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7회)

죽으나사나 | 2023.12.13 19:44:15 댓글: 1 조회: 349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28965
*따스한 봄날이 올까
(7회) 재회.

“진짜 죄송해요!!! 사실… 그날 실수한 건 유나 언니가 아니라 사실 저였어요. 그 테이블에 갖다주라고 제가 그랬어요… 너무 무서워서… 무서워서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정말 죄송해요… 정말…”

“…!!“

말하면서 화영은 감정이 점점 격해져서 요즘 내내 졸였던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내어 흐느꼈다.

“흑…말하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유나 언니를 그렇게 쫓는 걸 보고 무서웠어요… 진짜 …잘못했어요. 일부러 숨기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유나 언니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

“화영이 너…!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송 매니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화영이의 자백에 동공이 흔들리는 도진이를 발견하고는 화영이를 다그쳤다.

“괜히 유나 씨만 억울하게 나갔잖아. 너 왜 그랬어. 그날 바로 얘기했어야지. 너 진짜…”

“매니저님, 그만하세요.”

도진은 우는 화영이를 붙잡고 다그치는 송 매니저를 막아섰다.

“이제라도 말해줬으면 됐어요. 너무 몰아세우지 마요. 화영 씨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요. 지나간 일이에요. 그리고 송 매니저님. 오늘 저 일찍 들어갈게요. 마무리 잘 부탁드릴게요.”

도진은 몇 마디를 전달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 여기서 당장 꺼져!]

그날 유나한테 비수를 꽂았던 말이 도진의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바보같이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진짜 그 여자는 멍청해. 진짜, 진짜로…‘

몰랐었고,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도 못 하고 그렇게 가버린 유나를 생각하니 또 화가 난 도진이. 또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유나만 생각하면 짜증부터 밀려 오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짜증이 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연락처도 안 받아 놨으니 연락할 길도 없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그렇게 매몰차게 내쫓은 게 미안하지만 … 진짜 이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

도진은 자신한테 의문이 생겼다.

근데 그 생각을 마저 끝내기도 전에 그의 시야엔 무언가가 들어왔다.

“…!”

가게를 마감하고 이제 누구도 없을 레스토랑 앞에 누군가가 머리를 무릎에 틀어박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며칠 전에 보았던 큰 캐리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유나…! 그 여자다.

얼굴은 못 보아도 누가 봐도 유나였다. 도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그녀한테로 다가갔다. 무릎에 파묻은 얼굴이 옆으로 살짝 새어 나왔고 유나는 잠들어 있었다.

[근데… 사장님. 그 언니가 좀 이상했어요. 낮에는 거의 병원에서 저랑 같이 있기는 했는데… 밤엔 어디에 갔다 오는지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어요. 첫날보다 그 후엔 점점 더 심해졌거든요. 얼굴은 웃는데 … 어디에 갔다 왔냐고 하면 그냥 얼버무리고… 캐리어도 맨날 갖고 다니는 거 봐서는 갈 데가 없나 생각했고요. ]

레스토랑을 나가기 전 소녀의 말이 문득 생각난 도진은 깨우려고 유나의 어깨까지 올렸던 손을 다시 내렸다.

유나 옆에 앉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쯤 유나가 얼굴을 무릎에 기댄 채 눈을 천천히 떴고 마침 유나를 보고 있던 도진이랑 눈이 마주쳤다.

“…”

“…”

둘 다 당황해서 몇 초간 정적이 흐른 후 도진은 그 자리에서 일어 나서 뒤로 몇 발작 떨어져 나갔고 유나도 고개를 들고 급히 일어났다.

“저 그게…“

“여긴 왜…”

둘은 무엇 때문에 당황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이 입을 열었고 또 같이 조용해졌다.

“여기서 왜 쭈그리고 있어요?“

도진이가 먼저 입을 열자 그제야 유나도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그게 여길 올려고 해서 온건 아닌데 이 근처에 왔다가 가게 한번 보고 가야지 했는데 … 또 앉아 있다 보니까 졸려서 잠이…“

횡설수설하는 유나를 유심히 바라 본 도진은 소녀의 말이 진짜라는 걸 알았다. 레스토랑 간판의 옅은 불빛으로 본 그녀의 얼굴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대체 뭘 하길래…’

“근데… 너무 졸려서 죽을 거 같아요…”

옅은 한숨을 쉬며 물어보려는 찰나, 유나가 혼자 중얼 중얼 하더니 도진한테로 몸이 기울어졌다.

“털썩.“

도진은 급히 쓰러지려는 유나의 어깨를 휘감아 자기 몸에 기대게 하였다.

“유나 씨. 괜찮 …”

도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유나를 부르려다가 멈추었다. 유나는 얼마나 피곤했었는지 몸도 못 가눈 채 새근새근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의 숨결이 도진의 가슴에 들쑥날쑥 와닿았다. 도진은 약간 어색한 듯 움직임조차 까먹은 어정쩡한 자세로 그 자리에 한참 있었다.

**

“음…따뜻하다…“

뒤척이며 신음 소리를 내던 유나가 어딘가 이상함에 눈을 번쩍 떠버렸다.

”여긴…!“

유나는 어느새 레스토랑 2층 직원 숙소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가게 앞에서 사장님을 만났던 건 졸려서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왜 더 희미하지?

”아.“

이마는 왜 혹이 나 있지?

유나는 아픈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방에서 나와 1층 가게 쪽을 바라보았다. 2층 복도 끝에 걸려 있는 검정 시계는 12시를 좀 넘어가고 있었고 1층 레스토랑 전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유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았다. 자칫 누구한테 들킬 것처럼.

”벌써 일어났어요?“

”앗, 깜짝이야.“

주방에서 나오는 갑작러운 인기척에 유나는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선 유나는 조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도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큰 반응에 도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에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몸은 괜찮아요? 아까 그냥 기절하듯이 쓰러지길래 좀 놀랬어요.“

”제가요? … 죄송해요. 실례를 범했네요. 저 이제 괜찮으니까 금방 나갈게요.“

유나는 바로 뒤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갑자기 도진한테 잡힌 손목만 아니었다면.

”저녁 먹었어요? 난 아직인데. 금방 파스타 좀 만들었는데 그리 급한 거 아니면 같이 먹을래요?“

유나가 발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도진은 꼭 잡았던 유나의 손목을 풀었다. 도진은 유나가 식사 요청에 응할지 그녀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뭐… 그럴까요? 사실 저도 좀 고파서.“

유나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
”레스토랑 사장님답게 파스타 엄청 맛있는데요? 손님이 많을 만하네요.“

유나가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먹으면서 도준의 요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녁밥은 이따가 먹어야지 하면서 잠들어 버렸으니 많이도 고팠던지라 게 눈 감추듯이 먹어버린 거 같았다.

도진은 그런 유나를 보면서 참았던 말을 꺼냈다.

”… 그날은 미안했어요.”

뜬금없는 사과였지만 유나는 멈칫 하더니 포크를 접시 위에 내려놓으면서 도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옅은 미소를 띠면서

“실수를 했으니 저도 할 말은 없죠.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면 음… 아, 이걸로 퉁치죠.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 먹은 걸로 충분해요.“

유나는 파스타를 다 비운 본인 접시를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그럼 배도 불렀으니 전 이만 갈게요.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화영 씨한테서 들었어요. 실수는 자기가 한 거라고요. “

“…”

“해명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그러면 그렇게…”

“저기 사장님.“

도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유나는 말을 더 이어 가려는 그를 불렀다. 유나는 뭔가 생각하는듯하더니 이내 밝게 웃어 보였다.

“아, 내가 잘못 들었나 긴가민가 했는데 그랬었구나~ 몰랐네.“

의도적인 큰 목소리다. 이런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금방 차분해진 표정으로 유나는 한마디를 더 얹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요.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이제 그럼 진짜 갑니다.“

”저기…“

돌아서고 가려는 유나를 또 한 번 부르고 마는 도준이.

“혹시… 갈 데가 없거나 그러면 여기서 다시 일해볼래요?”

이 말을 다시 꺼내기까지 도진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게 쫓아놓고는 자기 입으로 다시 부른다는 게 좀 많이 이상했다. 오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러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가봐.

유나는 도진의 말에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듯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진짜… 다시 일해도 돼요?”

“네.”

“2층에서 자도 되고요?”

“네.”

“딴 말 하기 없기?”

“네.”

“오케이~~”

유나는 도진한테 여러 번의 확인을 끝으로 하고 신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유나의 모습에 안심이 된 도진은 자기 휴대폰을 주머니에 챙기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난 이거 치우고 가볼 테니까 내일 아침에 송 매니저랑 계약서 사인해요. 송 매니저랑은 오늘 미리 얘기해둘게요. 푹 쉬어요."
"아, 그건 제가 할게요!"
유나가 도진 손에 있는 접시를 자기한테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내가 대접한 거니까 내가 치울게요. 피로가 안 풀린 거 같으니 일찍 올라가요."
"그건 좀 미안해서... 취직도 시켜줬는데 제가 뭐라도..."

”아까처럼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졸려서 쓰러지는 걸 더는 안 보고 싶어서 그래요. 내일 일해야 하는데 또 그럼 안되겠죠?“

”아…“

유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콕콕 쑤시는 이마가 생각나 또 손으로 문질렀다.

”아, 여긴 왜 혹이 생긴 거지?… 그나저나 사장님 저를 어떻게 2층까지 데려간 거예요? 무거울 텐데… “

혼자 중얼거리던 유나가 진짜 궁금했는지 대뜸 도진한테 질문을 했다.

”어 그게… 업었죠. “

뭔가 갑자기 어수선해진 도진의 움직임을 보며 유나는 고개만 갸우뚱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 먼저 올라가서 쉬겠습니다. 파스타 잘 먹었습니다. ”

유나는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몇 발짝 올라가다 잠깐 멈춰 도진한테 외치고는 거의 뛰어가듯이 2층으로 사라졌다.

“사장님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조심해서 가세요!”

유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2층 쪽을 쳐다보고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면서 금방 혼자 중얼거리며 이마를 만지던 유나가 생각나 한 시간 전에 일을 떠올렸다.

가벼운 그녀를 업기까지는 쉬운 일이었지만 워낙에도 키가 큰 사람인데 유나를 업었으면 문 높이를 생각했어야 했다. 그걸 간과하고 들어오다가 유나의 이마를 문틀에 찍게 된 거였다.

[쿵!]

부딪힌 소리가 제법 컸다.

[유나 씨! 괜찮아요?]

깜짝 놀란 도진은 등 뒤에 업혀 얼굴이 안 보이는 유나한테 상태를 물었다. 그러나 진짜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유나는 깨어나질 않았으니…

도진은 자기 때문이라고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왠지 그냥 숨겨야 할거 같은 기분이었다.

뒷정리를 어느 정도 끝내고 레스토랑으로 나온 도진은 요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요즘따라 자주 오던 두통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유나한테 요즘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 가족은 없는지, 왜 캐리어를 맨날 끌고 다니는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사장이랑 직원 사이에 굳이 물어봐야 하는지, 또 상대방이 대답을 하기 싫어할지 모르니 그냥 안 하기로 했다.

[사장님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도진은 아까 유나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내쫓은 게 신경 쓰여서 그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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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14.♡.18
Figaro (♡.136.♡.173) - 2024/01/06 01:43:32

오해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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