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7회)

죽으나사나 | 2024.01.13 03:29:12 댓글: 0 조회: 231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9976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7회) 오래된 꿈.

저 자식 분명 아까 일로 삐졌네. 배달음식을 먹고서 방에서 꿈쩍을 안 하고 있는 걸 보니. 

혜주는 꾹 닫힌 방문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어떻게 말하겠니. 너한테. 내가 너라고.  

내가 나를 알지. 죽어도 안 믿지. 

근데 아까 맞아서 이슬이 맺힌 게 아니라 왠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 거 같은데… 

지금 내 기억으로는 절대 기억이 날 리가 없고  민수한테 물어봐야 하나?

<뭐 하냐. 하민수.>

그렇게 혜주의 폰으로 민수한테 카x 를  보냈다. 

<그냥 있지. 왜? 무슨 일 있어?>
답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왔다.
이 자식은 혜주의 문자만 기다리는 거같이 답장을 보내네? 
빨리 보내도 배알이 꼴렸다.
<뭐 별일은 없는데 혹시 오늘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조금 생각을 하고 보낸 답장인지 이번엔 몇십 초의 시간이 걸렸다.
<그게... 오늘 촬영장 근처에 다른 영화 촬영팀이 있더라고. 김기석 감독 작품을 찍는다는데 너도 알잖아. 주혁이 그 감독의 작품만을 기다린 거. 그래서 얼굴도 비출 겸 인사하러 갔는데 보기 좋게 까였지. 아예 무시를 당했어.>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려고 한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몇 년전 신입 때 감독님 작품에 들어가고 싶어서 면접을 엄청 보고 그랬었는데, 남주혁이라고 합니다.] 
주혁은 보기 드물게 예의를 바짝 갖춰  경례를 하면서 김기석 앞으로 다가갔다. 손에는 민수가 포장해온 얼음 가득한 시원한  커피를 내밀면서.
김기석은 주혁을 제대로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손에 든 커피를 보고는 고개를 홱 돌리며 한마디를 뱉었다.
[내 작품은 들어오고 싶고, 내가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군?]
[아, 죄송합니다. 그때는 마셨던 걸로 기억을 해서...]
주혁의 궁색한 변명이 꼴사나웠는지 김기석은 자리에서 박차 일어나더니 다른 스태프한테 소리를 질렀다.
[현장 관리 안 하냐! 외부인이 제멋대로 들어오잖니! 엉??!!]
그 소리에 스태프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빨리 움직였다.
보기 좋게 까였지. 진짜.
사실 나 정도의 인지도면 김기석 감독이 안 써줄 이유는 없었다.
그 몇 년 전에 일어난 그 일만 아니면.
5년 전,
[야, 너네 아빠가 그렇게 유명한 감독이라며? 내가 너네 집안을 본 게 아니라면 너를 왜 만나겠냐. 엉? 어디서 별게 아닌 게 나보고 끝내재? 미쳤냐?]
조용한 골목 길바닥에서 한 남자가 온갖 짜증이란 짜증을 다 내면서 자기 앞에 서서 울고 있는 여자를 다그쳤다.
[오빠가... 아흑.. 다른 여자도 만나고 있었잖아!  내가 어떻게 오빠를 믿고 만나! 헤어져!]
여자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자기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이게 어디서 큰 소리야. 죽을래??!]
남자가 큰 손을 번쩍 들어서 여자를 때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
여자는 눈을 찔끔 감았다가 조용한 주위가 이상해서 천천히 한쪽 눈을 떴다.
[어?]
한 남자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기를 때리려고 했던 그 쓰레기 같은 남자친구의 손목을 잡아 비틀고 있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데이트 폭력을 쓰나. 감옥에 가고 싶어?!]
여자는 남자친구보다 훨씬 큰 키에 어두워서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중저음에 내리깐 목소리가 저렇게 섹시한 걸 보아서는 무조건 잘 생긴 훈남이라고 생각했다.
[아씨... 네가 뭔데?]
남친이 발악을 하면 할수록 남자는 남자친구의 손목을 더 비틀었다.
[아악.]
[다시는 이 여자 앞에 나타나지 마. 구질구질하니까.]
남자친구는 아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슬쩍 힘을 푼 그 남자의 손이 떨어져 나가기 바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허겁지겁 도망치는 남자친구를 보며 남자는 피식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면서 가로등에 비춘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남주혁. 그때 그 여자를 돕지 말았다면 아마 자신은 이미 더 잘나가는 스타가 되었겠지.
곤경에 처한 여자는 이름이 김미나, 당시 22살의 어린 대학생이었다. 뭐 남들이랑 비슷하게  자기를 좋다 하는 남자랑 연애하고 별다를 게 없었다.
어느 날 같은 과 친구가 우연히 다른 동네인 여기서 남자친구랑 다른 여자가 있는 걸 보았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한번 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웬 여자랑 동거까지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걸 따지다가 더 뻔뻔하게 나오는 남자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더니 오히려 역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남자한테 맞을뻔한 걸 지나가던 주혁이가 보고 제지를 한 것이다.
한눈에 반했단다. 자신을 구해준 주혁이한테. 그때는 남주혁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리기 직전이었다.
[우리 아빠가 꽤 유명한 감독이신데, 자리 한번 마련해 드려요?]
혹했다.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 받아줄 마음도 없으면서  그냥 따라가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상대는 톱스타도 그 앞에서는 절절맨다는 김기석 감독이었으니...
배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그 감독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 감독이 나오는 영화는 몇 번이고 보았다. 다 명작이었고 큰 상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김기석 감독의 작품에 들어가고 싶다고. 
[자네가 누구라고?]
김기석은 자기 딸애랑 같이 식당 룸에 들어오는 주혁이가 곱게 보이지가 않았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아직 무명의 배우가 딸애랑 같이 온다? 
뻔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이다. 근데 딸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김기석은 그 앞에서 주혁이를 까발리지는 않았다. 딸이 자기한테 실망을 할까 봐서였다.
[남주혁이라고 합니다. 감독님을 존경해왔습니다.]
주혁의 아부 같은 말에 김기석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크게 뀌었다.
[아빠, 이 오빠가 그때 나 구해준 사람이야. 아직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이 얼굴을 봐. 작은 배역이라도 아빠 영화에 들어가면 바로 뜰 상 아니야?]
김기석은 얼마 전에 큰일 날뻔했다고 자기한테 말했던 딸의 말들이 생각났다. 주혁을  의외라 생각한 김기석은 조용히 그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딸을 구해준 건 고맙네. 그 자식은 이미 뼈도 못 추리게 혼쭐을 냈으니까 우리 딸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김기석은 덤덤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전하고는 다시 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 지금 고맙다는 말만 들으려고 온 게 아니잖아. 우리가~]
미나는 다 알면서 모른 척 앉아있는 김기석의 팔에 와락 안기며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조용히 식사를 하다가 미나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말을 아끼던 김기석이 다시 주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딸한테 관심이 있나?]
[네?]
주혁은 미나한테서 들었을 땐 그냥 작품 때문에 아빠를 소개해 주는 거라 했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꽤 난감했다.
[아닌가 보네.]
얼굴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주혁을 본 김기석은 손에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딸을 통해서 내 작품에 들어오려면 그땐 내 딸이랑 손을 잡고 들어오는 날이라 생각하겠네. 그전엔 얼굴을 보지 마세.]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 털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래서 김기석 감독과의 첫 독대는 그렇게 안 좋은 인상으로 끝나버렸다.
김기석이 주혁을 본격적으로 싫어하게 된 건 딸이 갑자기 해외로 가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였다.
[아니, 여기 엄마 아빠가 곁에 다 있는데 왜 자꾸 그 먼 나라에 가겠다고 그러는 거야!]
이해가 안 되었다. 자기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딸이 갑자기 울고 불면서 꼭 한국을 뜨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딸애한테 화를 냈다.
많은 추궁 끝에 떠나는 이유가 남주혁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를 처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한눈에 반하고 가슴이 떨린 남자는 처음이라 했다. 근데 그 남자가 오늘 자기를 딱 잘라 거절을 했단다.
오래 만나 온 여자가 있으니 이제 오지 말라고 했단다.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걸 느꼈다. 아니, 여자친구가 있는 놈이 그날 그렇게 떡하니 딸애랑 같이 나를 만나러 왔던 건가? 우리 딸을 뭘로 보고. 또 나를 뭘로 보고!!
화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 녀석의 배우 앞길을 다 막아버리고 싶었다.  김기석한테는 쉬운 일이었으니까.
딸애가 절대 그 자식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혹여나 무슨 잡음이 들리면 다시는 아빠 앞에 나타나지를 않겠다고 했다.
안 건드리겠으니 외국 나간다는 말은 취소하라고 했지만 결국 딸애의 고집을 못 꺾었고 5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에는 안 들어오고 있다.
그런 김기석한테 남주혁은 눈엣가시로밖에 안 보였다. 얼굴은 반반해도 그 정신머리로는 그냥 엑스트라나 조연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 자식은 생각보다 빨리 자기 이름 석 자를 대중들에게 알리게 되었고 지금은 자신의 작품에 주연으로  나와도 될만한 TOP 스타가 되어있었다. 차라리 딸애가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배우 생활이 꼬꾸라지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 먼 외국에서 혼자서 이 자식의 뉴스를 접할 거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졌다.
"... 김혜주!"
응?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혜주를 부르며 문 옆에 기댄 채 서있는 주혁이가 눈에 띠였다.
"왜?"
주혁이는 밖에 나가려고 그러는지 외출복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나 나가서 친구 좀 만날 게. 먼저 자."
"어? 어어..."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같이 한 집에서 자나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데 잘 되었다.
그렇게 휑하고 나가버리는 주혁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자신의 몇 개월 전 모습이 다시 생각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랑 똑같은 일은 아니지만 좀 비슷하긴 했다.
[김혜주~ 보고 싶다. 집에 언제 오냐?]
전화기 너머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앙탈을 부리는 듯한 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왜 그래? 나 오늘은 못 들어간다고 그랬잖아.]
[언제?]
[어제~.  잊었어? 내가 과외해 주던 민희 있잖아. 걔네 부모님이 오늘 사정이 생겨서 집에 못 들어오신대. 내가 원래 오늘 걔네 집에서 늦게 과외 보기로 했던 것도 있고 해서 나보고 부탁을 했잖아. 애가 혼자니 자고 가면 안 되냐고. 그래서 알겠다 했지.]
[아,]
그제야 생각이 난 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난 네가 엄청 필요한데. 네 품이 너무너무 필요한데.]
혼자 전화기에 대고 중얼중얼 해댔다.
[왜, 무슨 일이 있어?]
[아니야, 어차피 오지도 못할 거 내일 봐. 끊는다.]
그래서 혜주의 위로가 필요한 그날 외출을 했었다. 자주 가던 룸바에 가서  혼자 술을 퍼마시다가 취해서 민수가 왔었고...
그리고 ... 그리고 그냥 집에 왔나?
오늘의 주혁도 그 룸바에 가겠지. 아까 욕실에서 나와서 웃어 보였던 게 진짜로 기뻐서  웃은 게 아니었네. 애써 괜찮은 척했던 얼굴이었구나.
진짜 혜주라면 그 얼굴을 알아봤었을 거고, 오늘 너랑 마주한 게 내가 아닌 진짜 혜주였다면 너를 안아주었겠지. 토닥토닥하면서. 괜찮다고. 기회는 또 있다고.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근데 그 혜주가 진짜 혜주가 아니니... 너를 도저히 달래줄 수가 없구나.
그러고 보니 아까 문자가 한통 왔었는데 그게 그 문자구나.
<혜주 선생님~ 혹시 아직 출발 전이라면 오늘 과외 뺄게요. 아무래도 저희 애도 저희랑  같이 가야 될 거 같아요.>
그냥 몰라서 네라고 답장만 보냈었는데.
문제는 왜 내가 혜주 몸에 들어오고 나서 일어나야 할 일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내 의지가 아닌 일인데도.
그렇다는 건 내 의지로도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긴가?
주혁은 혜주가 살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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