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도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네로 | 2002.01.17 10:11:25 댓글: 0 조회: 1119 추천: 2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60
어릴적,우리집은 화룡시 동가(東街)라는곳에 있었다.30평방정도 되는 조그마한 두칸짜리 벽돌집인데 어머니와 5남매가 오글오글 부비면서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치가 떨릴지경이지만 그때는 식구들 모두가 우리집이 작다거나 불편하다거나 생각한적이 없었다.다들 고만고만하게 살때였으니까 그렇게 살아야거니 생각했었던것이다.

저녁에 자리에 누울때면 나는 항상 누나와 자리많이 차지할려고 싸움판을 벌렸고 어머니곁에 누워 가슴을 파고들기도 했다. 아침에는 눈을 뜨기만 하면 신이 났는데 베개와 이불로 또치카(벙커)를 쌓아올리고 그속에 숨어서 총쏘는 흉내를 내다가 맨날 어머니한테 혼나군 했다.

식사때면 둥그런 앉은뱅이밥상에서 밥을 먹었는데 6명의 식구가 다리를 토시고 않아서 먹기에는 너무도 자리가 모자랐으므로 다들 한쪽다리를 세우고 앉아야 했다.지금도 그흔적이 나한테 단단히 박혀있어서  나보고 편히 앉으라고 할때면 <저는 이렇게 앉는것이 습관돼서 편합니다.>라고 말하며 그럴수밖에 없었던 과거사를 이야기해주곤 한다.

봄이오면 손바닥만한 뒤뜰에 마늘이며 고추,가지,오이,토마토같은 야채를 구색을 갖추어 심었고 가을이면 땅을 다시 파엎고 갓이나 영채같은 김장감을 심었다.그리고 늦가을에는 마당에 커다란 움을 파고 몇마대씩이나 되는 감자,무우와 수백포기의 배추를 저장해두고 겨울에 일용할 량식으로 사용하였다.

그때는 아파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고 냉장고나 에어컨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있다는것조차 몰랐다.유일한 가전제품이라면 라디오였던것으로 생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하다거나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한적이 없으나 한국에 임시로 몇달 거주하는 세집에마저 냉장고,컬러티비,전기밥솥,가스렌지,선풍기를 갖춰놓고 가스보일러까지 사용하면서 가난하다고 맨날 우는소리하니 울엄니가 알았으면 귀뺨을 때려 마땅하다고 해야겠다.

썩 후에 어머니가 다니는 회사에서 한배쯤 더큰집을 분배해주어서 집을 한번 이사했는데(중국에서는 회사에서 월급뿐만 아니라 집이며 세탁기같은것도 나눠준다.ㅎㅎㅎ)지금은 형님누나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떠나서 어머니 혼자 계신다.

이사하고나서 궁궐같은곳에서 살게 됐구나 하는 기쁨을 누리다가 연길에 취직한뒤 내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취직한 회사는 건축회사였다.연길버스역앞에 두채의 건물을 짓게 되였는데 큰집은 무려 230평방이나 되였다.다른 집들도 기본이 120평방미터내지 150평방,입주한 분들은 죄다 큰 회사의 사장님 아니면 고급공무원들이였다.집을 기초공사부터 몽땅 입주할때까지 지켜보았는데 이분들이 실내장식을 할때에는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워낙 아파트를 지을때 가구만 가지고 들어가면 살수 있을정도로 해주었는데 입주자들은 <기숙사>같이 똑같은 집을 절대로 가만놔두지 않았다.벽의 도료칠을 사포<沙布>로 긁어내고 다시 고급도료를 칠하거나 벽지를 붙이고 문짝이나 변기도 사정없이 뜯어버리고 몽땅 새걸로 교체했다,골치아픈것은 타일인데 정으로 하나하나 깨부셔서 다시 고급타일로 교체했다.덕분에 분양이 끝난 처음 몇개월은 타일을 까부수는 소리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때문에 멀쩡한 방수처리가 잘못돼서 화장실이나 주방이 물이 새는 사고가 허다했다.(타일이나 문짝같은것은 입주자들이 몽땅 뜯어낼게 뻔했으나 붙여놓지 않는경우 입주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달아야 했다.)  

어떤분은 심심산속에서 100여년은 자랐음직한 아름드리 소나무로 만든 두터운 널판을 한트럭가득 실어와서 통째로 깎아서 문틀이며 벽을 치장해서 전원분위기를 내였다.마감으로 소나무에는 수정칠이라는 수입기름을 발랐는데 집안전체가 번쩍거렸다.소나무는 해빛을 보면 불그스레하게 변하는데 시산이 흐를수록 색상이 더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변한다고 했다.

또 어떤분은 한국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전문업자를 불러서 모던스타일로 집안을 꾸렸다.집안가구를 모두 붙박이장형태와 통일된 칼라로 만들고 천정에는 크리스탈샨들리에로 산뜻하게 마무리했다.그때 인테리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집주인은 한국인사장보고 노발대발해서<이게 도대체 주방이요?아니면 화장실이요?>라면서 삿대질을 하는데 양복을 쭉 차려입은 한국인사장이 허리를 연신 굽히며<다 제잘못입니다.곧 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를 연발하는걸 보고 신기해하던 생각이 난다. 조선족이 한국인을 고용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해본적이 없으니까.

내지에서 이탈리아 수입가구를 판매한다는 분은 한세트에 30만원(한화로 4000만원정도)씩하는 가구를 들여놓았는데 종이박스에서 가구를 꺼내서 조립하는것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조립식가구라는것을 첨 보았으니까.나중에 집주인의 요청으로 한번 방문했는데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새하얀 가죽쇼파에 엉뎅이를 묻으니 마치 에어쿠션처럼 쑤욱하고 파묻기던 그 감촉,이런 신선놀음도 있구나...

하지만 바닥을 검붉은 대리석으로 몽땅 깔아버려서 집안이 어두컴컴한데다가 벽에는 그리스조각상을 흉내낸 반라의 석고미인상까지 덕지덕지하게 세워놓아 아주 흉해보였다.돈은 많은데 미적감각까지 많지는 못한 모양이였다.

이밖에 2만원짜리 거품욕조나 한장에 200원짜리 타일도 처음 구경해봤다.내 월급이 600원정도였으니 한달월급으로 타일 3장을 구입할수 있는셈이다.ㅡ.ㅡ

이것저것 아프터서비스까지 내가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입주한 집들마다 메주밟듯해야 했으니 어느집에서 200원짜리 문고리를 달고 어느집에서 2만원짜리 도료칠을 했다는것을 손금보듯 훤히 알고있었다.새로 인테리어를 한집을 방문할때마다 나는 입을 헤 벌리고 감탄해야 했으며 그럴때마다 우뚝해진 집주인들은 고급담배와 과일을 권하며 한바탕 집자랑을 늘여놓군 했다.

이런 아파트는 살아생전에 감히 들어볼것도 같지 못했다.집사는데 적어도 20만가까이 들고 실내장식마저 쑬쑬하게 한다고 해도 10만원정도는 드니까말이다.한달에 1000원씩 모은다고 해도 30년가까이 모아야 할테니까 머리가 허옇게 될때까지 모으면 모를가나? "직녀"라는 옛시조가 떠올랐다."누구의 시집갈 옷감을 짜고있누노?" 집을 짓는놈이 집에 들 엄두도 못내다니...

그러던중 내가 몸을 담고있던 우리 큰형이 집을 팔게 되였다.하지만 새로 구입한 아파트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온식구가 길바닥에 나앉게 되였는데 이런 사정을 사장님한테 넌지시 말씀드렸더니 채 팔리지 않은 집중에서 맘에 드는걸로 그동안 있으란다.

우아!나에게 이런일이? 나는 수십채는 좋이 남은 집중에서 제일 큰눔으로 하나 골랐다. 230평방미터짜리 집을! 이사짐을 옮겨놓고나서 큰형님 내외는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막내동생 덕분에 연길시에서 제일큰 아파트에 들어보는구나.>

새로든 집은 기가 떡 막히도록 컸다.어느정도로 컸냐면 <따르릉...>"형님이 집에 있냐구요?모르겠습니다. 10분만 기다리세요,제가 찾아보도록 하죠."이정도였다.실내가 2층으로 된데다가 방만 7,8개가 되였으니까.집안에서 배드민톤도 치고 자전거도 타고 그랬었다.

집안청소를 하던 형수도 수십개나 되는 창문을 보고 닦기를 포기했다.큰것이 좋기만 한것은 아니였다.난방비도 집안면적에 따라 나오므로 액수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지만 다행히 공짜로 드는집이라서 난방비와 전기세마저 한푼 내지 않고 한해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다.

봄에는 드디여 형님네 아파트가 완공이 돼서 새집에 입주하고 나도 한동안 실내장식하는걸 돕느라고 동분서주 했던 기억이 난다.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읖는다고 웬만한건 일군들의 손을 빌지 않고 저절로 척척 해냈었다.후후후

형님네 집은 90평방이 안되는 아담한 아파트였는데 형님이 새집에 드는날 온집식구의 웃음으로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같이 축복하는 한편 어찌도 그렇게 부러웠던지? 나도 언젠가면 작더라도 아담한 나의 집을 마련해서 손수 타일을 붙이고 벽에 도료칠을 하면서 가꾸고싶었다.그리고 그러루한 꿈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에 온지 5년도 넘어가건만 왠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정녕 이 작고도 큰 소망을 이룩하기엔 내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짧은걸가?내가 겪어낸 고생이 너무도 부족한걸가? 언젠간 나도 나에게만 속하는 자그마한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웃으며 맞이해주는 안해도 있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집에서  온가족이 오손도손 오래오래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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