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전 3

단밤이 | 2024.01.23 05:14:09 댓글: 2 조회: 268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2403
화랑전 3

 

화랑이 도서관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 갑자기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안 가지고 왔는데 어떡하지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숨을 내쉬며 화랑은 게이트에 모바일 카드를 찍고 들어갔다. 게이트만 통과했을 뿐인데 그 밖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조용조용 오가는 학생들 사이로 화랑도 섞여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자, 화랑은 숨을 들이쉬고 들어갔다. 평소에는 못 보던 얼굴들이 보였다.

 

3층. 독서실 도착한 화랑은 모니터 앞에서 멈춰 섰다. 자리를 잡으려던 그녀는 자기가 늘 앉던 자리에 누군가가 이미 차지한 것을 발견했다. 창가와 가까우면서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적은 구석 뒷자리였다.

‘대체 누구지?’

 

화랑은 쓸데없는 호기심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그 앞자리로 잡은 그녀는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애쓰며 자리로 걸어갔다.

 

자리에 가까워지자, 화랑은 그녀가 앉고 싶었던 자리에 누군가가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서관에 공부하러 온 게 아니고 자러 왔나?’

 

살짝 고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화랑은 자리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

의자를 빼는 소리가 조금 크게 난 것 같았다. 뒷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깬건가?’

 

화랑은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호기심을 억누르고 가방에서 교재를 꺼냈다.

종잇장 넘기는 소리, 사각사각 펜이 노트 위로 오가는 소리, 가벼운 기침 소리나 한숨소리가 이따금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 생각에 화랑은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이 몇 시지?’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시간은 족히 지나있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그녀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거 마실래? 아니, 너 마셔.”

 

화랑은 눈을 크게 떴다. 느닷없이 그녀가 앉은 자리 책상 위에 캔 커피를 내려놓은 그는 일주일 전쯤 서연이네 학과 회식 자리에서 본 이연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카페인이 몸에 받지 않는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인사한 화랑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블랙 아메리카노 캔 커피에 향했다.

 

그는 그녀의 인사가 채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화랑은 그제야 뭔가 눈치챘다. 그가 엎드려 있을 땐 미처 몰랐는데 그녀가 늘 앉던 자리를 선점한 장본인이 그였다.

 

‘공부를 하긴 한 건가?’

 

그가 준 캔 커피를 만지작거리던 화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가서 가볍게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독서실을 나서니 숨이 트였다. 천천히 음료수 자판기 앞으로 걸어간 화랑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야, 너, 커피 안 좋아해?”

 

“네. 안 좋아…. 네?”

 

화랑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별생각 없이 답하다가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네이비색 후드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은 무난한 스타일링을 했어도 어쩐지 눈에 띄는 스타일이다 싶은 윤이연이 그녀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자판기 앞으로 걸어왔다.

 

“뭐 마시고 싶어?”

바로 옆에 와서야 그녀를 흘깃 쳐다본 이연이었다.

 

“아니, 괜찮아요.”

화랑은 주머니 안에서 잡힌 동전을 꺼내 들었다.

 

“저 돈 있어요.”

 

“그래? 그럼.”

 

동전을 넣고 자판기의 음료수 메뉴 버튼을 누르려던 그녀의 손이 멈칫했다. 옆을 보니 이연은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지?’

 

화랑은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늘 마시던 하늘보리 차를 눌렀다.

드르륵 탕!

 

음료수를 꺼내든 화랑은 휴게실로 이동했다. 하지만 몇 걸음 사이 두고 이연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야외가 보이는 자리에 앉은 그녀는 음료수 뚜껑을 잡고 비틀었다. 딱! 하고 소리가 나면서 뚜껑이열렸다. 화랑은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 뻥 뚫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도서관에 오면 늘 하는 그녀만의 의식이었다.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그녀의 앞에 무작정 앉아버린 이연과 시선이 마주치자, 화랑은 몸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도 좀 마셔봐도 돼?”

 

“아니요. 저기 선배, 왜 이러세요?”

 

“내가 뭘 어쨌는데?”

 

“지금, 아니, 아까 전부터 왜 따라오시냐고요.”

 

“내가 너를 따라왔다고 생각해?”

 

“맞잖아요. 그리고 커피는 왜 주신 거예요? 저, 커피 안 마셔요. 이따가 돌려 드릴게요”

 

순식간에 말을 와다다 쏟아낸 그녀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뭐지, 나 오늘 할 말 좀 하는데?’

 

“아, 그래? 안 마실 거면 그래, 돌려줘.”

 

그러나 그녀의 반응에 비하면 다소 싱거운 그의 답이 돌아왔다.

 

평화로운 휴게시간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며 화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따라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독서실로 들어온 화랑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시험 범위를 너무 크게 잡아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집중해서 파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시 필기에 집중하려던 화랑은 아직도 책상에서 존재감을 내뿜는 캔 커피를 문득 바라보았다.

 

‘이걸 또 돌려줘야 한다고?’

 

그는 어쩐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몰라, 신경 쓰지 말자. 집중해 지화랑.’

 

그녀는 다시 노트 필기에 집중했다. 자꾸 미루다 보니 더 미룰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깨도 허리도 뻐근할 때까지 집중해서 노트 정리를 마친 화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기지개를 켰다.

 

‘끝나긴 끝나는구나.’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화랑은 별생각 없이 1층으로 내려왔다.

 

입구 쪽으로 걸어가던 화랑은 문득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떡하지? 우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날씨 앱을 켜고 확인해 보니 새벽까지 쭉 내린다고 나와 있었다.

 

“우산, 빌려줄까?”

 

옆에서 불쑥 말을 걸어온 이는 또 윤이연이었다.

 

“아, 대체 어디서, 아니 괜찮아요.”

 

“괜찮다고? 그럴 리가.”

 

그는 피식 웃더니 그녀에게 우산을 건넸다.

 

“쓰고 가. 커피는 나 주고.”

 

“네? 커피….”

 

그는 그녀가 들고 있던 캔 커피를 가져가고 그녀에게 검은색의 접이식 우산을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은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제가 쓰면 선배는요?”

 

“나, 우산 있어.”

 

윤이연은 가방에서 똑같은 우산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우산을 두 개씩이나 갖고 다녀요?”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해줄래?”

 

“아, 네. 아무튼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화랑은 뜻밖의 호의에 금세 표정이 풀어졌다. 그는 그런 그녀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 먼저 가볼게요. 선배도 안녕히 가세요.”

 

“그래, 또 봐.”

 

이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보기 좋게 웃었다. 손을 흔들어주고 화랑이 밖으로 나가자, 그의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연은 성큼성큼 한 쪽에 있는 분리 수거함으로 걸어갔다.

 

탕!

 

그는 들고 있던 캔 커피를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양 쓰레기통에 냅다 던졌다.

 

 ​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1/29 09:26:55

비오는날 우산을 챙겨주는 남자,멜로의 시작이네요.근데 이연은 왜 애매한
캔커피에 화풀이를 하는거죠? 여자가 커피 안마실수도 잇지.나두 옛날에 커
피 안마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피부관리 잘한다고 하던데.

나단비 (♡.252.♡.103) - 2024/01/29 09:38:31

물건에 화풀이 하는 사람도 좀 무섭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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