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1회)

죽으나사나 | 2024.01.21 01:38:16 댓글: 0 조회: 187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1839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21회)  더해진 기억.

*10월 15일. 견인보관소. 

“감사합니다.”

민서와 민수는 관리인이 넘겨주는 블랙박스 칩을 받고 주혁이한테 향했다. 

가는 길, 민수는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민서는 차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 뭘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조용히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달려 경찰서 근처 공원에 있겠다던 주혁이가 안 보인다. 

”어디 갔지? 전화도 안 받고.“

민서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 먼저 볼래?“

두리번거리는  민서를 향해 민수가 입을 떼었다. 

”… 그래. “
 
둘은 같이 벤치에 앉아 칩을 휴대폰에 꽂고 블랙박스 화면을 켰다. 

한편,

“아저씨. 괜찮아요? 일어나 보세요. 아저씨.”

으음… 뭐지? 

남자애의 안타깝게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주혁이. 주위를 둘러보니 공원이었다. 

분명히 그 자식을 피해서 소파에 잠들 때까지는  과거였는데… 이렇게 그냥  현실로 온 듯하다. 

“아저씨, 코피 나요!!”

“어?“

손등을 코에 갖다 대니  빨간 피가 묻어났다. 

”죄송해요. 저희가 공을 조심히 다뤄야 하는 건데…“

”괜찮아. 내가 조심을 했어야 했어.“

안절부절못하는 고등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어 안심시키고는 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코피를 닦을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하고 또 민수한테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저… 근데 혹시 남주혁 배우 아니에요?“

뒤에서 고등학생이 질문을 했다. 

”아니, 그냥 닮은 사람.“

머리를 갸우뚱하는 고등학생을 뒤로하고 눈에 띈 화장실로 향했다. 

이제 왔을 텐데…

주혁은 코피를 물로 처리하고  급히 민서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주혁아. 너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았어.“

통화연결이 되자마자 민서가 말할 틈도 안 주고  다그쳤다. 

”미안. 일이 좀 있었어. 블랙박스는.“

말해도 믿지 못할 그곳에 잠깐 다녀왔어. 

”갖고 왔는데…“

웬일인지 민서의 목소리가 처졌다. 

”갖고 왔는데?“

”너 지금 어디야? 만나서 얘기해.“

”나 지금 공원 내 화장실 근처야.“

주혁은 화장실을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여기선 화장실이 안 보이는데? 공원 입구 쪽이야.“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렇게 몇 분 안 돼서 공원 입구에서 민서와 민수랑 만나게 되었고 셋은 공원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야? 블랙박스.“

어찌나 급한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도 전에 주혁이가 다그쳤다. 

”그게…“

민서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너 기다리면서 먼저 블랙박스에 찍힌 화면 봤는데  그날 차량 주인이 블랙박스를 건드린 모양이야. 방향이 아래로 틀어져서 화면에는 사람들 신발밖에 안 보여.“

그러면서 주혁이한테 휴대폰에 보이는 화면을 보여줬다. 

25층 건물에 오고 가는 사람들 신발만 보이는 블랙박스 영상은 뭐 건질 게가 없는 건 맞는 거 같았다. 

주혁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앞에서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민수를 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혜주에 대해 나보다는 알 거 같은 이 자식… 도움이 되길 바래. 

“하민수.”

갑자기 한층 어두워진 눈빛으로 민수를 불렀고 순간,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민서를 힐끗 쳐다보았다가 같이 범인을 찾기로 한 민서 앞에서는 괜찮을 거라 생각되었다. 

민수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주혁을 응시했다. 

”우리가 유지태 만났던 거. 혜주가 다 아는 거 같아.“

민수가 이 말을 들으면 어느 정도 놀랄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너 알고 있구나. 혜주가 알고 있다는 거.“

나만 여태껏 모르고 있었구나. 

”그래. 알고 있지. 혜주가 나한테 찾아왔었으니까. “

”혜주가 찾아갔었어?“

”응. 우리가 유지태를 만나고 한 이틀 뒤인가, 만나자고 연락 왔었어.“

민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몇 개월 전 둘만 만나자는 혜주의 요청에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던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7월 12일.  모 식당. 

[벌써 왔어?]

약속시간보다 10분을 먼저 도착했는데 혜주는 이미 식당 룸에 앉아있었다. 

[응. 좀 빨리 왔어. ]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응대하는 혜주를 보며 민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면서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럴려고, 가끔이라도 좋으니 혜주를 주혁이 핑계 삼아 만날 수 있어서 애당초 주혁이 매니저를 하겠다고 했다. 그때 그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민수는 메뉴판을 보고 있는 혜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화장기 하나도 없는 얼굴인데 그 자체로도 빛이 나는 피부. 
살짝씩만 다듬는 거 같은데 가늘면서 가지런하게 정돈된 눈썹. 가끔 꽃사슴같이 동그랗게 뜨는 그 순수한 눈동자는 
아직도 18살의 혜주 같았다. 

[뭐 먹을래? 너도 봐.]

이 봐. 지금도 저 똘망 똘망 한 눈빛은 민수로 하여금 가슴 한켠을 자꾸 쑤셔댔다. 

[어, 나는 네가 주문하는 거 아무거나 먹어도 돼.]

[뭐야~ 매번 이러네? 그럼 내가 알아서 시켜?]

자그마한 붉은 입술을 삐쭉거리며 메뉴판만 주시하고 있는 혜주를 보며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민수가 입을 열었다. 

[응.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주문해.]

삐쭉거리면서 치-하고 아주 작게 내뱉는 혜주를 보며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너는 아직도 귀엽네. ]

[응? 뭐라고?]

메뉴판을 보던 혜주가 혼자 중얼거리는 민수가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서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아니야.]

민수는 그냥 앞에 놓여있는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혜주의 주문으로 음식은 금방 나왔고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되려고 하는 때, 혜주는 오늘 보자고 한 이유를 슬슬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민수야.]

[왜?]

민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어도 되었었다. 하지만 맨날 민수한테 주혁이 얘기만 하다가 식사도 제대로 못 한 경우가  많았던지라 오늘은 그냥 식사때 만이라도 주혁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친구와의 식사처럼. 

[이거 내가 살게. 커피는 네가 사줄 수 있지?]

혜주가 민수랑 단둘이 있으면서  커피까지 마시자는 건 드물었다. 살짝 의아한 기색이 없지 않았지만 금세 옅은 미소를 보이며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 당연하지. ]

*근처 커피숍. 

민수가 주문을 끝내고  돌아서니 구석진 창가 쪽으로 미리 가서 앉은 혜주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민수도 덩달아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의식하면서 내렸다. 너무 바보같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될 거 같아서. 

그러면서 혜주의 앞자리에 앉으려다가 그녀의 흰 티에 튄 얼굴을 보았다. 자리에 안 앉고 다시  카운터로 가는 민수를 의아한 눈빛으로 보는 혜주를 뒤로하고. 금방  물티슈를 받아와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 

[칠칠맞게 언제 흘렸냐? 닦아.]

[아.]

그제야 자기 옷에 튄 얼룩을 발견하고 물티슈로 슥슥 닦는 혜주다. 

[근데 이제 그 원피스는 안 입는 거야?]

[무슨 원피스?]

뭐지? 갑자기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민수는 이상했다. 분명히 없던 기억이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의 머릿속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입을 삐쭉거리던 혜주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내가 언제 원피스를 입는 거 봤어? 왜 그래 하민수. ]

그래. 그렇지. 혜주는 맨날 티, 청바지 아니면 캐주얼한 복장이 전부지. 

근데 왜 화장도 하고 천사같이 예쁜 하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떠오르는지 본인도 이해가 안 갔다. 

꿈에 봤나??

싱겁다는 듯이 피식 웃던 혜주는 어느새 울리는 진동벨을 확인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 꿈쩍을 안 하는 민수를 보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꿈꿨어? 왜 그래? 내가 원피스를 입었으면 좋겠어?]

시원한 바닐라라떼를 빨대로 크게 쭉 들이키고 내뱉은 혜주의 말이었다. 좀 민망해질 정도로 아까부터 자기한테 시선을 고정한 민수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싶었다. 

[입으면 예쁠 거 같긴 하네. ]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자기 착각이겠거니 하고 여긴 민수는 혜주가 들고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들이켰다. 

뭐야… 싱겁긴. 혼자 중얼거리던 혜주는 표정을 조금 어둡혔다.  며칠 전에 주혁이가 술 취해서 했던 말을 오늘 민수한테서 마저 들어야 했기에. 

[저기 민수야.]

[응.]

금방까지 잘 웃던 혜주의 표정이 살짝 그늘이 드리워졌다. 

[유지태 만났다며?]

궁금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혜주는 유지태의 이름이 나오자 바로 올라갔던 입꼬리가 스윽 내려가는 민수를 보면서 그날 새벽 주혁이가 하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 너 기억나? 우리 고등학교 때 진짜 재수가 없던 애가 있었잖아. 유지태라고. 걔를 만나고 왔어.]

흐느끼면서 유지태를 뭐라 욕하던데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었다. 더 듣고 싶었는데 잠들어버린 주혁한테 다음날이 되어서도 차마 묻지 못했다. 

분명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주혁은 말을 안 해줄 거란 걸 안다.  

나한테 뭐든 다 터는 애 같은 남자인데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하는 걸 보면 분명 숨기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널 찾아온 거야. 하민수. 

[너도 얘기 안 할 건 아니지?]

말이 없이 쳐다만 보는 민수를 보며 혜주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 안 하고 싶지. 네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네가 걱정되니까. 

[말해줘. 민수야.]

정말이지 저런 강아지처럼 가련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물어오면 그걸 당해 낼 민수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성현이를 우연히 만났었는데 유지태가 김기석 감독이랑 친하다고 해서  자기가 도울 수가 있다는 말에, 우리 쪽에서 자리를 한번 마련했어. ]

혜주는 테이블에 몸을 바짝 갖다 붙인 채 입을 떼기 시작한 민수의 말에 귀를 쫑긋하며 집중했다. 

얘기하기가 싫었다. 근데 어쩔 수가 없었다. 무조건 뭐가 있었을 거라 여기는 눈치 빠른 혜주 때문에. 

“그래서 다 얘기했던 거야?”

옅은 한숨을 쉬며 그날 일을 떠올려서 말하는 민수한테 주혁은 화를 내지 않았다. 불씨는 자신이 일으켰고 눈치를 챈 혜주가 민수를 찾아가는 건 당연했다. 그걸 대충 에두른다고 해서 지나갈 혜주가 아니란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으니.

“이게 진짜라고? 유지태가 약을 하는데도 모자라 주혁이 너 술잔에 몰래 넣기까지 했다고?”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민서가 경악을 하면서 주위를 의식해 소리를 죽여가면서 말했다. 커피숍엔 그래도 다행히 카운터에 있는 직원 빼고는 누구도 없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둘을 보며 민서는 입이 떠억 벌어졌다. 드라마에서나 들어볼 법한 일이 아닌가. 

유지태가 망나니 같은 느낌은 있어도 그땐 애라서 그런 줄 알았다. 이제 버젓이 30대가 되었는데 그런 일로 장난을 친다고? 그게 장난이 돼? 미친놈이다. 

“넌 그래 병원 안 가봤어? 몸은 괜찮아?”

“병원은 못 가지.”

아… 맞다. 더군다나 얘는 공인이지. 

걱정되어 주혁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민서는 잇새로 옅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뭘 해야 하지? 기대했던 블박도 누군지 구분이
안되고  답답해.“

”이게 그냥 내  말도 안 되는 상상일 수 있는데…“

주혁이가 조심스레 무거운 입을 열자 둘의 시선은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혜주가 혹시 유지태 찾아갔을까?“

설마….

그렇게 미친 자식을 혜주가? 

아무리 주혁이한테 한방을 먹였어도 우리랑 아예 다른 종인 그 자식을 상대하면 안 되는 거지. 

 민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지태를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주혁이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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