尼采和莊子如是说4-1~2

나단비 | 2024.06.10 20:12:46 댓글: 0 조회: 117 추천: 0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75726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4장
허무주의와 무 無
세상은 한바탕의 꿈이다. 현실은 거짓과 가상으로 창조된다. 창의적 거짓, 상반된 가치를 인정하는 순간 미래 사회의 새로운 가치, 휴머니즘 이후의 휴머니즘이 태어난다.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넘나들고, 모순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맛보라. 절대적 진리에 대한 부정 속에서, 미래를 만들 새로운 가치가 떠오를 것이다. 목적 없이 즐거이 유희하고, 그러한 존재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그려내라. 그리고 모든 지류를 끌어안은 거대한 강이 돼라.
1
세계는 한바탕의 꿈이다
Nietzsche
나는 예전의 인간성과 동물성, 태고 시대와 과거의 모든 것을 느끼는 존재가 내 안에서 시를 짓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추론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꿈에서 깨어나긴 하지만 내 의식은 몰락하지 않기 위해 꿈꾸고 또 계속 꿈꿔야만 한다. 몽유병자가 추락하지 않으려면 계속 꿈꿔야 하는 것처럼. '가상'이란 무엇인가! 본질의 반대인 어떤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내게 가상은 활동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이다. 이 세상에는 가상과 도깨비불과 유령의 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즐거운 학문』
莊子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서는 슬픈 현실에 절망하여 통곡하고, 꿈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서는 상쾌한 기분으로 사냥을 하러 간다.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다가 꿈속에서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안다. 참된 깨달음이 있고 난 뒤에야 이 세상이 큰 꿈임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만 깨달음을 얻었다며 아는 척을 한다. 이들은 군주는 귀하게 대하고 목동은 천시한다. 참으로 졸렬한 일이다.
「제물론」
'이 세상이 꿈이냐, 진짜 현실이냐'는 만만치 않은 철학적 토론주제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꿈이 꿈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꿈에서도 꿈에 나타난 꿈을 꿈으로 간주한다. 꿈에서는 꿈과 현실이 모두 꿈이다. 우리는 진짜 현실에서 꿈을 꾸는 것일까? 아니면 꿈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실제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진정한 현실인지 혹은 꿈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고 가정하자. 이 꿈이 아주 생생했다면, 꿈을 꾸는 당사자는 비록 꿈속이지만 진짜 낭떠러지에서 떨어진다고 느낀다. 꿈에서 경험한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는 깨어나봐야 안다. 그런데 아직 깨지 않았다면?
꿈에서 깨어날 때 단지 한 유형의 꿈이 다른 유형의 꿈으로 교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도 나중에 알고 보니 또 다른 꿈속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보자. 침대에서 잠을 잔다. 얼마 후 깨어났지만,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에서 깬다. 서재로 가서 책을 꺼내는데, 침대에 누워 다시 잠에서 깬다. 출근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지만, 침대에 누운 채로 다시 잠에서 깬다. 이 과정을 또 반복하는데, 이번에 이 일들은 차를 끌고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벌어진다. 운전하는 중 다른 차가 울리는 경적에 다시 잠에서 깨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녹색'으로 보이는 풀이 내 앞에 있다. 여기서 '녹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치 꿈속에 있는 대상들처럼 '정신적'으로만 녹색으로 보이는 것일까? 프랑스의 현대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라깡 J. Lacan도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
"깨어 있는 상태란 그의 꿈의 의식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의 선승인 서산 대사는 이런 시를 남겼다.
주인은 손님에게 자기 꿈 이야기를 하고
손님은 주인에게 자기 꿈 이야기를 한다.
이 꿈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
그 모두 꿈속의 사람이어라.
『삼몽사 三夢詞』
2
현실은 거짓과 가상으로 창조된다
Nietzsche
가상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항상 친절한 얼굴의 가면을 썼던 자는 결국 스스로 호의적 기분을 조절할 힘을 획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호의적인 기분이 그를 지배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莊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 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곤은 변화해서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 鵬이라고 한다. 붕의 등은 또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떨쳐 날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그래서 큰 바람이라도 일게 되면 그 큰 바람을 타고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남쪽 바다란 천연 天然의 못이다.
「소요유」
예술적 창조는 인간뿐 아니라 온전한 자연의 근본적인 활동이다. 자연 세계는 속이고 유혹하는 '창의적인 거짓'이 펼쳐지는 장이다. 이런 사례로는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 수시로 몸의 빛깔을 바꾸는 카멜레온, 난초 꽃부리의 다양한 형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과장된 자연미는 정복하고 유혹하기 위한 위장이고 책략이다. 수컷 공작은 화려한 꼬리라는 과장된 자연미로 암컷을 현혹한다.
니체에 의하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믿음'만이 유일하게 거짓이 아니다. 니체가 볼 때 현실은 거짓과 가상으로 창조된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생성'이라는 단어다. "세계는 생성 중"이라는 말의 의미는 지금의 세계는 '생성'을 통해 다음 순간에 바뀌는 가상이자 환상이라는 뜻이다. 니체에게 현실은 예술가가 뛰어노는 아틀리에다. 가장 심오하고 가장 형이상학적인 수준에서 세계는 예술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자체는 예술과 다를 바 없다."
『유고(1885년 가을)』
예술의 상상력은 가장 고양되고 가장 근본적인 의지의 힘이다. 예술은 자기 힘을 표현하기 위해 형태를 만들고 다듬고 잘라내고 감지하고 다르게 재창조하기 위해서 기존의 현실을 파괴한다.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언제나 같은 역을 연기하는 위선자는 결국 위선자이기를 그만둔다". 창의적인 거짓인 예술이 나중에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오성이 그리스인들을 지휘한다면, 삶은 얼마나 쓰고 비참하게 보일까! 그들은 자신을 속이지 않지만, 거짓말을 하며 의도적으로 삶 주위를 맴돌며 유희한다. 시모니데스 Simonides는 자기 동포들에게 삶을 '유희'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들은 진실함을 고통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예술에 의해서만 불행까지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Ⅰ』
장자의 우화는 구속되지 않는 정신세계의 개방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형이상학적인.종교적 초월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우화에 등장하는 새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정신 경계의 무한하고 자유로운 확대와 세속적인 자아로부터의 탈주를 의미하는 화려한 은유다. 장자는 이 우화를 통해 '진정한 자기'를 다시 되새기기 위해 '세속적인 자아'를 없애는 무위 無爲를 말한다.
또한 장자는 일체의 시공간적 울타리를 벗어난 열린 마음의 해방을 강조한다. 특히 유유자적하는 마음과 정신의 무한한 확장은 유희하는 인간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현대 미학의 여러 문법과도 통하는 바가 많다.
거대한 새는 자유와 초월을 상징한다. 환상은 곧 새로운 삶의 영역을 향해 비약하는 일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 G. Nachelard의 멋진 표현을 빌리자면, 이처럼 대공을 비상하는 낭만주의적 상승은 하늘 높은 곳으로 탈주하려는 근원적 향수로 인해 꿈꾸게 되는 '자기 안으로의 여행'이다.
또 이 우화는 물고기가 커다란 새로 변한다는 자기 변형의 상징이다. 니체도 말했듯,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파멸한다." (『아침놀』) 장자의 우화는 기존의 현실을 탈피해 현실을 새롭게 재설계하려는 생성의 사유를 표방한다. 「소요유」에서 유 遊란 자기가 꿈꾸는 곳이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마음의 절대적 자유를 가리킨다. 장자는 이와 상반되게 자신이 처한 영역 안에 갇혀 있는 존재들을 다음과 같이 힐난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사는 곳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향리의 선비에게 도를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비속한 교리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수」
니체가 강조하는 가상 세계에서의 새로운 가치 창조와 장자가 중시하는 환상의 세계로의 장쾌한 비상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사이언스 시대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니체와 장자의 관점은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공간 개념인 가상 공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더욱더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사이언스 시대에서 가상 공간은 현실을 압도하고 있다. 가상 공간은 단순히 가상 세계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주체를 다차원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공간이다. 가상 공간을 활용한 주체의 확장, 바로 이 지점에서 니체와 장자는 좋은 조력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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