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64회)

죽으나사나 | 2024.04.13 06:30:08 댓글: 32 조회: 271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60654
너를 탐내도 될까? (64회) 같이 있을까요?

하정이가 욕실로 들어가자 기혁은 저 역시 흠뻑 젖은 몸이라는 걸 그제야 상기하고 2층 욕실로 향했다. 

금방 샤워를 끝낸 기혁이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다. 제 폰이랑 같이 챙겨서 들고 왔던 하정의 폰이 테이블 위에서 울려댔다. 

발신자는 서울이었다. 

“여보세요.“

갑자기 사라진 하정 때문에 걱정되어 전화를 했을 거라 여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대표님이 누나 전화를 받습니까?“

전화기 너머에는 역시나 몹시 불쾌하다는 듯 내리깐 서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난 지금 어디에 있어요?“

”저희 집에 있습니다.“

제 집에 있단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서울의 기막히다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병원에 있던 사람이 왜 거기에…”

“병원이 싫다고 해서 여기로 잠시 데려왔을 뿐입니다. 컨디션을 확인해 줄 의사도 곧 올 테니 박서울 씨는 걱정 마시죠.”

서울의 의구심을 끊고서, 말뚝 박듯이 단호한 기혁의 음성이었다. 

“… 누나 바꿔줘요.”

거친 호흡을 애써 가듬은 서울이가 하정을 찾았다. 하정과 직접 물어볼 기세였다. 하정이네 집에 들렀다가 정연이 집으로 가느라 시간이 좀 걸렸긴 했지만 그새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권기혁이 집에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되었다. 

“씻는 중입니다. 나오면 전달해 주죠.”

서울이가 무언가 더 얘기하려고 하는 거 같았지만 그걸로 저와의 얘기가 끝났다 생각한 기혁은 매정하게 통화를 툭 끊어버렸다. 

[강은서한테 가서 여기서 했던 말을 똑같이 할 거 아니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죠. 가증스럽습니다.]

뭣도 안 되는 애송이가 저에게 건방진 충고를 해댔지. 내가 이제부터 무슨 짓거리를 할지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를 함부로 떠드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기혁은 씩 올라간 입매와 함께 하정의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박서울,

홍콩에서 봤던 박서울은 자신을 내내 적대시했던 터라 그에 대한 조그마한 복수였다. 웃기게도 이 상황에 기혁은 유치한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갔다. 애간장이 타고 배알이 꼴려 할 서울의 모습이 제 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목욕을 끝냈건지 1층에서 부산한 움직임들이 느껴졌다. 기혁은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

“이한 씨가 왜 …”

이제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정연이한테 이한이가 말도 없이 찾아왔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초인종을 누르나 했다. 

금방까지 잘 자라고 통화를 마친 이한이었는데 말이다. 떡 하니 제 앞에 나타나서 호흡을 가듬는 게 보였다. 

“안 오려고 했는데… 걱정이 돼서요.”

“무슨 걱정이요?”

큰 눈동자에 무구한 표정이 깃들었다. 

“… 글쎄요. 오늘은 그러네요. 그나저나 저 들어가도 되나요?”

한참을 문만 빼꼼 연 채 대화를 하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 미안해요. 들어와요.”

정연은 그제야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이한을 반겼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한이가 그 집에 발을 들였다. 

오늘은 너무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 아침부터 권기혁은 회의실을 살벌하게 헤집어놓더니 얼마 안 가 윤하정이 납치되었다면서 경찰 신고와 함께 위치 추적을 지시했다. 

갑자기 납치라니…

요즘 기분이 들쑥날쑥하는 그가 뭔가 망상이라도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근데,

납치는 진짜였다. 

그제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권기혁이 하는 지시를 받들었다. 다행히 납치범은 그리 치밀하지 못했는지 윤하정은 도망을 칠 수가 있었고 사고가 날 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피해 갔다. 

병원에 경호원을 붙이라 해서 연락처에 있는 업체를 찾아 분부대로 배치했고 이제 퇴근을 해도 된다고 해서 정연을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다. 윤하정네 집 앞에서 납치를 당했다고 하니 그녀 역시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에. 

그러나 곧 다시 권기혁한테서 전화가 왔다. 본가에 계시는 한 집사한테 연락을 해서 펜트하우스에 경험 많은 가정부 몇 명을 배치하라고 했고 여자 옷 속에서부터 겉까지 챙겨서 펜트하우스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사이즈까지 일일이 읊어댔더랬지. 

늦은 밤에 갑자기 내린 지시였지만 이한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밤중에 연락을 해 죄송하다는 말부터 시작으로 차근차근 임무를 수행했다. 본가에 있을 한 집사에게 연락을 취하고 계열사인 백화점 관계자를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바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그리 어렵지 않았던 건 역시 사람은 경험 빨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영진 그룹으로 입사하기 전 다른 대기업에서 비서직을 한 적이 있었던 이한은 그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 치를 떨기도 했다. 
분명히 대표이사의 비서였지만 정작 자기가 하는 일은 그 대표이사 망나니 외동딸의 갖은 수발이나 드는 하인이었다. 휴대폰에 그 여자의 번호가 뜨면 오밤중에도 뛰어가야 했고 심부름으로 갖고 오라는 물건도 다양했다. 지방까지 놀러 내려가 놓고는 새벽 시간에 수박 먹고 싶다고 사 오라고 하지를 않나, 또 어느 날은 파티에 가야 한다고 원하는 드레스가 없다고 난리를 쳐서 오밤중에 문을 닫은 백화점을 찾아가야 했으니… 

그렇게 견디다 못해 1년 남짓 일하고 그만두었었다. 그러고 나서 입사한 게 지금의 영진 그룹이다. 회사 일 업무 외에는 따로 부르는 일이 없어  좋았고 술을 거의 안 마시는 상사라 술자리 뒤치다꺼리 할 일도 없어서 너무 좋았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저 자신도 그리 느린 사람이 아닌데 윤하정이 납치되었단 사실을 알자마자 마음이 급해진 권기혁은 저 혼자 단독으로 움직였다. 지시할 일이 있으면 전화로만 얘기했다. 

그러나 사람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게 평소 저 자신이 하던 업무가 아니라도 그때 그 악덕 재벌 3세 뒤를 쫓아다녔던 기억 때문에 그런가. 이한은 영진 그룹 내에서 별의별 인맥들을 다 연락처 안에 집어넣었다. 언젠가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게 오늘이었다. 그렇게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니면 지금쯤 우왕자왕하면서 그 빠른 시간 내에 그가 내린 지시를 마무리 지을 리가 없었다. 

”왜 그래요?“

정연의 갸웃거리며 가까이 불쑥 다가오자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난 이한은 오늘 일을 무사히 마무리 한 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 그 모든 걸 지시한 데는 윤하정 때문이겠지. 
집에 데려갔다는 건데 그래도 되는 건지… 겨우 잊는 듯하더니 오늘 그러고 나서 또 후회를 하는 게 아닌지 제 상사가 걱정되었다. 

***
"몸살 기운이 좀 있습니다. 영양제 링거 하나 꽂았고 밤에 열날 수도 있으니 약은 두고 가겠습니다."
"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혁은 늦은 시간에도 자신의 부름에 지체 없이 바로 달려와 준 장 박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표했고 박사는 별게 아니라는 듯 목례를 끝으로 현관을 나섰다.
기혁은 1층 게스트 룸에서 링거를 맞으며 잠들었을 하정이를 보러 들어갔다.
하정이가 자고 있으니 나오면서 그 룸 등은 꺼져 있었고 열린 문으로 밖에 불빛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으로 기혁의 시야에 들어온 건, 분명히 아까까지 잠들어 있던 하정이가 침대 등받이에 기대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온몸을 웅크리고 있다.  
"하정 씨?"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을 켠 기혁이가 경직된 하정의 옆으로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굳어있던 하정의 고개가 기혁에게로 옮겨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이던 하정이가 또 무엇 때문인지 하얗게 질려 있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진 기혁이가 그녀의 앞에 마주 앉았다.
"미안해요."
뜬금없는 기혁이 사과에 멍하게 앉아있던 하정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정 씨가 당한 일이 저 때문이라, 너무 미안합니다."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하정의 양볼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감쌌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놈은 금방 잡힐 거니까."
고요하고 깊은 그 눈동자를 마주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을까.
하정은 말이 없었고 고개만 끄덕이었다. 기혁의 도움으로 다시 침대에 반듯하게 누운 하정의 시선은 내내 기혁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런 하정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기혁은 하얀 이불을 그녀의 가슴 위까지 꼭 덮어 주었다. 
"걱정 말고 잘 자요."
곁에 그냥 있고 싶었지만 이제 쉬어야 하는 그녀를 위해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등을 끄려고 하는 순간,
등 뒤에서 하정의 가늘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지 마요."
기혁이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게... 싫어서요."
머뭇거리며 입을 뗀 그녀를 보며 그제야 알았다. 병원에서도 뛰쳐나온 게 어둠 때문이었겠구나.
혼자 남은 어두운 공간이 하정에게는 공포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구나.
"같이 있을까요?"
지그시 바라보며 묻는 기혁의 말에 하정은 동요가 되었지만 고개를 떨구었다가 이내 들었다.
 
"죽 다 먹을 때까지만 이요."
하정의 생각지 않은 발언에 기혁은 그제야 한 입도 안 댄 채, 협탁 위에 그대로 놓인 도우미가 만든 전복죽에 시선이 갔다.
"배가... 고파서요."
볼을 발갛게 붉히며 그 작은 입에서 나온 말은 웃을 때가 전혀 아닌데도 기혁으로 하여금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을 옆으로 걷어주고 소형 좌식 테이블과 함께 전복죽은 하정의 앞에 놓였다.
아직도 하정의 발간 손목을 확인한 기혁은 수저를 잡으려던 그녀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도와줄게요."
"아, 아닌데..."
하정이 당황해하며 기혁이 손에 들려있는 수저를 뺏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수저는 기혁에 의해 저 높이 올라가 있었다. 줄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고 기혁은 고개를 삐딱하게 움직였다.
"얌전히 있어요. 그냥."
말은 그랬지만 워낙에도 말을 잘 안 듣는 여자라 몇 번은 더 싫다고 실랑이를 할 줄 알았는데 하정은 거부를 하지 않았다. 적당한 양의 죽을 수저에 담은 기혁이가 하정의 앞에 대령했다.
많이 낯설고 어색한 상황에 하정은 기혁을 빤히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입을 벌려 죽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기혁은 안도를 했다.
그날 새벽,
장 박사의 말대로 하정은 몸살이 왔고 온몸이 열로 펄펄 끓었다. 잠은 들다 말다를 반복했고, 희미한 정신으로 잠깐씩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제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권 대표를 본 거 같은 건 착각일까.
굳이 제 손으로 직접 그릇이 싹싹 비울 때까지 죽을 한술 한술 떠서 먹여주던 권 대표는 아까 분명 이 방에서 나갔었다.
뜨거운 이마에 차가운 뭔가가 올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워...
그러나 시원하고 좋아.
하정은 또다시 그렇게 까무룩 정신을 잃다시피 잠이 들어버렸다.
긴 꿈을 반복으로 꾸는 거 같았다. 처음엔 무서운 꿈으로 시작되어서 온몸이 덜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가  커다란 그림자가 저를 보호했고 그 따뜻한 체온으로 떨리던 몸이 점차 포근해졌다.
온몸에 나른함을 느낀 하정은 계속 그 따뜻한 품을 찾아 몸을 웅크렸다. 제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른 아침, 

기혁은 아침 일찍 김재중이 잡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경찰서로 향했다. CCTV가 없는 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김재중이 새벽이 되자 저를 쫓는 이가 없을 거라 여겨 차를 끌고 도로에 나섰었다. 밤새 실시간으로 저를 쫓고 있는 경찰들이 한두명이 아니란 걸 망각한 채.

얼마 안 가 지방으로 벗어나려는 김재중 차 번호가 카메라에 찍혔고 그에 바로 출동된 경찰에 의해 잡혀왔다. 

기혁은 넓은 보폭으로 김재중이 잡혀 들어가 있을 취조실 앞으로 다가갔다.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청장님 지시대로 카메라는 다 꺼두었습니다.”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록은 없을 거라고 제복 차림의 사내가 그에게 귀띔했다. 기혁은 말 대신 묵례로 고맙다는 인사를 표하고 당장 만날 김재중을 생각하며 어금니에 바득 힘을 주며 갈았다. 

“덜컥.”

기혁이가 차가운 철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젖혔다.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마른 체구의 김재중이 요란한 문소리에 깜짝 놀라며 두 눈을 번쩍 쳐들었다. 

이내,

들어온 이가 경찰이 아닌 권기혁이란 걸 발견하고 흠칫 놀라며 바깥 상황을 볼 수도 없는 주변을 훑었다.

기혁은 말없이 그의 앞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걸터앉았다. 책상 위에 제 양손을 올리고 깍지를 꽉 쥐었고 벙져 있는 김재중을 차갑게 마주했다. 

”재벌이 좋긴 하네. 취조실에 들어와서 처음 마주한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 영진 그룹 권기혁 대표라는 게.“

입꼬리를 비틀며 김재중이 입을 벌렸다. 꽤 여유로워 보이는 그 발언에 권기혁이 비릿하게 웃으며 굵은 상체를 세워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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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싶어서 (♡.104.♡.194) - 2024/04/13 08:18:03

드라마 찍어도 될것같아요,대박나시기를.

죽으나사나 (♡.101.♡.99) - 2024/04/13 19:44:38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힘나요 (♡.208.♡.81) - 2024/04/13 17:31:18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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