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51회)

죽으나사나 | 2024.04.04 10:15:02 댓글: 15 조회: 238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8606
너를 탐내도 될까? (51회) 보고 싶어서 왔어요.

머리를 푹 숙이고 있던 하정이가 저를 부르는 그 잔잔한 음성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옆에 조용히 앉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이 사람…

곧 서울이라는 걸 알 게 되었다. 

어떻게 찾아온 거지?

흐르다 만 눈물 얼룩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끈적 거렸으나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여기서 뭐해. 누나.”

마주 본 서울이 눈빛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왜 네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너도 알 게 된 거니?

내 쌍둥이 언니에 대해서. 

이제 안 나올 것 같은 눈물이,

곧 쏟을 것 같은 서울의 짙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또 한없이 무너져내렸다. 

서울은 손을 뻗어 눈물샘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들을 닦아주기 바빴다. 

“서울아, 어떡하지? 미끄럼틀 안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이제 내가 너무 커버려서… 너무 비좁아. 못 들어가겠어…. 흐윽…”

어린애처럼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렸다. 

서울은 내 뺨을 천천히 쓰다듬더니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더운데,

더워 죽겠는데,

그 품이 너무 따뜻한 거 같아서 한참이나 그러고 울었다. 


“후루룩~”

너무 울어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나. 

갑자기 허기져서 저를 끌어안은 서울에게 떨어지며 꺼낸 말은 칼국수를 먹고 싶다였다. 

서울은 당황함에 두 눈이 커지더니 이내 내 손목을 잡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맛있어?”

“응.”

국물까지 들이켜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서울은 싱긋 웃었다.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누나.”

가라앉은 목소리.

서울은 묻고 싶어 한다. 

“서울아, 나 너한테 고백할 게 있는데.”

최대한 밝게 서울을 마주 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나한테 가족이 있었어. 그것도 무려 쌍둥이 언니. 깜짝 놀랄 일이지. 나 완전 당황했지 뭐야.”

“…”

“사실 처음엔 안 믿었다? 어떻게 믿어. 꿈에서도 생각을 못 했던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데. 그래서 나 그 얼굴을 직접 만나고 왔는데  반박을 할 수가 없는 거야. 나랑 어쩜 똑같아!”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가며 말했다. 

“…”

그러나 서울은 그냥 그런 나를 무감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나 여태 뭐하고 살았나 몰라. 그분들한테 그렇게 매달렸는데 쌍둥이 언니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좀 덜 괴롭힐 걸 그랬어.”

두 눈을 크게 떠 보이며 발랄한 척하던 내 노력이 무색해질 만큼 서울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괜찮지 않은 거 알아. 누나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지 마.”

떨어진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나 괜찮아. 놀랐을 뿐이야. 그냥.”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답은 없지만 괜찮아질 거야. 

***

다음 날,

“똑 똑.”

“네.”

기혁의 허락하는 소리가 들리자 대표실 문을 두드리던 여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금방 1층 로비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강은서라고 대표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하셔서… 어떡할까요?“

”강은서?“

기혁의 눈썹이 일순간 씰룩거렸다. 

“올라오라고 해요.”

“네.”

전달을 받은 비서는 바로 나갔다. 

은서가 회사에 직접 찾아왔다고?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기혁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얼마 안 지나,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평소보다도 더 진한 화장에, 곱게 올린 머리. 굴곡 있는 몸매를 더 부각 시킬 딱 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들어왔다. 

말은 없었고 몇 초 저를 바라보는 기혁을 빤히 올려다보더니 성큼 앞으로 내디뎠다. 

와락 -

그의 너른 가슴에 안겼다. 

“보고 싶어서 왔어요.”

“…”

그러나,
기혁이가 저를 보고 싶다는 말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한 번에 다 잡히지도  않는 그의 딱딱한 허리를 감쌌던 팔을 스르륵 풀며 그를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따뜻하지 않은, 차갑고 굳은 시선이었다. 

왜…?

짙은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은 자연스레 두툼하고 촉촉해 보이는 입술로 넘어갔다. 

그의 목덜미에 팔을 걸친 채 꼿꼿하게 서있는 그에게로 가까이 가려고 발뒤꿈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 촉촉한 입술에 닿을락 말락 할 찰나, 

“그만하시죠.  윤하정 씨.”

동굴같이 무겁고 깊은 그 음성에 움찔 놀란 건 하정이 본인이었다. 

목석같이 서있던 그한테서 자연히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한껏 그를 노려보던 하정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왜요? 강은서는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나 봐요. 최대한 따라 해서 치장을 한 건데 금방 들통나는 걸 봐서는.”

피식거리면서 소파에 털썩 제 몸을 맡기며 등받이에 기댔다. 

딱 한 번 와봤었던 대표실을 한 번 더 자세히 훑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기혁은 하정의 입에서 나온 은서 이름에 놀라지 않았다. 이한에게 은서를 보여줄 생각을 했을 땐 이미 이런 날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정의 친한 친구인 오 비서와 만나고 있는 이한이가 은서의 존재를 알 게 된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어설프게 은서를 따라 치장을 한 하정이가 이리 제 앞에 있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그대로 진짜 은서가 온 줄 알았다.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은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으니. 그것도 회사까지 찾아와서는 더욱더. 

그 속을 모르는 하정은 제 입에서 강은서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는데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그를 마주하고는 실소가 나갔다. 강은서는 그새 권기혁한테 내가 다녀갔단 걸 말했구나. 

뭐, 그럴 사이니까 당연히 그랬겠지만. 

가슴이 쓰라렸다. 

”왜 그렇게 좋아한다던 여자랑 저를 비교하나 했어요. 기분이 더러웠었는데 이제 보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똑같이 생긴 외모에 속은 당연히 다를 테고. 그게 재밌었나요? 권기혁 대표님?“

가슴에 팔짱을 느슨하게 끼고 삐딱하게 고개를 젖힌 하정이가 기혁을 비웃었다. 

“은서는 언제 만난 겁니까?”

물어보는 답은 관심이 없는지 제 질문을 늘여놓는 기혁에게 또 한 번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 

뭐야, 알면서 굳이 묻는 저 저의는 뭐지?

그러다 여기서 화를 내고 날뛰면 얼마나 없어 보일까 싶어서 짐짓 괜찮은 척,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어제 봤어요.”

어제라…. 은서는 온 밤을 못 자고 날 샜겠네.

기혁이 잇새로 짧은 한숨이 새어나갔다. 

“은서는, 괜찮아 보였어요?”

이렇게 찾아온 당신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으니, 마음이 여린 당신 언니인 은서는 어땠는지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이 당신을 돌아버리게 한다는 생각을 못 한 채. 

또 당신을 미치게 만든 거 같았다. 

“강은서보다 저를 더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적어도 당신들은 내 존재를 알고 있었고!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잖아. 그런 나한테 지금 강은서가 어땠는지 묻고 있어요? 권기혁 대표님,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정에게서 강렬한 분노가 뿜어져 나오려고 했고 부들부들 떨리는 그 가냘픈 어깨와 달리, 숨을 고르며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게 보였다.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해 내내 힘들었던 건 은서였습니다. 은서를 무작정 원망하지는 말아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요? 업소 아가씨였어서? 그러니까 왜 굳이 그런 직업을 택했대요? 아니, 이렇게 돈 많은 재벌 집 대표가 왜 그런 여자를 만나요? 그것도 10년이나 넘게 내연녀로 만났다면서요?”

하정의 입에서 다시 주워 담지 못할 독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간이 확 좁혀진 기혁이가 그녀의 양어깨를 꽉 그러쥐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통증에 눈썹이 움찔했지만 하정은 이내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눌리지 않을 거다. 더 독한 말로 당신과 나의 그 가늘어진 끈을 아예 끊어낼 것이다. 

오늘 강은서의 모습으로 굳이 여기로 찾아온 이유.

이 사람과의 얕은 감정을 끝장낼 참이니까. 

그래야 내 언니라는 강은서와 떳떳하게 다시 볼 수가 있으니까.

[누나, 무조건 원망하지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차분히 잘 생각해 봐요. 꼭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누나 못지않게 힘들게 살아왔을 수도 있으니까 색안경을 쓰고 보진 말아요. 난 누나가 현명하다는 걸 알지만 감정에만  휩쓸려  겨우 만나게 된 유일한 가족을 허무하게 잃게 될 가봐 걱정이 돼요.]

진심 어린 서울의 충고….

맞아. 

난 그저 강은서가 내 쌍둥이 언니라는 것만 알지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다. 

진짜 서울의 말대로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있었다면?

이렇게 무작정 미워하고 싫어할 게 아니었다. 

적어도 마주 앉아서 차분히 대화라는 걸 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그전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을 마구 헤집고 다녔던 권기혁. 

분명 홍콩에서의 그의 눈빛은 줄곧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큼. 

그리고 나를 등에 업고서 술에 취한 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던 그 모습도 이제야 떠올랐다. 

권대표,

강은서와 닮은 나에게 잠깐의 호감이 생긴 걸까.

밤새 생각을 했다. 

단지,

내가 강은서랑 닮아서 호의를 베풀고 예외를 준 걸까.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현재의 권기혁은 나를 좋아한다. 

강은서에 대한 마음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권기혁은 지금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누군가가 대못으로 후비 듯 그렇게 저리고 아팠다. 

하필이면, 강은서와 그런 사이인 권기혁이라 마음이 아픈 건지.

아니면… 

강은서와 닮은 나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권기혁이라 그런 건지…

강은서가 없었다면 권기혁은 날 쳐다나 봤을까.

그럴 리 없겠지. 

비참했다. 

난 강은서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 남자가 싫어할 만한 독한 말들을 뱉어야 했다. 

어떻게 제 언니를 그리 끔찍하게 말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딱한 얼굴을 한 그 사람을 바라보며,

“제 앞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긴 했겠네요. 술집 아가씨에, 불륜녀에. 좋은 건 하나도 없는데 창피하겠죠. 제 자신이.”

또박또박 뱉는 지독한 말들을 뱉는 하정에 속수무책인 기혁의 검은 두 눈동자가 많이도 떨리고 있었다. 

“당신 언니야. 그렇게 말하지 마.”

하정의 말들을 부정하진 않았다. 

아가씨 신분 맞고, 내연녀라는 것도 맞나 보다. 

하…

하정의 깊은 속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있었다간 바로 구역질이라도 할까 두려웠다. 

제 어깨를 부여잡은 기혁의 팔을 뿌리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등진 채 한 마디를 더 뱉고 대표실을 급히 나섰다. 

”다신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강은서 곁에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까지는 차마 꺼내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버려서. 

무척이나, 힘들어질 거 같아서. 

만나더라도 조용히 내 눈앞에는 띄지 않게 만나요.

안녕.

권기혁 대표님. 

좋아했어요.

제가 많이. 

하정은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똑 부러져야 했던 성격이 지금 잘 발휘를 하는 거 같았다. 

최대한 당당하게,

미련 없어 보이게,

오늘 그 사람의 앞에서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했다. 

이제 우리 쌍둥이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러 가볼까.

강은서를 만나기 전,

이 두꺼운 화장은 지워야겠지. 

하정은 화장실 거울에 비춘 자기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지만 꽤 낯선 모습…

집에서부터 갖고 나온 클렌징 티슈를 가방에서 꺼내 짙은 화장을 빡빡 문지르며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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