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9회)

죽으나사나 | 2024.01.14 11:59:47 댓글: 0 조회: 63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0295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9회)  여자의 몸은 대단하다. 
"진심이야?"
혜주는 자신의 팔을 잡았던 주혁이의 손을 도리어 꽉 잡으며 답을  하라고 재촉했다. 
그런 혜주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느껴졌다. 심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본 주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니. 내가 왜 죽어?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보고 오래오래 살다 죽어야지. 김혜주한테는 미안하지만."
씨익 웃으면서 하는 주혁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픽 콧방귀를 뀌려고 하는 혜주의 얼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읍!!"
.... 화장실 안.
"우엑~~우에에엑~~...웩..."
"쾅.쾅."
"혜주야, 괜찮아? 왜 속이 안 좋아??"
아 씨...
방심을 했다.
혜주는 변기를 붙잡고 토하다 더 이상 나올 게 없자 옷소매로  젖은 입을 닦으려다가 수도를 틀어서 물로 미친 듯이 금방 주혁이한테 기습 뽀뽀를 당한 입술을  비벼댔다.
"혜주야. 너 왜 그래?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꾹 잠겨버린 화장실 문밖에서 주혁이가 뽀뽀를 하자마자 구역질을 하는 혜주가 걱정되어서 문을 두드려댔다.
저 자식, 그냥 죽여버릴까?
하...
"괜찮아.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제발 좀 지금은 사라져 줘. 나 널 죽일 수 있으니까. 그게 남주혁인  나라도.
"여보세요? 아, 윤호 형. 무슨 일이에요?"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더니 소속사 대표 윤호한테서 전화가 온 건지 화장실에서 주혁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혜주는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도 같이 죽을래.]
농담을 하는 얼굴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 나의 분신과 다름없는 혜주가 죽는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씨 X. 그냥 죽여! 이 새끼야!]
이를 악물고 교도소에서 재소자들한테 달려든 그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 기분도 그랬지. 진짜 죽여줬으면 하는 바람...
만일 지금 과거로 드나들고 있지 않다면 난... 과연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말이 안되지만 혹시 죽은 혜주가 내가 자기를 따라서 죽으려고 할까 봐  초능력이라도 쓴 걸까...
이 모든 게 설명이 안되지만 하나는 알 수가 있었다.
난 혜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답도 없는 이 굴레에 빠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으로 돌린 고개에 쏠린 시선은 유리로 된 샤워부스였다. 거기에 비치는 쭈그리고 앉아있는 혜주의 가련한 모습. 
"으..."
뭐지? 슬픈 마음에 한참 차가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아랫배가 슬슬 아파지기 시작한다.
혜주는 아픈 배를 슬슬 문지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괜찮아? 혜주야."
어느새 통화가 끝난 주혁이가 혜주한테로 성큼 다가왔다.
"오지 마!"
자동 반사였다. 갑자기 움츠려진 몸에 싸울 듯이 주먹을 쥐고 뻗은 두 팔.
"어쭈~ 싸우려고?"
그런 혜주의 이상한 행동에 주혁은 피식 웃어버렸다.
"나 지금 윤호 형이 불러서 그만 간다. 혼자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알았지?"
주혁은 혜주가 장난치는 줄 알고 같이 놀아주려다 빨리 회사로 오라는 윤호의 말이 생각나 돌아섰다.
다행이다. 휴...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또 아랫배가 살살 아파진다.
"으으.."
나지막한 혜주의 신음 소리였는데 옷을 입고 나가려던 주혁의 눈에 띠였다.
"왜 배가 아파?"
아랫배를 문지르며 힘들어하는 혜주를 보았다.
"아, 몰라. 갑자기 배가 아프네? 화장실 배는 아닌데."
못 느껴본 아픔이다.
괘씸하게 자꾸 뭔가가 쿡쿡 찌르면서 허리를 못 펴게 만든다.
"너..."
주혁이가 검지를 내밀더니 뭔가가 생각난 듯 혜주의 이마를 탁 건드렸다. 
"그날 아니야?"
응? 그날?

어느새  앞에 다가온 이 자식을 신경 쓸 정신이 아니다. 
"너 이때쯤에 생리했던 거 같은데?"
하???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좀 찝찝한 느낌이 들더라니...
맙소사!
주혁은 일단 회사 갔다가 다시 오겠다면서  나갔고 홀로 남은 혜주는 아까 혼자 생쇼를 하고는 힘들어서 침대에 이불을 꽁꽁 싸맨 채 누워있었다.
김혜주, 진짜 나한테 슬플 겨를을 안 주는구나.
배우로써 내가 안 해본 역할은 없었다. 양아치, 재벌, 살인자, 그리고 남자를 사랑하는 게이 역할도. 
내 내면에 여럿이 살고 있는 건지  처음 해보는 역할 따위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그때그때 쉽게 그 역할에 빠질 수 있는 그게 능력이라면 능력인 내가 살다 살다 이제 여자의 역할도 해보기는 처음이다.
이건 근데 연기가 아니라, 진짜다. 
"배가 어떻게 이렇게 아프냐고~~~~ 와아... 여자들 대단."
배를 끌어안고 뒹굴며 혼자 중얼거리는 주혁이다.
아까 화장실에서 옷 다 벗어던지고 처음 써보는 생리대가  어려워서 한참을 연구하다가 도저히 몰라서 휴대폰으로 검색까지 했다.
요즘은 하도 인터넷이 발달이 잘 되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
웹에 올라온 성교육 글을 하나하나 읊었다.
[1번 개별 포장지를 뜯어 생리대를 펼치고, 2번 생리대를 팬티에 붙여...요? ]
아, 몸에 붙이는 게 아니었네? 꼭 몸에 붙이게 생겼는데.
음~
[3번 속옷을 감싸듯이 날개를 반대편으로 접어주고, 엥?  날개가 없는데?]
요리조리 뒤집어 봐도 그냥 길쭉한 물체인데?
그제야 포장지를 주워서 다시 보니 거기엔 '소형 팬티라이너' 라고 돼 있다.
팬티라이너가 뭐지?
다 똑같은 거 아닌가?
또 처음부터 다시 검색이 필요했다. 아... 이건 생리가 시작할 때 쓰는 건 아니네.
욕실 수납장에서 여러가지 색깔로 되어있는 모든 생리대로 보이는 물건들을 집어 꺼냈다.
왜 이렇게 종류가 많아?
머리가 찌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난리를 치다가 겨우 롱 사이즈의 날개 달린  생리대를 찾아 어색하게 착용한  혜주는 이렇게 침대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거다.
검색을 해보니 첫날엔 양이 많아서 조금 큰 걸로 써야 한다더라.
이렇게 완벽하게 여자 체험을 하는 남자는 이 지구상 자기 혼자일 거라 생각하며 피식 웃다가도 얼얼하게 아픈 배를 붙잡고 또 끙끙대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밤이 되어 버렸다.
"드르륵ㅡ"
현관 중문이 열리더니 주혁이가 돌아왔다.
"지금도 아파?"
다른 걸 신경 쓸새도 없이 주혁은 곧장 혜주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어... 죽을 맛인데."
처음 겪는 생리통에 이제 해탈의 경지까지 온 혜주는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다.
"약은 먹었어?"
"약?"
주혁이의 말에 나갔던 멘탈이 갑자기 돌아오기 시작한 혜주. 눈에서 빛이 났다.
그래! 약이 있었지! 이 등신. 왜 그걸 까먹고...
생각해 보니 혜주가 생리통으로 힘들어할 때 자기가 약을 챙겨줬으면서 왜 그걸 까먹은 거야?
자기 본인이 아프고 보니까 정신이 나갔네 그냥.
"얼른 먹어. 우리 혜주는 그래서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약과 물을 챙겨서 혜주 앞에 내밀면서 주혁이가 혜주의 옆에 앉았다.
저리 좀 갔으면 좋겠는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킨 혜주다. 지금은 얼른 약이나 먹자. 생리통에 아픈 혜주를 뭐 어쩌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주혁이가 건네준 약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조금 지나니 기적같이 슬슬 배가 안 아프기 시작했다.
오홀~ 진통제를  만든 과거의 인류여! 존경합니다!
난 처음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한 번으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데 혜주는 오죽할까,
엄청 힘들겠다. 매달 꼬박꼬박 찾아오는 이것 때문에.
그리고 무슨 폭포수냐. 왜 이렇게 끝도 없이... 하.
일어나기 싫지만 또  화장실로 향해야 하는 게 귀찮은 혜주다.
"얼른 와. 생강차 끓였으니 와서 마셔."
화장실에서 나오는 혜주를 보며 주혁이가 주방에서 손짓했다.
혜주는 눈을 살짝 굴리다가 터덜터덜 못 이기는 척 주혁이의 앞에 다가갔다.
"마셔, 얼른."
내가 했던 행동들이다. 이 자식이 내가 맞기는 하네.
힘들어하는 통증 수위가 매번 같은 건 아닌 거 같은데 가끔 엄청 힘들어할 때의 혜주가 있었다. 그래서 생리통 완화하는 음식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생강차가 생리통에 좋다길래 그 뒤로 시간이 나면 끓여주곤 했었다.
내 손으로 만든 생강차를 내가 직접 마시게 될 줄은 몰랐네.
"고마워."
진짜 고맙다. 남주혁. 
호로록호로록하면서 생강차를 들이키는 혜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혁은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알지만 혜주는 지금은 그냥 고마운 마음이 크니 모른척하기로 했다.
약 때문인지 생강차 때문인지 낮 동안 괴롭혔던 통증은 진짜 많이 완화되었다.
그냥 지금은 이 찝찝한 것만 좀 없었으면 좋겠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아픈 혜주 대신 설거지를 한다면서 팔을 걷어 올린 주혁을 말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네가 하나 내가 하나 다 나인데. 그냥 네가 해라.
혜주는 설거지에 집중하고 있는 주혁의 뒷모습에 시선을 꽂은 채 식탁 앞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남주혁 난 생각보다 혜주한테 실망스러운 남자까지는 아니었네.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노력을 했으니.
근데 왜 혜주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를까.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혜주가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 너를 얼마나 찾았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왜 너는 그 시간에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을까.
아무리 몰랐었다고 해도 어딘가 이상했을 혜주를 왜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자책과 후회에 휩쓸려 어느새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혜주의 죽음이 다 자기 탓인 거 같아서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았다.
"혜주야. 왜... 그래?!"
아무 말 없이 조용한 혜주가 뭐하나 싶어 설거지를 하다가 무심결에 돌아본 주혁이가 자신을 쳐다보면서 울고 있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했다.
모르겠다. 그냥 혜주를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미칠 거 같고 지금 아무 것도 모르고 토끼처럼 눈이 동그래져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저 자식도 불쌍하다...
...
"너 오늘 좀 이상하네. 생리통이 그렇게 아픈가? 감정 기복도 있는 거 같고. 내가 대신 아파할 수도 없고. 어휴~ 우리 혜주 죽이네."
침대에 뒤돌아져 누워있는 혜주를 바라보며 주혁이가 한숨을 내쉬며 던지는 말이었다.
걱정 마라. 네가 그걸 겪고 있는 중이니까. 
어느새 혜주가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주혁이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주혁의 손이 혜주의 허리를 감싸더니 아랫배에  올려서는  살살 마사지를 해주었다.
등 뒤에 갑자기 가깝게 쳐들어온 주혁이의 행동에 잠깐 흠칫 한 혜주는 오늘만큼은 이 자식을 쫓고 싶지 않았다.
그 이상은 뭘 못하겠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는 접촉은 싫어도 눈 감아 주기로 했다.
어차피 4개월 뒤에는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상도 사라질 테니...
그리고 이상하게 주혁이가 마사지를 해주는 배는 점점 따뜻해지는 거 같았다.
그렇게  자신을 꼭 껴안은 주혁을  뒤로 한 채 혜주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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