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75회)

죽으나사나 | 2024.04.30 17:18:16 댓글: 53 조회: 463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65473
너를 탐내도 될까? (75회) 너무 보고 싶었다. 

“제가 왜 대표님이랑 밥을 먹나요?”

뛰는 가슴과는 달리 차가운 공기를 내뱉은 하정은 기혁을 마주보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면서 기혁은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려 운전에 집중했다. 

어디로 가는지, 기혁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화났나?’

막 뱉고 미안함에 또 후회가 밀려온 하정이었다. 

진심과는 달리 자꾸 어긋나야 하는 말. 저 자신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저한테 소개를 해주고 또 그 사람을 따라 스페인 여행을 떠나버린 강은서를 생각하면 마땅히 거리를 둬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하정이가 가질 수도, 탐낼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씁쓸한 마음에 또 마음이 울적해졌다. 

장마가 끝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갑자기 내리는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차는 한참을 달려 어느 건물의 지하주차장에서 멈추었다. 

”이제 내리시…“

방금까지 불편한 기색을 못 감추며 벨트를 꽉 잡고 있던 하정의 팔이 옆으로 힘없이 드리워져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곤히 잠들어있었다. 

기혁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운전대에 두 팔을 올려 머리를 비스듬히 기대고 옆에서 잠든 하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른 넘은 여자한테 이런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새근 새근 옅은 숨을 내뱉으며 잠든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귀여운 아기 같아서 한번 깨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적어도 기혁이 눈엔 지금 그랬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이 여자는 어느새 속도 편하게 제 옆에서 잠이 들다니….

진짜 많이 피곤했거나, 아니면 편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건데. 

기혁은 뭐니뭐니해도 전자보다 후자를 원하지만 잠든 그녀의 얼굴에는 꽤 짙은 피곤이 깃든 거 같아서 또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손을 뻗어 하정의 얼굴을 반쯤 가리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천천히 넘겨주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뺨이 손등에 닿았다.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기혁은 손을 조심스레 내렸다. 그러다 그녀가 깨기라도 하면 무척이나 당황해 할 거 같으니.

이제 불을 끈 방에서 잘 수 있는 걸까?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괴롭지는 않은 걸까?

그녀를 못 본지 2주가 지났다. 그녀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은, 그녀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태국에서 저한테 원망을 하며 떠나라고 했을 때, 그러는 그녀를 이해했다. 그래서 서운한 마음보다는 당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돌아왔었다. 

오직 걱정 뿐이었다. 안 좋은 일을 겪은지 얼마 안 된 그녀한테 가족을 잃는 슬픔까지 더해지니 그 속이 얼마나 너덜너덜해졌을까. 그러다 여린 몸이 축이 나면 어떡하지. 또 지독한 몸살이 오면 어떡하지.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데, 잘해주고 싶은데 그녀에게 쫓긴 몸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날 기회를 말이다. 이렇게 그녀가 제 발로 찾아올 상황은 염두에도 못 두었다.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하루라도 더 빨리 추진할 걸 그랬다. 

너무 보고 싶었다. 윤하정. 

그녀를 바라보는 기혁의 짙은 두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

”으음…“

침까지 흘리며 잠들었던 하정이가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비스듬히 꺽인 고개를 바로 들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흐릿한 시야에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었던지 잊은 하정이가 눈동자를 감빡이며 천천히 좌우로 굴렸다. 

새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여기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정신을 차린 하정이가 저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기혁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잠들어서…”

하정의 해명에도 기혁은 쳐다만 볼 뿐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초 간 정적이 흐르며 하정의 두 눈동자만 빙글빙글 돌아갈 무렵, 기혁의 몸이 갑자기 그녀에게로 가깝게 드리워졌다. 

하정은 어쩌할 바를 모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정의 안전벨트가 풀렸다. 

”내리려면 풀어야 해서.“

순간 얼굴이 확 뜨거워진 하정이가 눈을 번쩍 떠버렸다. 이내, 아직도 가까운 거리에서 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당황했지만. 

기혁은 그녀에게 기울어진 자세 그대로 팔을 들어 엄지로 그녀의 입가를 슥 닦아주었다. 

”뭐, 뭐하는 거에요?“

하정이 긴장하며 몸을 등받이에 더욱 붙였다. 

그러자 피식 웃어버린 기혁이 그제야 하정에게서 떨어져 몸을 바로 잡았다. 

”침이 묻어서요.“

”네?“

이 사람이 진짜…

하정은 손등으로 거칠게 제 입가를 닦아냈다. 

부끄러움에 얼굴은 점점 빨개지기만 했다. 

말로 할 것이지, 더럽게 그걸 또 닦아주냐…

하정이 당황해서 씩씩거리는 사이 기혁은 차에서 내렸다. 어느새 너른 보폭으로 조수석에 와서 하정이 대신 문을 열었다. 

“내리시죠. 다 왔으니까.”

하정이 살짝 망설이다 더 버텨봤자 무안하기만 해 차에서 내렸다. 성큼 걸어가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기만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혁은 가장 높은 층을 눌렀다. 

곧이어 조용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눈 앞에 나타났고 유니폼을 입은 점잖아 보이는 남성이 이들 앞에 다가와 인사를 했다.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아 그는 이 가게의 점장이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네.”

점장은 뒤따라온 하정에게도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하정도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서 그에 응대를 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이들은 어느 프라이빗 한 룸으로 들어갔다. 

‘와아…’

하정은 주책없이 새어나오는 감탄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둘만 있기엔 너무 큰 룸이었고, 거기에 따른 너무나도 큰 통창 유리로 보이는 야경이 너무 예뻤다. 창문에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는 빗물이 더 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 싶었다. 

하정은 기혁이 앞에 앉았다. 화이트우드 원목 테이블이 이들 사이에 차지하고 있었다. 식당 전체 분위기가  포근하면서 밝은 인터리어였다. 

하정은 마른 침만 꿀꺽 삼키고 있었고 기혁은 여전히 앞에 마주 앉은 하정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왜 저렇게 쳐다보기만 하는 거야. 하…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참,’

하정이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은 다시 꾹 다물어버렸다. 

이들이 도착 할 시간을 맞춰서 준비를 했던 음식은 금방 룸에 당도했다. 

프랑스 요리라고 했고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올라왔다. 종업원이 테이블에 올리는 족족 음식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했고 하정은 호기심에 그럴 때마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었다. 맑은 두 눈동자가 얼마나 초롱초롱했는지도 모른 채. 

원래는 하나를 비우면 또 채워주는 방식이었는데 기혁은 한 번에 올리라 했고 곁에서 서비스를 할 종업원을 내보냈다.

“들어요. 어서. 식으면 맛 없습니다.”

기혁은 음식이 한상 가득 채워진 테이블에 시선만 꽂고 있는 하정에게 눈짓했다. 

“아, 네.”

하정은 아까부터 가장 눈길이 가던 부라타 샐러드에 포크를 꽂았다. 새콤한 토마토를 입에 넣으니 아까부터 안 좋았던 속이 어느 정도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입매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또 저를 쳐다보는 기혁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다시
스르르 내려버린 입매. 

“기분이 좋아지면 그냥 웃는 게 어떻습니까? 당신은 그러는 게 예쁩니다.”

훅 들어온 기혁이 진지한 표정의  말에 하정은 오물오물 씹고 있던 토마토를 꿀꺽 삼켜버렸고 사레가 들린 듯 목안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쿨럭.”

그러자 기혁이 바로 그녀 앞에 물컵을 내밀었다. 

“미안합니다. 식사 끝날 때까지 말을 안 걸겠습니다.”

눈치를 보며 그에게서 받아든 물을 벌컥벅컥 들이켰다. 그제야 살 거 같았다. 

머리로는 멀리 해야 하고, 가슴으로는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랑 마주하고 있으니 되게 부산스러웠다. 

“술 마셔도 돼요?”

하정이 답답한 제 속을 술로 풀려고 했다. 

“됩니다. 하지만,”

입으로는 된다면서 뭔가 더 할 말이 있는지 말똥말똥 쳐다보는 하정을 보며 기혁이가 마저 덧붙였다. 

“적당히 마셔요. 안색이 안 좋습니다.”

“네.”

하정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얼마 안 가 기혁이 주문에 의해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이 들어왔다. 

답답한 제 속을 와인으로 빨리 뚫어버릴 기세로 잔을 든 하정은 입안에 그대로 털어넣으려다가 앞에서 저와 건배를 하려는 듯 그녀의 앞에 잔을 기울이는 기혁이와 또 눈이 마주쳤다. 하정과는 다르게 운전을 해야 하니 물만 담겨있는 와인잔이었다. 

하정은 와인 잔을 양손으로 마주 잡고 공손하게 그가 느슨하게 뻗은 잔에 소심하게 부딪혔다. 

아주 낮은 챙- 하는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어색한 모습들에 기혁이 부드럽게 웃었다. 

귀엽다. 예쁘다. 

너무 사랑스럽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찼다. 

***

난 절대 이 사람이 어려워서 이리 삐걱거리는 게 아니야. 단지 맥스와 재계약을 할지 말지는 현재 상황으로는 저 자신의 행동에 따라서 결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이 사람 앞에서 조심을 하는 거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일이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난 절대 사심이 있는 게 아니다. 그래야만 하고. 

레스토랑에서 나와 굳이 또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기혁의 말에 결국은 수긍을 하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 

속으로 연신 제 마음을 다잡았다. 

“밥 사주신 거 고마웠습니다. 원래는 제가 냈어야 하는 상황인 거 같은데…”

“그럼 내일 사주던가.”

“네?”

그저 입발린 인사를 하는 건데 거기에 또 바로 물고 들어오는 기혁에 하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시동을 걸며 하정을 힐끗 쳐다보는 기혁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멋있다… 잘생겼다.

아니야!

저런 뻔한 상술에 넘어가면 안 돼.

웃는 얼굴에 넘어가면 안 되잖아.

다단계도 그렇게 빠진다고 했잖아.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지만 꼬드김에 넘어가는 것도 말이 안 되지. 

하정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약간 어지러울 정도로. 

“내일은 안 되겠네.”

아쉬움이 섞인 기혁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정이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생각해보니 선약이 있네요. 식사는 모레 저녁으로 하죠.”

누가 뭐 만나주기라도 한댔나?

아주 조금 뻔뻔한 기혁이 말에 하정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
다음날,

“엄마… 어디 가?”

주말이라 늦잠을 자는 하정을 깨우지 않은 미연은 조용히 집을 나서려고 했다. 

어느새 잠에서 깬 하정이가 눈을 비비며 점심이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 외출하는 미연에게 물어왔다. 

“어, 나 약속이 있어서.”

“약속? 누구랑?”

“뭐… 친구 있어.”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응. 밥하고 반찬 다 있으니까 꺼내서 챙겨먹어.”

미연은 현관을 나섰다. 

한참 후, 서울의 모 한정식 식당.

“오래 기다린 거 아니시죠?”

“네. 아닙니다.”

“하정이 밥을 챙기느라 조금 늦었어요.”

“하정 씨는 또 늦잠을 잤겠네요.“

”그렇죠. 요즘 잠이 정말 많아요.“

미연은 이미 둬 어번 만난 적이 있는 상대방과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 속 주제는 하정이었다. 

”어머니. 저한테 말 놓으세요.“

”아유… 지금은 말고요. 음… 우리 하정이랑 나란히 인사하러 올 때면, 그때면 말 놓을 게요.“

거리를 두려는 미연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라서 상대방은 그저 옅은 미소만 흘렸다. 

”근데… 저 하나 실례되는 말을 물어도 될까요?“

미연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요즘 하정이가 부쩍 잠이 많고 속도 맨날 부대껴하고 그러 거든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네.“

”우리 애가 혹시나 임신을 한 게 아닌가 해서요.“

미연의 말에 마냥 싱긋 웃던 상대방의 표정이 순간 얼어버렸다.

추천 (1) 선물 (0명)
IP: ♡.214.♡.18
글쓰고싶어서 (♡.208.♡.242) - 2024/05/01 10:00:27

어느 식당입니까,그 모태가서 교통경찰 하고싶네요,기혁이 대그룹 회장이라는게 이래도 됩니까,음주운전이잖아..둘도 아닌 셋이..하두 둘이 불타게 사랑하기에 한번 봐줄게요.ㅎㅎ.작가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죽으나사나 (♡.214.♡.18) - 2024/05/01 10:48:32

아… 기혁이 와인잔을 들었었군요. 당연히 안 마신 걸로 생각하면서 썼던 거라 그리 오해할 줄을 몰랐네요 ㅋㅋ 수정해야겠네여

글쓰고싶어서 (♡.104.♡.176) - 2024/05/01 12:24:33

작가님의 섬세함을 왜 모르겠습니까,내 프사 보므 짱구재.작가님을 소환해봤슴다.ㅎㅎ

죽으나사나 (♡.214.♡.18) - 2024/05/01 14:55:30

아하하하하핳‘,,,

글쓰고싶어서 (♡.104.♡.176) - 2024/05/01 12:26:12

와인잔에 물이지.

힘나요 (♡.50.♡.47) - 2024/05/03 11: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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