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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회사 짤리운후 이야기

galaxy2 | 2020.11.02 17:40:15 댓글: 2 조회: 547 추천: 4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4192037
B회사 짤리우고 나서 생각 같았으면 고향이나 가서 좀 휴식 하다가 다시 나와서 일자리라도 찾아보고 싶었지만
호주머니 여유가 나를 그렇게 할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도 만철이와 함께 있는 세집이 있어서 잘곳은 걱정할 필요 없었고 밥먹는데와 면접하러 다니는 교통비용만 지출이 있었다.
나는 B회사에서 11달 근무하는 사이 월마다 3000원씩 받고 출장비까지 받으면서도 처축을 하지 못하였다.
B회사 나올대 3000원 월급에 한달 월급 더 받고 나왔기때문에 그래도 한두달 동안 새 일자리 찾기전까지는
6000원으로 지탱할수는 있을것 같았다.

상하이 저널 그리고 교민세계 등 한국 잡지들의 구인광고란에서 나의 조건과 부합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첨에는 A회사와 B회사 경력을 1년씩 다 적어서 이력서 보냈는데 면접오라는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회사를 너무 옮긴 원인이였다고 판단하고 이력서에 B회사 근무경력도 A회사 근무 경력처럼 장식했다.
그랬더니 몇몇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옛날에 하던 경력과 하도 관계없는 회사들이여서 아예 포기를 했다.
하루는 한빛 통신이라는 주로 한국업체와 중국업체 사이 중간상 역할을 하는 업체 면접통보를 받고 면접을 갔다.

한빛 통신은 한국의 핸드폰 업체의 오더를 받아서 중국의 핸드폰 조 립업체에 의뢰해서 조립을 해서 다시 한국 또는 해외로
수출을하는 회사였다. 그때까지 중국에서는 자체로 핸드폰을 설계해서 제조를 할 능력이 있는 업체가 많지 않았다.
HUAWEI는 그때에 핸드폰 사업을 시작도 하지 않았던거 같다.
나의 면접을 보는 분은 중국 시장을 책임진 성씨가 제갈량과 같은 성씨였는데 직급은 이사였다.

나는 2년동안 A회사 B회사에서 제조업 관련 구매업무를 해온경력을 결부해서 진행한 면접은
비록 핸드폰과 다른 제품이였지만
제조라는 공동점이 있었고 또한 모두 전자제품이여서 잘 되였고
그자리에서 오케이를 하였고 이틑날부터 출근을 해라고 했다.

월급은 3000원을 요구했지만 자기네는 A회사처럼 큰 회사가 아니여서 그렇게 많이 줄수 없고 여기에서 제일 많이 받는
중국직원이 경리직급이며 3000원이라면서 2500원밖에 줄수 없다고 했다.
그럼 출근할지 집에 가서 고려해보겠다 하고 회사문을 나갔다.

사실 2500원이라 해도 나는 매우 이일을 하고 싶었다. 왜냐면 하는 일이 핸드폰과 관련된 일이고 그때 내상황이
월급 500원 차이 난다고 일자리를 고를 상황이 아니였다.
그러나 면접과정에 본의 아니게 그런 결정을 하고 쿨하고 말한마디 남겨놓고 그회사에서 나왔다.

이튿날부터 그회사 전화를 손꼽아 기다렸다.
다시 전화 걸려오면
3000원 월급에 동의한다는 말이고 전화가 걸려오지 않으면 어쩔가?
내가 전화를 하게 되면 그회사에서는 월급을 엄청 많이 깍을건데...
거의 퇴근시간 무렵에서 그회사 제갈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제갈량: 김형, 우리회사에 와서 함께 일할 생각은 없어요?

나: 물론 하고싶은 맘이 많습니다.
제갈: 3000원 월급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좀 낮춰줄수 없는가?
나: 상해에서 살아가려면 3000원을 받지 않고는 살기 힘듭니다.
제갈량:우리 직원들은 1500씩 받고도 살수 있는데...
나: 1500씩 받고 사는 사람의 스팩과 3000씩 받고 사는 사람의 스팩이 틀리지요.
제갈량:좋네... 2800원이면 어떤가? 그리고 조건이 있는데 상해에서 일을 하는게 아니고 녕파에 가서 일을 해야겠네...
우리 공장이 녕파에 있는데 한국의 핸폰 고객 엔지니어들이 녕파에 출장을 와서 장기 주재하고 있으니...
그리고 거기에 우리 사무실겸 숙소로 쓰고 있는 집이 있어서 그기에서 살면 회사에서 주숙비용은 다 부담하는거네...
나: 비록 상해를 떠나서 일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는 일이 핸드폰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해서
그리고 주숙 비용도 절약할수 있고 해서 나절로 나를 설득시켜서 2800원 받고 녕파에 가서 일하는데 동의하였다.
고까짓 200원가지고 직원과 옴니암니하는 회사여서 퍽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상해에 와서 1년정도 생활하다가 또다시 짐을 둘러메고 회사에서 안배하는 차를 타고 녕파로 떠났다.
녕파에 도착해보니 녕파시내가 아닌 장개석 고향 奉化현 이였다.
우리가 주숙하기도 하고 사무도 볼 오피스텔 가보니 네개 거실이 있는 매우 큰 집이였다.
그곳에는 이미 나보다 한살 이상인 조선족 담당자 한명이 있었다.
내몽고에서 온 친구였는데 나는 그때에야 내몽고에도 우리 조선족이 살고있는것을 알게되였다.

이튿날 핸드폰을 조립하는 공장을 가게 되였다.
공장에 거의 도착할때 멀리에서 회사 브랜드가 적혀있는 큰 간판이 보였다.

BIRD- 手机中的战斗机!
아~ 우리가 합작하는 회사가 波导구나!
그때까지 BIRD 핸드폰이 중국에서 생산량이 제일 많았고 매출도 제일 많았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서 비록 이 브랜드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공장에 들가보니 고객 미팅룸이라고 적혀있는 칸에 한국 사람 두명이 앉아 있었는데 인사를 하고 명함장을 보니
B회사 모바일 사업부 사람들이였다. 예전에 내가 입사한 B회사는 냉장고 사업부 사람들이였고...
사실 B회사는 규모가 너무 커서 같은 사업부라해도 서로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서로 인사 나눈후 업무에 바로 들가기 시작하였다.
사실 놓고 말해서 내가 하는일은 옛날 일과 별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제품이 바뀌였고 사람이 바꾸였을 따름이다.

첫째, 통역.
둘째,고객과 공급상사이 분쟁점을 유유하게 풀어나갈수 있도록 유도.
셋째,고객의 퇴근후의 생활을 편안히 할수 있도록 도와주는것.

내가 와서 직면한 BIRD와 B회사 첨 회의는 품질 문제때문에 보상 내용이 포함된 미팅이여서 얼굴을 붉힐 가능성이 확실히 높았다.
나는 2년동안의 회사 생활을 통해서 배운 미팅 기교들을 충분히 발회하여
확실하게 양쪽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기분좋게 회의를 이끌어갈수 있게 하였고
양쪽에 트라벌이 발생할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상대방에게

존경의 뜻을 포함하는 단어들을 많이 써가면서 통역함으로서 기분좋게 끝낼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당일 제갈량이 있는 회의 장소에서 나의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서 칭찬을 받았다.
제갈량: A회사에서 근무햇던 사람이 다르긴 다르네요...
나: 아닙니다. B회사 분들이 제가 알아듣기 쉬운 말로 미팅을 해서 제가 많이 쉬웠습니다.
출근한 당일부터 B회사 두분과 따라다니면서 BIRD 각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고객의 요청사항들을 확인해주고
BIRD에서 생산과정에 발생햇던 문제점들 B회사로부터 입고되였던 부품들의 문제점들도 B회사 두분에게 잘 전달을 했다.

알고보니 B회사는 BIRD에 SKD((SemiKnockedDown,半散装件)진행하는것이였다.

반성품을 BIRD에 입고시켜서 완제품으로 조립을 한후에 다시 한국 혹은 기타 해외시장으로 수출한다.
BIRD에서는 B회사에서 조립비용을 벌고...
우리회사는 물량에따라서 서비스 커미션을 받고...

출장을 오신 B회사 두분은 내가 다녔던 냉장고 사업부 사람들에 비해서 접촉하기 많이 좋은 분들이였다.
업무적으로나 일상 생활에서 기분좋지 않은 일이 발생해도 그 기분을 나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한번은 술을 많이 먹고 노래방 가자고 해서 내가 본지방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데리고
모 노래방에 갔는데 바가지를 쓰게 되여서 내가 막 화를 내면서 그넘들과 대판 붙으려고 했는데
두분은 바가지를 주면 써야지 하면서 싸우지 말라고 했다.
사실 절강성 사람들은 싸우지 않는다.
상해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이다. 뭐라고 입을 짹짹 거리지만 절대 싸우지 않는다.

내가 110에 전화를 하니깐 110에 전화받 는 사람이 그 가계 주인을 바꿔라 해서 110과 가계주인이 통화를 하더니 바가지를
면하고 나왔다..

ㅎㅎ 이런 110 전화는 그때 첨 접촉해봤다.

이회사에 있으면서 하는 일도 힘들것은 없고 또 핸드폰에 관한 표면 지식들도 좀씩 배웠었다.
B회사 두 엔지니어가 한국 본사로 복귀전에 내가 고생을 햇다고 밥을 사주면서 가지고 있던 핸드폰 열몇개중에서
가지고 싶은것을 골라 가지라고 했다. 핸드폰 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핸드폰을 열몇개씩 가지고 다닌다.
성능비교를 하기위해서 모델별로 다가지고 다니는것이였다.
그중에서 제일 최고급 모델인것으로 골라가졌는데 언어버전도 영어버전이였다.
이폰은 유럽향으로 수출하는 최고급 모델이였는데 중국 수출은 없어서 시스템도 중국어 버전이 없었다.

물론 유럽은 GSM 신호이니깐 중국에서 그대로 사용할수있는 폰이였고.

그때까지는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였고 칼라폰 영상판이 흑백과 칼라 두가지가 있었는데 칼라폰은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벨소리도 중국 핸드폰은 16和旋이 제일 좋은것이였는데 내가 선택한 핸드폰은 40和旋였던것으로 기억난다.
벨소리가 울리면 장난이 아니였다. 그때는 벨소리가 큰것으로 자기 핸드폰이 좋다는것을 자랑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이 핸드폰에는 카메라도 달려있어서 정말로 최고급 모델이였다.
그뒤로 4년후에야 첫번재 스마트폰 IPHONE 2G가 발표되였다.

그때까지만 중국의 핸드폰 설계 기술이나 제조기술은 한국의 A회사 B회사에 비하면 한창이나 떨어져있었다.

B회사 엔지니어 복귀시키고 나는 잠간동안의 편안한 시기가 있었다.
상하이탄 사이트에 들가서 이것저것 보다가 구인구직란을 보았는데...
A회사 소주회사에서 구매 담당자를 모집하는것이였다.
혹시나 해서 나는 이력서를 메일로 발송을 했다.
이력서 넣어서 1시간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언제 면접가능한가 한다.

이튿날 소주로 면접을 떠났고 면접 과정은 앞집<A회사 다닐때 이야기)에서 얘기한바 있다.
면접은 무사히 통과되였고 그자리에서 출근일자를 확인하고 인사부에 가서 입사수속을 해라고 한다.
월급은 3500원.

나는 소주에서 면접 끝나고 녕파로 돌아가지 않고 상해로 가는 뻐스타고 만철이 있는 세집으로 갔다.
만철이와 만나서 A회사 면접에 통과되였는데 현재회사 그만두고 A회사 가는게 어떨가 하였다.
만철이는 고려도 해보지 않은고 무작정 A회사 가라고 한다.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한단다.

당일 나는 B회사 엔지니어로부터 받은 40和旋 벨소리에 영상판이 칼라로된 폰을 만철이에게 선물했다.
만철이는 너무 좋아가지고 입이 당나발이 되였다.
만철이:성철아 너무 감사하다야~ 이좋은 핸드폰을 니가 써야지...나에게 주다니...
나: 싫냐? 싫으면 내가 쓸게 ㅎㅎ
만철이: 아니다 , 내가 잘 쓸게 ㅎㅎㅎ

한빛이란 회사에서 세달도 일 못하고 사직하고 다시 A회사(소주)에 입사했다.




추천 (4) 선물 (0명)
IP: ♡.250.♡.61
선글라스1 (♡.94.♡.197) - 2020/11/03 14:29:41

너무나 로맨틱한 직장경험이시네요..

못난님 (♡.82.♡.6) - 2020/11/07 16:10:11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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