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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배짱좋은 풍운아셨지요

우연 | 2002.10.26 20:04:00 댓글: 0 조회: 1020 추천: 0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968
주먹과 의리로 한 시절을 주름잡았던 ‘장군의 아들’ 김두한(金斗漢).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마음껏 호령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바람따라 떠돌다 구름처럼 훌훌 떠나간 지도 벌써 30년째에 이르건만, 관심은 여전하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앞서의 영화나 TV드라마가 그랬으며, 요즘의 ‘야인시대’ 시청률 역시 그것을 말해준다. 온통 얄팍한 처세술과 협잡으로 얼룩져 진정으로 야인이 그리워지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맏딸이자 중견 탤런트인 김을동(金乙東·57)씨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본인의 활동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배짱껏 사신 분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셨으니, 드라마 제목 그대로 진정한 야인이셨지요”. 아버지 김두한이 ‘잇뽕(一本)’이라는 별명답게 구질구질한 것을 싫어했으며 배포있게 살았음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다. 목소리조차 아버지를 빼닮았는지 구김살 없이 우렁차고 씩씩하다. 서울 여의도 라이프 오피스텔의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사무실. 그는 할아버지를 기리는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벽에 걸린 청산리대첩 자료들과 건국훈장 등이 김좌진 장군의 활약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는 “같은 싸움질이라도 그때의 주먹에는 민족의 울분이 담겨 있었다”며 아버지가 어디까지나 협객이란 사실을 강조했다. 어린 꼬마들조차 ‘긴또깡’ 흉내를 낼 만큼 사회적인 신드롬으로 퍼져가고 있는 것은 세월이 그만큼 답답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곁들였다. 그 자신 탤런트이면서도 그냥 수수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서부터 답답한 것은 질색이라는 성격이 그대로 엿보인다. “저 역시 연기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실대로만 표현해 달라고 우기지는 않지만 가끔씩 건들건들하게 보여질 때는 정말 속상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꼭 그리움만은 아니라는 뜻일까. “사실은 얼마전까지도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다분히 원망어린 말투다. 바깥 생활은 더없이 화려했지만, 스스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정릉의 블록집조차 무허가였을 만큼 집안은 거의 돌보지 않은 탓이다.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살림을 꾸려야 할 만큼 너무 무심하셨다”고 했다. 안방의 장롱조차 반쪽은 누구에게 떼준 채 나머지 반쪽짜리를 사용했다는 것이니,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데도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미워하기도 했다”는 얘기가 오히려 당연하게 들린다.


김두한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금배지’를 달고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형편이 안돼 승용차를 얻어타고 다니면서도 경조비는 여전히 호기스러웠다. 그 바람에 오물투척사건으로 의원직을 내놓을 당시 국회 가불장부에 적힌 액수가 무려 6백만원. 그때의 의원 월급이 20만원 안팎이었다는 것이니,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라는 웃음섞인 푸념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는 “어려서는 잘 몰랐으나 모두 철들면서 알게 된 것들”이라고 털어놓았다. 스스럼없는 표정이지만, 속으로 상당히 삭이고 끓이던 얘기였음을 느끼게 된다.


자식으로서 가장 못마땅해했던 것은 그의 끊이지 않던 여자 관계. “지금도 ‘마지막 여인’이라고 나서는 여자들이 있다”면서 뒤늦게 호적에 올려진 이복동생들의 얘기도 들려주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므로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한가락 하던 사람들치고 ‘작은 마나님’이 없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두둔하기도 했다. 신마적·구마적을 물리치고 종로바닥을 평정한 스무살 무렵부터 기생들의 가슴을 적셨던 그였다. “그러다가도 어느날 불쑥 나타나 ‘밥 달라’는 말부터 하셨으니, 그만한 몰염치도 없었다”고 돌이켰다.


모친(李載姬, 1987년 작고)에 대한 기억이 애틋한 것도 아버지의 잦은 외도 때문일 것이다. 바깥으로 나돌아다니는 남편 대신 시어머니를 받드느라 고생했으며, 숯불을 피워놓고 삯바느질 하는 바람에 늘그막에 만성 가스중독에 시달렸으면서도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히자 군말없이 솜바지 저고리를 마련해 면회를 갔었다는 얘기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한창 끝발 좋을 때야 이 여자, 저 여자 달라붙었으나 역시 조강지처”란다. 이들 부부는 타계해서나마 경기 장흥 공원묘지에 함께 잠들어 있다.


국회 오물투척사건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사카린 밀수사건’을 추궁하다가 파고다공원 화장실에서 퍼온 똥물을 본회의장에 뿌린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은 따져봐야 하겠으나 다른 사람은 흉내도 못낼 일”이라며 자식으로서의 자부심을 은근히 드러냈다.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과 이만섭 의원도 현장에 나란히 앉아 있었으며, 특히 김대중 의원과는 같은 건설분과위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이 서울시 의원에 당선되고 바로 그 자리에 올라 “아버지께서 부정부패 관료들에게 오물을 끼얹은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이라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고도 소개했다.


그 자신 그동안 정계를 넘본 것도 여러번이었다. 1996년의 15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후보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다. 아버지가 의원에 당선됐던 지역구를 물려받는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이명박·노무현·이종찬 등 경쟁 후보들이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그뒤 16대 총선에서도 성남 수정구에 나섰다가 또다시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지금은 탈당과 함께 지구당 위원장 자리마저 내놓은 상태다. “어제의 약속을 오늘 뒤집으면서도 얼굴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정치”라며 잔뜩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딱 부러지게 정치를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 미뤄 언제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나서겠다는 눈치인 것 같다.


굳이 정치 쪽이 아니더라도 여장부로서의 배포는 대물림인지 모른다. ‘장군의 손녀’라는 별명 그대로다. ‘을동’이라는 이름풀이부터 그럴 듯하다. “제가 해방둥이입니다. 태어난 해가 을유년이라 증조할머님께서 이렇게 지어주셨지요”. 얘기를 듣다보니 집안 남자들만큼이나 여자들도 만만치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김좌진 장군이 만주에서 암살당하자 할머니가 방물장수로 꾸며 몰래 유골을 추려 오셨다”는 일화만 해도 그렇다. “살아 있는 남편도 시원찮으면 내팽개치는 마당에 죽은 남편 유해를 모셨으니 얼마나 지독한가”라는 표현이 더 걸작이다.


그에게 집안의 전통과 예의범절에 대해 가르쳐주신 분도 바로 그 할머니였다. “지금 생각해도 무서울 정도로 근엄하셨던 분”이라고 떠올렸다. 요즘은 비슷한 임무가 그에게 맡겨져 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의 김좌진 장군 옛집 복원과 그곳의 조선족 학교 돕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별히 민족정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어진 몫을 하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래도 타고난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옛 동지들이 찾아올 때마다 목청껏 불렀다며 흥얼거리는 광복군 군가가 찡하게 울린다.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조국에…”


어떤 경로로 탤런트 생활을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풍문여고 시절 연극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연극에 취미가 있었으며 지난 66년 동아방송 성우로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고 소개했다. “이래봬도 목소리로는 황진이를 비롯해 안해본 역이 없다”며 성대 묘기자랑도 따라붙었다. 능청과 익살이 이만저만 아니다. KBS 연속극에 출연중인 송일국씨(31)가 그의 아들이며, 그 밑의 여동생 송이씨(29)도 한때 연기자로 활동했다. 대학은 중앙대 정외과를 홍일점으로 나왔는데,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가 동급생이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했는데 요즘들어 저절로 팔자가 비슷해져가는 듯한 생각이 든다”며 기어코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입술 연지만 지우면 아버지 얼굴을 도장 찍은 듯하다거나, 뭐 하나 달고 나왔다면 크게 될 뻔했다는 주변의 얘기도 새삼스럽기만 하다. 마음 깊숙이 맴도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김두한이 다음중 어디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건달, 어깨, 주먹, 깡패, 조폭, 양아치…. 그는 고개를 흔들더니 “아버지는 영원한 풍운아”라며 슬며시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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