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29회)

죽으나사나 | 2024.03.07 06:06:30 댓글: 6 조회: 512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2215
너를 탐내도 될까? (29회) 굳이 알려주고 싶다면,

“… 그럼 구조조정 대상인 근로자들 재취업 건은 각 계열사에서 면접을 통해 배치하는 걸로 정리를 합시다. 각자 맡은 임무에 좋은 결과를 얻어오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내용인즉, 인수 합병 수순을 밟고 있는 리더스 근로자 구조조정에 관한 회의였다. 영진 그룹 계열사 중 많은 임원들이 급하게 출석을 했다. 인력이 필요했던 계열사들은 리더스에서 해고될 근로자들을 우선으로 면접을 보고 1년 계약직으로 채용을 해야 하는 제안 아닌, 명령이 떨어진 통보식 회의였다. 

자기 할 말을 끝낸 기혁은 아직 떨떠름해 있는 임원들을 뒤로하고 허리를 쭉 펴더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이한이가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대표실에  들어서자 기혁은 사무의자에 털썩 앉아 몸을 뒤로 젖혔다. 피곤한지 두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저…대표님. ”

대표실까지 따라 들어간 이한이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무작정 밀어붙이면 계열사들에서 말이 나올 거 같습니다. 불공정 채용 얘기도 나올 테고…“

”그런 말이 새어 나오면 저들 중에 있을 테니 잡기가 쉽지 않겠나.“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정자세로 앉아 책상에 두 손을 올린 기혁이가 이한을 마주 보며 하는 말이었다. 

”네.“

이한은  괜한 염려를 했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수긍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권대표가 리스크를 알면서도 통보를 내렸을 때는 그만한 각오가 스며들었을 거라는 걸 잊고 있었다. 

어떠한 잡음도 다 집어삼킬,  그 오만하지만 무조건 실행할 무서운 각오. 

이한이 그냥 나가려다가 다시 뒤돌아서 기혁을 한 번 더 불렀다. 

“대표님. 윤하정 팀장 전화번호 알려드릴까요?”

순간, 한쪽 눈썹이 일그러진 기혁이가 업무를 준비하다 이한을 노려보았다. 

아침부터 뭔 소리냐는 무언가의 질책이었다. 강한 불쾌함을 드러내는 그 표정을 보며 이한은 침을 꿀꺽 삼켰지만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어제 라운지 소파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윤 팀장을 한참을 쳐다보길래…“

미팅이 끝나고 1층 로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호텔 바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윤 팀장을 보았다. 

또 망부석이 되어버린 권대표를 보며 이한은 그를 한참이나 묵묵히 기다렸다.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를 빠져나갈 때까지도 다가가지 않았다. 

“굳이 알려주고 싶다면 알려줘.”

대표실을 나가려던 이한이 귓가에 꽂힌 말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이한이가 기혁을 보았을 땐 아무 일 없다는 듯 서류철을 펼치고 있었다. 

“네. 문자로 드리겠습니다.”

이한이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궁금해할 줄 알았다. 다만 직접 달라고 하기가 그랬겠지. 

눈치가 빠른 자신을 칭찬하며 이한은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그러다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저 때문에 꾹 닫힌 대표실을 넌지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도대체 언제부터 윤 팀장한테 저리 푹 빠지신 거지?’

“띠링.”

문자 한 통이 들어오자 바로 확인이 들어간 이한은 발신자를 보고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

“나 똥집 주문해 줘.”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정연이 맞은 켠 자리에 털썩 앉으며 하정이가 던진 말이었다. 

정연은 큰 눈을 가로 흘기며 테이블 위 버튼을 눌러댔다. 

똥. 집. 이란 건 잘 모르겠지만 또 그렇다고 알고 싶지도 않은,  말 그대로 똥이 들어찼던 내장이란 말 아닌가?

자신은 비위가 약해 냄새도 맡기 싫은데 저건 어떻게 매번 그놈의 똥집을 그리도 찾는지. 

나지막하게 우웩~ 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누른 벨 소리를 듣고 온 알바생한테 똥집 메뉴를 추가했다. 

“너 또 똥집을 똥 들어간 내장이라 생각했지.”

입에 못 담을 걸 말하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정연을 힐끔 보던 하정이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어? 아닌데.”

“맞는데 뭘. 내가 말했잖아. 똥을 담는 내장 아니라 모.래.주.머.니.라고.”

이를 으드득 갈며 또다시 설명을 했다. 

“네에~”

똥 냄새나던데 뭘.

대답은 수긍을 했으나 속은 또 제 나름인 정연이었다. 

”근데 왜 갑자기 술 마시자고 했어? 나 내일 출근이라 많이 못 마신다. 쉬고 있는 너랑은 달라.“

은근히 콧대를 높이며 먼저 나온 호프를 들이켜는 정연을 한대 콕 쥐어박고 싶은 걸 참으며 하정은 입매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었다. 부를 친구가 없어 아쉬운 건 본인이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알잖아. 심란할 때 부를 사람이 너밖에 없다는 걸.”

“왜, 또 무슨 일이 있어?”

번개에 붙었나, 

몸을 나른하게 뒤로 젖히고 있던 정연이가 벌떡 상체를 세우더니 하정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분명히 어제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얘기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할 게 뻔한 정연을 노려보던 하정은 입을 슥 닫았다. 

“아니. 일은 없고 그냥 너랑 술을 마시고 싶어서.”

“뭐야…”

김이 샌 정연은 다시 젖은 빨래처럼 의자에 몸을 드리웠다. 

“요즘 바빠?”

회사일로 몸이 제법 힘든지 축축 처지는 정연을 보고는 하정이 물어왔다. 

“요즘 좀 바빠. 크루즈 선에 관련된 업무도 배로 증가되었고 또 너네 회사 인수 합병 문제로 바빠.”

“아…”

예상은 했던 거라 덤덤하게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는 넌 진짜 그 회사 그만둘 거야? 우리 회사서 인수하면 사실 안 좋은 것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을 텐데. 욕심이 많은 하정이 너한테는 진짜 좋은 기회 같거든.”

“안 돌아가. 쉬고 싶단 생각이 드는 순간에 난 이미 마음을 접었어.”

아까워하는 정연에 비해 참으로 단호한 하정이 말이었다. 

“지이이이잉.”

정연이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바로 들어오세요. 제일 구석진 곳에 앉아 있어요.”

하정이가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정연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이런 말을 해댔다. 

“뭐야?”

바보가 들어도 누가 가게로 온다는 뜻이었다. 

하정이 눈썹을 씰룩거리면서 불쾌한 티를 팍팍 냈다. 

“아, 미안. 오늘 선약이 있었는데 네가 갑자기 보자고 해서, 너도 아는 사람이니까 어색하진 않을 거야.”

“응? 누군데?”

입꼬리를 스륵 올리며 하정을 달래는 그 얼굴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정연이 퇴근 직전에 갑자기 전화해서 보자고 한 건 자신이었으니.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진짜 하정이가 아는 얼굴이 이들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어?” ”어?“

금방 가게에 들어선 그 남자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던 하정이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 다 놀라서 검지를 서로에서 겨누었다. 

- 이한 비서실장이 왜 여기에?

- 윤하정 팀장이 왜 여기에?

둘의 시선이 동시에 똥집을 집어 들고 킁킁 냄새를 맡던 정연에게로 향했다. 

”아하하…“

정연은 그제야 어색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 오늘 이 실장님이랑 만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하정이가 축 처져서는 술을 마시자고 하는 바람에… 그래서 차라리 셋이서 만나자는 생각에 이렇게 됐네요.“

나름 괜찮은 변명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정의 떡 벌어진 입은 이한이가 먼저 건넨 인사 때문에 억지로 다물게 되었다. 

권대표와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사람 앞에서 무슨 술을 마신단 말인가. 

하,

기가 막혔다. 

근데, 

얘는 언제 이 실장이랑 따로 만나는 사이가 된 거야? 원래 친했나?

의심을 가득 담은 시선을 정연이한테 쏘아부었다. 

그 시선이 꽤 따가웠는지 정연이가 이한에게 시선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이제 저한테 묻지 마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하정이한테 직접 물으세요.”

응?

뭔 말이지?

하정은 자연스레 이한에게로 고개를 틀었다. 

정연과 하정을 번갈아보던 이한이가 눈알을 굴리더니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아… 그게, 뭐냐면요.”

정연이가 이렇게 갑자기 비밀스러웠던 만남을 쉽게 꺼낼 줄 몰랐던 이한은 머리를 빨리 굴리며 상대방이 납득할 만한 말을 상상했다. 

“이 실장님이 저한테 뭐가 궁금한데요?”

생각 정리를 못했는데 하정이가 훅 들어왔다. 

“그게…”

권대표가 당신을 궁금해합니다, 라고 하면 내일 당장 그분한테 죽을 거 같은데.

이한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그러면…

“대표님께서 유능하신 윤 팀장님을 저희 본사로 모실까 합니다. 뭐, 직원에 관한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것과 같은 거죠.“

처음 듣는 말에 앞에 앉은 정연이가 눈이 둥그레져 깜빡댔지만 일부러 고개를 하정에게 돌렸다. 

“아…”

하정이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했을까. 

권대표가 나란 여자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는 그 생각을. 

“저 근데 리더스에서 사직서를 낸 상황이고요. 당분간 다시 일할 생각 없어요.”

“왜요?”

“그냥…요. 쉬고 싶어서요. 졸업하고 나서 지금 회사에 처음으로 입사를 한 건데. 한 번도 제대로 된 휴가도 안 갔거든요.”

의사가 나보고 치매라고 해서, 라는 말은 못 꺼내지. 

”여기 실장님 호프요. 어쨌든 이렇게 모였으니 회사 얘기는 말고 쭉쭉 들이킵시다.“

정연이가 호프 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축 처졌던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였다. 

”그래요.“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7월의 열대야를 순식간에 식혀주는 건 역시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생맥주 한 잔이었다. 이가 시리는 전율을 느끼며 끊을 수 없는 이 맛. 케케묵은 체증이 떨쳐나가는 기분도 들었다. 

“근데 윤 팀장님.”

“아, 저 이제 퇴사했으니까 더 이상 팀장 아닙니다. 그냥 이름을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윤하정 씨?”

“오케이~ 그렇게 불러주세요.”

머리가 띵해지면서 시원만 생맥주에 이끌리듯 연거푸 마셔서 그런가, 급 해롱 해진 하정이가 실실 웃으면서 이한이 부른 그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었다. 

“우리 하정이 이제 백수네. 네가 백수라니. 와아… 평생 일벌레로 살 거 같은 네가! 어떻게 이러냐? 어쨌든 부럽다!!”

아아…
큰일 났다. 앞에 앉은 정연이 목소리 톤도 확 올라가는 걸 보아서는 둘 다, 취했다. 

어쩌지.

난감해진 이한이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앞에 앉아 있던 정연이가 의자를 쓱쓱 당기며 이한이 옆으로 바짝 붙었다. 

“뭐, 뭐해요?”

이한이가 당황해서 속삭이듯 말하며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 하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 화장실 가야겠네.”

다행히 이들 상황에 관심이 없는지 하정은 벌떡 일어서더니 화장실로 향해 걸어갔다. 

“저 실장님한테 비밀 하나 얘기해 줄까요?”

정연이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며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떤… 비밀이요?”

“사실~”

“네.”

“대표님이랑 하정이 둘 뭐가 있나 봐요. 제 촉이 그래요.”

“아…”

뭐 대단한 걸 발견하셨네요. 촉이 그리 나쁘신 편은 아닌 듯하니까. 

“저도 알아요. 근데  또 서로 밀어내는 느낌이라.“

이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정연이가 이한이 옆에 한층 더 바짝 붙었다. 높아진 톤에 무심결에 고개를 튼 이한이가 마주한 건 거의 닿을 듯한 정연이 얼굴이었다. 

정연은 졸리기도 한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어느새 이한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우리 실장님 잘 생기셨어.“

”네?“

확 달아오르는 얼굴 열기에 이한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둘이 뭐해요?“

귓등에 꽂히는 그 말에 이한은 급히 정연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의자 등받이에 몸을 천천히 기대게 했다. 

그 모습을 게스름하게 쳐다보던 하정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둘이 사귀는 거 아니죠?“
추천 (2) 선물 (0명)
IP: ♡.214.♡.18
나단비 (♡.252.♡.103) - 2024/03/07 17:46:08

하정이와 다르게 정연이는 끼쟁이네요 ㅋㅋ

죽으나사나 (♡.234.♡.142) - 2024/03/08 01:42:54

아하. 그런가요. ㅋㅋ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2:40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2:50

잘 보고 가요 ㅋㅋㅋ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2:55

ㅎㅎㅎ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2:59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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