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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탐내도 될까? (1회)

죽으나사나 | 2024.02.04 18:52:01 댓글: 7 조회: 476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5550
너를 탐내도 될까?  (1회) 분명히 이 세상과는 안녕이었는데.

마포대교 위. 날은 이미 많이 저물었지만 형형색의 조명들과 불이 안 꺼진 아파트들로 인해 아직은 한창 밝은 서울 야경…
따뜻한 6월의 바람은 너무 좋다. 바람이 산들산들 콧구멍을 타고 들어오는데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난, 이 좋은 날씨, 이 좋은 야경을 보면서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금방... 뭐라고 하셨어요?]
제 귀를 의심했다. 최근에 들어 잦은 두통과 불면증으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CT를 찍었다가  MRI 검사까지  받았다.
[요즘 기억력이 예전 못지않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들은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 젊은 층에서도 간간히 발병하고 있는데요.]
뜸을 들이지 말라고요. 뭔데 이래요?
[치매입니다.]
[네? 그게 무슨...]
[가족 중 치매로 앓으셨던 분이 계십니까?]
삐—. 머릿속에서 굉장한 기계음이 울렸다.
[아직 초기니까 약을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면 진행속도는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저 이제 32살밖에 안 되었는데요? 생일도 안 지났어요. 만으로 30살이라고요.]
​[…]

병원에서 어떻게 나왔더라… 기억이 안 났고 평소 안 마시던 술을 밑 빠진 독에 퍼붓듯이 부어댔다. 

하… 

[환자분, 술은 드시면 안 됩니다.]

그랬었지. 근데 술이라도 안 들어오면 맨 정신으로 못 버티겠는걸. 

열심히 살아왔는데, 한창 승승장구할 나이에 내가 무슨 치매라고? 웃기지도 않아. 

내 이름은 윤하정이다. 현재 그리 작지 않은 중소기업에  마케팅 팀에서 팀장직을 달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온 첫 직장이다. 그때는 신생아 수준의 작은 회사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같은 업계에선 꽤 알아주는 중소기업으로 성장을 했다. 그 덕에는 분명 나도 있을 터. 

밤낮없이 어떻게 하면 회사가 커나갈지 연구하고 전략을 세웠다. 성과가 좋으니 자연스레 승진을 빨리했고 지금은 또래들 사이에선 꽤 빨리 팀장직을 달았다. 

난 일할 때 기분이 좋다. 그 성과가 이루어졌을 때 느끼는 그 희열과 짜릿함이란… 

근데 뭐? 

치매?? 지금은 그런 게 거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억이 흐릿해지고 바보가 된다는 말이잖아. 

완치라는 치료제도 없단다. 

그냥 진행속도만 늦출 뿐이라 했다. 

하,

또 헛웃음이 나갔다. 

“지이이이잉…”

아까부터 휴대폰 진동은 그냥 울려댔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정 과장의 전화다. 회사에 뭔 일이 있으려나, 생각을 하다가 그만뒀다. 

이제 정상이 아닌 나한테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이 가능하기나 할까.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한다. 회사에서 그렇게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리바리해서 앉아있을 걸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난 이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럼 난 어디로 갈 수가 있을까. 회사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는 무얼 할 수가 있을까. 

술을 퍼붓는 와중에도 머리는 그냥 돌아갔다. 답은 없었지만. 

“혼자야? 나랑 같이 놀래?”

한참을 혼자서 술을 퍼마시고 있으니 똥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여기도 더 이상 있을 데가 아니구나. 

밖으로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승승장구로 뚫려있던 내 세상이 암흑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새로 론칭할 의류 사업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공장에서 이제 첫 납품 건은 거의 다 찍어가고 있는데…. 나의 땀과 노력이 깃든 건 물론이고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의류 사업이라 기대가 컸는데.

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난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될 테니. 

여기까지 생각하니 회사밖에 몰랐던 나의 짧은 삶이 너무나도 허탈했다. 

정신 나간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완벽한 모습일 때 이 세상을 떠나는 게 맞지 않을까? 사람들한테 흉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그래. 맞아. 

생을 마감할 생각까지 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만큼 난 흐트러진 나 자신을 그 누구한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뭐, 지금은 또 다른 의미에서 몸이 흐트러져 있지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술집에서부터 들고 온 와인병을 한 손에 웅켜 쥐고  콧바람이 좋은 이 마포대교 위에 우뚝 서있는 거다. 

머리칼이 내 뺨을 스치며 나를 간지럽히는데 술을 마셔서 그런지 느낌이 너무 좋다. 

남자의 손이 닿으면 이런 느낌일까,

살면서 단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이성, 남자. 

죽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우습게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라는 생명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 정도면 눈치를 챘겠지만 32년을 살면서 남자랑 살을 맞댄 적이 한 번도 없다. 

연애? 소꿉장난처럼 딱 한번 했던 기억은 있다. 

[너 너무 하는 거 아냐? 윤하정. 무슨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곁을 안 주냐? 도대체 너한테 나는 뭐냐?]

대학생 시절, 같은 과 선배였다. 

나를 좋다고 자꾸 쫓아다니길래 만났는데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남자라는 생명체. 

사귀기로 한 그날부터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날 벗겨 먹을까 생각하는 그 음침한 눈빛. 

솔직히 더러웠다. 그래서 심한 철벽을 쳤더랬지. 그렇게 결국 내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선배는 어느 날 드디어 화가 나서 빽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나는 차였다. 

뭐, 

슬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첫 연애였고 좋아한다는 말에 사귀기로 했으니 헤어지자는 말을 굳이 내 입에서 하기 귀찮아서 기다려줬을 뿐이었으니. 

남들 눈에는 내가 차였으니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 그 선배가 아니라. 

그래. 난 남의 시선이 극도로 두려운 여자였다. 

그래서 모든 일에 똑 부러져야 했고 나만의 틀이 있었다. 

근데 죽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남자가 궁금해졌다?

윤하정. 너도 참 웃기는구나. 이 순간에 남자가 궁금해지다니. 

비틀거리면서 난간에 바짝 붙으려고 보니 거기에 짧은 글귀가 보였다. 

<내일은 해가 뜬다.>

그래 해가 뜨겠지. 근데 그건 나의 해는 아닐 테고. 

옆으로 둘러보니 또 다른 글귀가 보였다. 

<용기를 내세요.>

픽 하고 웃으면서 와인병을 들어 그대로 입안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용기를 내야지. 이제. 

난간 제일 아래에 발을 올렸다. 

한 발, 두발. 

윤하정,

일밖에 모르고 살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좀 제대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보자. 이번 생은 그냥 이 정도로  끝내자.

끙끙대면서 나는 한쪽 다리를 난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뭐지? 

여기가 지옥인가, 지옥의 촉감이라기엔 너무나도 느낌이 좋은데…

냄새도 너무 좋은 거 같아. 무슨 향수지? 

킁킁…

냄새를 따라 앞으로 얼굴을 더 갖다 대니 무언가에 코가 닿았다. 

물체라기엔 조금 말랑하고, 또 그렇다고 하나도 물렁대지 않는 이 딱딱함은… 

따뜻한 바람이 참다못해 터지듯 내 머릿결과 이마를 간지럽혔다. 

음?

눈이 떠졌다. 

깜빡깜빡.

그 물체에 올린 내 손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만지작거렸고 
얼굴은 거기에 파묻혀있었다. 

이게 뭐지?

이번엔 정수리에 따뜻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머리를 들었다. 

!!!

물체와 가까웠는데 분명히…
 
까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고 두 눈썹 사이는 왠지 많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앗!!”

저도 몰래 비명소리가 나갔고 그 ‘물체’에 올렸던 내 손은 사정없이 그걸 밀어냈다. 

뭐 밀린 건 그쪽이 아니라 나였고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나의 팔을 꽉 당겨 잡은 건 그 ‘물체’였다. 

의도와는 다르게 다시 그 ‘물체’와 한 몸이 된 듯 바짝 붙었다. 

100년 묵은 빙하에 얼어붙은 듯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그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난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가운이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윗옷을 안 입은 …

픽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면서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숨 막혀 죽어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한테  걱정인지 경고인지 모를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어디로 가는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침대에서 멀어지자 난 이불을 내리고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없다. 

옷을 벗고 있었는데 나간 건가?

이때, 욕실에서 샤워기를  튼 물소리가 들렸다. 

아…

난 당황해 죽겠는데 씻으러 간 거였구나. 

허.

어이가 없었다. 

그나저나 나는 분명히 마포대교 위에서 죽으려고 난간까지 밟았는데 왜 지금 여기에, 그것도 저 처음 보는 남자랑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눈을 굴려 주위를 잠깐 스캔을 해보니 호텔이 분명했다. 

뭐지? 뭐지??

벌써 치매 증상이 나오는 걸까. 

기억이 안 난다. 

미치지, 내가…

“지이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난 습관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팀장 님!! 왜 이제서야 전화를 받으세요!!?“

깜짝 놀랐다. 전화기 너머로 거의 자지러지듯 소리를 지르는 꽤 무례한 정 과장 때문에. 

”팀장 님. 우리 큰일 났어요!“

”뭔데.“

지금 회사 일이 나한테 중요하지는 않지만 일단 들어볼게. 

”김포공장에서 사고가 터졌어요.“

김포공장? 요번에 의류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 계약한 하청업체인데. 

”무슨 사고를 쳤는데.“

정 과장은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가 그때 분명 개발 때 나온 상품은 완벽했었잖아요. 납품일이 코앞이라 어제 부장 님이 갑자기 김포공장에 방문을 하셨는데… 발칵 뒤집어졌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무슨 문제가 터졌는데. ”

정 과장한테 다그치면서 옷이 어디에 있는지 주위를 둘어보았다. 

시선이 침대 옆 협탁에 고정되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까 해서 바닥만 여기저기 보다가 한참 뒤에야 발견한 곳이었다. 

너무나도 각지게 개여놓은 옷과 그 위에는 너무 노골적이라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든 하얀색 속옷이 고스란히 올려져 있었다. 

내가 저렇게 놓았을 리는 없다. 그러면…

”요즘 김포공장에 인력난을 겪고 있었대요. 그래서 얘네들이 우리한테 말은 안 하고 납품일을 맞춘다고 공정 하나를 빼먹었대요. 당연히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랬다지만 부장님께서 어제 들고 온 의류를 보니…“

하…

시선은 제 속옷에 꽂힌 채 절로 한숨이 나갔다. 

”샘플과 너무 달라요. 도저히 그대로 납품을 할 수가 없어요. 납품을 할 회사가 그 깐깐하기로 유명한 영진 그룹인데… 어떡하죠? 우리 망했어요. 팀장님!“

난 또 몰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를 수밖에 없었다.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회사로 가야 했다. 일단 공정을 빼먹었다는 그 옷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을 해야 하고 정 안된다 싶으면 납품일을 미루어야 한다. 당연히… 영진 그룹엔 양해를 구하는 쪽으로….

옷을 부랴부랴 챙겨 입고 나올 때까지 그 사람은 욕실에서 안 나왔다. 

뭐, 모르는 사람인데 인사까지 하고 갈 이유는 없지. 

난 급히 그 호텔 방에서 나왔다. 

근데 걷다 보니 옷에서 뭔가 향이 올라오는데 내가 평소 쓰는 향수 냄새도 아니고 섬유 냄새도 아니다. 

킁킁.

섬유 냄새에 가까운 이건 …

뭐지? 세탁을 한 건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생각을 하다 바로 앞에 멈춰 선 택시를 잡고 난 회사로 향했다.
추천 (3) 선물 (0명)
IP: ♡.214.♡.18
Figaro (♡.136.♡.111) - 2024/02/04 20:41:38

와우~! 신작 연작~!ㅋㅋㅋ
술술 읽혀져요 ㅋ가독성이 좋아요 나름 ㅋ(독자로서 ,단순하고 머리 안쓰고 쉽게 읽히는글 좋아 함.)
뭐랄까.므튼 좋습니다 ㅎ2화 어디갔어요?

죽으나사나 (♡.214.♡.18) - 2024/02/04 21:10:59

깊이가 있는 글은 .... 사실 한계가 있어서 못 쓰는 겁니다. ㅋ
아직 쓰는 중이라 천천히 올리겠습니다.

글쓰고싶어서 (♡.245.♡.150) - 2024/02/04 22:31:14

윤하정은 미인임다,얼마나 스트레스 많겟슴까,아때부터..일찍 시집가야되는데..거기다가 사업광이지,또 스트레스 쌓이지..시집가기 힘들어짐다..근데 다행인것은 탐나는 남자가 드디여 나타나서 좋슴다..볼것다봣는데 시집가야지..잘 보구감니다.

죽으나사나 (♡.214.♡.18) - 2024/02/04 22:37:44

아….. 이제 1회를 올렸는데 결말을 내리셨군요.

글쓰고싶어서 (♡.245.♡.150) - 2024/02/04 22:52:15

결말이 중요하지 않슴다.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봄다.어떤 사랑이야기를 펼쳐갈지 궁금함다.혹시 남자주인공이름을 정하윤 이라 하면 어떠신지?자꾸 작품에 끼여들고 싶어하는 일인임다,후......

호수 (♡.27.♡.202) - 2024/02/11 10:12:12

와우~~신작 1화 너무 재밋게 보고 갑니다. 글쓰기 힘드시죠? 화이팅요~ 저는 2화 보러 갈게요^^

죽으나사나 (♡.214.♡.18) - 2024/02/12 00:00:17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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