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용접공-한국생활수기(17)

네로 | 2002.01.17 09:23:00 댓글: 0 조회: 6890 추천: 6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01
열일곱번째이야기

모텔에서 일하는 식구(한가정이나 다름없었다.왜냐하면...)들은 모두 기숙사생활을 했다.
스물네시간 손님을 받기때문에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일해야했다. 모텔에서 일한다는것은 거의 외계와 격리된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한달에 두번 휴식하는데 주말이나 휴일에는 손님이 많으므로 휴식할수가 없고 평일에 휴식해야만 했다. 그래서 보조일을 하는 애들도 다 서울태생이 아니고 지방에서 갓 올라온 젊은 얘들이였다.그들도 서울에 얼마간 익숙해지고 발붙일수 있다싶으면 인차 자리를 뜨곤 했다. 보통 한사람이 한두달씩 일하고 그만두었다.

그래서 모텔에서는 맨날 인력난에 시달리지만 월급인상이나 작업시간단축은 할필요가 없었다.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젊은애들이 얼마든지있으니까 제때제때 찾아 빈자리를 메꾸면 됐으니까.

카운터보는 아가씨만은 예외였다. 한사람이 12시간씩 교대로 일했다.젊은 아가씨들은 취업폭이 넓었기때문에 그렇게 시킬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모텔에는 나말고도 조선족이 두분 더계셨다. 청소하는 아줌마 두분다 교포였다.
모텔에서 청소일하는분들중에는 조선족아줌마가 많았는데 왜냐면 아침10시에 출근하고 밤12시에 퇴근하는 일은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한국여성들은 도저히 할수가 없었다.

  아줌마들은 무거운 밀차를 끌고다니며 한밤중까지 일해야 했다.(밀차에는 객실에 넣어두어야하는 음료수며,커피,차,세면도구,및 청소도구같은것을 잔뜩 실었다.) 오히려 빈몸으로 뛰여다니는 보조들보다 훨씬 힘들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음료수며 세면도구를 챙겨넣고 쓰레기를 치우고 엎드려서 걸레질하고 욕실청소하고...  비록 다른데보다 월급을 좀 더 받는다지만 엄청난 중노동이였다.하지만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한달에 두번 있는 휴일도 쉬지않고 일했다.

  옆에서 지켜보면 어떻게 저 가냘픈몸으로 버텨낼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좀더 윤택한 가정을 꾸리려고...좀더 나은 환경을 자녀들한테 마련해주려고 그분들은 온몸을 내던져 일했다.

  세달째 일했을가? 때는 7월이라 찜통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때였다.아는형(같이 연수로 온형인데 지신이 집이므로 지신형이라 한다.)한테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것이였다.형도 보고싶고 환경을 봐꿔보는것도 괞찮겠다싶어 간단한 짐을 챙겨들고 김포비행장근처에 있는 형한테 떠났다.

  버스역에 도착하자 형과 친구들이 일을 제쳐두고 봉고차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이럴수가~ 차에서 내리는 형의 모습이 가관이였다.온몸에는 쇠녹과 페인트가 얼룩져있고 얼굴과 손발도 검댕이투성이였다. 전기용접일을 한다고 해서 각오는 돼있었지만 잠시후면 나도 이렇게 일해야 할것을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볏 곤두설지경이였다.

  공장에는 기숙사가 없었으므로 한동안 같이 일하고있는 형(지신형하고 헛갈릴테니까 연길형이라고 하자.)의 세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형의 뒤를 쭐레쭐레 따라 집에 들어선 나는 하마트면 기절할번했다.

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곳이였다.
시골농가의 사랑방을 대충 사람이 들수있게 고친것이였는데 살점이 너덜너덜 떨어져나가 속의 짚이 보이는 흙벽에 바닥은 장판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울퉁불퉁했다. 게다가 닫히지 않는 조그마한 합판으로 만든 창문(아니,통풍구인지도 모르겠다.) 출입문높이는 정확하게 138센티였는데 잔뜩이나 키가큰 나는 기여들어가다싶이 드나들어야했다.시간이 거꾸로 흘러 100여년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들어가보니 자그마한 전기밥솥,그리고 휴대용가스곤로,텔레비젼이 전부의 살림도구였다.

저녁이 되자 일하러 나갔던 연길형이 돌아왔다.처음 만났지만 한집안식구가 된터이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얘기 저얘기 하다가 같이 밥을 지었다.그런데 시골이라 야채같은것을 먹기가 더 힘들었다. 파는데가 없으니까. 남아있던 감자와 계란으로 국을 끓여놓고 취하도록 소주를 마시면서 고향얘기 그동안 지나온 얘기를 하다가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누웠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찌는듯한 더위에다 시골답게 모기가 무리를 지어 달려들었으니까. 피뜩생각났는데 그날은 내가 한국에 와서 맞는 세번째 생일이였다.
하나,둘,셋...천정에 보이는 서까래비슷한 나무가지를 헤다가 취기가 퍼져서 나는 그만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아침,일찌감치 일어난 연길형과 나는 라면을 대충 끓여먹고 출근했다,회사라고 해야 기중기두대(호이스트)에 십여대의 용접기가 전부설비였다,공장은 지붕이 있어 가까스로 비를 막아줄수 있었고 절반되는 사람은 자리가 모자라는탓에 불볕이 쏟아지는 마당에서 일해야 했다.일군은 10여명 되였는데 한국사람과 조선족이 절반씩 차지했다.

나는 운좋게도 집안에서 일하게 되였다.내가 하게되는 일은 갱폼(gangform)이라는 건설현장에서 층집을 짓는데 쓰이는 철판제품을 만드는 일이였다.쉽게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겠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벽돌한장 안쓰고 콘크리트로 짓는다.
도면에 따라 철판으로 틀을 만들고 그 틀로 층집전체를 둘러싼다음 레미콘(콘크리트반죽)을 쏟아부으면  1개층이 생긴다. 콘크리트가 굳은뒤 철판을 기중기로 들어올려 그위에 다시 고정시킨뒤 콘크리트반죽을 쏟아부으면 순식간에 또 한층이 만들어지는것이였다.이런식으로 보통 20여층이 되는 아파트를 짓는다.

갱폼은 바로 바깥벽을 둘러싸는 철판인데 3미터높이에 너비는 12미터내지 짧게는 몇십센티가 되고 창문이나 벽의 굴곡에따라 아파트마다 도면대로 특수제작해야 했다.갱폼제작은 거친일같지만 소수점하나,몇미리의 오차도 허용하지않는 세심함,그리고 전문지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내가 만들러 갔으니...쩝,
출근하자마자 다른사람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전기용접을 하고 철판을 짜맞추고 구멍을 뚫고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뭐할지 몰라 꿔온 보리자루처럼 멍하니 서있을뿐 어디에다 손댈바를 몰랐다.  여느 회사와 달리 내가 할일을 시켜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형하고 뭘 하라냐고 물었지만 옆에서 보고 배우라는 말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흐르고 일주일이 지나갔다.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배워내지못하고 옆에서 헤매기만 했다. 그도 그럴것이 도면을 보고 철판을 펴고 수치대로 부품을 자르고 용접하고 어느하나 초보자가 손댈만한 일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나 사장님도 전혀 일못한다고 나무라는 기색이 없으니 더 괴로웠다. 할일없이 돈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이 된 기분을 아는가?

형이 나를 데려올때 사장님(사장님이라고 하기보담은 중국표현으로工頭이라고 하는게 가까운데 한국에서는 보통 오야지(두목이라는 뜻의 일본에서 건너온말)라고 불렀다.)한테 웬만큼한 용접은 할수 있다고 부풀려서 말했다.하지만 후에 내가 헤매는 꼴을 보면 한심하고 실망스러웠지만 모두가 착한 분들이여서 전혀 내색을 안하고 열심히 가르쳐준덕분에 한달정도 지나고나니 웬만큼한 심부름은 할수 있는정도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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