는거도 부족한것도 있지만 자기부모만한 언덕이 없고 ,힘들었을때 처음으로 생각나는게 부모이고 자식인것 같아요,
정성스레 작성한 글 잘 읽었고,감회가 남달랐어요.
다행인건 아버님한테 그렇게 정성을 쏟아 간호를 해드렸으니 후회는 없을듯하네요,저는 갑작스레 아버지가.돌아가셔서 마음의 준비도 못하고 잘해드리지도 못해서 1년여간 길가다가도 눈물 글썽이며 생각이 나서 힘들었어요.

님이 보낸 결혼과 이혼을 보면서 느낀점은 우리는 매순간 자기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아무쪼록 다음에는 신중하고 현명하게 자기를 보호하며 좋은 동반자를 만나길 바랄게요.

진달래8 (♡.121.♡.216) - 2023/06/19 08:50:56

부모라는 이름이 무거운 만큼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크게 해드릴수 있는게 없더라구요. 항상 받기만 했지요.아번님 갑자기 보내셔서 많이 힘드셨겠네요. 그래도 잘 이겨내시고 다른 방식으로 우리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덜 힘들더라구요.

뉘썬2뉘썬2 (♡.169.♡.95) - 2023/06/18 03:26:35

참 훌륭한 아빠를 두셧네요.우리아빠는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것도없고 가족을위해 헌신한것도
없네요.

엄마가 남자일 여자일 다하면서 살아왓어요.그냥
아빠는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보호자 역할을 햇
을뿐.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혼햇는데 아빠마저 돌아가고.
고생을 많이햇네요.

나중에 꼭 좋은남자 만나세요.

진달래8 (♡.121.♡.216) - 2023/06/19 08:51:54

감사합니다. 꼭 좋은 사람 만날거라 믿어요. ^^

마음의변화 (♡.161.♡.47) - 2023/06/19 10:37:24

저도 제가 겪었던 감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자작글 혹은 소설형식으로라도 쓰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고요,그사이 힘든일들 겪은걸 이렇게 잘 표현하여 쓰신걸 보면 참 부러워요.

살면서 성인이 아니구서야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자랑스러운 일들 하지만 그걸 다 인정하고 또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은 같애요

이렇게 글로 그 기간의 힘들었던건 사연을 남기는것도 쉽지 않았을텐데,수고 많으셨고 힘내라고 하고 싶네요.

진달래8 (♡.121.♡.216) - 2023/06/19 13:53:13

저의 어렵게 적어내린 마음들을 헤아려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저는 표현을 잘 안 하고 삭히는 성격이라 그나마 글로 모든 걸 내뱉기는 해요.
이것도 일종 스트레스 해소방법이기도 하구요. 같이 힘내요.

사나이텅빈가슴 (♡.202.♡.26) - 2023/06/19 11:23:26

감동깊게 잘 보고갑니다~

진달래8 (♡.121.♡.216) - 2023/06/19 13:53:26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즈박 (♡.138.♡.42) - 2023/06/21 08:41:36

아버지는 자식들한테 큰 산이엿죠..묵묵히 모든걸 다 내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울 아버지도 젊은 년세에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셔서 몇시간후에 돌아가셧는데 가시기전 엄마와 어린 나를 뚫어지게 보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시더라구요..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던 덥고 후덥지근햇던 6월말이엿는데 긴 세월이 흘럿지만 지금도 그날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님은 아버님한테 모든 정성을 쏟아서 케어를 하셧으니 넘 마음아파하지마세요..
마음 추스리고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것만이 아버님이 바라는게 아닐가 생각됩니다..아마도 저 먼 하늘나라에서도 님을 지켜보고 계실거예요..

진달래8 (♡.121.♡.216) - 2023/06/22 12:45:15

그 장면이 참 잊혀지지도 않지요. 저도 병원에서 수술실 기웃기웃 하면서 그저 우리 아버지 살려서 내보내 달라고만 기도했던거 같아요. 수술실에서 나온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항상 추천 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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