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16회)

죽으나사나 | 2024.01.18 03:28:26 댓글: 0 조회: 201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1157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16회) 나만 몰랐던 일. 

만일 진짜 혜주라면 어땠을까. 그 여자를 도와달라고 얘기할 혜주가 아니니 이 성가신 여자를 어떻게 쳐냈을까. 나한테는 차마 얘기를 못했겠지. 미치고 날뛸 거란 걸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주혁이한테 진짜 말이라도 할 거 같아서 온 건 아니지?”

“그렇지 않으면 나 주혁이 찾아갈 수밖에 없지. 그건 네가 원하는 게 아닐 거 아냐.”

내가 머리 아파하는 걸 싫어하는 혜주라면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너희들 만나는 거 나한테 들켰을 때도 너 먼저 순순히 용돈을 주겠다고 한 거였고.”

혜주가 자처해서 준 거라고? 나한테 가서 협박할까 봐?

“퍼뜨린다고 협박할지 말지 사실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혜주 네가 그렇게 나와주니 나는 힘도 안 들이고 돈을 받게 되니 얼마나 좋아. ”

기분 나쁘게 씩 웃는 심건희를 보고 있으라니 기분이 더 잡쳤다. 

“ 그러니 이번에도 네가 방법을 찾아줘. 주혁이한테서 100억을 빼와. 아니면 내가 미쳐서 주혁이한테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겠으니. 근데 네가 주혁이한테 그 정도의 값어치가 될지는 모르겠네?“

절절매던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많이 거만해진 태도의 심건희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저질일 수가 있나 싶다. 

하, 내가 저 여자의 피를 이은 아들이라는 게 부끄럽다. 

주혁은 별말 같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심건희를 거의 쫓다시피 내보내고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지금은 그냥 블랙박스에 다른 사람도 찍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만일 진짜로 그 여자가 그런 거라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생각을 그만해야겠다. 현재 여기선 생각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이놈의 배는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쑤시냐.
아, 고달프다. 

혜주는 방으로 들어가 알약을 입안에 넣고는 터덜터덜 물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다. 

아픈 배를 끌어안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서는 휴대폰을 만졌다. 어느새 주혁이한테 문자가 한통 왔다. 

<배는 어때? 생강차 마셨어? 어제 자면서도 끙끙 소리를 내더라. 너무 아프면 약도 꼭 챙겨 먹어. 아, 그리고 나 오늘 늦게 들어갈 거야. 누굴 만나기로 했는데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누구를 만나는지는 집에 가서 알려줄게. 보고 싶다. 김혜주. >

아주 사랑꾼 나셨네. 내가 쓰기만 하고 읽지는 않아서 몰랐는데 이리 읽어보니 닭살이 좀 돋는데? 혜주는 이런 걸 과연 좋아했으려나?

의문이 드는 주혁이다. 

근데 오늘 누구를 만난다고? 누구? 이런 문자를 보낸 거 같기도 한데 그게 누구인지 생각이 날 듯 말 듯하면서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아니면 혜주의 살아있는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싶은 핑계로 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걸 빼고는 침대에 붙어서 거울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혜주의 혼은 내 앞에 없지만 요즘 힘들었던 마음이 이렇게 살아있는 혜주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안정이 되었다. 

그러다 잠이 솔솔 들어서 잘 자고 있는데 드르륵하고 현관  중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주혁인가?

침대에 내려오며 나가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거실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나가보니 소파에 가기 전에 바닥에 늘어진 주혁이가 보였다. 가까이 가니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야. 남주혁.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여기서 자냐?”

살다 살다 취한 내 모습을 이렇게 리얼하게 볼 줄은. 

발로 툭툭 차도 끄떡없는 주혁에  이 덩치를 들 힘은 없는지라 이불이나 챙기려고 발을 떼는 순간, 주혁이의 커다란 손에 발목이 잡혔다. 

“뭐야, 깼어? 깼으면 침대… 아니, 소파에서 자. 바닥에서 자지 말고.”

침대는 무섭다. 너랑 있는 게. 

혜주의 말을 들은 걸까. 주혁이가 느린 행동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 소파 위에 걸터 앉았다. 머리는 양손으로 꼭 싸맨 채 푹 떨구고 있었다. 

왜 저래? 머리가 아픈가?

왜 그러는지 몰라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갔고 혜주의 가까이 다가간 발을 보았는지 주혁이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서 혜주를 시선을 맞추었다. 

뭐, 뭐야. 얘가 왜….

깊고 서글픈 눈동자가 혜주의 눈에 들어왔다. 

“나 여기서 배우 그만하면 안 될까?”

앞에 서있는 혜주를 올려다보면서 나지막이 뱉어내는 주혁의 말이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는데.“

어딘가 불안하다. 내가 이런 소리를 혜주한테 했었나? 기억에 없는데?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혁이가 소파에 앉은 채로 혜주의 허리를 와락 끌어당겨 자기 머리를 혜주 몸에 기댔다. 정확히 혜주의 배에. 
그러고는 또 낮은 목소리로 힘이 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

이런 접촉은 자기 자신이랑 하고 싶지 않은 혜주가 그를 밀쳐내려다가 멈추었다. 

누구를 만나고 기분이 확 다운되어서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너 기억나? 우리 고등학교 때  진짜 재수가 없던 애가 있었잖아. 유지태라고. 걔를 만나고 왔어.”

”…!!!“

놀라서 입이 떠억 벌어졌다. 

그날이구나. 오늘이. 

근데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혜주한테 유지태를 만났다는 얘기를 한 적이…

불현듯 몇 개월 전에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서 혜주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확 치고 들어왔다. 웃기게도 그게 지금에야 생각이 났다. 

혜주가 그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주혁이가 벌써 울기 시작하는지 어깨가 들썩여 안고 있던 혜주의 몸도 같이 파르르 떨렸다. 

”그 미친 새끼가 글쎄… 김기석 감독이랑 잘 아는 사이라네?  그래서 성현이가 오늘 특별히 자리를 만들어준 거 였거든. 근데 망쳤어.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는데 그 자식은 아직도 사람새끼가 아니더라 .“

아… 내가 다 불었구나. 

미쳤다. 이 이상 더 불면 안되는데…

“그 새끼가 글쎄 아직도 나를 그렇게 비웃더란 말이지. 정치하는 부모님을 뒷배에 두고 어릴 때부터 거만하고 재수 없던 새끼가 지금도 그래. 하나도 변함이 없어. 그런 새끼한테 내가 뭘 바라고 만나자고 했는지…”

많이도 억울한 가보다. 벌써 주혁의 눈물로 혜주의 옷이 흥건한 느낌이다. 


내가 그 장본인이니 그 맘을 모를 리가 없다. 
유지태와의 사이는 고등학교 때 시작되었다. 

[이야~ 거 무슨 배우인가 연극인가 한다고 또 이렇게 대사를 읊고 있냐? 네가 무슨 배우냐. 웃긴다 야. 안 그래?]

할아버지 때부터 정치인 집안의 혈육인 유지태는 학교에서 누구도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무법자였다. 여태 주혁이하고는  거의 접전이 없었는데  며칠 전에 혜주한테 껄떡대다가 주혁이가 미친놈처럼 지랄하는 바람에  더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 뒤부터 주혁이를 보기만 하면 이렇게 놀려댔다. 대신 키가 지보다 많이 큰 주혁 앞에서 막 주먹을 휘두르고 그러진 않았다. 
무법자지만 집안에서 심하게 엄격하신 아버지가 지태한테 경고한 바가 있었다.  싸움은 절대 안 된다. 때려서도 안되고 맞아서도 안된다. 그게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때는 아들이고 뭐고 없다. 

그렇다고 얌전히 살고 있을 유지태는 아니었다. 나약한 남자애들은 데리고 다니면서 나쁜 일이나 시키고 고자질을 안 할 거 같은 애는 구석에 데리고 가서 많이 패기도 했다. 즉 사람을 가려서 괴롭혔단 얘기다. 

남주혁은 집안 배경은 없는 애인 거는 족히 알고 있다. 다만 평소에는 히죽히죽 잘 웃다가 한번 꼴리면 미X개같이 덤벼드는 습관이 있다. 아예 미쳐버리는 거지. 그런 모습을 1학년 때 뭣 모르고 달려들었던 옆 반 남자애가 친히 겪으면서 보여줬었다. 

그 정도로 지랄을 하면 학교가 아니라 자기 집까지 소문이 날 거 같으니 그냥 말로만 주혁이의 자존심을 빡빡 긁었다. 

[야, 너 같은 게 배우가 되면 나는 대통령도 하겠다. 하하하..]

[하하하하…]

지태의 꼬봉들이 그가 웃기 시작하자 지네들도 같이 하얀 이발을 드러내며 웃어댔다. 

그럴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옆에 없다가도 어느새 나타나서 온몸으로 말린 게 혜주였다. 

그때부터였나. 몸에 잠재워져 있던 살기의 충동이 올라올 때마다 혜주가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었다. 

[야, 남주혁. 나 우리 엄마한테서 들었는데 너네 엄마 예전에 잘나가는 배우였다며? 너를 배게 되어서 결혼하고  웬 영감탱이랑 바람을 피우다 연예계에서 쫓겼다던데. 맞냐?]

1학년 때 이름도 모르는 다른 반 남자애가 다가와 갑자기 저런 말들을 꺼냈다. 

그냥 눈알이 돌아갔다. 미친 듯이 쥐어패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교장까지 와서 남자 몇 명이 같이 뜯어말린 후였다.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미친 듯이 때려놓고는 퇴학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맞은 애 부모가 아빠랑 잘 아는 사이였다는 건 정학을 2개월만 받았을 때 알았다. 우리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자기네끼리 얘기하는 걸 그 애가 들은 거였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자기네 잘못도 있다며 학교 측에 폭력 피해자인 자신들이 사정 사정을 해서 2개월의 정학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병원에 한참을 있었던 그 맞은 애가 오히려 그 학교에서 다니기 싫다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 

그때는 혜주랑 친하기 전이었다. 그 모습을 혜주는 멀리서 다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주혁이가 화를 내려고만 하면 자기가 지레 겁먹고 그의 화난 마음을 열심히 달래주었다. 
근데 그게 또 잘 먹혔다. 얼마나 화가 나고 힘들어도 혜주가 달래주기는 주혁이한테 직방이었다. 그 조그맣고 온기 가득한 손으로 주혁이의 주먹 위에 얹으면 어느새 부글부글 끓던 마음 깊숙이까지 녹아내리는 거 같아서 화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상하리만큼 그랬다. 

어찌 되었던 혜주의 말림이 없었으면 열 번도 싸웠을 유지태와의 관계였다. 다행히 2학년 때 좀 그러다가 무슨 영문인지 유지태가 전학을 가는 바람에 잊고 있었다. 그 짜증나는 얼굴을. 

그런데 한 달 전쯤, 촬영 현장에서 김기석 감독한테  세차게 까이고 나서  힘든 마음에 홀로 룸바로 갔다. 혜주하고는 친구를 만난다고 했지만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근데 거기서 고등학교 동창 박성현을 우연히 만났다. 

[와아. 이게 누구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우리 유명한 대스타 남주혁 아니야?]

오버 넘치는 만남이었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바짝 들러붙어서 안 가는 성현이 때문에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성현은 그렇게 친한 기억은 없었지만 나쁜 기억도 없었던지라 말을 해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았다. 

[우리 반에 이렇게 대단한 스타가 나온 게 너무 자랑스럽다야. 사실 애들이 그때 배우를 한다고 하는 네가 그리 미덥지 못했거든. 네가 얼굴이랑 키는 남달라도 연예계에 그런 사람은 널렸는데 네가 설마 이리 성공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거야. 대단하다야.]

간만에 누군가 이렇게 고등학생일 그때와 비교를 해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도 술술 나왔는지 모른다. 

[너 정도면 이제 완전 TOP 아니야? 이제 너는 목표도 없겠다야. 사는 게 재미있냐?]

[목표?]

우러러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성현의 말끝에 목표라는 단어가 나오자 또 낮에 있던 일이 생각나서 술잔을 들어 원 샷했다. 

[왜. 너한테도 고민이 있어?]

실실 웃던 성현이가 입꼬리를 내리고 물어왔다. 

[마지막 목표가 있는데 그걸 이루기 힘드네.]

[그게 뭔데?]

[너 김기석 감독 알아? 그 감독 작품에 들어가는 게 내 최종 목표야.]

[김기석? 어디에서 들어 본 이름인데?]

[그런 사람이 있어.]

말을 말아야지. 그냥 일반인한테 얘기해 봤자 유명한 감독이라도 다 알리는 없지. 

고개를 갸우뚱하던 성현은 다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너 정도면 할리우드에서도 너를 모셔가야 하는 거 아냐? 무슨 한국 감독 하나 때문에 그러냐.]

그러게. 그냥 나의 어릴 때부터의 꿈이라 그런가 보다. 
아닌가, 그 꿈을 이루었을 때 더 기뻐할 혜주를 생각해서 일지도. 

[그러고 보면 네가 그때 혜주. 민서. 그리고… 맞다. 반장 하민수랑도 친했었잖아. 하민수는 지금 뭐하고 사는지 몰라? 너 알아? 그때 하민수가 재벌 집 아들이네 어쩌네 말이 많았던 거. 햐. 애들 다 보고 싶다.]

혜주는 내 옆에 항상 있고 민서는 혜주가 아주 가끔이라도 연락은 꾸준히 하는 거 같고. 근데 민수가 뭐 재벌 집 아들?

콧방귀가 저절로 나갔다. 

[내 밑에서  매니저나 하는 자식이 무슨 재벌 집 아들이냐.]

시큰둥해서 하는 말에 성현이의 눈이 커졌다. 

[뭐? 진짜? 하민수가 네 매니저야??]

[응. ]

성현이가 따라준 술잔을 또 비우며 주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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